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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의 말을 할 수 있는 사나이 ㅣ 환상문학전집 38
안드루스 키비래흐크 지음, 서진석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11월
평점 :
#도서협찬
살다살다 ‘에스토니아’ 문학을 읽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도 상의 위치도 어딘지 몰라 이 책을 읽은 뒤 검색을 해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핀란드 바로 밑에 있는 작은 북유럽 국가였다.) 그만큼 잘 모르는 나라였고 지금까지 번역된 에스토니아의 작품들을 만나볼 기회도 없었기 때문에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어느 정도의 문화적인 이질감이 느껴질 것이라는 각오(?)를 머금고 책장을 펼쳐들었다. (바로 옆에 있는 나라인 일본 문학을 읽을 때도 문화적인 차이로 인해 눈살이 찌푸려질 때가 종종 있었다. 나만 그런가?)
그러나 그런 나의 각오와는 다르게 <뱀의 말을 할 수 있는 사나이>는 그런 부분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나라와도 공통된 정서로 쓰인 작품이라는 점을 느꼈달까. 소설은 크게 ‘마을 사람들’과 ‘숲에 사는 사람들’로 나뉜다. 마을 사람들은 독일권의 신진 문물을 받아들인 반면, 숲에 사는 사람들은 전통 문화를 고수하는 입장이다. 이들은 몇 번의 전쟁을 거쳤을 만큼 갈등이 많은 편인데, 숲에 사는 사람들은 원래 ‘북녘 개구리’가 철갑인들(마을 사람들)을 잡아먹으며 본인들이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북녘 개구리가 잠드는 바람에 열세를 띌 수밖에 없다고 한다. 당연하게도 마을 사람들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 치부하지만 말이다.
마을에서 태어나 숲으로 이사를 오게 되어 그곳에서 쭉 자란 소년 ‘레메트’는 중립된 입장에 서있는 인물(주인공)이다. 레메트의 기억 속에는 오직 숲에서의 생활 뿐이었으나, 모종의 계기로 마을 사람들의 생활을 목격하게 된 그는 숲에 사는 자신들보다 훨씬 편하게 사는 듯한 모습에 일종의 혼란을 느낀다. 이러한 어리숙한 인물이 주인공으로서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소설이기 때문에 독자들은 그 중립적인 인물의 심리와 그의 모험을 따라가는 모습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볼 수 있게 된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바로 전통을 고집하는 입장의 인물들이 너무도 악하고 매력없게 그려져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탐베트’라는 인물을 들 수 있다. 이 인물은 주인공 레메트를 마을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멸시한다. 여기까진 그럴 수 있다 치자. 더 심한 것은 본인의 어린 딸 ‘히에’가 ‘늑대 젖’을 먹어야하는 전통을 거부하자 극도로 분개하며 딸을 노예처럼 부려먹으며 완전히 진심으로 혐오한다는 것이다. 대립된 두 입장의 인물들을 모두 매력적으로 보이게끔 입체적으로 그렸다면 훨씬 더 보기 좋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숲에 사는 사람들을 너무 안좋게 그려내다보니 양쪽 입장의 균형을 잃게 되는 듯하여 그 지점이 너무도 아쉽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소설을 읽으며 어쩐지 우리나라 역사를 보는 것 같기도 하였다. 한국사를 공부하다보면 병자호란 전후에 청 문물 도입을 둘러싼 대립과 흥선대원군의 쇄국 정책 등을 배우게 될텐데, 그때마다 새로운 것을 도입하는 입장이 항상 맞지 않았던가. (삼전도의 굴욕이라던지, 일제강점기라던지…) 이런 결과는 비단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였는지, 그래서 작가도 전통을 고수하자는 입장을 악하게 그려낸건지 싶다. 이렇게 에스토니아 문학에서 한국사를 떠올린 것이 너무도 신기한 경험이었고 먼나라와도 정서적으로 공감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