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역과 반역에 대한 내 통절한 각성은 고백이 아니다. 내면을 성찰하고 표현하는 인간 정신 작용은 더 아니다. 인간과 비인간 모두를 아우르는 네트워킹에 참여하기 위한 전제조건일 뿐이다. 정치경제를 종식하고 공동체 선물 세계를 여는 존재론이자 윤리학이다.

 

그 세계 존재론은 살해당한 생명을 되불러내며, 그 윤리학은 수탈당한 풍경을 되돌려놓는다. 누가 어떻게 죽음으로 내몰렸는지, 무엇이 어떻게 소유물로 뒤바뀌었는지 알아야만 존재는 복원되고 윤리는 완성된다. 존재도 윤리도 각각 알맞은 고유 맥락을 구성한다.

 

우리는 우리 맥락에서 공동체 선물 세계를 열어간다. 조선 반도에서 벌어진 제국주의와 그 마름 이야기를 옹골차게 해야만 그럴 수 있다. 이제 그 남다른 이야기를 구성해야만 한다. 남다른 이야기라서 남과 더불어 펼치면 모든 이야기가 한 이야기로 어우러질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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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숲을 연속해서 두 번 들어가기는 처음이지 싶다. 검단 숲, 이번에는 서쪽 사면 계곡으로 들어가 능선 거쳐 옆 계곡으로 이어지는 길 아닌 길을 만들어서 시작한 곳으로 되돌아 나왔다. 지난주 나올 때 남은 아쉬움을 덜기 위해서였으니 역시 소식을 전했고 돌귀를 남겼다.

 

산곡천을 거슬러 따라가며 남한산을 향한다. 천변 길은 물론 가재울 골짜기로 들어가 점점이 박힌 농가·전원주택·별장을 지나는 동안 사람은 거의 없고 풍경은 어수선했다. 생각 않고 버린 폐기물로 할퀴어진 물, 길섶, 자투리땅들을 보는 내내 아리고 쓰린 통증이 구시렁거린다.

 

모름지기 그 통증은 풍경이 내게 건네는 하소연과 신음에서 비롯했으리라. 심사가 편치 않으니 어쩌다 마주치는 농부에게도 눈길 보내지 못한 채, 남한산 동쪽 계곡으로 스며든다. 숲 깊이 들어가 500고지에 닿을 때까지 인적이 전혀 없다. 인적 없으니 그제야 마음이 눅는다.



고요한 숲에서 만난 작은 습지가 도롱뇽과 개구리알을 품고 있다. 낙엽이 덮여서 보이지 않는 작은 도랑물 소리가 들려온다. 연달래꽃 가족이 우꾼우꾼 마지막 천명을 피워올린다. 능선, 그리고 그 너머 인간 훤요만이 지나친 욕망, 넘치는 술수로 자신과 자연을 오염시킬 뿐이다.

 

산성에 올라 둘러본다.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522m), 위치상 특히 서울 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일일이 확인하다가 문득, 거대한 아파트 바다가 산들을 섬으로 가두고 있는 광경을 목도한다. 5천 년 역사를 지닌 나라, 6백 년 고도는 어디 가고 식민지 살풍경만 가득하다.



예정에 없던 청량산 길을 걸어 내려오다 청량한 약수로 목을 축인다. 맑은 기분으로 물길 따라 숲 밖으로 향하는데 느닷없는 굴착기 소리가 고요를 깨뜨린다. 무슨 터널 공사 같은 작업을 하는 모양이다. 식민지 토건은 영일 없구나. 6시간 산행한 다리보다 가슴이 더 무겁다.


지하철 안에서 생각한다. 왜 산 가장자리 마을은 모두 궁상맞고 너저분한 모습일까? 산처럼 푸근하지도 도심처럼 깔끔하지도 않고 어리숙한 욕망만 맨몸으로 나뒹굴까? 분명히 둘 다일 수도 있는데, 왜 둘 다가 아닐까? 스스로 내팽개치는 식민지 변방인 심성이 투영돼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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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두구의 저주 - 지구 위기와 서구 제국주의
아미타브 고시 지음,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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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331일 어느 특권층 부역자가 주인인 신문에 올라온 글 일부다.


20세가 되면서 대학공부를 위해 일본으로 갔다. 몇 해 머무는 동안에 가장 뼈저리게 느낀 게 있다. 저렇게 열심히 일하는 국민이기에 게으른 우리 민족을 지배하고 살았구나, 하는 죄책감이었다.

  당시 우리 민족은 너무 나태했다. 놀고먹는 팔자가 상팔자라고 했고 노랫가락에도 아니 놀지는 못하리라는 흥겨움이 깔려있었다. 양반들은 가난에 쪼들리면서도 이쑤시개는 물고 다녔다. 배불리 먹고 나서는 모습으로 위장하기 위해서. 내 아내 얘기도 그랬다. 어려서 친구들과 놀면서, 출가하게 되면 우편배달부한테 가야지 농사꾼에게 가면 어떻게 하느냐, 하고 걱정했다는 것이다. 우리도 일본인들과 같이 열심히 일해 보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꿈이었다.”(<김형석의 100년 산책>)

 

참담하다. 104세 철학자 사유에서 나온 글이라니. 그가 평생 공부하고 가르친 철학이란 과연 무엇일까. 스무 살 이전 특권층 부역자 소년이 본 식민지 풍경에 100세가 넘은 지금도 변함없는 해석을 가하는 철학자, 그 정신적 neoteny가 너무나 애잔하다. 설혹 그 해석이 옳다고 하더라도 열심히 일하는 국민은 게으른 민족을 지배하는 권리를 지닌다는 식으로 전형적 제국주의 발상을 하면서도 전혀 각성이 없다. 아니. 다 차치하고라도 전체적인 글 수준과 기본 어휘 선택조차 중고생 백일장과 방불한데 100년 관록 자랑할 지면을 내주다니. 심지어 그 신문 인기 검색어 1위란다. 누구는 노망 아니냐 한다. 아니다. 정확히 특권층 부역자 심리 상태를 반영한 글이다. 누구는 무슨 언론이 이러냐 한다. 아니다. 정확히 이런 짓 하는 집단이 바로 이 나라, 그러니까 중첩 식민지 부역 언론이다. 참담하다는 말도 물색없다.

 

예순여덟 나이에 제국주의를 공부하고 부역 서사를 쓰겠다고 나선 내 자신이 심히 늦되다 탄식했는데, 마흔 살 가까이나 더 많은 철학자, 아니 철학가 아직도, 아니 끝내 이런 말이나 한다니 적잖이 안심이다 싶어서 씁쓸하기 짝이 없다. 지식이든 지성이든 지혜든 패거리 우물에 빠지면 그야말로 한심한 bullshit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이 철학처럼 오래 살 확률은 매우 낮을 터이므로 여생이 그리 길지 않다. 여태까지 살아온 삶 돌이키려 지금이라도 이 글을 쓰는 만큼 헛된 짓거리가 되지 않도록 각고해야겠다.


각고를 벼린다. 도봉 숲이 내게 들려준 말은 부역자 각성이었다.(2023.2.14. <부역 생태 서사>) 검단 숲이 내게 들려준 말은 반역자 각성이었다. 검단 숲을 다녀온 뒤 소식을 기다리던 그제(2023.4.19.) 새벽 홀연 잠에서 깨는 순간 내 삶에 똬리 튼 개체/미시 제국주의를 통렬히 깨달았다. human-biont로서 내가 나와 공생하고 있는 nonhuman-biom에게 말살 전쟁을 벌여왔다고 검단 숲이 말해주어서다. 메모하려 스마트폰을 열자 처음 내 눈으로 날아든 짱돌이 바로 앞에 인용한 그 글이다. 설마 타산지석일 뿐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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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두구의 저주 - 지구 위기와 서구 제국주의
아미타브 고시 지음,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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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두구의 저주 덕분에 제국주의 전경을 세밀하게 그릴 수 있었다. 제국주의가 얼마나 전천후·전방위적 힘인지 확인했다. 그 힘에서 완전히 벗어날 어떤 존재도 없다. 생을 부지하는 모든 사건이 반제국주의 전선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까닭이 바로 여기 있다.

 

반제 전선은 개인 양심이나 도덕 문제가 아니다. 앵글로아메리카가 구축한 세계체제를 무너뜨리고 권력을 재편하는 정치혁명으로 끝날 문제도 아니다. 인간에서 비롯한 지구적 위기를 극복하고 공생하기 위해 비인간을 주체로 복원시키는 신성한 네트워킹 문제다.


신성한 네트워킹은 반드시 공동체 운동으로 빚어진다. 공동체 운동은 이치상 영적이다. 영성은 비인간 풍경 자체가 지니는 생명력에서 발원했다. 그 풍경은 숲으로 발현했다. 숲 본성에 다시 깃들려면 닫혀 있는 몸을 열어야 한다. 열쇠는 결곡한 부역자 각성이다.

 

부역자 각성은 단순히 그렇구나, 하는 깨달음을 말하지 않는다. 무엇이 어떻게 얼마나 구조적 부역으로 발현해 자기가 속한 공동체를 해치는지 미시·거시 망라해 공부해야 한다. 그래야만 거대 제국과 특권층 부역 집단이 지배하는 지구를 디-테라포밍할 수 있다,

 

각성한 부역자는 trickster로서 천명을 영특하게 살아내야 한다. 한국 현실 정치는 이 trickster 부재로 실패를 거듭해왔다. 지금 민주당 실패도 여기에 속한다. 민주당보다 더 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이른바 운동권 세력도 본질이 같다. 참으로 아둔한 결벽증이다.

 

거듭 강조하건대 실로 결백한 사람들은 모두 살해당했다. 살아남은 자들은 죄다 제2류다. 2류로서 곡진히 천명 안에 서면 길이 보인다. 길 찾으러 부역자 전경 앞으로 간다. 거기서 자아 거점을 지우고 연속된 전체 생명으로 배어들라는 제1류 목소리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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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두구의 저주 - 지구 위기와 서구 제국주의
아미타브 고시 지음,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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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가장 두려워한 일은 풍경이 지닌 보이지 않는 힘이 반격해오는 사태가 아니었을까? 아마 그런 생명력에 대한 공포로 절어 있는 그들 자신의 인식이 모조리 없애버리겠다는 분노를 부채질했으리라.

  이런 두려움에서 유럽 정착민을 괴롭힌 정복당한 풍경에 대한 불신과 의혹이 피어났다. 그러므로 정복당한 영토를 테라포밍하고, 그 땅에서 보이지 않는 힘을 축출하고, 그곳을 익숙한 자원 저장고로 길들여야 할 필요성이 시급해졌다. 역설적이지만 그런 파멸 충동 속에는 식민지 개척자들이 명시적으로인정할 수 없는 무엇에 대한 암묵적인인식이 깔려 있었다. , 토착민이 시종일관 옳았다는 사실, 풍경은 비활성도 언어 무능도 아니고 생명력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 말이다.

  ···확고한 근대성에 대한 모든 합의 이면에 종잡을 수 없는 무언가, 고요한 겉모습을 지니지만 끝내 침묵하지 않을 무언가가 숨어 있다는 의심이 깔려 있지 않을까?

···

  그리고 점차 심화하는 기후 위기는···무자비한 종말론적 폭력에 직면해 비인간은 말할 수 있고 말해야 한다고 시종 굽힘 없이 항변해온 목소리에 훨씬 더 큰 힘을 실어준다. 이제 지구적 대재앙 가능성이 한층 더 가까워짐에 따라, 우리 이야기에서 그 같은 비인간 목소리를 복원해내는 작업은 필수불가결하다.

  인간, 그리고 우리 모든 친족은 바로 여기에 운명을 걸고 있다.(355~357)

 

416 9주기 아침 미리 전화로 알아본 하남시 배알미-01 버스 기점으로 출발 시각에 맞추어 집을 나선다. 지난주 나를 울게 만든 검단산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다. 뭔가 알지 못할 기대감이 없지 않으나 비속한 신비는 사양하므로 평정이 흐른다.

 

윗배알미 계곡은 제법 깊어 처음부터 개울 물소리가 낭자하게 숲을 흔든다. 개울을 이리저리 가로지르며 난 길은 충분히 습해서 많은 이끼와 버섯을 품고 있다. 나중에는 귀찮을 만큼 곳곳에서 눈길을 잡아당기는 생명들로 수없이 멈춰 선다.

 

물소리 우렁찬 곳에서 홀연 앉아 돌을 모은다. 250개를 채워 아리잠직한 바위 위에 쌓는다. 특권층 부역자 권력이 9년 전 바다에서 이렇게 한꺼번에 생때같은 아이들을 살해했다는 소식을 검단 숲에 전해드리기 위해서다. 합장한 뒤 더 깊은 숲으로 나아간다.



능선에 이르러 한참 나아가니 기품 서린 커다란 바위가 나온다. 배 모양을 닮은 돌 하나를 주워 뒤집힌 각도로 바위 주름에 얹어놓는다. 검단 숲에 이 배 이름이 세월호라고 말씀드린다. 오후 416분에 알람을 맞춘다. 합장한 뒤 더 깊은 숲으로 나아간다.



정상을 밟지 않는 원칙에 따라 직전에서 하산길로 접어든다. 경사가 가파른 돌투성이 길이다. 한참 내려오니 한 귀퉁이에 팔각정 지어놓은 넓은 빈터가 소란하다. 여러 일행이 모여 하나같이 막걸리를 마시면서 떠들고 있다. 되지도 않는 정치 얘기가 대부분이다.

 

서둘러 떠나며 괜스레 운동화 먼지를 탕탕 떨어낸다. 여전히 불편한 돌투성이 길이지만 얼마쯤 가니 울창한 침엽수림이 나타나 기분이 한결 가벼워진다. 다 내려와 돌아본 검단산은 팔당역 쪽보다 훨씬 온화하다. 알람이 울린다. 가던 길을 멈추고 묵념한다.



상수리 어린나무 뒤 갸름한 바위 위에 작은 귀 모양 돌 하나를 얹는다. 돌들로 숲에 소식을 전했으니 숲이 말 아닌 말로 내게 하는 말을 귀 아닌 귀로 들으려 한다. 무자비한 종말론적 폭력에 직면해 비인간은 말할 수 있고 말해야 한다. 인간은 삼가 들어야 한다.



제국에 살해당해 존재가 부정되기는 무고한 인간이나 무고한 비인간이나 마찬가지다. 동일 문제며 동등 당사자다. 내가 416 9주기에 검단 숲에 온 까닭은 바로 이 진실을 공유하기 위해서다. 우리 제의가 부디 가이아 네트워킹에 가 닿았기를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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