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모를 땋으며 - 토박이 지혜와 과학 그리고 식물이 가르쳐준 것들
로빈 월 키머러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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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치어로 의 어원은 마음을 일컫는 단어와 같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부식토는 사람에게 생리적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어머니 대지님의 냄새를 들이마시면 옥시토신 분비가 촉진되는데, 이 물질이 엄마와 아이, 사랑하는 연인 사이 유대감을 강화한다는 바로 그 호르몬이다.(347)


 

부식토 냄새를 맡으면 옥시토신 분비가 촉진된다는 사실을 아파치족이 알았을까? 설마. 땅이 인간의 마음을 형성한다는 사실을 아파치족이 몰랐을까? 설마. 모순으로 인지되는가. 그렇다면 바로 그 인지가 무지다. 아파치족이 모른 것은 다만 옥시토신이라는 용어와 그 용어에게 훈장을 준 인과논리다. 아파치족은 땅 냄새가 엄마와 아이, 사랑하는 연인 사이 유대감을 강화한다는진실에 정확히 터 잡아 살아왔다. 좀 더 근원적으로 말하면, 땅 냄새가 인간 사이에 신뢰 종자를 뿌려 네트워킹을 일으키도록 한다는 진실을 몸으로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정작 그 진실을 문명인 대부분이 여태도 모른 채 살고 있다.

 

아파치 부족의 몸 지식, 경험 지혜는 미코박테리움바케라는 토양 박테리아와 호흡 또는 피부로 접촉하면 그들이 인간 몸에서 세로토닌을 만들어준다는 진실 또한 옥시토신 문제에서 그러하듯 이름 없이” “논리 없이알고 있었으리라. 세로토닌은 삶이 즐거운 놀이라는 감각을 지니게 하며, 마음 작용이 균형과 동시성 속에서 이루어지게 한다. 세로토닌 부족이 몰고 오는 전형적 질병이 바로 우울장애라는 사실은 최근 들어 문명인 대부분도 알게 되었다. 문명인이 아직 덜 연구해서 그렇지 인간 마음을 형성하는 다른 여러 호르몬 또는 신경전달물질도 같은 진실 안에 있음에 틀림없다. 인간 마음은 인간 피조물도 소유물도 아니다.

 

부식토는 부식질 20% 이상을 포함하는 비옥한 흙이다. 부식질은 흙 속에서 식물이 썩으면서 만들어지는 유기물의 혼합물이다. 더 핍진하게 말하면 인간의 마음은 낭/풀이 만들어내는 생명 현상이다. 발원 자체에 이미 호혜 교류, 그러니까 네트워킹 본성이 깃들어 있다. 인간이 제 것이라고 우기는 이른바 마음은 극진 네트워킹을 게을리 해서 빼돌린 잡념과 그 잡념을 제거한답시고 고안해낸 또 다른 잡념이다. 구도 언어가 심오할수록, 절차가 정교할수록, 양식이 번다할수록 상스러운 잡념이다. 잡념인 마음은 땅과 낭/풀의 네트워킹 본성에 찰나마다 극상으로 참여하면 당최 존재 불가능한 허구다. 구도가 있다면 오직 하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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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모를 땋으며 - 토박이 지혜와 과학 그리고 식물이 가르쳐준 것들
로빈 월 키머러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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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적응adapt하고 사람은 적용adopt한다.(336)

 

적응은 어미 노릇이고 적용은 새끼 노릇이다.

적응은 지음이고 적용은 좇음이다.

적응은 주고받음이고 적용은 받음이다.

적응은 선물을 낳고 적용은 감사를 낳는다.

 

감사를 내동댕이친 새끼가 어미를 욕되게 살해한다. 모성모독살해가 인간 문명과 역사의 본질이다. 돌이킬 시간이 이제 막 지나가는 중이다. 이제는 언제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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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약은 병의 원인 가까이에서 자라는 법(335)


내가 천하시인이라 일컫는 김선우 시인이 지난 주말 카톡을 보내왔다. 등단 25주년 기념 6번째 시집 내 따스한 유령들저자 증정본을 보내주겠단다. 출판사(창비) 책 소개에 실린 저자 인터뷰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그는 엄청 아팠다. 4대강 사업 시작할 때도, 세월호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온몸으로 감응했다. 팬데믹 상황과 맞닥뜨려 또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 예상은 했지만 이번에는 훨씬 더 상황이 혹독했다. 몸무게가 10kg쯤 빠지고, ‘생체 에너지가 15%쯤 남은지경까지 이르렀다. 고향인 강릉으로 돌아가 이 상황을 견뎌냈다. 그가 말했다. “고향에 와서.......1년을 지내면서 왜 선인들이 아프면 고향에 가라고 했는지 알겠더군요. 내 몸이 비롯된 곳 기운에 나를 맡기는 과정이 내 몸 치유에 필요했구나 싶습니다.”

 

이 말은 내 몸이 비롯된, 그러니까 내 생명이 발원한 고향 기운이 내 병을 치료하는 약으로 작용했다는 뜻이다. 십분 공감한다. 공감은 다만 정서를 넘어 과학에 가 닿는다. 문제는 지금 내가 꺼낸 이 얘기가 치료약은 병의 원인 가까이에서 자라는 법이라는 말과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말을 저자는 다른 책 이끼와 함께에서 약초는 질병의 근원지에서 자란다.”라고 했다. 이를 김선우 어법으로 바꾸면 치료약은 병이 비롯된 곳에서 자라는 법이 된다. 그렇다면 고향이 어떻게 병이 비롯된 곳이란 말인가?” 하는 이의제기부터 달게 받아야 한다. 병은 타향에서, 거대도시에서 비롯되었고, 그래서 치유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해야 이치에 맞을 테니 말이다. 과연 병은 타향에서 비롯되었을까?

 

타향에서 일어난 슬프고 아픈 일은 결과로서 증상일 뿐이다. 원인 또는 근원은 고향에서 몸이 분리된 사건 자체다. 분리 사건은 명백히 고향에서 일어났다. 고향에는 아물지 않은 상처가 그대로 있다. 그 상처는 자신과 짝을 이루는 상처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돌아올 때 상처에 들러붙은 증상들을 우리는 흔히 병이라 잘못 이름 한다. 잘못 이름 하면 잘못 치료한다. 증상 없애는 일을 치료라고 착각한다. 해열, 진통, 소염, 항생, 차단제가 칼춤 추는 서구의학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다. 분리를 치료하는 서구의학 약물은 없다. 증상의 근원지에서 자라는 약초만이 분리를 치료할 수 있다. 그 약초가 내 몸이 비롯된 곳 기운”, 그러니까 합일의 소식과 에너지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병들고 나음 역시 뫼비우스 띠 본성이다.

 

누군가 말했다. 모든 병은 향수병이라고. 인간이 그리워해 병이 되는, 병들어 마침내 귀의하는 궁극 고향은 낭/풀 세계다. 김선우 시인을 품었던 대관령, 강릉 앞바다, 남대천 풍경이야말로 전형적인 낭/풀 세계다. 시인의 대관령 그 너머 편에 바로 내 고향 평창군 진부가 있다. 시인은 떠난 지 30년 만에 고향에 돌아왔다고 했는데, 나는 고향 떠난 지 56년이 지났다. 그 동안은 내 상처를 만나러 그저 한나절 머물다 올라온 적이 더러 있을 뿐이다. /풀에 빙의되어 살아가는 지금 사뭇 다른 몸으로 고향에 가고 싶다. 시인처럼 크게 앓는 사람은 못되고 그저 인생 병 하나 걸머지고 내 몸 비롯된 그곳에 가고 싶다. 무엇보다 먼저 56년 전부터 지금까지 살고 있는 나무들을 만나보고 싶다. 안부를 묻고 싶다. 가만가만 안아보고 싶다.

 

내 따스한 유령들』이 방금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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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은 당신이 준비되었을 때 찾아온다.......들으려면 침묵해야 한다.(327)

 

우치다 타츠루(소통하는 신체)를 따르면 무도 수련에서 제자는 스승한테 절대적으로 지는 법을 배운다. 절대적으로 지기 위해 몸을 절대적으로 이완된, 그러니까 위험한 상태에 둔다. 스승 칼날 아래 흔쾌히 목을 내민다. 절대적으로 위험한 상태에서 절대적으로 지는 법을 배움으로써 절대적으로 이기는 법을 배운다는 이치다.

 

여기 들으려면 침묵해야 한다.는 말과 정확히 같다. 스스로 떠들면서 스승의 말을 제대로 들을 수는 없다. 떠들지 않는다는 데서 침묵이란 조건은 끝나지 않는다. 더 중대한 침묵 조건은 스승의 언어를 제 언어로 번역하지 않는 일이다. 이 번역은 원천적으로 오역일 수밖에 없다. 오역이라는 사실을 제자는 모른다. 제자는 스승께서 말씀하신 대로 했다.’고 강변한다. 강변은 허위 유능감정을 반영한다. 허위 유능감정은 배움이 형성되지 않았다는 증거다.

 

이 증거를 우리 대부분은 가지고 있다. 설명 잘하는 수학 선생님이 칠판에 쓰면서 풀어줄 때, 고개 끄덕이는 일과 스스로 푸는 일이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모를수록 수학 점수가 낮다는 경험적 증거 말이다. 증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깨치지 못하는 까닭은 고개 끄덕이는 일이 오역(일 따름인 번역)이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상담치료 임상에서도 이런 경우가 어렵다. 치료자가 말할 때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수긍했는데 그 다음에 와서 전혀 다른 말을 하는 사람. 단순한 오해일 수도 있으나, 이를 반복한다면 결국 이 사람은 들을 생각 없고 자기 말만을 하는 치료저항성 환자다. 정말 어려운 경우가 하나 남아 있다. 치료자의 상세한 설명을 듣고 허위 유능감정에 사로잡혀 스스로 병을 통제하겠다며 발길을 끊는 사람. 이런 사람 의외로 많다. 물론 바로 그게 중병인데 속수무책이다.

 

속수무책이라는 표현에는 내 어수룩함, 아니 모자람이 묻어 있다. 환자로 하여금 허위 유능감정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하려면 곡진함에 짝하는 결곡함이 있어야 한다. 결곡함은 전략이 차마 명함 내밀 수 없을 정도로 영적 카리스마가 갖추어진 상태를 말한다. 영적 카리스마를 갖추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반성한다.

 

반성은 이미 전복된 사유를 반영한다. “제자는 당신이 준비되었을 때 찾아온다.......말하려면 침묵시켜야 한다.” 제자의 침묵은 제자만의 조건이 아니라 스승의 조건이기도 하다. 참 제자가 흔쾌히 침묵함으로 스승을 기다리듯 참 스승은 제자로 하여금 흔쾌히 침묵하도록 함으로 찾아간다. 스승의 조건을 충족시키는 자는 제자의 조건을 충족시키는 자를 모순으로 끌어안아 창조해낸다. 살육과 생육을 한칼에 이루어버리는 윤리학이다. 윤리학은 역설 수리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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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받은 명령은 "걸음걸음이 어머니 대지님에게 드리는 인사가 되"도록 걷는 일이었으나, 무슨 뜻인지 아직 확실히 알지 못했다.(303)

 

집으로 향하는 길에는 질경이님이 늘어서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길을 따라가면 된다. 너그러운 치유자인 '백인의 발자국'포타와토미족은 질경이를 이렇게 부름_인용자은 잎을 땅에 바짝 붙여 걸음걸음이 어머니 대지님에게 드리는 인사가 되도록 자란다.(316)

 

질경이는 단단함과 부드러움을 고루 갖춘 생명이다. 잎은 겉이 부드러운 반면 속이 강인하고, 줄기는 그 반대다. 줄기는 밟혀도 죽지 않게 비스듬히 선다. 잎은 줄기 맨 아래서 지면에 바짝 붙어 겹으로 핀다. 밟혀도 죽지 않는다. 인간이 길을 만드는 한 질경이는 밟힘으로 존속한다. 밟힘이 그에게는 명예다.

 

이 생명 본성을 포타와토미족 정서 지혜는 잎을 땅에 바짝 붙여 걸음걸음이 어머니 대지님에게 드리는 인사가 되도록 자란다.고 아름답게 표현했다. 질경이 본성이 어머니 대지님에게 드리는 인사라는 서사가 머금은 진실은 사뭇 엄밀하다. 걷는 인간은 대부분 걷기 본성을 아직 확실히 알지 못한다. 질경이 늘어선 길을 따라가고서야 알 수 있으리라.

 

나는 오늘 질경이 발자취질경이 꽃말를 따라 걸음걸음이 어머니 대지님에게 드리는 인사가 되도록 걸어본다. 인사는 만남과 존경과 감사를 표하는 극상 선물이다. 몸을 활짝 펴서 행한다. 인사는 인간 존재의 빛나는 발현 양식이다. 몸을 활짝 열어 행한다.

 

몸을 펴고 열지 않은 걷기는 일상 이동, 경쟁, 건강, 수행 도구인 걷기다. 도구에 걸맞게 속도, 보폭, ·착지, 시선, 체간과 견갑 각도, 하지 굴신, 상지 회전들이 왜곡된 걷기다. 몸의 본성을 대부분 접어 넣은 걷기다. 접힌 걷기를 가슴 깊이 느끼고 가차 없이 거절할 때 본성이 열린다.

 

본성 걷기는 연극배우가 연기하는 듯도 하고 무용수가 춤추는 듯도 하다. 과하게 또는 우스꽝스럽게 느껴지는 꼭 똑 그만큼 무심코 얕고 짧게 걷는 타성에 젖어 있었다. 이 타성 걷기에서 공포·불안은 원인이기도 하고 결과이기도 하다. 홀연 돌연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인다. 여기서부터 몸 사람이 다시 깨어난다. 몸 사람으로 낭/풀에게 가 닿는다. 외길이다. 길섶은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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