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고 귀한 사람을 하나 잃었습니다. 열흘이 지났습니다. 그 선한 눈매로 환히 웃으며 당장이라도 제 방문을 열고 들어설 듯합니다. 차마 눈조차 뜨지 못한 채 ‘불쌍해서 어떻게 해요.......’만을 되뇌던 그 아내가 여적 제 앞아 앉아 오열하는 듯합니다.

 

 

삼년 전 쯤 그는 깊은 우울증으로 저를 찾아왔습니다. 서울과 충청도를 오가며 몇 차례 상담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는 이 상담을 통해 인생의 새로운 지평선이 열리는 걸 경험했다 하였습니다. 그 뒤 가까운 한의원에서 약도 지어먹고 하면서 기운을 되찾아 건강한 삶으로 복귀하였습니다.

 

 

그가 그러는 사이 저는 인생 최대의 시련을 맞아 고전 중에 있었습니다. 한의원이 결딴나 낭인으로 전국을 떠돌았습니다. 그러다 천신만고 끝에 용마산 발치에 조그만 동네 한의원을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맨주먹으로 빚 얻어 시작한 터라 초기 함몰비용을 견디지 못해 매순간이 가시방석이었던 나날의 끄트머리에 홀연히 그가 나타났습니다. 농사꾼인 그에게는 물론 제게도 함부로 못할 거금을 하얀 봉투에 넣어서 말입니다. 어쩔 줄 몰라 하는 제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제게 기적이 뭔가를 보여주셨습니다. 이 보잘 것 없는 것이 다른 기적을 일으키는 도화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벼랑 끝에서 저를 구한 그는 표표히 자신의 삶터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그의 건강함에 작은 힘이나마 보탠 인연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삶을 믿었습니다. 그에게 머물던 제 눈길에 한 동안 휴식을 주어도 되겠다며 안심했습니다. 그러던 지난 봄 어느 날 급한 문자 한통이 날아들었습니다. “남편 상태가 심각해요. 선생님께서 전화 한 통 주세요. 그러면 그 사람 움직일 거예요.”

 

 

저는 지체 없이 전화를 했고 그 길로 올라오라 해서 만났습니다. 차를 마시다가 식사로 이어지고 마침내 낮술로 속을 어루만지며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오직 착하고 곧고 맑은 마음으로 이 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진보정치 일선을 지키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진보진영의 파쟁을 온 몸으로 겪게 되었습니다. 그가 받은 상처는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치명적이었습니다. 그 상처를, 그 억울함을 어디에도 다 털어놓고 말하지 못한 채, 말한 그대로 이해받지 못한 채, 속이 썩어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울며불며, 가슴을 치며 말을 이어갔습니다, 어둠이 푸르게 내려앉을 때까지. 저는 깊이 경청했고 그의 주장을, 그의 깊은 마음을 수용했습니다. 그리고 헤어지면서 그가 이 고통의 강을 또 한 번 잘 건너갈 거라 믿었습니다. 전처럼 신뢰를 보내주었습니다.

 

 

그러나 이 어리석은 醫者의 믿음은 한낱 안일함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아픈 사람에게서 삶의 냄새만 맡고 죽음의 냄새는 짐짓 외면하는 통속한 감수성, 아니 관성이 그 날의 만남을 마지막 만남이 되게 하고 말았습니다. 저 통속한 신뢰의 알량한 봉인을 뜯지 못하고 어영부영 하다 마침내 다시 한 번 급박한 문자 한통으로 제 영혼은 된서리를 맞고 말았습니다. “선생님, 그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 둔해빠진 醫者는 또 허접한 후회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날 밤을 함께 새줄 걸, 내려간 뒤 수시로 챙길 걸, 그가 왔듯 내가 갈 걸....... 허접한 후회가 어찌 그리 쓰린지요. 뼈의 마디마디가, 살의 갈피갈피가 쑤시고 또 쑤셨습니다. 그의 선한 얼굴이, 그의 웃음이, 그의 눈물이, 그의 언어가 떠오를 때마다 칼에 베이는 듯 아팠습니다. 그 아내의 오열이 떠오를 때마다 온 몸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도록 부끄러웠습니다. 그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떨치지 못하여 찰나마다 숨이 멎곤 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오늘 한 깨달음 앞에 무릎 꿇습니다.

 

 

통속한 이 醫者의 죄책감이 이러할진대 연애 오년 동안 사랑의 편지 이천 통을 주고받았던, 부부로 살면서 그 고통의 고비마다 동참했던, 불과 몇 시간 전까지 멀쩡했으나 더 이상 온기를 내지 않는 그 뺨을 부비며 울부짖었던, 그 아내의 심경은 오죽할까....... 오히려 내 죄책감 따위는 시건방 떠는 짓 아니겠는가....... 그래, 이 순간 정신 똑바로 차리고 내 앞의 아픈 사람 하나하나 제대로 살피는 게 醫者의 애도다. 매일매일 하늘의 애인에게 연애편지를 쓰며 온 영혼으로 견디고 있는 그 아내에게 한약 한 제 정성껏 달여 보내는 게 醫者의 애도다.

 

 

삼가 있는 그대로 그의 삶에 도저한 공감과 지지를 보냅니다. 그의 죽음에 대해 제가 지니고 있는 마음을 이제는 더 드러내지 않으려 합니다. 자칫 그의 죽음을 욕되게 할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막걸리에 감자전 놓고 말할 수 없는 말로 그의 죽음을 이야기할 때가 오겠지요. 그 때 와서 다시 들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_()_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appletreeje 2013-07-29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으며...눈물이 자꾸만 났습니다.
어떻게 아름답고 착한 사람들은 이리도 빨리 떠나는지요..
故人의 명복을 진심으로 머리 숙여 빌며, bari-che님께서도 평화속에서
그분을 기쁘게 다시 뵙기를, 낮은 者의 기도로 대신합니다.

bari_che 2013-07-30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이 분,
醫者의 감수성을 일깨우는 스승으로
제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남아계실 듯합니다.
 

 

 

선의가 오해받아 악의로 읽히는 일이 드물지 않다.

해명은 변명이 되어 오해를 더욱 깊어지게 만든다.

아픈 침묵의 시간이 흐른 뒤 발효하거나 부패한다.

발효는 치유로 부패는 상처로 숙명이 되어 남는다.

완전한 소통은 꿈일 뿐이니 그 숙명만이 현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어제 낯선 번호의 전화 한 통이 왔다. 잠깐 망설이다가 받으니 젊은 여성이 내 이름 뒤에 아저씨를 붙이고 맞느냐고 묻는다. 그렇다, 하자 자신을 아무개 큰 딸이라 소개한다. 아무개는 얼마 전 세상 뜬 내 고교 동창이다. 유품을 정리하다보니 여러 곳에서 내 전화번호가 발견되어 대체 누군가, 궁금했단다. 생애 마지막 무렵 아주 힘들 때 심리상담을 해준 한의사라 하니 아버지 이야기를 듣고 싶다며 만나기를 청한다. 진료를 끝낸 뒤 근처 음식점에서 마주앉았다.

 

죽은 그 친구는 아주 어두운 유년시기를 보냈다. 엄마뻘인 배다른 큰 누이한테서 모질게 학대당했다. 그 원한감정을 끝내 떨치지 못한 채 우울증, 알코올중독, 간암으로 이어지는 어둠 속에서 헤매다 쉰여덟 어느 이른 여름날 큰 누이가 살고 있는 이 행성을 떠났다. 그 마음 한 자락 붉은 곳에 내 손이 닿았던 인연으로 나는 그의 딸아이 마음까지 다독여야 하는 자리에 앉게 된 것이다. 딸아이는 연신 눈물을 훔치며 이야기를 듣는다. 자주 자주 내 말을 메모해가며.

 

내가 해준 말은 두 가지였다. 좀 더 일찍 아버지 상태를 질병으로 인식하고 치유의 관점을 확보했더라면 결과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가 그 하나다. 사실 그는 마지막 가는 길목까지 아내와 두 딸한테 철저히 외면당했다. 과도한 음주와 폭력으로 가족 모두를 피폐하게 해 뿔뿔이 흩어졌기 때문이다. 가족은 한결같게 그의 상황을 인격과 윤리 차원에서 이해하였으므로 치유는 물론이고, 용서도 화해도 이루어질 수 없었다. 가족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흔한 살풍경이다.

 

다른 하나는 가족 모두 특히 어린 막내딸이 필경 입었을 상처 이야기였다. 나는 막내딸이 아버지한테서 관통상을 입었을 것임에 틀림없다고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현재 아버지를 똑 닮은 남자친구에게 집착하여 어머니와 언니 속을 태우고 있단다. 상처가 내면화되었다는 증거다. 떠난 사람, 떠난 거 아니다상처로 병으로 엄연히 머물러 있다. 시급히 치유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했다. 가능성 높지 않지만 그 막내딸이 걸어오는 전화를 기다리고 있다.

 

장대처럼 쏟아지는 빗발을 뚫고 돌아가는 그 큰 딸의 가벼울 리 없는 발걸음을 보고 한참이나 서 있었다. 큰 딸에게서도 그 아버지의 모습이 꽤나 많이 어른거리는 것을 본 터라 내 발길 역시 비에 젖은 그 이상으로 무거웠다. 지금 이 시간까지 삶과 죽음, 사랑과 상처, 가족....... 이런 생각으로 가슴이 젖어 있어 진료 중에 자꾸 숨을 몰아쉰다. 어르신 한 분이, 원장 선생 어디 아프우? 하신다. 민망히 웃으며 돌아서는데 설핏 어스름 이내가 마음 살갗에 살랑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어지러이 흩어지는 울음 그만

그대의 어둠을 꿰뚫어 보면서

심연을 향해 비수처럼 울어요

 

온 감정 쓸어 담은 울음 그만

그대의 상처를 낱낱이 살펴서

마음 결 따라 울 때만 울어요

 

생각 줄 끊어 버린 울음 그만

그대의 슬픔을 생생히 담아서

심심한 애도로 곡진히 울어요

 

숨죽이며 흐느끼는 울음 그만

그대의 아픔을 통째로 실어서

심장이 터져 나가게 통곡해요

 

* 오랫동안 상담치료를 해오면서 경험적으로 깨닫게 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울지 않는 환자는 치유하기 힘들다는 것이지요. 울면 낫습니다. 그런데 치유에 방해가 되는, 나아가 치유와는 거리가 먼 울음이 있습니다. 

 

첫째, 고통울 외면한 채 이리저리 나뒹구는 울음입니다. 고통을 직면한, 고통으로 정향된, 도저한 울음에 치유력이 있습니다.

 

둘째, 다른 감정 표현을 은폐하는 울음입니다. 적재적소에 나타나는 다양한 감정 표현이 정신 건강의 표지인데 다른 모든 감정을 오직 울음으로만 표현하면 그게 불가능해집니다.

 

셋째, 울음에 파묻혀 자기가 울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알아채지 못하는 울음입니다. 이런 경우는 울음의 근거인 감정을 애도할 수 없습니다.

 

넷째, 감정을 억눌러서 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는 울음입니다. 흐느낌은 상처와 고통을 더욱 깊어지게 만듭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사람은 자기 경계를 세우고 허무는 대칭 행위의 길항으로 살아간다.

 

경계를 세우는 것은 서로 떨어진 개별자로 살기 위한 밀어 막기다.

밀어 막으면 다름이 생긴다. 다름이 창조하는 가치를 자유라 한다.

자유를 향해 난 길이 홀로 서기다. 정녕 홀로 서면 사랑할 수 있다.

 

경계를 허무는 것은 서로 이어진 보편자로 살기 위한 당겨 열기다.

당겨 열면 같음이 생긴다. 같음이 창조하는 가치를 평등이라 한다.

평등을 향해 난 길이 사랑이다. 오달지게 사랑하면 홀로 설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