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의 에티카 - 신형철 평론집
신형철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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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도 웃지도 않는다.(627쪽)

 

적극적 사고방식 또는 긍정의 힘이 석권해버린 자기계발 시장에서 ‘들뜬 원숭이’들을 사로잡은 것 가운데 하나가 이른바 웃음요법입니다. 이 물건을 팔아먹는 사람들은 억지웃음이라도 건강에 좋다며 일부러 미친 사람처럼 웃도록 이끕니다. 최근에 억지웃음은 오히려 심리적 상처를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긍정주의에 날린 어퍼컷 같은 내용인데 아마도 웃음 파는 긍정주의자들은 대부분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긍정주의는 유구한 서구적 사유체계의 자연스러운 결과물입니다. 모든 분야에 이런 사유체계가 기반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의학이 예외일 리 없습니다. 증상으로 나타나는 병을 그들은 적, 그러니까 부정의 대상으로 여깁니다. 적은 무조건 타격해야 할 존재입니다. 적이 열이면 해열제, 통증이면 진통제, 염증이면 소염제, 우울이면 항우울제로. 약, 그러니까 긍정으로 타격하는 일 말고는 방법을 모릅니다. 일극집중으로 몰아가는 이 대결구조는 질병과 치료의 진실을 무자비하게 훼손하고 있습니다. 감기가 걸려 열이 나는 상황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서구의학을 배운 의사는 무조건 열을 타격해야 할 적으로 생각하고 해열제를 처방합니다. 그러나 이 때 열은 몸 스스로 방어하고 치료하는 과정이자 그 산물입니다. 해열제를 투입하는 것은 몸의 자가 치료를 방해하는 것입니다. 반복되면 몸은 자가 치료 능력을 잃고 맙니다. 이런 어이없는 광경은 서구의학 전반에 걸쳐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어이없는 광경은 서구 세계 전역에 걸쳐 벌어지고 있습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모든 일에 울었고 데모크리토스는 모든 일에 웃었다·······.(627쪽)

 

앞서 억지웃음에 대한 최근 연구 결과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그 연구에는 정색正色하는 것이 오히려 정신건강에 좋다는 내용이 더 들어 있습니다. 정색하는 것은 ‘울지도 웃지도 않는’ 것입니다. 문득 멈추어서는 것입니다. 문제 상황을 두 눈 똑바로 뜨고 응시하는 것입니다. 판단·평가·선택을 유보하고 전체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허령虛靈함으로 문제에 들러붙은 어둠의 당김 줄을 풀어줌과 동시에 청랭淸冷함으로 해결을 향한 날선 시선을 거두는 것입니다. 이도 저도 하지 않는 상태이므로 스스로의 영토적 경계를 지니지 않습니다. 점의 위상으로 문제를 관통합니다.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답이 아니라 문제입니다. 어차피 정답은 없으므로 문제를 정확히 읽는 것이 관건입니다. 문제를 정확히 읽으려면, 일단, 무조건, 정색해야 합니다. 정색하면 진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진실을 있는 그대로 보면 경직이 풀립니다. 경직이 풀리면 놀 수 있습니다. 놀이 속에 수많은 답들이 뛰어다닙니다. 뛰노는 답들이 비로소 우리에게 자유자재로 ‘울기도 웃기도 하는’ 세상을 열어줄 것입니다.

 

 

개천절인 어제 소설가 김훈이 문인들을 이끌고 ‘기다림의 버스’에 실려 팽목항을 찾았습니다. 아직도 열 명이 돌아오지 않고 있는 그 문제의 바다. 김훈은 ‘현상’만 늘어놓고 세월호 사고는 끝났다 떠드는 무리들을 향해 ‘진상眞相’은 밝혀지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진상’을 확인하기 전까지 우리에게는 정색을 유지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 때까지는 울지도 웃지도 않을 필요가 있습니다. 바위처럼 버티고 기다릴 까닭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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