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마중하며


요즘 새로이 떠오르는 우리사회의 화두 가운데 하나로 성조숙증 문제가 있습니다. 말 그대로 지나치게 어린 나이(여아 8세, 남자 아이 9세 정도)에 이차 성징을 보이며 성적으로 미리 자라는 것을 말합니다.


스트레스, 영양 불균형, 인스턴트식품 섭취 등에 따른 환경 호르몬, 과다정보에서 오는 지나친 성적 자극.......수많은 원인이 있고 그에 맞춘 치료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이것은 거대한 사회현상이며, 나아가 문명현상입니다. 개인 단위의 노력으로 해결될 문제를 넘어섰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될 매우 중요한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성조숙증이 청소년기를 앞당긴다는 것입니다! 이는 청소년기를 지나서도 부모에 의존하는 이른바 성장지체 현상이 청소년기를 늦추는 현상과 짝을 이룹니다. 결국 이 두 현상이 쌍방향 장력이 되어 청소년기를 앞뒤로 확장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사실 때문에 우리는 칼 같은 문제의식 앞에 섭니다. 청소년기에 우울증 최초 발병의 90%가 일어난다는 것, 이미 다 아는 바. 그런데 이렇게 그 시기가 늘어나면 거의 100%에 육박하고야 말 것입니다! 그 성격으로 미루어 청소년우울증 문제를 사회 전체의 공적 의제로 삼아야만 하는 이치가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문제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바로 아이들의 자살입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대학교 저학년에 이르기까지 청소년의 자살 통계를 낸다면 이 또한 OECD 국가 중 1위, 뭐 이런 말이 나올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삶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 우울로 침전되어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이 상황을 개인이 잘못된 선택을 한 것으로 규정하고서야 어찌 우리가 미래를 말할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중대하고 급박한 국면으로 접어들었습니다. 더 이상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됩니다. 더 이상 모르는 척해서는 안 됩니다. 인제 이 문제를 맨 얼굴로 마주해야만 합니다. 이 대면의 장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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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마음,

멍든 마음

-대한민국 아이들 심리보고서-


강용원


 

                  

차    례



0. 마중하며


1. 쌤, 진짜 드릴 말씀 있어요!


2. 우리 지금 죽어가는 거, 맞죠?

 (1) 이걸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2) 인격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다면 그건 죽어간다는 뜻 아닐까요?


3. 우리 우울 상태, 얼마나 심각한가요?

  

4. 우리는 왜 우울할 수밖에 없을까요?

 (1) 보편적 이해가 필요합니다.

 (2) 우리사회의 특별한 조건1-경직된 학교, 학교 폭력

 (3) 우리사회의 특별한 조건2-불화하는 가정, 가정 폭력


5. 우리 우울증, 무엇이 다를까요?

 (1) 분노, 공격성, 그리고 거부로 나타나지요.

 (2) 특별한 짝꿍 질환이 있어요.


6. 그럼 어떻게 해야 해요?

 (1) 약물치료, 문제없나요?

 (2) 아, 그럼, 한약은 어떤가요?

 (3) 무엇보다도 상담이 꼭 필요해요.

 (4) 쉬고 싶거든요.......

 (5) 강의 요법(Lecture Therapy)이란 게 있다면서요?

 (6) 의학은 결국 양육의 문제 아닌가요?

 (7) 그 무엇보다 사회제도 개혁과 인식 전환이 선결문제 아닐까요?


7. 쌤, 엄마한테 꼭 말씀해주세요!


0. 배웅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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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대장간16-네 가지 스승이 있다. 아는 이치를 가르쳐주는 스승, 생각하는 이치를 가르쳐주는 스승, 사는 이치를 가르쳐주는 스승, 그리고 깨뜨리는 이치를 가르쳐주는 스승.


마음 대장간17-세 가지 독서가 있다. 책에 파묻힌 독서, 책과 마주한 독서, 그리고 책을 덮은 독서. 


마음 대장간18-無酒爲佛 有酒爲仙


마음 대장간19-서로 다른 두 물체가 부딪치는데 왜 하나의 소리가 나는지 문. 득. 생각해 본 적이 있다면 그대는 이미 진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다. 


마음 대장간20-살다 보면/ 더러 드는/ 허무한 맘// 그때 마침/ 지나가는/ 고물 장수


마음 대장간21-죽음으로 난 급하고 짧은 길을 알. 면. 서. 걸어가는 사람. 그가 휘감기는 송연함은 죽음 자체 때문이 아니다. 홀로 내동댕이쳐진 존재의 가파른 시공, 살아 있다 차마 못 할 목숨, 절. 대. 고. 립. 의 습격 때문이다.


마음 대장간22-용서(1) 용서는 타인에게 주는 선물이 아니다. 원수에게 베푸는 은혜, 더더구나 아니다. 그런 용서는 신을 흉내 내는 허망한 관념 놀음일 뿐이다.

 

마음 대장간23-용서(2) 용서는 자신을 용납하는 과정에서 나온 아픈 현실 인식이다. 그도 나처럼 결핍, 고통, 한계 속에서 허덕이고 있구나, 받아들이는 내면의 힘이다. 그와 나 사이에 있는 차가운 모순을 뜨거운 역설로 달여 내는 영혼 연금술이다.

 

마음 대장간24-용서(3) 용서하면 대뜸 행복한가? 아니, 아픔부터 찾아온다. 그 아픔을 생명의 정수로 품을 때 비로소 행복해진다.  


마음 대장간25-사람에 날을 세우다가 일을 베어버린 적이 있었다. 일에 날을 세우다가 사람을 베어버린 적이 있었다. 사람에 날이 서도 일을 베지 않고 일에 날이 서도 사람을 베지 않는 날은 이쪽저쪽 다 무수히 베어버린 후에야 홀연 오는 거다. 


마음 대장간26-희망이란 아무리 길어 올려도 언제나 빈 두레박인 바닥난 우물. 절망이란

아무리 길어 올려도 언제나 두레박 가득 넘치는 우물.


마음 대장간27-영화/드라마 해피엔딩의 마약 효과 (1) 자기 속의 악을 은폐하고 스스로 의롭다 여기게 한다. (2) 현실도 해피엔딩이라 믿게 한다. (3) 영화/드라마 보는 것으로 실천이 종료되게 한다. 


마음 대장간28-中(1) 中은 가운데가 아니다. 가장자리다. 가장자리는 경계가 아니다. 경계가 무너지는 운동이다. 경계가 무너지는 운동은 변화를 일으킨다. 변화의 결 한가운데 흐르고 있음, 바로 그게 中이다.   


마음 대장간29-中(2) 中의 있음은 곧 이음이다. 이음은 관계의 창조다. 관계는 부단히 실체(substance)를 깨뜨린다. 실체는 깨져서 有無의 구별을 넘어선다. 有無를 잊은 行이 그.저. 中이다. 그뿐이다.


마음 대장간30-고독이 종교인 사람, 그대는 이미 고독에 함몰되었다. 고독이 질병인 사람, 그대는 종당 고독을 떠날 것이다. 고독이 인생인 사람, 그대여 길이 고. 독. 하. 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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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대장간1-본디 실체로서 인격은 없다. 인격이라 말하는 것은 천변만화하는 경계사건의 연속일 뿐이다. 경계사건은 관통과 흡수다. 관통과 흡수는 무궁한 변화의 결을 따라 온 마음으로, 텅 빈 마음으로 오가는 거다. 오감(去來)이 道다. 도가 인격이다.


마음 대장간2-道(1) 더는 못가겠다, 혹 이만하면 됐다, 싶을 때 한 걸음 더 내디디는 것. 道(2) 엔트로피 숙명에 걸린 마음과 맞서는 것. 道(3) 망상의 역사가 낳은 망상의 신화를 걷어내는 것. 


마음 대장간3-희망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잘난’ 자의 꿈은 높은 성공률을 보장 받고 ‘못난’ 자의 꿈은 높은 실패율을 배정 받은 것뿐이다. ‘못난’ 자가 희망에 대해 할 말은 이미 규정된 높은 실패 확률에 맞선 외마디다. 악!


마음 대장간4-자기 한계를 극복하는 일은 참 어렵다. 그에 앞서 자기 한계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일은 더 어렵다.


마음 대장간5-별을 닦는 마음(1) 이상에 부합하지 못하는 현실이 있는 한 이상은 불멸이다. 그러나 존재하는 것은 언제나 현실이므로 출발은 마땅히 현실에서 해야 한다. 이상에서 출발한다면 그 귀착점은 필경 현실의 잔혹함일 터이다.


마음 대장간6-별을 닦는 마음(2) 역사는 숱한 혁명이 그 자식을 살해한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이루지 못한 자에게 이상이 주는 설렘보다 이룬 자에게 현실이 주는 쾌감이 더 큰 법이다.


마음 대장간7-사랑이란(1) 그대의 필요를 채우려 하기보다 그대의 슬픔에 내 영혼을 적시는, 그런 것이다. 사랑이란(2) 안다고 하는 자에게 귀싸대기를, 모른다고 하는 자에게 뒤통수를 후려치는, 그런 것이다.


마음 대장간8-언어가 걷어내는 그늘은 검다. 침묵이 걷어내는 그늘은 희다.


마음 대장간9- 마흔, 거울 앞에 설 때 아버지께서 거기 계신다. 쉰, 거울 앞에 서면 흰 편지 한 통 남아 있다.


마음 대장간10-[깨침]참 이치를 보았느냐? 당나귀가 우물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모자란다, 우물이 당나귀를 보는 것과 같다. [깨침 너머]참 길을 가느냐? 당나귀가 우물을 지고 가는 것과 같습니다. 모자란다, 우물이 당나귀를 지고 가는 것과 같다. 


마음 대장간11-중용(1) 중용은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격조 높은 인간성과 사회행위를 기리는 깃발이다. 모순의 공존을 보편적 존재양식으로 받아들여 실천하는 삶의 평범함이 중용이기 때문이다. 무수한 오해가 있음에도 여전히 중용의 기품은 청청하다.


마음 대장간12-중용(2) 중용을 실천하는 사람이 무시당하지 않는 사회가 건강하다. 그러나 이미 우리사회는 중용을 어정쩡함으로 폄하하는 흐름을 타고 있다. 극단적 프로세스를 선택한 사람만이 대접 받는 판타지 시대로 진입한 것이다.


마음 대장간13-중용(3) 물론 극단을 좇는 판타지 시대 또한 지나간다. 다만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 판타지가 현실로 도래할 것이라 믿고 환호하다 끝내는 배신당하고야 말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우울증이다.

  

마음 대장간14-중용(4) 일극집중구조 사회가 빚어낸 우울증의 그림자가 우리를 뒤덮고 있다. 중용은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요체이기 때문에 매순간 그 길을 환우들과 공유하려 애쓰지만 물색없는 짓 아닌가 싶어 돌연 써늘해진다.


마음 대장간15-중용(5) 다시 한 번 중용의 말뜻 자체에 집중해 본다. "평범함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시대를 휘감는 이 극단의 기운은 중독이 아닐 수 없다. 아, 참된 중용의 온기를 신뢰하며 평범한 삶을 나눌 수 있는 벗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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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들 플라워
김선우 지음 / 예담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지난 해 가을 뼈아픈 사정으로 한의원 문을 닫고 낭인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글을 썼습니다. 그 결과물 하나가 <안녕, 우울증>으로 나왔지요. 청소년 우울증에 관한 책 <파란 마음 멍든 마음> 원고는 어느 기자 손에 맡겨져 출판가를 떠돌고 있습니다.  전국을 흐르며 강연했습니다. 전공노, 인권활동가대회, 국가인권위원회, 여성센터, 복지관....... 그 와중에 제자 하나가 제게 아이팟을 건네면서 트위터를 권했습니다. 더듬더듬 시작한 트위터가 제게 새로운 행로를 열어주었습니다.

 

처음 눈에 들어온 글은 배우 김여진의 것이었지요. 강정마을에서 자원봉사자를 찾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거기 활동가와 연락이 닿아 침을 싸들고 강정마을로 내려갔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방랑하는 길거리 한의사 질은 평택 쌍차 해고 노동자와 가족 심리치유 현장, 쌍차 노동자들의 영도 한중 행 소금꽃 천리길, 명동 마리, 경향신문사 13층의 송경동 시인.......으로 이어졌습니다. 그 사이 트위터 140자 글쓰기에 흠뻑 취해 있었음은 물론입니다. 

 

자연스럽게 긴 글을 읽고 쓰는 일은 제2선으로 물러섰지요. 처음에는 어떤 상실로 다가와 트위터를 꺼놓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흐르는 타임라인 행간을 살피면 유장한 글이 읽히고, 내가 쓴 140자 글의 결을 따라가면 긴 호흡의 글이 쓰여진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는 적절한 속도와  열심으로 트위터를 계속했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 11월 초, 희망 버스 대변인 이창근 씨가 기획한 인터넷 라디오 프로그램 <희망 부스>의 `라디오 한의사`란 꼭지에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제 시간 바로 앞에 김선우 시인이 출연했고, 거기서 만나 저자 친필 사인을 담은 <캔들 플라워>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아, 저는 이미 김선우의 팬이었습니다. 물론 시인 김선우지요. 그러다가 그의 <바리공주>를 읽고 소설가 김선우의 팬도 되었습니다. 이제 그의 두 번째 소설인 <캔들 플라워>를 읽으면서 詩氣 물씬 풍기는 산문을 음미합니다. 함께 읽어보시렵니까?^^

 

`캔들 플라워`란 제목이 지시하듯 이 소설은 지난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해서 일어난 촛불집회 또는 촛불문화제를 주된 서사 광장으로 택한 것입니다. 물론 촛불의 정치학은 꽃의 미학과 결합함으로써 투쟁과 놀이, 역사성과 영성의 대칭을 가로질러 갑니다. 이런 의미 교차는 작가의 인생관, 세계관, 아니 자신을 일정 정도 반영한 것일 테지요.

 

이 땅의 사회 역사에 대하여 연속과 불연속의 경계를 이루는 identity를 지닌 존재, 지오(GEO)라는 아이 또한 이런 가로지르기를 상징합니다. 밖에서 온 제3자이면서도 이 땅의 사람 그 누구보다 정확하고 깊은 감수성으로 진실의 고갱이를 향해 육박해 들어갑니다. 그 아이는, 그러나, 여기에 매몰되지 않는 `레인보우의 아이`고, 인간에 침륜되지 않는 `자연의 아이`입니다. 

 

"...튄다, 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소녀의 일거수일투족엔 튀면서도 오랫동안 몸에 밴 숨결처럼 자연스러운 게 있었다. 은빛 솜털날개처럼를 단 꽃씨가 드넓은 수평 속에 스미듯이. 목적을 미리 정하지 않은, 속도감은 버린 꽃씨의 유영처럼." (14쪽)

 

지오의 "...출현에 주변의 공기가 미묘하게 일렁였다..." (14쪽) 그렇다면 소설 전체가 이 소녀 때문에 일어난 일렁임의 기록일 것입니다. 그 일렁임은 "발칙한 것" (14쪽)이고, 발칙한 것은 "왜 이렇게 기분이 좋지" (14쪽)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발칙하게` 말하건대 소설은 이 14쪽에서 이미 끝나버렸습니다!

 

우리의 지오가 한국에 처음 닿은 인연은 희영. IMF로 거덜난 중산층, 그 소심함의 전형인 여자사람입니다. 매우 `적절한 확률`의 만남 아닌가요?^^ 이 만남에서 시작하여 연우, 수아, 민기, 숙자씨, 보리(사과), 홍노인, 그리고 이지훈...의 만남으로 번져갑니다. 각각 다른 트라우마를 지닌 이들이 촛불광장으로 나아와 `일렁임`으로 서로 부비고 엮습니다.

 

이들의 관계는 소소한 개인 에피소드와 거대한 정치 담론을 넘나들며 뒤엉킵니다. 무거운 판이지만 경쾌하게, 진지한 화두지만 즐겁게, 내재적 역사지만 초월의 표표함으로 너울너울 흘러갑니다. 이제 마흔 갓넘은 이 작가가 영특하게도 세계의 진실, 즉 비대칭적 대칭을 간파하고 있는 듯합니다. 초일극집중구조로 파멸을 향해 치딛고 있는 이 문명과 이 문명의 삼류 상속자들의 무지막지한 질주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길은 `발칙한 것`이어서 믿을 만합니다. 비대칭적 대칭의 논리와 속살을 얼마나 어떻게 알고 있느냐, 와는 상관 없이 온 몸으로, 온 영혼으로 그것을 감지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눈앞에 드러난 현상을 뒤집어, 일상의 관념 맞은편에 있는 진실을 꿰뚫어 보는 눈을 가진 아이, 지오가 작가의 분신이라 하면 매우 유치한 수준의 독서로 평가될 것임에 틀림없지만,  한꺼번에든 찰나의 시차를 두고든 작가의 눈은 대칭성 확보의 길을 좇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려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의 슬픔은 기쁨이 되고 싶은 인생의 선물이래..." (119쪽)    

 

얼핏 들으면 기쁨에 방점이 찍힌 것처럼 보이는 말이지만 기쁨이 되고 싶은 인생에 슬픔이 선물로 주어지지 않는다면, 기쁨이 되고 싶은 소망도 헛 것이고, 인생 자체에 기쁨이란 도대체 성립지 않을 것이라는 말로 이해함이 더 진의에 부합하지 않을까요? 나아가 슬픔을 선물이라 함으로써 슬픔자체의 대칭성까지 끌어안고 있지 않습니까.

 

"아무튼 지오가 본 청계천은 번듯하게 치장된 인공의 슬픔이 가득할 뿐 자연의 생기가 없었다. 그래서 처음 본 이후 무의식적으로 계속 청계천을 바라보는 걸 외면해 왔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물의 높이로 누워 있어보니까 청계천의 마음이 느껴졌다. 물이 살려고 하는 기척, 깊이 깊이 호흡하며 살아나려고 몸부림치고 있는 기척이 아프게 느껴지면서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길 없이 답답하게 가둬놓았지만 길 없는 그 길에서  뭔가 살 길을 모색하며 수로변의 풀들을 살리고  아주 작은 생명들을 살리기 시작하고 있는 청계천 물의 절박한 마음이 느껴져서 한없이 미안했다. 생명의 의지를 가진 물에게 함부로 "뭐야, 죽은 물이잖아?"라고 말해버린 게 너무 부끄러워서 어딘가로 숨어버리고 싶은 지경이었다." (270-271쪽)   

 

슬픔에, 길 없는 가둠에 일방적으로 제압 당해서 놓친 생명의 기척에 대한 감각을 가차없이 되찾는, 저 부끄러운 마음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죽으라고 자신을 가둔 지옥에서 다른 생명을 살림으로써 자신의 삶을 일깨우는 천국을 빚어가는 역설이 그의 눈에는 보이는 것이지요.

 

누군가 말했듯 인간의 인간다운 면모는 바로 부끄러움을 아는 데 있습니다. 부끄러움이야말로 초일극집중구조에 틈을 내는 진실의 감각이니까요. 이 말랑말랑하고  향 맑은 감각으로 세상의 부조리를 볼 수 있기에 캐나다와 한국, 레인보우와 아현동, 자연과 문명, 개인과 사회, 축제와 시위, 섹스와 촛불, 가족과 연인, 욕망과 대의, 놀이와 정치.......그 사이에 가로놓인 통속한 장벽을 단숨에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자유자재의 가로지르기가 가능한 것입니다.

 

지오라는 '순수물질'이 주위와 소통하는 신비한(!) 힘은 그 순수물질이 상식과는 달리 '역설물질', 즉 모순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 존재라는 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 힘으로 본디 역설순수의 존재는 더욱 빛나고 아직 그 이치에 도달하지 못한 존재는 각자의 속도 인연을 따라 변해갑니다. 현실에서, 희망에서....... 지오의 생부, 이지훈, 이 시대 가장 절망적인 존재도 어깨를 떨어뜨리고 주춤주춤 지오의 결을 따라갑니다.   

 

소설이 가리키는 여기, 우리의 현실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말하지 않아도 모두 다 잘 알고 있습니다. 지오 아이들이 촛불을 들게 만든 정권은 더욱 완악해지고 있습니다. 엘리트 지식인들에게 촛불은 그 때나 지금이나 어설픈, 오히려 부작용을 낳은 껄끄러운 무엇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그렇게만 흘러가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의 역사감각은 이렇습니다.

 

"...우리들의 걸음걸이. 그 느낌이 지금도 아주 생생해. 발꿈치를 살짝 들고 땅과 공기의 중간 쯤을 걷는 듯한. 현실에 있되 현실 조금 위쪽을 꿈꾸는 듯한 걸음걸이..." (368쪽) 

 

지오의 걸음걸이는 이미 거대하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일어나는 변화도 엄연히 시작되었습니다. 현실과 현실 '조금 위쪽' 사이, 그 역동무쌍의 경계에서 꽃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그 꽃 향기를 따라 지오 아이들은 행진을 계속할 것입니다.

 

"알몸이면 더 좋겠지. 한국의 우리 모두! 그렇게 놀아주길 바라." (368쪽)

 

그대도 그렇게 노세요. 그렇게 바라세요. 쭈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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