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나라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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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3. 17. 목. `꽃의 나라` - 한창훈 장편소설 / 34

˝처음 대면은 그 어떤 것이라도 강렬했다. 맨 처음 맞아본 주사, 매질, 처음 본 여자의 알몸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중 가장 끔찍한 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였다. 기억에는 없지만 처음 태어났을 때도 그러했을 것이다. 아이들이 목이 터져라 악을 쓰며 우는 것을 봐도 그렇다. 태어났다는 것은 그전의 세상이 죽어버렸다는 뜻이므로 그것은 삶에 대한 공포일 것이다.
내가 맛본 죽음의 공포는 그 어떤 주먹이나 매질과도 비교가 되지 않았다. 나의 떨림은 저 깊숙한, 맨 처음의 시작점에서 왔다. 죽어 있다는 것을 본다는 것. 죽어버린 생선, 죽어버린 나무, 죽어버린 새. 그리고 죽어 있는 사람. 그 사람의 세계가 정지되고 곧바로 소멸해간다는 것. 그리고 그게 나에게 찾아온다는 것.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과 노고에 비하면 죽는 순간은 너무 짧았다. 하다못해 태어나기까지의 과정, 수태가 되고 분열을 하고 아가미가 생겼다가 사라지고, 그리고 어미의 몸을 통해 빠져나와 울음을 터뜨리는 그 정도만큼은 죽어가는 것도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눈이 들어가고 호흡이 가빠지며 관절이 어긋나고... 그래야 죽음도 탄생만큼이나 중요한 게 될 것 아닌가. 그게 안 된다면 최소한 버둥거리는 시간이라도 있어야 되는 것 아닌가. 나는 좀처럼 그런 기분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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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라는 감옥을 탈출해서 세상의 단맛 쓴맛을 겨우 조금 맛본 소년이 온 몸으로 겪은 1980년 5월 광주의 이야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세상,
쓰나미처럼 밀려온 참혹한 전쟁에 휩쓸리고
또 살아남아 부르는 노래.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기에 무거운 마음으로 책장을 펼쳤음에도 작가는 나를 마냥 웃게 했고 그렇게 웃다가 울게 했고 그러다 울음보다 깊은 숙연함을 느끼게 했다.
설명하기 어려운 폭력의 대물림 속에서 폭력를 극복하기 위한 나름의 답을 찾으며 성장해 가던 소년이
세상 가장 끔찍한 폭력의 현장을 경험하고 살아남아 어떤 어른이 되었을까?
... 세상에서 가장 아픈 기억을 가진 슬픈 어른으로 한 생을 살았을 것 같은 생각에 자꾸 눈물이 난다.

꽃피는 계절 5월에 꽃의 나라로 갔을 그네들의 넋을 기리며.
그리 멀지않은 그 시절의 비극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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