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머리 앤을 좋아합니다 - 초록 지붕 집부터 오건디 드레스까지, 내 마음속 앤을 담은 그림 에세이
다카야나기 사치코 지음, 김경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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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빨간 머리 앤에 관한 기억을 끄집어내어 추억에 빠지다가 책을 덮고 나면 다시 한번 책이나 영상을 찾아보게 될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저자가 느끼는 앤에 관한 추억과 앤 덕후들이 느끼는 바가 일맥상통하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일본의 번역가 무라오카 하나코가 1950년대 앤 시리즈를 최초로 번역 출판하는 과정을 함께한 ‘1세대 앤 마니아’이다. 그 당시 동양권 여성상과는 너무나도 달랐던 앤은 그 시대의 여성들에게 신선한 매력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또한 누군가에게는 내 모습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이상향으로 비치면서 앤은 수많은 팬을 거느리게 된다. 특히 캐나다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초록 지붕 집은 동경 그 자체가 된다.

 

저자는 앤 시리즈 및 몽고메리의 여러 소설의 삽화를 그리며 더욱 앤에게 빠져든다. 아마 나라도 그런 직업을 가졌었다면 그랬을 것이다.

앤과 함께 한 시간이 자신의 삶의 일부였으니 어느 누구인들 그러지 않았을까. 그래서 저자의 집 지붕 색도 초록색이라고 한다. (지금은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나도 예전 주택 집의 지붕은 초록색이었다.)

 

 

 

 

빨간 머리 앤에는 정말 수많은 에피소드가 있다. 그리고 삶의 지혜가 가득한 대사도 많다. 또한 봐도 봐도 또 보고픈 아름다운 자연이 있다. 나 같은 경우도 기분이 꿀꿀할 때마다 다시 꺼내보는 다섯 작품 중의 하나이기도 한데 어린 시절 티비만화로 처음 앤을 만나고 그 후 여러 출판사의 책을 읽다가 십 년 전쯤에 전집을 소장했다. 전집을 읽으면 앤의 매력에 더 빠질 수밖에 없다. 그 뒤 캐나다에서 1985년도에 방영된 드라마 시리즈 [앤 오브 그린 게이블즈]로 완전 덕후가 되었는데 정말 그곳 경치에 푹 빠져서 꼭 가고픈 여행지로도 꼽아놓고 있다.

앤이 초록 지붕 집으로 가는 길은 어쩜 그리도 환상적인지, 게다가 도착한 초록 지붕 집과 주변 경관은 왜 그리 포근하고 아름다운지, 저자의 삽화를 보고 있으니 그때의 그 풍경이 떠올라 다시 추억 속에 빠져들었다.

 

 

 

 

 

저자의 삽화는 내추럴하다. 자연스러운 선 터치와 파스텔화 같은 야리야리한 색감이 가슴속에서 막 앤의 불러 내온듯한 느낌이다.

나도 어린 시절에는 앤이 자연을 보며 감탄사를 연발하고 자신만의 이름을 지어 부르는 것들에 별 의미를 두지 못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앤의 행동을 백번 공감한다. 그래서 앤이 좋아한 꽃과 풀, 나무들을 보니 눈에 익은 것들도 제법 보인다. 그만큼 나이가 든 것일 수도 있겠지만.ㅎㅎ

 

저자는 앤 속의 유명한 일화들을 다시 소환했다. 린드 부인과의 불쾌한 첫 만남, 자수정 브로치 사건, 단짝 친구 다이애나, 길버트와의 화해, 앤의 연극, 매슈 아저씨의 퍼프소매 등 정말 주옥같은 장면들이 스친다.

 

앤의 수다와 상상력도 빼놓을 수 없다. 앤 자신은 자신의 이름이 너무나 평범하여 싫다고 하지만 나는 이 말 많고 상상력이 넘치는 소녀에게 빠져들었다. 나와는 달리 풍부한 상상력으로 불행하거나 힘든 순간을 이겨나가는 모습을 보며 앤이 자신의 삶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상상력은 늘 모자랐기에 가능한 것들이었다. 밋밋하고 평범한 원피스에 상상력으로 퍼프소매를 달기도 하고 볼품없는 침실에도 분홍빛 커튼을 단다. 게다가 자신이 좋아하는 길과 꽃들에게도 자신만의 이름을 지어 부르고, 흔한 감탄사에도 자신만의 감정을 더 실으며 낭만을 키워나간다. 낭만의 오솔길, 환희의 하얀 길, 연인의 오솔길, 반짝이는 호수, 눈의 여왕, 아이들와일드, 윌로미어 등은 현실의 세계와 동화의 세계가 공존하는 자신만의 세계가 된다.

 

작가는 그 외에도 소설 속에 등장하는 물건이나 식물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아 했다. 앤이 그토록 좋아한 산사나무 꽃의 정체를 알아내기까지의 과정과 앤의 방에 있던 깔개를 직접 만들어보기까지 하는 열정을 보인다. 뭐 이 정도면 엄청난 덕후라고 인정할만하다.

 

마지막으로 나무와 바람을 사랑하고 게다가 요정의 나라로 가는 여권을 가지고 있었다는 작가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작품세계도 언급하고 있다. ‘에밀리’, ‘팻’ 시리즈 등의 다른 소설과 앤이 성인이 된 후의 이야기도 살짝 엿볼 수 있는데 전집에서 읽었던 미스 라벤더와의 만남과 사연들이 드문드문 떠올랐다.

 

내가 앤을 그토록 사랑하는 이유는 앤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삶에 늘 능동적이다. 성인이 된 후의 이야기를 보면 더욱 그런 면모를 느낄 수 있다. 삶의 낭만은 자연과 함께 하여야 행복한 것임을 내내 보여주고 있으며 인생에서 사랑과 우정 그리고 진정한 가족의 의미와 소중함도 되새겨 볼 수 있는 작품이기에 아낀다.

앤 덕후라면 저자와 함께 빨간 머리 앤의 진정한 매력에 다시 빠져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낭만이 늘 함께 하는 인생이 되었으면.

 

P.S 사철 누드 제본은 정말 신의 한 수다. 180도 쫙 펼쳐볼 수 있어서 너무너무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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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어린이 - 방정환 수필 모음 산하어린이 164
염희경 엮음, 이상권 그림 / 산하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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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들은 계절을 계절답게 즐기지 못하는듯하다. 여름이면 수영을 하고 겨울이면 스키와 썰매를 즐기는 게 고작이다보니 사계절이 주는 소중함을 잘 모르고 지난다. 그래서 방정환 수필집을 읽으며 이렇게 지내다가는 인간들이 점점 더 감성을 잃어가는 건 아닐까 걱정스러웠다.

 

이 책은 어린이날을 만들고 어린이 잡지를 발간하는 등 어린이를 위해 살다가신 방정환 선생님의 수필 모음집이다.

잡지 《어린이》와 여러 지면에서 발표한 글 가운데 사계절을 담고 있는 수필 16편과 동시 및 그분의 업적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얼마 전 읽은 책에서 방정환이 천도교 3대 교주 손병희의 사위란 사실을 알았으며 그의 책은 《만년 샤쓰》만 읽은 게 전부이다보니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모로 많은 사실을 알게 되어 뜻깊었다. 이틀전 창비에서 방정환 전집 5권이 출간된 걸 보았었는데 올해가 방정환 탄생 120주년이라서 그랬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1920년대 중반부터 ‘어린이’(어린이’는 어린아이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라는 말을 쓰며 어린이가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존재인지를 전파하고 싶으셨던 그는 일제 탄압 속에서도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어린이는 나라의 꿈나무이자 미래의 희망임을 알면서도 요즘의 어린이들의 생활을 보면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우울해진다. 점점 더 경쟁 사회에 내 몰리며 남들보다 앞서기 위해 이 학원 저 학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이 과연 진정한 행복을 알까. 나조차 부끄러워진다.

 

 

 

 

그가 기고한 여러 편의 글들은 그가 얼마나 진심으로 어린이들을 위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다. 계절마다 어떤 놀이를 하면 좋은지, 어떤 생각들을 함께하면 가치가 있는지 등을 알려줌으로써 하루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않기를 바란다. 말로는 도저히 전할 수 없는 것들은 직접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함께 즐길 수 있는 놀이법 등도 고안해서 실어놓았다.

 

방정환은 정말 이야기꾼이었는데 그는 외국 동화를 번안해서 소개하기도 하고 직접 사람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한다. 그가 이야기를 어찌나 실감 나게 하는지 신데렐라 이야기를 하는 도중 신데렐라가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을 받는 장면에서는 많은 이들이 식민지 조국의 현실이 떠올라 울었다고 한다.

 

 

 

봄에는 꽃을 심어보며 꽃의 다채로움을 만끽해 보며 나뭇가지로 화분 만드는 법도 알려준다. 여름에는 금붕어도 키우라 권하고 게다가 다양한 빙수의 맛과 빙수집을 직접 소개하기도 한다. 웃었던 장면은 파리를 잡기 위한 화살 만들기였는데 정말 여름 파리가 얼마나 골칫거리인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계절이 활기를 찾아가는 가을에는 뭐든지 제철이라 뭘 하든지 좋은 계절임을 강조하고 있으며 겨울에는 추위를 잊고 놀 수 있는 놀이로 팽이치기를 들며 여러 가지 팽이 만드는 법을 소개하고 있다. 마지막에 소개된 말판 놀이는 어린 시절 문구점에서 팔던 종이판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그의 글을 읽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그의 업적이 재평가되어야 함은 틀림없겠다.

 

아이들과 함께 읽으면서 어린이날이 왜 5월 5일이 되었는지와 어린이날의 의미(선물을 받는 날이 아님을.ㅋ)를 다시 한번 새겨보면 좋을 듯하다. 그리고 방정환 선생님의 다양한 글을 만나보면서 그 시절 아이들은 무얼하며 놀았는지를 살펴보면서 풍요속에 빈곤이라는 말도 다시한번 새겨보면 좋을것 같다. 아이들이 노는 방법을 몰라 못 논다는건 바깥에서 진정한 놀이문화를 접하지 못함이기 때문이니까.

방정환 선생님 120주년을 맞아 우리 어린이들이 어린이답게 행복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볼 수 있는 시간도 가져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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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을 닮은 너에게 애뽈의 숲소녀 일기
애뽈(주소진) 지음 / 시드앤피드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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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한 권의 책이

마음속 깊이 스며드는 향기가 됩니다.

 

 

참 욕심나는 책들이 있다. 내겐 그림책들이 그렇다. 물론 시간이 지나고 큰 맘먹고 처분한 책도 여럿 있지만 계몽사에서 나온 어린이 세계명작이나 아이들 단행본들은 그림이 마음에 들어 간직하고 있다. 일 년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한데도 책장에 끼고 있는 이유는 그림을 보고 있으면 상상력이 더 풍성해져 가끔 괜찮은 아이디어도 얻기 때문이다.

 

요즘은 정말 실력 있고 감수성 넘치는 일러스트레이터들이 많은 것 같다. 지난해부터 하나하나 모아온 책이 제법 되니까 말이다. 애뽈님의 전작 《너의 숲이 되어줄게》를 처음 만났을 때의 기분이 귀한 작품집을 얻은 느낌이었다면 이번 두 번째 《숲을 닮은 너에게》는 제목 때문이기도 하지만 마치 나에게 온 선물 같았다. 그래서 가까운 숲길을 찾아 산책하면서 그림들을 펼쳐보았다.

섬세한 터치와 풍부한 색감들은 생동감을 불어넣어 마치 감성 애니메이션 한편을 본듯하다. 걷고 있는 숲길에 동화 감성이 실려서인지 마치 내가 숲 소녀가 된 듯 기분이 맑아졌다.

 

 

 

마지막 페이지에 보면 독자들을 위한 Q&A가 있는데 캐릭터 탄생기를 알고 나니 숲소녀와 동물 친구들이 더욱 사랑스럽다.

 

가끔 애니멀 영상을 보며 배꼽을 잡거나 감동을 느끼기도 하는데 페이지를 넘기기 전에 숲소녀보다 목도리 다람쥐와 루돌프 강아지의 모습이 더 궁금해진다. 그들은 숲소녀를 닮아 따라쟁이가 되기도 하고 마냥 기대어 잠들어 있기도 한다. 그들의 시선은 숲소녀보다 더 따뜻하고 사랑스러워 보인다.(내가 동물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숲소녀의 외로움 따위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우리에게도 숲이 일상이 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시선만 옮겨도 눈에 담을 수 있는 자연 말이다.

숲소녀의 계절은 늘 숲과 함께 하고 있다. 특별한 소재 없이 자연이 보여주는 변화만으로도 사계절의 아름다운 작품이 탄생하니까 말이다. 그녀의 그림은 숲소녀의 몸짓 하나부터 배경 소품까지 볼거리가 풍부하다. 게다가 글 솜씨까지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하다.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가을바람을 느끼고 싶고 장마의 눅눅함도 떠오르고 눈 내린 겨울 숲의 풍경도 보고 싶어진다. 특히나 어둑해진 숲속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니 캠핑 생각이 간절해진다.

이건 좀 따라 해볼까 하는 것도 있었다. 달과 별 모빌을 천장에 달아 놓으면 우주속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것 같다.

 

 

숲은 멀리서 봐도 멋지지만 자세히 보면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다.

잎사귀 하나하나의 생김새, 제멋대로 뻗은 가지, 혼자서 핀 이름 모를 꽃, 빨갛게 익은 열매, 풀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아름다운 실루엣, 구름의 변화 등 정말 다채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녀의 그림도 굉장히 디테일하며 아기자기한 이야기가 곳곳에 숨어 있다. 마치 숲속의 곳곳을 살피듯 그녀의 그림도 꼼꼼히 보면 감탄할만한 구석이 많다. 특히나 숲속 배경도 비슷한 느낌이 거의 없다. 정말 어느 하나 버릴 것 없는 그림에 계속 감탄사만 흘러나온다.

 

대체 그림의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는 것일까.~~^^

 

비록 현실은 숲이 보이는 아기자기한 주택에서 살지 않지만 마음만은 늘 그런 기분으로 살아야겠다.

사랑하는 나의 잉꼬와, 금붕어 두 마리와, 냥이 두 마리와, 화초와, 그리고 곧 새 식구가 될지 모를 알 수 없는 강아지 한 마리와, 커피와, 그리고 책을 위안 삼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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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헤이세이
후루이치 노리토시 지음, 서혜영 옮김 / 토마토출판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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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세이 시대(전 세계에서 연호를 사용하는 유일한 국가인 일본의 시대 구분 중 하나로, 1989년 1월 8일 아키히토 일왕이 즉위한 때부터 아키히토가 퇴위한 2019년 4월 30일까지를 이른다. 2019년 5월 1일부터는 나루히토가 취임하면서 '레이와' 연호가 사용되고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라는 단어를 나도 얼마 전에 뉴스에서 접했다. 쇼와시대가 끝나고 사용된 연호가 헤이세이였음을 다시 알게 된 것이다. 그런데 걸그룹 멤버의 일본인 출신 아이돌이 공식 계정에 올린 글이 문제가 되어 며칠씩 떠들썩해지자 머릿속에 헤이세이란 단어가 콕 박혀버렸다. 일본인들에게 헤이세이 시대란 어떤 의미일까.

 

여기 헤이세이 시대에 태어난 한 남자가 있다. 그런데 그는 헤이세이가 끝나는 날 자신도 죽겠다고 한다. 자살이 아닌 안락사로.

소설 속에는 일본이 안락사가 허용된 나라로 나오고 있다. 그것도 모르고 우습지만 일본이 언제 안락사를 합법화한거지 하며 오해했다.

 

답답하지만 그가 안락사를 결정한 이유가 내내 드러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똑똑하지만 신중한 편이고 말을 아낀다. 사랑에 서툴고 표현도 서툴지만 어떻게 보면 무미건조한 것 같다. 심지어 동거녀에게조차도 거리감을 둔다. 여자친구가 먼저 대시하고 같이 살게 되긴 하였지만 계약 연애를 하는 듯한 느낌이랄까. 그런 이유에 더 확신감이 든 건 그는 그녀와 섹스를 하지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섹스라는 행위를 좋아하지 않다 보니 여자친구는 자위 용품에 적잖은 지출을 한다. 그것도 그의 카드로.

 

여기까지만 보면 분명 이상하다고 오해를 받을 쪽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다. 그런 남자친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아니 어쩌면 참아준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초반 그들의 라이프 스토리만 보면 평범한 커플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어느 날 남자는 그녀에게 지나는 말처럼 그만 살겠다고 내뱉는다. 죽음으로써 영원히 굿바이를 하겠다는 것이다. 늘 무심한 그의 스타일이 몸이 익숙해져있다 보니 그런 통보에도 무덤덤해진다. 그러나 그녀는 그를 너무나 많이 사랑한다. 그의 외로움도, 슬픔도, 그리고 남모를 아픔까지도 감싸 안아주고 싶어 한다.

 

그래서 정상적인 연인처럼 이유를 따져 묻고, 설득도 해보고, 달래기도 해 보는 등 최선을 다해 그를 세상에 붙잡아두고자 한다. 그러나 어이없게 돌아온 그의 대답은 헤이세이 시대에 운 좋게 많은 행운을 누렸으니 시대가 끝나면 자기도 떠나는 게 맞는다는 식의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댄다. 제아무리 그럴싸하게 둘러대도 이기적인 사람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특히 그녀와 19년을 함께한 고양이를 그녀가 없는 사이 안락사 해버렸을 땐 정말 최악이었다.

 

하지만 그는 뜻을 굽히지 않는다. 좀 더 납득할만한 이유도 대지 못한 채 안락사 현장을 찾아가기도 하고 안락사를 주관해서 화장까지 말끔히 해 주는 업체를 찾아가기도 한다. 그는 대체 왜 그토록 죽는 일에 매달리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멀쩡한 사람이, 그리고 자신을 챙겨주는 연인도 있는 사람이, 게다가 사회적 명성과 능력과 경제력도 되는 사람이 왜왜 세상과 안녕을 고하려는 걸까.

 

 

 

 

여기서 나는 혼란에 빠졌다. 안락사에 대해 찬성 입장에 섰다가 점점 반대 입장 노선에 서게 되었다. 우선은 안락사에 대한 찬반 논란을 따져보다가 그녀의 아픔과 슬픔이 느껴져 반대 의견으로 기울었다. 또 안락사 현장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과연 죽음도 내가 선택할 권리에 포함시킬 수 있는 것일까 고민에 빠졌다.

 

물론 후반부에서 그럼 그렇지라는 말이 튀어나오게 되는 그 죽을 수밖에 없는 그의 사연이 밝혀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자신의 빛을 내고 있는 이들을 떠올리니 그의 선택을 절대 존중할 수 없었다. 반면 그가 고백 후 좀 더 솔직하고 인간적인 속내를 드러내자 마음을 돌리지는 않을까 기대를 가지기도 했다.

 

이렇듯 소설은 안락사의 찬반 논쟁으로 문을 여는 듯 하지만 결국은 남녀의 사랑 이야기다. 거짓 없이 솔직한 그녀 앞에 관계에 서툰 남자가 관계를 배워가는 이야기라고나 할까. 그런 그를 움직인 건 죽음에 더 가까웠던 그녀의 고양이였다. 고양이의 죽음은 두 가지 측면을 모두 보여주었다. 안락사로 고통을 덜고 떠난 이와 남겨진 이의 고통이라는 두 가지 상황을 경험해봄으로써 서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 것이다.

 

마지막 그의 선택지에 그나마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그녀에 대한 배려를 배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를 향한 미안함과 믿음이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음을 알기 때문에 이제는 조금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녀의 이름이 아이(愛)인 것도 역시 사랑의 힘을 말하려고 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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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큘라 -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작 책고래아이들 18
김용준 지음, 아쑬 그림 / 책고래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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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물은 잘 못 보지만 흡혈귀 이야기는 좋아한다. 그래서 웬만한 흡혈귀 영화는 죄다 챙겨 보았다. 그런데 이 책에 등장하는 흡혈귀는 내가 알고 있는 공식(?) 과는 다른 모양새다. 그게 그러니까 피를 먹지 않고 대체 식품으로 토마토를 먹는 드라큘라(드라큘라가 용의 아들이란 뜻이라고 함)가 등장한다. 물론 공포물답게 인간의 피를 마셔야 살아갈 수 있는 정통 흡혈귀도 나온다.

 

이 책은 딸아이에게 먼저 읽혔다. 공포물이나 미스터리 추리물을 좋아해서 추천한 책이다. 당연히 표지를 보더니 눈빛이 반짝인다. 내가 권한 책 중 제일 빨리 읽고 감상문도 써 주었다. 역시 좋아하는 건 동작이 빠르다.크흐흐.

 

이야기는 13살인 케이라는 남자아이가 주인공이다. 케이는 부모님이 계시지 않다. 대신 이모와 외삼촌이 계시긴 하나 이야기 내내 둘 다 등장하지 않다가 이야기 끝물에 등장하는데 전혀 가족 같은 분위기는 아니다.

 

등장인물만 보면 생김새가 죄다 드라큘라 입주민들 같지만 그들은 그냥 평범한 인간이다. 그러던 어느 날 케이가 사는 아파트에 정체불명의 이웃이 이사 온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풍기는 기운이나 하는 행동이 평범한 인간 같지는 않다. 케이는 그를 볼 때마다 으스스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 없었는데 드라큘라가 아닐까 하는 예감을 한다. 왜냐하면 우연히 찍은 동영상에서 그의 형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전형적인 드라큘라다. 그래서 나는 케이가 부모님도 없이 드라큘라에게 당하는 건 아닌가 걱정을 했지만 특이하게도 그는 스스로의 삶을 개척(?) 한 신종 드라큘라였다. 피 대신 토마토를 주식으로 하고, 관대신 흙 침대에서 수면을 취하고, 햇볕을 쬐어도 괜찮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이 넘친다. 이렇게 다정한 이웃이 지금 세상에 있기나 할까 싶을 정도로 케이와 드라큘라는 가까운 이웃사이가 된다. 케이는 그런 그를 토마큘라라 부르며 애정을 드러낸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 새로운 담임 선생님이 오신다. 얼굴만 보아서는 예쁘고 착해 보이신다. 게다가 아이들에게 엄청 친절하고 상냥하다. 하지만 케이는 낸시 선생님에게서 토마큘라를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스산한 느낌을 또 받게 된다. 그런데 사진을 찍어보아도 형체가 보인다. 오해한 건 아닐까 하지만 드라큘라들처럼 타인의 집을 들어갈 땐 주인의 허락이 떨어져야 된다는 점이나 자신을 쳐다보는 눈빛의 기운이 아무리 봐도 수상하다.

 

그런데 드디어 결정적인 현장을 목격하고 만다. 체험학습을 떠난 놀이랜드에서 선생님이 한 학생의 팔을 물고 있는 모습을 보고 만 것이다. 그리고는 점점 반 친구들도, 심지어 자신을 친동생처럼 챙겨주던 편의점 누나도 이상하게 변해 버린다.

 

 

 

 

이 모든 사실을 토마큘라에게 털어놓고 도움을 청하지만 토마큘라도 이사 온 지역의 토마토가 입에 맞지 않아 며칠 아파트를 비우게 되고 그 사이 낸시 선생님은 점점 더 케이를 쫓아다닌다. 케이가 무사히 인간으로 남을 수 있을까...

 

이야기는 케이와 어린이 독자들의 눈높이가 맞아서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고 게다가 케이를 먹잇감으로 쫓는 낸시 선생님의 존재로 인해 내내 긴장감을 떨칠 수 없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토마큘라 아저씨의 활약을 빼놓을 수 없다. 세상이 점점 험악해져가다 보니 요즘은 이웃사람조차도 거리를 두고 지내야 해서 참 씁쓸하지만 가족이 없는 케이에게 정말 가족 같은 존재가 되어준다. 더구나 마지막으로 갈수록 가슴은 더 찡해진다. 그래서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새겨볼 수 있어서 좋았다.

 

참, 드라큘라가 이 대신 토마토를 먹고 개과천선했으니 몸에 좋은 토마토를 즐겨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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