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머리 앤을 좋아합니다 - 초록 지붕 집부터 오건디 드레스까지, 내 마음속 앤을 담은 그림 에세이
다카야나기 사치코 지음, 김경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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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빨간 머리 앤에 관한 기억을 끄집어내어 추억에 빠지다가 책을 덮고 나면 다시 한번 책이나 영상을 찾아보게 될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저자가 느끼는 앤에 관한 추억과 앤 덕후들이 느끼는 바가 일맥상통하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일본의 번역가 무라오카 하나코가 1950년대 앤 시리즈를 최초로 번역 출판하는 과정을 함께한 ‘1세대 앤 마니아’이다. 그 당시 동양권 여성상과는 너무나도 달랐던 앤은 그 시대의 여성들에게 신선한 매력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또한 누군가에게는 내 모습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이상향으로 비치면서 앤은 수많은 팬을 거느리게 된다. 특히 캐나다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초록 지붕 집은 동경 그 자체가 된다.

 

저자는 앤 시리즈 및 몽고메리의 여러 소설의 삽화를 그리며 더욱 앤에게 빠져든다. 아마 나라도 그런 직업을 가졌었다면 그랬을 것이다.

앤과 함께 한 시간이 자신의 삶의 일부였으니 어느 누구인들 그러지 않았을까. 그래서 저자의 집 지붕 색도 초록색이라고 한다. (지금은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나도 예전 주택 집의 지붕은 초록색이었다.)

 

 

 

 

빨간 머리 앤에는 정말 수많은 에피소드가 있다. 그리고 삶의 지혜가 가득한 대사도 많다. 또한 봐도 봐도 또 보고픈 아름다운 자연이 있다. 나 같은 경우도 기분이 꿀꿀할 때마다 다시 꺼내보는 다섯 작품 중의 하나이기도 한데 어린 시절 티비만화로 처음 앤을 만나고 그 후 여러 출판사의 책을 읽다가 십 년 전쯤에 전집을 소장했다. 전집을 읽으면 앤의 매력에 더 빠질 수밖에 없다. 그 뒤 캐나다에서 1985년도에 방영된 드라마 시리즈 [앤 오브 그린 게이블즈]로 완전 덕후가 되었는데 정말 그곳 경치에 푹 빠져서 꼭 가고픈 여행지로도 꼽아놓고 있다.

앤이 초록 지붕 집으로 가는 길은 어쩜 그리도 환상적인지, 게다가 도착한 초록 지붕 집과 주변 경관은 왜 그리 포근하고 아름다운지, 저자의 삽화를 보고 있으니 그때의 그 풍경이 떠올라 다시 추억 속에 빠져들었다.

 

 

 

 

 

저자의 삽화는 내추럴하다. 자연스러운 선 터치와 파스텔화 같은 야리야리한 색감이 가슴속에서 막 앤의 불러 내온듯한 느낌이다.

나도 어린 시절에는 앤이 자연을 보며 감탄사를 연발하고 자신만의 이름을 지어 부르는 것들에 별 의미를 두지 못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앤의 행동을 백번 공감한다. 그래서 앤이 좋아한 꽃과 풀, 나무들을 보니 눈에 익은 것들도 제법 보인다. 그만큼 나이가 든 것일 수도 있겠지만.ㅎㅎ

 

저자는 앤 속의 유명한 일화들을 다시 소환했다. 린드 부인과의 불쾌한 첫 만남, 자수정 브로치 사건, 단짝 친구 다이애나, 길버트와의 화해, 앤의 연극, 매슈 아저씨의 퍼프소매 등 정말 주옥같은 장면들이 스친다.

 

앤의 수다와 상상력도 빼놓을 수 없다. 앤 자신은 자신의 이름이 너무나 평범하여 싫다고 하지만 나는 이 말 많고 상상력이 넘치는 소녀에게 빠져들었다. 나와는 달리 풍부한 상상력으로 불행하거나 힘든 순간을 이겨나가는 모습을 보며 앤이 자신의 삶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상상력은 늘 모자랐기에 가능한 것들이었다. 밋밋하고 평범한 원피스에 상상력으로 퍼프소매를 달기도 하고 볼품없는 침실에도 분홍빛 커튼을 단다. 게다가 자신이 좋아하는 길과 꽃들에게도 자신만의 이름을 지어 부르고, 흔한 감탄사에도 자신만의 감정을 더 실으며 낭만을 키워나간다. 낭만의 오솔길, 환희의 하얀 길, 연인의 오솔길, 반짝이는 호수, 눈의 여왕, 아이들와일드, 윌로미어 등은 현실의 세계와 동화의 세계가 공존하는 자신만의 세계가 된다.

 

작가는 그 외에도 소설 속에 등장하는 물건이나 식물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아 했다. 앤이 그토록 좋아한 산사나무 꽃의 정체를 알아내기까지의 과정과 앤의 방에 있던 깔개를 직접 만들어보기까지 하는 열정을 보인다. 뭐 이 정도면 엄청난 덕후라고 인정할만하다.

 

마지막으로 나무와 바람을 사랑하고 게다가 요정의 나라로 가는 여권을 가지고 있었다는 작가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작품세계도 언급하고 있다. ‘에밀리’, ‘팻’ 시리즈 등의 다른 소설과 앤이 성인이 된 후의 이야기도 살짝 엿볼 수 있는데 전집에서 읽었던 미스 라벤더와의 만남과 사연들이 드문드문 떠올랐다.

 

내가 앤을 그토록 사랑하는 이유는 앤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삶에 늘 능동적이다. 성인이 된 후의 이야기를 보면 더욱 그런 면모를 느낄 수 있다. 삶의 낭만은 자연과 함께 하여야 행복한 것임을 내내 보여주고 있으며 인생에서 사랑과 우정 그리고 진정한 가족의 의미와 소중함도 되새겨 볼 수 있는 작품이기에 아낀다.

앤 덕후라면 저자와 함께 빨간 머리 앤의 진정한 매력에 다시 빠져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낭만이 늘 함께 하는 인생이 되었으면.

 

P.S 사철 누드 제본은 정말 신의 한 수다. 180도 쫙 펼쳐볼 수 있어서 너무너무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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