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게으름뱅이의 모험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추지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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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로 게으름뱅이 하면 혀부터 차게 된다. 게으른 놈이 어느 곳에 지 한 몸 거두겠는가. 그러나 여기 거룩한 게으름뱅이가 있다. 게다가 게으름뱅이가 모험도 한다. 게으르면 아무것도 안 해야 되는 게 맞을진데 모험을 해서 거룩하다는 건지 너무나 게을러서 거룩하다는 건지 어쨌든 게으른 그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내겐 낯선 작가이지만 일본에서는 이미 인지도가 있는 작가로 마니아층이 있나 보다. 일본 애니메이션이 떠오른 표지와 캐릭터들이 일본의 고유문화와 연결되어 독특한 괴이함을 자아낸다. 특히 교토 책 대상을 받았다는 문구가 눈을 사로잡았는데 배경이 교토다. 교토 홍보용으로 괜찮았나 보다. 뭐 일본 땅 한번 밟아본 적 없는 나로서는 교토가 어떤지 알 도리는 없지만 작가가 교토의 지리적 특징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에서는 교토 여행지 책자에서 읽은 내용이 떠올랐다. 교토는 여행 중 순서나 방향을 잘 짜놓지 않으면 같은 곳을 빙빙 도는 수가 있다는 점말이다. 우습게도 이야기에서도 심한 길치 아가씨가 등장하는데 도통 갈피를 못 잡고 헤매는 모습에 동병상련이 느껴지기도 했다.

게으른 주인공답게 느지막이 등장한 고와다는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재밌고, 지루함마저도 충만하다고 말하는 청년이다. 나름 주 중은 성실히 보내는 듯도 하다. 그러나 주말만은 기숙사에서만 늘어지게 보내고 싶어 한다. 그 정도의 바램을 원하는 이는 흔하지 않나? 단지 문제라면 '장래에 아내가 생기면 하고 싶은 일 목록'을 너무 심각하게 오래 고민하는 것 정도랄까. 하지만 주변인들은 하나같이 그에게 충고하고 제안한다. 토요일도 충실히 보내야 보람 있는 삶을 사는 것이라고.

그런 그에게 서서히 모험의 징후가 시작된 건 폼포코 가면과의 만남 뒤부터다. 폼포코 가면은 너구리 가면과 망토를 뒤집어쓰고 정의를 위해 활약하는 귀인인데 다시 보니 그런 희생의 즐거움에 취해 너무 모험이 과한 자가 아닌가 한다. 그래서일까 체력도 딸리고 슬슬 후계자 고민을 하던 차 그는 고와다를 점찍는다. 수많은 성실한 이들을 재껴두고 왜 고와다일까, 하니 훌륭한 모험가 눈에 비친 고와다는 삶을 포기한 자로 보였나 보다. 즉 인생 구제라고 나 할까. 매사가 게으르고 지루해 보이는 그에게 모험이라는 엄청난 선물을 주고 싶어 한 것이다. 그러나 태생이 게으른 그에게 모험이라니. 먹혀들 리가 없다.
그래서 뒤로 갈수록 그들의 밀당이 우습기만 하다.
"저는 게으름을 피우기 위해 서면 뭐든 합니다."
"당신 또 그런 소리를! 좀 더 모험하라고!"
"그런 건 싫어요." -p.179

여전히 폼포코 가면은 본연의 주어진 임무에 바쁘다. 그러나 어딜 가나 그런 귀인을 달가워하지 않는 무리가 존재하듯이 그를 잡기 위해 혈안이 돼있는 이들도 있다. 국숫집에서 한바탕 소동을 시작으로 줄기차게 쫓는 자들이 따라붙고 탐정 사무소 여직원인 다마가와는 폼포코와 함께 있던 고와다까지 미행을 한다. 물론 타고난 길치라 미행은 실패하고 그와 동행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폼포코 가면을 잡으려는 이들은 하나같이 친절하게도 배후를 밝힌다. 캐도 캐도 계속 나오는 배후들. 왜 귀인을 못 잡아 안달인 걸까.

여기서 나는 고와다보다는 탐정 직원인 다마가와에게 더  마음이 움직였는데 서툴러도 어쩌면 제일 성실한듯하고 맡은 일에 충실하다. 엉뚱해 보이지만 결정적 단서도 제공하는 등 이야기의 중심을 잡고 있다. 그렇게 교토를 돌고 도는 사이 어쩌다 보니 고와다도 소소한 모험의 연속이다. 소설은 일본의 축제 요이야마와 하치베묘진이라는 신을 등장시켜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후반부로 갈수록 그러한 느낌이 배가 되는데 마치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흥미롭다.

처음엔 소설이 참 게으르게 느껴졌었다. 그래서 별로 재미를 느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두 번 훑어나가면서 장면 장면이 머릿속에 들어오고 웃음이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게으른 고와다는 모험 인듯 아닌 모험을 통해 폼포코 가면으로 오해를 받게 되어 붙잡히게 되는데 결국 배후의 우두머리인 하치베묘진을 만난다. 이 신이 얼마나 게으르고 더러운지 고와다의 입에서 절로 게으름뱅이라는 단어가 나올 정도다. 오십 년이나 한 곳에서만 머무르고 쓰레기 버리는 것도 귀찮아 쌓아두며 지루한 건 싫지만 귀찮은 건 더 싫은 신!이라니. 그러고선 귀찮아하는 신은 더 귀찮아하는 고와다에게 청소를 시키려 한다.
여기선 고와다와 하치베묘진의 밀땅이 더 우습다.
"좋아, 알았어. 거기에 작은 서랍이 있지? 돈이 조금 들어 있어.
오래된 돈이지만, 알지? 그런 편이 가게에서 비싸게 팔리기도 한다며? 전부 줄 테니 일해다오."
"싫습니다."
"인간은 돈을 위해서라면 뭐든 하지 않나? 우리랑 다르게."
"저는 인간이기에 앞서 게으름뱅이입니다." p.368

무심코 읽다가 나도 모르게 빵 터졌는데 이 장면에선 유독 일본 애니로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문득 아, 그래서 거룩한 게으름뱅이라고 한 건가 하는 의문도 풀리는듯했다. 신보다 더 확고한 게으름뱅이라니.ㅋ
그렇게 폼포코 가면의 후계자 따윈 전혀 생각지 않고 있던 고와다가 과연 하치베묘진까지 만나며 생각을 바꾸게 될는지. 그리고 과연 그에게 휴일의 빈둥거림이 계속 이어지게 될는지 소설을 통해 만나보길 바란다.

뭐니 뭐니 해도 그의 거룩한 게으름을 대변하는 문장은
"지루함의 바닥까지 느껴야 진정한 휴가지." -p.134라는 말이 아닐까.
그러나 "아아, 나는 이제 의미 있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야." -p.135에서는 조금 걱정스럽긴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겪어본 바로는 주말을 지나치게 굴러다녀서 더 피곤한 월요일을 맞이한 적도 있었다는 사실인데 적당한 게으름뱅이라면 삶의 적절한 균형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그래도 여전히 직장인과 학생들은 일요일저녁이면 두려워한다. 내일이 월요일이란 사실을.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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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 - 시리아 내전에서 총 대신 책을 들었던 젊은 저항자들의 감동 실화
델핀 미누이 지음, 임영신 옮김 / 더숲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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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글프고 아팠다. 왜 희망은 저 땅 위에 없는 것일까.
시리아 내전의 중심도시인 다라야. 인권이란 존재하지 않는 곳. 자유와 종교와 이권다툼의 희생지가 되어버린 그곳에서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하나둘 책에 눈을 뜬다. 믿을 수 없겠지만 이것은 실화다. 그들은 삶에 대한 갈증을 책으로 버텨내고 있었다. 프랑스의 한 기자가 페이스북에서 우연하게 발견한 사진 한 장이 그 증거였고 그는 그들을 찾아낸다. 뚝뚝 끊기는 신호에 영상은 일그러지고 소리는 드문드문 전달되지만 희망을 위한 노력은 끊이지 않았다. 알리고 소통하고 도움을 구하는 그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우리가 소소하게 보내는 순간과 일상들이 그들에게 얼마나 간절한 것인지 알았기에 화가 나고 슬펐다.

독서는 피난처와 같다. 모든 문이 잠겼을 때, 세상을 향해 활짝 열린 책의 책장들. -p.26

책은 지배하지 않습니다. 책은 무언가를 선사해주죠.
책은 거세하지 않습니다. 책은 성숙하게 합니다. -p.37

도시의 잔해 속에서 건져 낸 책들이 다라야의 지하 공간에 모여 작은 책방을 이루었고 그곳 젊은 청년들은 다시 꿈을 품기 시작한다. 아픔과 고통의 신음마저도 묻혀 사라질 위기이지만 그들은 책 속으로 빠져든다. 그리고 네트워크는 그들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고 그들 중 몇몇은 기자에게 소식을 전한다.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퍼부어대는 폭격과 화학무기에 치가 떨리고 그들이 계속 소식을 전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한 가닥의 희망을 책에 의지한 이들, 비록 테러리스트들에 그들의 진심은 통하지 않았고 결국 마을 봉쇄령과 함께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이었지만 그들이 책을 통해 얻었던 수많은 의문과 생의 가르침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통해 자아를 탐구하고, 레미제라블을 읽으며 용기를 키우며, 자기 계발서를 돌려보며 마음을 다잡았던 그 순간을 기억하길 바란다. 그래서 반군의 병사 오마르의 죽음이 더욱 서글프고 안타까웠다. 다음 생이 주어진다면 멋진 작가로 다시 태어나길 바란다.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닷물을 깨뜨리는 도끼가 되어야 한다.-p.120
책은 우리가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는 수단이자 영원히 무지를 몰아내는 방법입니다.-p.35

때론 삶의 무심함이 원망스러울 때가 있다. 태양은 여전히 빛나고 노을은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그렇다고 원망만 늘어놓는다면 절대 변화를 꿈꿀 수 없다. 내가 그들의 고통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들이 내쉬는 얕은 숨에 희망의 소리를  전하고 싶다. 살아있는 자들에게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순간이 모여 생명이 되고 우리의 의지가 피어나는 건 아닐까.
많은 이들이 책을 보며 연민의 정을 가졌으면 좋겠다. 전 세계 사람들과 국제 사회는 그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전쟁의 참혹함과 실상이 전해져 그들에게도 평범한 일상의 시간들이 돌아왔으면 좋겠다.

독서라는 이 소박한 행위는 평화를 되찾으려는 열망과 결부되었다. -p.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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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로니아공화국
김대현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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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족사회에서 부족사회로 그리고 먹고 먹히는 싸움 끝에 탄생한 수많은 국가들. 국가의 존재 이유는 인간 개개인의 존엄과 자유를 위한 투쟁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진보해왔다. 그 결과 안정된 복지 시스템의 혜택을 누리며 평안한 밤을 보내는 곳도 있는 반면 여전히 자유를 위한 투쟁이 현재진행형인 곳도 많다.
최근 국민들의 분노를 사는 기사들 댓글에는 이게 나라냐, 국가는 대체 누구를 위해 존재하냐는 등의 비난의 글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 소설도 세월호 사건이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 국가는 국민을 구하지 못했고, 사건은 은폐 조작되었으며, 그것도 모자라 유가족을 사찰하는 곳이라면 아로니아 공화국의 시민으로 옮겨가고 싶지 않을까.

소설은 현실과 이상이 공존한다. 1980년대 이후의 대한민국과 2028년 7월 7일 이후(그러고 보니 책을 읽은 날도 7월 7일이다. 그냥 같다 붙여 보았다.ㅎ)의 아로니아 공화국으로 대한민국 국민이었던 김강현과 아로니아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 로아 킴은 동일 인물이다. 그래서 그의 어린 시절을 따라 바라본 대한민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을 재조명하고 작가는 그것을 과감히 씹어준다. 그 덕분에 소설은 유쾌하고 통쾌하다. 아로니아 공화국을 세우기까지 풍자와 해학이 적절히 버무려지고 하고자 하면 이루어지고 되고자 하면 되게 끔 풀어낸다. 그래서 딴죽 걸지 말고 계속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단골 만화방을 위해 삥까지 뜯으며 자금을 조달하다 삥뜯기 재미에 빠진 철부지 소년은 습관처럼 삥을 뜯다가 아버지에게 된통 걸린다. 뒈지게 얻어 맞고 인간 되기 위해 끌려간 도장에서 첫사랑을 만난다. 공부, 운동, 미모, 성품을 다 갖춘 누나인 수영 덕에 전 과목을 달달 외우고 마는 숨은 능력을 찾아내어 서울대를 밟고 정의 구현을 위한 검사가 된다.(여기서는 달달 외우기만 해도 좋은 대학 가던 그 당시의 입시를 꼬집은 것 같다. 책상 앞에서 인성은 뒤로하고 죽어라 공부만 한 자들의 최후는 부정부패와의 결탁이었으니. 쯧)
그러나 검사라고 다를 쏘냐. 정권과 결탁해 하수인 노릇을 하는 검찰청도 시궁창인 건 마찬가지이다. 시원하게 탈출을 하지만 나쁜 놈은 혼내주었으나 착한 놈은 상을 받지 못하는 그런 나라에서 김강현은 그냥 평범한 일상을 즐기기로 한다. 그런데 어느 날 한 남자가 그를 찾았다. 아로니아 공화국 제안서를 가지고서.

강현은 매료되었고 아로니아 건국은 착착 진행되어간다. 그 과정에서 복잡한 국가 간의 선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시진핑의 등장은 무얼 의미하는 건지 모르겠다. 반면 아로니아 땅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지난 한일 해양 협정을 꼼꼼히 짚어주며 간과해서는 안 될 점도 시사하고 있다. 오직 아로니아만을 위해 모인 여러 인물들과 자금조달 과정 그리고 땅을 메우고 건설하는 과정은 대충 읽어나갔다. 얽히고설킨 관계도도 복잡하고 나의 상상력의 부족으로 아로니아가 건설되는 과정은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았다. 어쨌든 모든 이들의 뜻대로 아로니아는 건국을 선포한다.

아로니아의 교육은 재밌게 노는 방법을 가르친다. 재밌고 신나게 많은 사람들과 행복하게 놀 수 있는 기술과 학문을 가르친다.
인간의 존엄과 자유와 행복, 세계 인류의 평화를 배우고 가르친다. 아로니아의 교육은 이것뿐이다. -p.355

아로니아는 누구라도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 때문에 소외받지 않는다. - p.357

무엇보다 평소 물고 뜯고 싶었던 사회 부조리와 정치를 향한 거침없는 일격에 속이 후련했다. 그래서 간간이 터지는 욕지거리가 정겹기만 하다. 또한 사회에서 소외받은 이들의 아픔을 어루만지기도 한다. 정직과 믿음 그리고 묵직하면서 징하게 전해져오는 부자의 정에 가슴이 뭉클하고 강현과 수영의 온도차도 들쭉날쭉하지만 사랑스럽다.

하지만 나라를 만드는 일이 꼭 재미있다고만 할 수 있을까. 아로니아도 이상적일 줄 알았지만 이상적인 국가는 없다. 인간은 한 곳에 머무르려 하지 않는다. 늘 변화를 꿈꾸고 욕망은 끊이지 않는다. 인간은 평화를 갈망하는 동시에 끊임없이 싸우고 쟁취하려 든다. 그렇다고 국가 없이 개개인의 자유가 보장될까. 예전 같았으면 강자에게 먹히고 말았겠지만 미래의 그곳은 국가 없이 존재할 수 있을는지도. 어쩌면 수영의 말대로 국가의 존재 자체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라는데는 동의한다. 그러나 아직은 국가가 없는 국민은 보호를 받지 못한다. 왜냐하면 세계는 여전히 국가 단위로 존재하고 인정받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여행 에세이집에서 만난 인도의 오로빌이란 공동체 마을이 떠오르기도 했다. 책을 읽고 당장이라도 그곳으로 날아가고픈 마음이 굴뚝같았던 그때가 떠올랐다. 욕심내지 않고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며 자연생태적인 삶을 추구하고 서로를 위하던 모습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노력들이 알려지면 미래에는 꿈꿔볼 수 있지도 않을까. 살살 살아도 모두가 행복한 나라, 착한 사람들이 좀 더 자제력을 발휘하여 이끌어가는 공동체 말이다. 우리의 아로니아 공화국은 결국 각자의 노력으로 만들어 가는 것임을 알아야 하겠다.

나는 진정으로 국가에 필요한 사람은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착한 사람은 가엾고 불쌍한 사람을 내버려 두지 않고, 부끄러운 일을 부끄러워하며 늘 겸손하고 사양할 줄 알고, 옳고 그른 것을 가릴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불행한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입니다.-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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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서 행복을 만드는 것들 - 인생의 진짜 목표를 찾고 사랑하는 법
하노 벡.알로이스 프린츠 지음, 배명자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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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든 책이든 행복하게 끝나지 않으면 무언가 서운하다. 열린 결말이더라도 행복한 결말을 상상해야 마음이 놓인다. 이처럼 행복은 모든 이들이 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복잡하다. 그리고 놓인 환경도 다 다르다. 그래서 각자가 느끼는 행복의 정도도 물론 다르지만 행복의 가치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내 안에서 행복을 만드는 것들은 무엇일까. 이러한 궁금증을 안고 꾸뻬 씨는 여행길에도 오르지 않았는가. 그가 여행길에서 적어나간 수첩에는 스물세 가지의 행복을 위한 조건들이 쓰여 있다. 그가 여행을 하는 동안 써 내려간 행복의 조건들 중 '불행을 피하는 게 행복의 길은 아니다.'라는 철학적인 문장도 있지만 더 큰 부자가 되거나 집을 갖는 등의 경제적 측면도 있다. 돈은 이미 세상을 지배하고 있고 현실에 만족을 못 하는 이유 중 경제적 측면의 비중이 클 것이다.

저자 하노 백은 경제학자로 이 책은 그가 경제학자로 지내오면서 고민했던 경제적 관점에서 인간과 행복의 상관관계를 다양한 시점으로 풀어놓고 있다. 각종 연구 및 통계자료가 그의 의견을 뒷받침하고 사실관계를 통해 힘을 얻는다. 저자의 의문에 대한 내용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겠다.
현대 생활에서 행복과 부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물론 아닌 이도 있겠지만 이것은 대다수 사람들의 경우다. '돈이 많다고 무조건 불행한 건 아니다'라는 말이 더 그럴듯하게 들리는 것처럼 행복한 삶을 위해서 돈은 가장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행복을 탐구하고 연구해오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어떻게 보면 이 책도 여느 책과 비슷한 패턴을 밟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책에서 얻을 인생의 배움이라면 경제적, 사회적 관점에서 행복과 욕망의 적정선은 어디까지이며 우리가 버리거나 지켜야 할 생각들은 무엇이 있는지 되짚어 나가는데 있겠다.

남과 비교하거나 욕망이 클수록 불행에 가깝다는 사실은 익히 알 것이다. 또한 쓸데없는 것에 가치를 두거나 일시적인 행복감에 도취한 이들은 장기적인 행복감을 느낄 수 없다. '행복은 의미 있는 삶에 따르는 부산물'이라는 세기의 철학자의 말을 곱씹어 보면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내면을 채워나가야 한다. 내적 행복감이 높은 사람일수록 마음을 다스리는 능력이 크고 돈보다 시간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더 나아지기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한다. 월급이 더 많은 직장, 더 좋은 집, 멋진 차등 더 나은 환경을 소유하고 싶어 한다. 부의 가치는 수로 매겨지고 숫자로 환산되어진다. 지나친 정보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그렇듯 외향적 행복감을 위해 노력한 시간은 불행한 마음을 줄이는데 도움이 되지만 단편적 행복감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이제는 적정 라인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나를 찾는 시간이다. 합리적 소비, 친구, 취미, 협력, 여행, 건강, 종교 등 무엇을 더하고 뺄지 보일 것이다.

무엇보다 행복을 만들어내는 조건들을 찾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인상적이었다. 그중에서도 여러 쌍둥이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가 흥미로웠다. 삶의 만족도에 있어 유전자가 갖는 수치가 무려 38%를 차지한다는 건 적은 수치가 아니다. 최대 절반까지 유전자에 좌우된다는 사실에 어느 정도 동조하게 되는 건 그만큼 나뿐 아니라 주변인들을 겪어오면서 가졌던 생각 때문이다.

인간은 행복한 순간에도 불운을 염려한다. 세상에는 대처할 수 없는 어려움이 늘 따라다닌다. 그러나 삶의 궁극적인 목적인 행복감에 이르기 위해서는 이성을 갈고닦아야 한다. 즉 내적 행복감이 충만한 삶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결국 경제적 관점이나 철학적 관점이나 행복에 이르는 길은 비슷할 것이다. 행복의 시작점은 결국 자기 자신이며 마음먹기 달렸다는 변하지 않는 진실 말이다.
언젠간 행복해지겠지가 아니라 지금 행복해야 한다는 걸 잊지 말기를.

행복한 지출법 하나. 물질적상품 대신 경험을 구매하라.
..
경험구매는 사회적 관례를 개선하고 강화한다. -p.155~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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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기다림의 순간, 나는 책을 읽는다 - 그리고 책과 함께 만난 그림들……
곽아람 지음 / 아트북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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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하소연하던 내게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라고 조언을 한 절친이 있었다. 국문과를 나와 극본을 쓰던 친구는 책과 글이 일상이었고 결혼과 육아에 늘 혼을 빼놓고 살던 나는 투정이 일상이었다. 서서히 우울감에 젖어들어 하소연을 늘어놓던 내게 친구는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독서할 것을 권했다. 취향을 몰랐음에도 읽을만한 책을 골라주며도 도움을 주었다.

그때 들였던 책이 바로 곽아람 작가의 [모든 기다림의 순간 나는 책을 읽는다]였다. 십 년 전이라서 친구의 추천이었는지 아니면 제목에 이끌려 구입한 건지 선뜻 기억이 나지 않지만 책장 아래 칸을 지키고 있던 이 책을 꺼내든 것도 다시 만날 때가 되었나 보다. 하지만 몇 장을 넘겼는데도 도무지 읽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당시 내가 읽었던 책이 많지 않았기에 아마도 이곳에 소개된 책들이 죄다 낯설어 그랬을 것이다. 그렇게 책장을 넘기다가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와 짝을 이루고 있던 [아무도 기다려 주지 않는다]의 그림을 본 순간 내가 이 책을 읽은 기억이 떠올랐다.
수용소의 하루에 대한 소설도 흥미로웠지만 그림 속 남자의 당황한 눈빛과 가족들의 몸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깃든 표정들에 묘한 감정을 느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나 그 부분을 제외하곤 죄다 기억이 없어 새롭게 다시 읽어내려갔다.


 

 

 

읽으면서 왠지 모를 설레는 이 기분이 무얼까 하니 이젠 제법 아는 책이 많단 사실이었다. 미술 관련 서적을 읽은 것도 도움이 되어 작가의 느낌에 발을 맞추어 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문득 드는 생각은 작가가 책을 사랑하게 된 데는 부모님의 영향이 상당했음을, 그리고 다양한 책들이 책장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이 무척 부러웠다. 숨 막히던 학창시절의 기억과 청춘의 고뇌를 책과 그림을 통해 풀어나가는 그녀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그렇게 마음으로 읽은 책들을 그림으로 옮겨가는 시선이 멋져 보였다. 그래, 진정한 독서란 이런 것이구나를 알게 해준 책이라고나 할까.

평소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갈증이 조금은 해소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 것도 장면 장면에서 그녀가 이야기하고 있는 생각들이 마치 그때 내가 느끼고 있었던 생각들과 비슷한 부분이 있어서였다. 그리고 당연히 위시리스트는 쌓여만 갔다. 국문학을 거의 읽어보지 않은 내게 토지를 찾아 읽고 싶게끔 했고 소나기가 다시 읽고 싶어지기도 했다.
책을 읽고 싶지 않을 땐 원작 영화를 즐겨 보는 즐거움 덕에 위대한 개츠비, 오만과 편견, 제인 에어 등의 장면 장면이 떠올라 다시 찾아보고 싶어지기도 했다. 특히 일명 좀 어렵다고 하는 책들로 분류되는 고전들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읽어볼 수 있어 알찬 독서를 한 느낌이었다.

그녀가 추억한 책 목록에 첫 번째로 등장한 [빨강 머리 앤]을 본 순간 역시 앤의 팬층이 두꺼움을 실감했다. 나도 그린게이블즈의 앤 시리즈 열권 자리를 귀하게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가 연관 지은 [눈에 멍이 든 소녀]는 앤보다는 말괄량이 삐삐가 더 생각나서 그 부분은 쉬이 공감되진 않았다. 그래도 오래 기억에 남을 그림에는 틀림없어 보였다.


 

 

중간 중간 옆길로 잠깐 빠지기도 했는데 카프카의 [변신]에서 벌레로 변한 그레고리는 가족으로부터 진정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받고 싶어 한다. 벌레라는 존재의 하찮음과 혐오감이 더 해져서일까. 그는 비참하게 가족들에게 외면당한다. 하지만 반대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혐오스러운 바퀴벌레로 변했다면 늘 그를 옆에 두고 볼 수 있을까 하는 우스운 생각도 들었다. 내면이 중요함만을 가지고 있는 그대로 상대를 바라볼 수 있을까. 노력은 해보겠지만 역시나 힘들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며 들여다본 생존의 기술이라는 그림은 유독 다른 그림들보다 인상적이었다. 동그란 달 가운데를 자리 잡고 있는 도시인들의 얼굴에서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라며 한참을 들여다보았기 때문이다. 달로 변한 그는 안정감을 느끼며 세상을 약 올리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튼 작가의 글을 먼저 읽어서일까.  그 뒤에 만난 그림들은 하나같이 작가의 말들과 닮아 있다. 그래서 좀 더 풍요로운 독서를 원한다면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림에 대한 새로운 시선도 생겨나지 않을까한다.
그래서 아마도 이제부터는 그림을 마주할 때면 무심결에 문학작품 속 그 누군가와 연결 짓는 나를 보게 될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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