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로니아공화국
김대현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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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족사회에서 부족사회로 그리고 먹고 먹히는 싸움 끝에 탄생한 수많은 국가들. 국가의 존재 이유는 인간 개개인의 존엄과 자유를 위한 투쟁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진보해왔다. 그 결과 안정된 복지 시스템의 혜택을 누리며 평안한 밤을 보내는 곳도 있는 반면 여전히 자유를 위한 투쟁이 현재진행형인 곳도 많다.
최근 국민들의 분노를 사는 기사들 댓글에는 이게 나라냐, 국가는 대체 누구를 위해 존재하냐는 등의 비난의 글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 소설도 세월호 사건이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 국가는 국민을 구하지 못했고, 사건은 은폐 조작되었으며, 그것도 모자라 유가족을 사찰하는 곳이라면 아로니아 공화국의 시민으로 옮겨가고 싶지 않을까.

소설은 현실과 이상이 공존한다. 1980년대 이후의 대한민국과 2028년 7월 7일 이후(그러고 보니 책을 읽은 날도 7월 7일이다. 그냥 같다 붙여 보았다.ㅎ)의 아로니아 공화국으로 대한민국 국민이었던 김강현과 아로니아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 로아 킴은 동일 인물이다. 그래서 그의 어린 시절을 따라 바라본 대한민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을 재조명하고 작가는 그것을 과감히 씹어준다. 그 덕분에 소설은 유쾌하고 통쾌하다. 아로니아 공화국을 세우기까지 풍자와 해학이 적절히 버무려지고 하고자 하면 이루어지고 되고자 하면 되게 끔 풀어낸다. 그래서 딴죽 걸지 말고 계속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단골 만화방을 위해 삥까지 뜯으며 자금을 조달하다 삥뜯기 재미에 빠진 철부지 소년은 습관처럼 삥을 뜯다가 아버지에게 된통 걸린다. 뒈지게 얻어 맞고 인간 되기 위해 끌려간 도장에서 첫사랑을 만난다. 공부, 운동, 미모, 성품을 다 갖춘 누나인 수영 덕에 전 과목을 달달 외우고 마는 숨은 능력을 찾아내어 서울대를 밟고 정의 구현을 위한 검사가 된다.(여기서는 달달 외우기만 해도 좋은 대학 가던 그 당시의 입시를 꼬집은 것 같다. 책상 앞에서 인성은 뒤로하고 죽어라 공부만 한 자들의 최후는 부정부패와의 결탁이었으니. 쯧)
그러나 검사라고 다를 쏘냐. 정권과 결탁해 하수인 노릇을 하는 검찰청도 시궁창인 건 마찬가지이다. 시원하게 탈출을 하지만 나쁜 놈은 혼내주었으나 착한 놈은 상을 받지 못하는 그런 나라에서 김강현은 그냥 평범한 일상을 즐기기로 한다. 그런데 어느 날 한 남자가 그를 찾았다. 아로니아 공화국 제안서를 가지고서.

강현은 매료되었고 아로니아 건국은 착착 진행되어간다. 그 과정에서 복잡한 국가 간의 선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시진핑의 등장은 무얼 의미하는 건지 모르겠다. 반면 아로니아 땅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지난 한일 해양 협정을 꼼꼼히 짚어주며 간과해서는 안 될 점도 시사하고 있다. 오직 아로니아만을 위해 모인 여러 인물들과 자금조달 과정 그리고 땅을 메우고 건설하는 과정은 대충 읽어나갔다. 얽히고설킨 관계도도 복잡하고 나의 상상력의 부족으로 아로니아가 건설되는 과정은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았다. 어쨌든 모든 이들의 뜻대로 아로니아는 건국을 선포한다.

아로니아의 교육은 재밌게 노는 방법을 가르친다. 재밌고 신나게 많은 사람들과 행복하게 놀 수 있는 기술과 학문을 가르친다.
인간의 존엄과 자유와 행복, 세계 인류의 평화를 배우고 가르친다. 아로니아의 교육은 이것뿐이다. -p.355

아로니아는 누구라도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 때문에 소외받지 않는다. - p.357

무엇보다 평소 물고 뜯고 싶었던 사회 부조리와 정치를 향한 거침없는 일격에 속이 후련했다. 그래서 간간이 터지는 욕지거리가 정겹기만 하다. 또한 사회에서 소외받은 이들의 아픔을 어루만지기도 한다. 정직과 믿음 그리고 묵직하면서 징하게 전해져오는 부자의 정에 가슴이 뭉클하고 강현과 수영의 온도차도 들쭉날쭉하지만 사랑스럽다.

하지만 나라를 만드는 일이 꼭 재미있다고만 할 수 있을까. 아로니아도 이상적일 줄 알았지만 이상적인 국가는 없다. 인간은 한 곳에 머무르려 하지 않는다. 늘 변화를 꿈꾸고 욕망은 끊이지 않는다. 인간은 평화를 갈망하는 동시에 끊임없이 싸우고 쟁취하려 든다. 그렇다고 국가 없이 개개인의 자유가 보장될까. 예전 같았으면 강자에게 먹히고 말았겠지만 미래의 그곳은 국가 없이 존재할 수 있을는지도. 어쩌면 수영의 말대로 국가의 존재 자체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라는데는 동의한다. 그러나 아직은 국가가 없는 국민은 보호를 받지 못한다. 왜냐하면 세계는 여전히 국가 단위로 존재하고 인정받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여행 에세이집에서 만난 인도의 오로빌이란 공동체 마을이 떠오르기도 했다. 책을 읽고 당장이라도 그곳으로 날아가고픈 마음이 굴뚝같았던 그때가 떠올랐다. 욕심내지 않고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며 자연생태적인 삶을 추구하고 서로를 위하던 모습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노력들이 알려지면 미래에는 꿈꿔볼 수 있지도 않을까. 살살 살아도 모두가 행복한 나라, 착한 사람들이 좀 더 자제력을 발휘하여 이끌어가는 공동체 말이다. 우리의 아로니아 공화국은 결국 각자의 노력으로 만들어 가는 것임을 알아야 하겠다.

나는 진정으로 국가에 필요한 사람은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착한 사람은 가엾고 불쌍한 사람을 내버려 두지 않고, 부끄러운 일을 부끄러워하며 늘 겸손하고 사양할 줄 알고, 옳고 그른 것을 가릴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불행한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입니다.-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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