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오다 - 다큐 피디 김현우의 출장 산문집
김현우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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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 대를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심신을 달래주었던 유일한 책이 여행 산문집이었다. 모든 화살이 나한테 몰려오고 있는 듯한 느낌에 숨쉬기조차 힘들 때 여행 에세이는 미래를 꿈꿀 수 있게 해 주었다. 언젠가는 그들이 지나온 자리에서 나도 그곳의 채취와 풍경을 느껴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 말이다.

참 오랜만에 읽은 여행 산문집이다. 다큐 PD라는 직업보다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을 읽은 기억 때문에 작가와의 거리감은 좁힐 수 있었다. [멀고도 가까운]도 여행 중에 읽은 책이다. 그 뒤로 다시 한 번 더 읽어야지 했던 책이기도 한데 [건너오다]를 읽으면서 더 곱씹으며 보아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길치에 방향치에 인생치다. 그래서 늘 한발 늦게 시작하고 한치 늦게 깨닫는다. 그렇다고 뭐 딱히 크게 손해 본 건 없는 듯하지만 후회되는 순간도 더러 있다.(원래 잘 후회하지는 않는다.) 대학생활은 내게 있어 너무나 급작스럽게 변한 환경이었다. 거주지가 바뀐 것부터 두려움이었으니 세상으로 나갈 용기도 없었다. 부모님도 그런 나를 챙겨 줄 형편이 안되었었고 정말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것이었다. 그때 텅텅 빈 영혼을 글로라도 채웠었더라면 삼십 대가 더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건 그가 베케트의 무덤 앞에서 많이 울었다던 장면을 보며 들었던 감정이다. 나는 왜 그때 아무것도 붙잡고 있지 않았던 것일까.

저자는 직업상의 일이었지만 여행지에서 느꼈던 모든 순간을 생각으로 채워 넣는다. 낯선 풍경뿐 아니라 일상의 순간, 그리고 만났던 사람들은 그가 늘 품었던 생각들을 줄줄이 엮어 낼 수 있게 해 준다. 여행지의 경험과 자신의 지식을 자랑삼아 늘어놓기만 했다면 결코 특별할 것 없는 산문집이었을 것이다. 경험이 주는 특별함을 정신이 온전히 받아들일 때 여행은 더욱 특별해진다.

동경하던 작가의 흔적을 발견하고 상상하던 그곳을 직접 눈으로 보는 일, 여행지에서 만나는 새로운 인연들과 낯선 경험들. 이 모든 것들은 떠나는 자들만이 얻을 수 있는 수확이다. 게다가 극한의 체험들은 죽음의 순간을 떠올리게도 하고 경계에선 우리네 삶을 돌아보게 한다. 저자의 말처럼 경계를 넓히는 일은 피곤함과 두려움이 동반된다. 그러나 내면은 더 꽉 차게 된다. 항공사의 실수로 수하물이 늦어진 며칠을 그냥 그렇게 보내며 얻은 깨달음이나 밤하늘의 별처럼 변하지 않고 늘 그 자리에 있는 것들 때문에 변화하는 것의 두려움 따위는 떨쳐버릴 수 있다는 것들처럼. 그리고 힘겨운 촬영 뒤 제대로 된 식사를 즐길 때의 행복감 같은 것들 말이다.

유독 기억에 남았던 일화 중 일본 오키야마의 침팬지의 쓸쓸한 멍 때리기가 떠올랐다. 수놈끼리의 경쟁에서 패배한 놈은 가끔 먼 곳을 바라본다. 그들 사이에 위로라는 개념은 없다. 그런 그들에게 연구원들은 he와 she를 붙여서 부른다. 저자는 그 모습을 보며 그들과 인간이 같을 수도 없고 같아서도 안된다고 반기를 든다. 제아무리 인간 사회가 승자만을 기억하는 사회로 전락한다지만 아직은 패자를 향한 너그러운 시선과 응원의 시선이 남아 있어야 함을 말한다. 먼 곳을 바라보는 침팬지와 이십 대의 내가 동일하게 느껴져서일까. 왠지 울컥하고 뭉클했다.

태국 치앙마이의 눈먼 아이 이야기에서는 저자가 내린 교육의 정의가 참 와닿았다. 교육이란 그렇게 서로 다른 개인의 언어들이 소통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과정일 것이다.-p.158라는 말에서 보고도 보지 못하는 것들이란 소제목을 자꾸만 곱씹어 보았다. 함께 느낄 수 없더라도 계속 공감하기 위한 노력은 필요하다. 그 결과가 냉소적이 되거나 겸손해지든지 간에 고개를 돌려버리는 일은 피해야 하겠다.

여전히 미혼에다 여행을 즐기는 절친이 부러운 적도 있었지만 그렇게 건너오고 나니 내가 보인다.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고 존 버거의 작품을 모두 찾아 읽는데도 어쩌면 내 생각과 문장은 당분간 제자리걸음이겠지만 심적으로 허우적대지는 않을 여유는 생겼다. 그래서 내면의 안정기에 접어든 지금이 좋다. 인생은 사십부터라는 말이 이렇게 와닿을 줄이야. 크흐~~

타인에게 자랑할만한 낯설고 특별한 경험들은 없지만 매일을 새롭게 살아갈 마음만은 단단해지고 있다. 삶은 단정 짓거나 확신하기에 변수가 너무나 많다. 싫고 좋음, 옳고 그름, 예쁘고 못생김, 잘 살고 못 살고, 행복과 불행, 빛과 어둠, 착하고 못된... 양분된 속성 속에도 다양한 감정과 의미들이 공존한다. 그래서 온전히 타인을 이해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그냥 이해하지 못하는 나를 이해하면 내려놓게 되기도 하니까.

 

 

 

요즘은 주말마다 숲으로 간다. 사람들의 흔적이 새겨진 길 위를 걷는 기분이 참 좋다. 수많은 이들의 발걸음으로 단단해진 길 위에서 인생을 배운다. 비록 다독의 길은 조금씩 멀어지고 있지만 자연의 변화 속에서 움직이는 순간들이 참 좋다. 책 속 문장들이 편안해서 떠오르는 순간도 많아진다. 캠핑 불빛이 하나 둘 사라지면 더욱 두드러지는 별들, 가쁜 숨에 미세먼지 가득한 공기마저도 절실한 기억, 마주 오는 이들과 나누는 짧은 농담에 멀어져 가는 웃음소리, 장작이 타던 소리가 주는 안정감...
그렇게 사진첩을 들여다보며 생각도 심어본다. 풍경을 담던 그 순간의 느낌까지 고스란히 전해져서일까. 나의 건너 온 자리들이 나를 더 단단히 이어 주는 듯하다. 고도를 기다리듯 나는 주말을 기다려야겠다.

 

 

★★★

 

 

 

나는 이제 나의 '자리'가 궁금하지 않다. '되고 싶은' 어떤 자리라고 할 만한 것도 없다.

그런 자리라는 것이, 그것을 향해 달려가는 '목표'가 아니라

순간순간 나를 인정하며 지내는 시간들이 쌓여서 만들어지는 '결과'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전에 내가 원하는 모습이 될 수 있는 비법 같은 건 없다는 걸 먼저 알게 되었다.

그걸 알고 나면 나와 화해할 수 있다. -p.20

 

 

 

약속은 하나의 세계를 긍정하는 최종적인 매듭이다. 약속을 지킨다는 건 그 약속을 바라며 살아온 세상의 완성이고,

그건 꽤나 뿌듯한 경험일 것이다. 하지만 때론 약속은 너무 성급했고, 그 약속을 다짐했던 세상은 너무 자주 깨지곤 했으며, 그러고 나면 경계 너머의 새로운 세상에서 과거의 약속만큼 부질없는 것도 없었다.

경계에서 어쩔 수 없는 서운함을 느낀 건 그렇게 약속이 깨어질 때의 서운함과 다르지 않았다. -p.65

 

 

 

변하지 않고 같은 자리에 있는 무언가는 위로를 준다. 생각해 보면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들은 대부분 변화다.
있던 것이 사라지고, 없던 것이 새로 생길 때마다, 우리는 아쉬워한다.
'길들여진 상태'가 편안한 만큼 의지와 달리 거기서 벗어나야만 아는 상황은 서운하고 때론 아프다. -p.136

 

 

 

경계를 건너지 못하게 하는 것은 경계가 아니라 경계 앞에 선 나의 마음이다.
그것은 욕심이고, 욕심에의 다른 이름인 미련 혹은 집착이고, 두려움이다.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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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윈터 에디션)
김신회 지음 / 놀(다산북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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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겨울 시즌에 맞추어 보노보노가 겨울 준비를 끝내고 돌아왔다.
이미 보노보노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그와 친구들의 일상에 위안을 얻은 독자들이 많아졌다.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의 김신회 작가는 별것 아닌듯한 만화 속에서 복잡한 인간관계를 치유하고
개개인의 상처를 보듬을 진리를 찾아낸다.
그리고 서툴고 힘든 청춘들의 아픔을 어루만져 준다.

그래서 보노보노는 추운 겨울, 얼어붙을 듯한 상처 입은 영혼들을 위로하고자 예쁘게 단장하였다.
보노보노의 아버지, 이가라시 미키오가 한국 독자들만을 위해 준비한 스페셜 커버는 귀여움이 넘쳐난다.
게다가 고급진 양장본이라니.
"선물용으로 이보다 좋을 순 없다."
연말연시 한정수량이라고 하니 선물하실 분들은 서둘러야 할는지도!

 

 

 

 

만화 속 세상에서 위안을 얻는 이들이 늘어간다는 건 관계에 지친 이들이 많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나도 보노보노 이전에는 스누피와 무민을 보며 스트레스를 풀었으니 말이다.

보노보노는 소심하고 걱정도 많고 그리 특출난 것이 없는 친구이지만 사랑과 우정을 아는 친구다.
배려도 알고 공감도 알고 다정하기도 하다.
또한 함께 등장하는 주요 인물의 캐릭터 또한 늘 그렇듯 다양하다.
그래서 이런 모습이 그냥 보통의 사람들의 모습들이기에 충분히 대입이 가능한 것이다.
그녀가 이야기하고 있는 생각들은 내려놓음과 맞닿아 있다.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단순한 결론을
왜 놓치고 사는지 깨닫게 된다.

 

 

 

 

……

 

저자 김신회가 발견한
 보노보노 속 주옥같은 위로의 문장들!

 

 

세월이 가져다주는 유연함을 몸에 고루 베이게 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즐거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당연히 일어나고 있는 일들조차 문득 새롭게 다가올 때면 꼬인 관계와 삶의 회초리에 조금 무뎌질 수 있다.

당장은 어려워도 보노보노의 일상에다 우리네 삶을 갖다 붙여보면 복잡해 보이는 일상도 단순하게 그려낼 수 있다.
책은 분명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 그 힘은 읽어본 이들만이 아는 것이니까.

 

 

 

 

어른은 비록 꿈은 없을지 몰라도 세상 물정은 안다.
포기할 때와 그만두어야 할 때가 언제인지도 알고,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라는 현실도 안다.
그러니 만약 자신이 어른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꿈 없이도 살아가는 나를 장하게 여기며 살자.
어른이란 칭찬해 주는 사람이 없어도 스스로를 다독이며 사는 사람이니까.
꿈 없이도 살아간다는 것, 그건 또 다른 재능이다.
- 『꿈 없이도 살 수 있으면 어른』 중에서

 

 

 

 

 

 

무언가 할 수 있다. 무언가 할 수 없다.
다들 분명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찾고 있겠지.
모두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찾고 있다면
우리들은 뭐랄까.
굉장히 부지런한 거 아닐까?
- 『내가 할 수 있는 것 찾기』중에서

 

 

 

 

 

가끔 내가 모르는 나를 발견할 때가 있다.
마치 익숙한 문장에서 진리를 발견할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그리 어려운 문장도, 난해한 해석도 필요 없다.
보노보노의 말 한마디에 걸음을 늦추기만 한다면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도 가져볼 수 있다.

굳이 억지로 공감을 하거나 타인을 이해하려 들지 않아도 괜찮다.
나를 사랑하는 일이 먼저니까.
저자처럼 많은 이들이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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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아이의 마음을 읽는 연습 - 전2권 아이의 마음을 읽는 연습
인젠리 지음, 김락준 옮김 / 다산에듀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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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얼마나 잘 해 나가고 있을까?라는 생각은 이 책을 펼치기 전에 나에게 던진 질문이다. 유아기 때부터 육아서와 심리 책 여러 권을 읽으며 나름 소신이라는 것도 생긴 데다가 이만하면 잘 하고 있다는 만족감도 있었다. 그러나 막상 오랜만에 교육서를 집어 드니 시험을 보는 것 마냥 살짝 긴장이 되었다.

교육서를 손놓고 있었던 시간만큼 이 책의 저자도 당연히 낯설다. 저자가 중국인이라는 사실도 의아했지만 전작 『좋은 엄마가 좋은 선생님을 이긴다』의 성공 후 나온 책이라는 점에 호기심이 생겼다. 교육서라는 것도 시대를 타고 유행을 하다 보니 일률적이지 않아 혼란을 초래하기도 하고 읽다 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내용도 더러 있다. 그래서 교육서에 대해 조금 부정적인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다시 한번 책을 펼쳐든 이유는 부모들과의 상담사례를 엮었다는 점이었다. 저자가 받은 편지가 무려 22만 통이라는 점에서 그녀의 능력을 엿볼 수 있지만 그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점이라면 그녀의 교육관이었다. 진정으로 아이를 독립된 개체로 인정하고 존중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또한 상담자들의 질문에 대해 깊이 고민한 흔적이 느껴지는데 다정하다가도 때론 단호함으로 상담자들을 다그치기도 한다. 일관된 진정성이 참으로 와닿았기에 절반쯤 읽다가 '이 책, 참 괜찮네~~ '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책은 [관계 편]과 [학습 편] 두 가지 주제로 나뉘어 출간되었다. 우선 [학습 편]보다 [관계 편]이 궁금했기에 먼저 읽었는데 주로 어린 아동에 관한 내용이 주가 아닐까 했지만 청소년의 사례도 있다. 다양한 사연을 읽다 보니 내가 고민했던 사연도 있고 현재 지인이 겪고 있는 고민도 보였다. 중국과의 문화와 관습 그리고 교육시스템 정도의 차이점을 제외하면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가 느끼는 혼란은 어딜 가나 비슷한듯하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 있어 핵심은 존중이다. 부모의 지나친 관심이 오히려 독이 된다는 명제는 익히 알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가정이 많다. 지인 중에도 중학교 딸의 옷차림과 화장 문제, 성적 문제 등으로 예민해 하는 집이 있다. 그때마다 그만 좀 너그러워지면 안 되겠냐고 충고하지만 쉽지 않아 보였다. 아이가 부모와 늘 같은 문제로 싸우게 될 경우 아이는 부모에게서 존중감을 느끼지 못하게 될 것이고 결국 입을 닫아버릴 것이다.

엄마가 조금 약해지면 아이의 힘은 더 강해져요. 엄마가 밀어붙이지 않으면 아이의 내면세계는 더 넓어져요.
엄마가 통제하지 않으면 아이의 자율성은 더 커져요. -P.51

아이와 대화할 때 '내가 어떤 말을 했는가'가 아니라 '아들이 내 말에서 어떤 점을 받아들일까'에 초점을 맞추세요. -P.77

진정한 자유는 방임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가 성장에 필요한 경험을 쌓을 수 있게 자녀에게 선택할 수 있는 권리, 경험할 수 있는 권리. 실수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것이에요. -P.91

여러 사례를 통해 관계의 적정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와 지금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가 서서히 보일 것이다. 어릴 때부터 시작한 간섭이 통제로 이어지지는 않았는지,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기보다는 말 잘 듣는 아이가 되길 바란 건 아닌지, 내 생각을 강요하여 아이를 힘들게 하지는 않았는지 반성의 시간을 가지다 보니 부모가 달라져야 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자녀와의 관계는 부모가 함께 고민하고 대화를 해야 한다. 의견을 나누고 의견을 좁히는 과정이 중요하다.

읽으면서 이미 지나간 일들이지만 내가 저지른 실수들이 떠올라 아이들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남매간의 다툼을 계속 나무란 일, 내가 정한 규칙으로 아이를 판단한 일, 싫다는 데도 억지로 시켜댄 일등을 반성하며 이제부터라도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관계 편은 아이와의 관계를 넘어 조부모 그리고 부부 사이뿐 아니라 엄마 자신의 인간관계도 조언하고 있어서 폭넓은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다. 무엇보다 양육자들뿐 아니라 어른들에게 요구되는 것이라면 아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존중해야 한다. 아이 하나에 온 우주가 필요하다는 말이 과하지 않은 말임을 진심으로 깨달아야 한다.

 

 

 

 

 

[학습 편]에서는 좀 더 구체적인 내용들을 접할 수 있다. 영어는 언제부터 하는 게 좋은지, 애니메이션에 집착하는 아이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악기는 일찍 시작해도 좋을지, 스마트폰에 빠진 아이, 성적 호기심이나 자위행위가 고민되는 아이, 조기교육과 선생님과의 관계 등 많은 부분을 이야기하고 있어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읽다 보면 잘못된 교육의 문제점을 직시하고 올바른 교육을 걸러낼 수 있는 눈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여러 가지 교육법에 휩쓸리지 않고, 또 주변인들의 말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확신을 얻을 수 있다.

저자의 답변에서 강한 소신이 전해진다. 눈치 보지 않고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는 단호함에 기분이 나쁠 수도 있으나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며 설득하고 있다. 눈여겨보았던 사연이 사회의 부당함에 대처하는 자세였다. 세상의 불합리와 부조리 앞에 아이가 받을 상처를 최소화하기 위해 부모는 충분한 방패막이가 돼 주어야 한다. 저자의 시행착오도 거침없이 나누며 서툰 부모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준다. 내 아이를 단단하게 키우기 위해서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피식 웃었던 사연도 있다. 멀쩡한 책가방을 두고 아이가 하나 더 사달라고 한 사연에서 나도 사연의 엄마처럼 사달라는 아이 앞에서 가난한 아이를 들먹이는 비슷한 소리를 한 기억이 있다. 또 레고를 사달라는 아이에게 커서 네가 돈 벌어서 사라는 사연에서 그런 유사한 소리를 늘어논 기억이 떠올라 부끄럽기도 했다. 아이가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좀 더 현명한 답을 제시하기 위해서 부모는 더 공부하고 고민을 많이 해야 함을 느꼈다.

 

 

 

정말 괜찮은 교육서가 있으니 같이 읽자는 말을 건넸을 때 어디 교육이 책대로 되냐며 선을 그어버리는 이들이 있다. 또한 여태껏 교육서 한 권 들여다보지 않은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보아야 한다. 저자의 말처럼 많이 읽어야 좋은 책을 선별할 수 있는 능력도 생겨나는 것이다. 특히 여러 가지 상황에 부모가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은 책이 아니면 당장에 얻을 수 있는 곳이 없다. 아이에게 어떤 식으로 조언을 할지, 부당한 일 앞에서 어떻게 당당해질 수 있을까는 경험보다는 책을 읽어서 얻은 지혜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속 부모나 아이들은 그렇게 문제가 있는 이들이 아니다. 그들도 아이들 교육에 있어 신중하고 걱정이 많은 평범한 부모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저자의 전작을 통해 자신들의 문제점을 직시했고 더 나은 관계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좋은 부모는 그렇게 시작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교육에 있어 무지보다 위험한 것이 오만이다. 무지하면 배울 자세라도 있지만 오만한 이들은 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이 책은 교육에 있어 서툰 이들보다 그런 이들이 더 보아야 할 책이다. 문제아는 없다. 잘못된 부모가 있을 뿐이다. 육아는 나 혼자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함께 같이 잘 해야 내 아이도 다른 아이와 좋은 관계를 형성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갑자기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다. 정말 고치고자 하는 것 한두 가지 만이라도 실천한다면 건강한 가정을 만들어 갈 수 있다. 아이와 함께 부모도 성장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아이는 어른을 구원하고 인도하는 천사예요. 좋은 엄마는 결코 완벽한 엄마를 의미하지 않아요.
열심히 배우고 수시로 자신을 반성하는 엄마가 좋은 엄마예요.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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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랑하는 일에 서툰 당신에게 - 내 안의 부정적인 감정과 이별하는 28가지 심리 상담
마음달 지음 / 북라이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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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아무리 나를 지켜나가고 있더라도 막다른 길에 서거나, 뜻하지 않는 불행에 직면하게 된다면 나는 얼마큼의 회복력을 가질 수 있을까.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는 것이 우스운 일이긴하지만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고 산다는 건 두려움투성이라 벗어날 수 없는 질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질문은 늘 책을 덮기전 잠깐씩 스친다. 그만큼 나는 아닐꺼라고 해도 불안감이 드는건 어쩔수 없나보다.

이 책도 대부분의 심리 책에서 다루는 내용과 별반 다르지 않지만 여태껏 읽은 심리 서적들을 잘 정리해 놓은 듯한 인상을 받았다. 심리상담가의 경험이 충분히 녹아있기에 인생 새내기 입문서라고 붙여도 좋을 듯하다. 그리고 제목처럼 한 통의 편지를 받은 듯이 편하게 읽어보면 좋겠다.

인생은 그래도 살만하다고 생각한다면 어쩌면 현재를 고되게 살아도 더 나은 삶도 꿈꿔볼 수 있다. 하지만 사는 게 무의미하고 이 생명(이번 생은 망했다)이라고 결론을 내리거나 심지어 인생이 좀비 같다고 느끼는 이들에게 삶은 의미 따위는 무의미하다. 절망은 하루아침에 오는 통증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단점은 있고 트라우마도 있으며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각자가 느끼는 삶의 무게는 외부환경과 내면의 불안감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누구는 호수를 보며 아름다운 시를 읊겠지만 것이고 누군가는 뛰어들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히기도 할 테니까.

돌이켜보면 무난하게 살아왔지만 대학시절에는 주변에 잘난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자신감이 심각하게 위축된 적도 있었고, 결혼 후 산후 우울증도 겪어 보았고, 삽 십 대 중반에는 뭐하나 해놓은 것 없는 것 같아 자존감이 바닥을 기어갈 때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별것 아닌 일들이 그 당시는 그렇게 심각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인생의 굴곡들을 잘 타넘고 올 수 있었던데는 무엇보다 예민함을 버리는 일이었다. 예민함을 내려놓으니 부정적인 생각들이 흐려졌다.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 둘 찾기 시작하자 의지가 생겨났고 인생을 조금씩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깨달은 점이라면 자신의 인생에 두 손 놓고 있으면 정말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책의 저자도 부정적인 감정과 이별하는 길이 자신을 사랑하는 길임을 강조한다. 그것은 그냥 FM 적인 해답이 아니라 그러한 변화를 겪은 이들을 관찰한 결과이다.

존재의 이유와 삶에 대한 고민에 끝이 없다. 그렇게 누구나 불완전한 존재로 각자 성장통을 앓으며 살아간다. 그러면서 자신을 위한 수많은 질문들에 해답을 찾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 거울 속에 비친 그 순간에만 머물러 있다면 절대 성장할 수 없다. 현실에서 과거와 함께 사는 이들도 많다. 과거의 안 좋았던 나를 잊을 수는 없다. 나를 끌어와 온전히 현실에 적응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정해진 각자의 자리란 없다. 그러한 틀은 자신을 더 힘들게 할 뿐이다. 그냥 지금의 나를 사랑하다 보면 그 모습이 내 모습으로 자리 잡을 것이고 그렇게 자신만의 이야기는 만들어진다.

적절한 사회적 가면은 삶에 도움이 되지만 때론 짐이 될 수도 있다. -p.158

저자는 다양한 질문과 예시를 통해 생각의 기준점을 제시한다. 나의 단점은 무엇인지, 타인과 나를 심각하게 비교거나 남의 잣대에 흔들리고 있는 건 아닌지, 타인의 비난 앞에 나는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 나를 충분히 잘 들여다보고는 있는지, 내가 늘 두고자 했던 삶의 기준은 무엇인지, 얼마나 비워내고 있는지, 오늘 하루 내가 느낀 소확행은 무엇인지, 너무 많은 걸 가지고 있는 건 아닌지 등 재차 확인하며 건강한 사고를 가질 수 있게 조언한다.

삶의 정체기에는 저자가 얘기하듯 간단한 인생 보드를 만드는 일도 도움이 되고 산책을 하고 햇볕을 쬐거나 아무거라도 좋아하는 일을 시작하는 것도 추천할만한 일이다. 나 자신을 다독이고 사랑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책을 통하든, 인생 선배든, 그런 점을 인지하고 하나라도 실천한다면 분명 삶은 조금씩 나은 방향으로 틀어갈 것이다.

인생이 서툴러 회사생활이 힘든 수민이도, 자신의 단점 때문에 주눅이 든 혜미도, 슬픔을 제대로 위로받지 못한 주희도, 과거의 트라우마로 대인관계가 힘든 미호도, 타인의 질타가 두려운 혜민이도 누군가와의 소통을 통해 조금씩 나은 삶을 살고 있듯이 내면의 부정적인 생각과는 이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겠다.

누군가에게 지혜를 주는 사람이고 싶다는 저자의 바람을 떠올리니 늙어감이 그렇게 서운한 일만은 아니다. 인생은 결코 수월하고 만만한 상대는 아니지만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자세도 필요하다. 사는(live) 일이 악(evil)으로 변하지 않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이 움직여야 함을 깨닫는다면 지금이라도 실천해 보는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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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선영 지음, 김동율 사진 / 아이퍼블릭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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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 요즘 숲이 좋아 주로 풍경 사진이 주를 이루지만 이것저것 좋은 앵글이 잡히면 찍기 바쁘다. 그렇게 찍은 감성 사진은 힐링이 되고 일상의 에너지가 된다. 사진 한 장 한 장에서 전해지는 자연의 생동감과 생명의 울림이 좋아서 좋은 장소를 찾아다니게 된다.

쏟아져 나오는 여행서적보다 여행 에세이가 더 좋고 유명 관광지보다는 숨은 공간을 더 좋아하기에 사진 위주의 여행서적에 매력을 느끼는 편이다. 그래서 이번에 출간된 허밍 시리즈에 마음이 꽂혔다. 그 첫 번째 시리즈로 경주를 소개하고 있는데 경주하면 떠올릴 수 있는 명소도 많지만 들러보면 좋을 공간과 장인정신을 느낄 수 있는 맛 집 등을 간결하고 세심하게 소개하고 있다. 무엇보다 볼거리가 많고 유산의 보고인 곳이라 여행 사진의 묘미를 맘껏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책은 여행 팁이나 안내도 등 세세한 설명 없이 오로지 사진만으로 독자의 마음을 훔치고 있다.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길수록 이미 마음은 경주 어딘가를 배회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진뿐 아니라 저자가 다닌 흔적이 문장 곳곳에 녹아있다. 진정 여행자의 자세로 바라보아서일까. 감성 돋는 문장에 소박한 여행이 그리워진다. 이런 여행책이라면 시리즈별로 다 소장하고 싶다는 욕심도 생겨났다. 사진의 전체적인 색감도 차분함을 주고 심플하고 간결한 느낌의 편집도 마음에 든다. 다양한 경주의 볼거리를 센스 있게 나눈 점이 눈에 띄는데 목차만 보아도 저자의 고민이 전해진다. 조금은 다르게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자 한 흔적이 보여서 좋았다.

 

 

 

 

가장 친숙한 역사의 땅이자 수학여행의 추억과 대학시절 자전거 여행, 그리고 보문 단지 귀신의 집과 양동마을을 걷던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 있긴 하지만 그 뒤로 제대로 경주를 찾은 적이 없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예능프로나 지인들이 다녀오고 나서 말하는 경주의 모습은 그때와는 많이 달라졌다. 아름다운 문화유산과 볼거리가 풍부해진 거리 곳곳에는 축제나 맛집이 늘어나면서 관광객들을 불러 모은다.

역시 여행의 묘미는 자연향기 가득한 장소이다. 소풍이라는 단어에서도 느껴지듯이 공원이나 숲을 소개하고 있다. 뉴욕 하면 센트럴파크, 경주하면 황성공원이라고 할 만큼 이곳은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지킨 다양한 나무들과 새들을 볼 수 있다. 울창한 숲길을 따라 자연을 듬뿍듬뿍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근처 예술의 전당의 아름다운 나선형의 건축물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토기의 질감이 떠오르는 걸 보면 경주 다운 건축물임이 느껴진다.

 

 

 

 

또한 여행길에서는 커피를 빼놓을 수 없다. 예전 일본 소도시 편에서 일본 장인의 커피 맛 집을 보며 커피 맛이 궁금해 미치는 줄 알았는데 슈만과 클라라로 달려가보고 싶어진다. 커피를 향한 애정 때문일까. 진한 커피 한 잔으로 경주를 채워오고 싶어진다.
신라 토기 장인의 미소에서 느껴지는 옛사람들의 삶뿐 아니라 그곳을 가꾸고 지켜내고 있는 이들의 미소는 경주의 친절함마저 담고 있는듯하다. 유명 맛집 대표들의 진솔한 인터뷰에 맛 집 투어 따윈 관심 없는 나도 한 번쯤 가보고 싶어진다. 황남빵도 먹어 본 적은 없지만 천연발효빵에서 느껴지는 건강한 식감이 궁금해진다.

 

 

 

 

양남 주상절리 해변의 신비스러움에 외국 어느 풍경이 떠오르고 트래킹 코스로 즐기기 좋은 오류 고아라 해변은 조용히 걷고 싶은 장소이다. 대자연의 경이로움을 마음껏 느끼며 머릿속을 비워낼 수 있는 산림환경연구원은 숲해설을 예약하고 싶을 만큼 관심이 가는 곳이다. 메타세콰이어 다리의 인증샷은 언젠가 꼭 건져오고 싶어진다. 그 뒤로 보이는 반짝이는 숲에 마음이 일렁이니 겨울이 오지도 않았는데 봄과 여름이 그리워진다.

경주의 사계를 마음껏 느낄 수 있는 사진들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들뜬다. 대릉원의 목련, 김유신 묘역 벚꽃, 첨성대 핑크 뮬리, 계림 단풍, 운곡서원 은행나무 등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진정 혼자만의 여행을 즐기고 싶게 만드는 풍경들이다. 사계절을 머물며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싶은 생각에 경주에서 잠깐이라도 살아보고 싶어진다.

경주하면 답사하고픈 곳이 넘쳐나는 곳이다. 아이들은 왜 자꾸 무덤만 가냐며 구시렁거리는 곳이기도 하지만 고분의 도시답게 분과 능투어만 해도 볼거리가 많다. 능과 능 주위 풍경 묘사를 따라가며 옛 모습을 그리다 보니 역사 책을 다시 펼쳐보고 싶어진다. 봉황대 봉분 위로 솟아난 느티나무는 지하세계로 통하는 마법의 문이 어딘가 숨겨져 있는 듯 신비스럽다. 능 주위를 둘러싼 소나무의 위상에 마음마저 경건해진다.

경주는 문화재 답사도 빼놓을 수 없다. 지인들도 아이들을 데리고 자주 다녀오는 곳이기도 하지만 찬찬히 둘러볼 여유는 없었다. 불국사, 석굴암, 첨성대, 황룡사지, 양동마을은 가족 모두 함께 해야겠다.
가을은 이미 저만치 지나고 있다. 지금 경주 여행을 계획한다면 경주의 모습은 조금 쓸쓸하고 고즈넉한 모습을 담고 있을 듯하다. 그래도 떠나고 싶어진다. 풍성하고 싱그런 자연의 모습을 담을 수는 없겠지만 천년의 신비가 가득한 경주의 기운을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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