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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죽어도 등교
송헌 외 지음 / 황금가지 / 2019년 2월
평점 :
품절

요즘 아이들에게 학교란 어떤 곳일까.
시대가 많이 변했어도 학교하면 여전히 괴담이 먼저 떠오르고 아침마다 가기 싫은 마음과 내내 싸워야 하는, 곧 죽어도 등교해야만 하는 곳이 아닐까. 그래도 우리의 성장과정의 배경이 되는 공간이니만큼 에피소드는 넘쳐나고 각자의 기억 속에 다양한 형태로 추억이 채워지게 된다.
책에 실린 여덟 편의 단편은 학교라는 하나의 소재로 다양한 분위기를 담고 있다. [밀실 연애편지 사건]이나 [고딩 연애수사 전선]처럼 깜찍 발랄한 연애 이야기도 있고 [우리]나 [연기]처럼 무섭고 기괴한 이야기도 있으며 [신나는 나라 이야기]나 [신의 사탕]처럼 기이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이야기도 있다. [비공개 안건]이나 [11월의 마지막 경기]는 우리 사회가 여전히 떠안고 있는 폭력과 차별에 관해 꼬집고 있어 분노와 슬픔의 무게에 허탈함이 밀려왔다.

왕따, 고백, 괴담, 그리고 다문화 가정과 운동부 폭력까지
학교에 관한 다양한 소재와 이야기를
발칙한 상상력으로 풀어낸 작품들을 모은 단편소설집
- 책소개 중에서 -
이성에 눈을 뜨고 고백을 주고받는 시기가 되면 자신의 문제보다 친구의 연애사에 더 적극적으로 뛰어들게 된다. 그땐 무슨 오지랖이 그리도 많았는지 서로서로 친구들의 연애사까지 챙기느라 분주했던 기억이 떠올라서 웃음이 나기도 했다. 두 이야기 [밀실 연애편지 사건]과 [고딩 연애 수사 전선]은 그 나이 때만의 설렘이 전해진다. 고백 편지의 주인을 찾고, 썸남 상대를 찾기 위해서 추리소설을 능가(?) 하는 추리력을 동원해야 하지만 어느새 풋풋한 십 대들의 연애 감정에 고백하고 고백받는 청춘이 부러워졌다.

지금은 한 반의 학생 수가 적어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이름을 외우는데 어려움이 덜 하겠지만 우리 때만 해도 콩나물시루 같았던 교실이었으니 아이들은 이름보다 번호로 더 많이 불렸었다. 명찰을 달고 있음에도 이름 대신 번호가 편했던 선생님들 덕(?)에 학교가 더 감옥처럼 느껴졌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탓도 해본다. 여기 [우리] 속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이름 없이 번호로만 등장한다. 그래서 더 기묘하고 무섭다. 수업종이 울렸음에도 선생님이 오지 않는 교실은 여전히 어수선하기만 한데 아이들은 그냥 그런 분위기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러다 반장이 나가고 부반장이 나가고 또 다른 아이가 나가지만 이상하게 한번 나간 아이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점점 싸한 분위기를 감지한 아이들은 학교의 적막함에 하나둘 사라져 간다. 마지막 공포로 뒤가 오싹해지는 순간 우리 속에 너와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모호하지만 인간이 가장 절실한 순간에 우리가 우리로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 계속 사로잡혔다.
학교하면 괴담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정말로 학교에서 아이들이 하나둘 귀신 목격담을 말한다면 기분이 어떨까. [비공개 안건]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일어나던 수상한 괴담을 수사하면서 괴담에 얽힌 과거를 밝혀내게 되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진실이 드러나면서 못 땐 짓만 일삼다 죽은 귀신이 뭐가 억울해서 나타나는지 당최 이해하고 싶지 않았던 결말이었는데 사회에서 약자들이 겪어야만 하는 고통에 가슴이 답답했다. 교사라는 권위를 과시하며 여린 학생을 짓누르던 놈들이 교육의 장에서 유령처럼 나타나 학교 분위기를 망치는 일은 사라져야 한다. 굿판이라도 벌여 지옥으로 떨어지길 빌고 싶은 맘이 굴뚝같았다.
다시 분위기는 제목처럼 신나는 이야기로 전환된다. [신나는 나라 이야기]는 우울한 사람들의 몸에 기생하는 생명체가 여러 사람의 몸을 거쳐 왕따 여학생의 몸에 들어오게 되고, 그 학생의 지난날을 구제하기로 마음먹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비슷한 류의 소재를 본 것 같은 느낌이지만 여하튼 여덟 편의 이야기 중 가장 많이 웃었다. 다른 이의 몸에 기생하면서 익혔던 재주를 써먹으며 여학생의 복수를 꾀하는 생명체가 기특할 정도였다. 그렇게 웃는 와중에도 우리는 한가지 분명한 점을 직시해야 한다. 왕따는 가해자들이 만들어내는 것이지 피해자는 잘못이 없다는 사실 말이다.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이 떠올랐던 [신의 사탕]은 인간의 미성숙한 자아가 제대로 자리 잡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결국 거짓된 자아를 자신의 모습으로 포장하며 살고 있는 우리의 이중성을 꼬집고 있는 듯하다. 게다가 학교는 아이들의 창의성과 다양성을 길러내는 공간이 되어야 함에도 그러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어 소름이 돋았다.
원래 상상력이 좀 떨어지는 편인데 영화에서 비슷한 장면을 보아서 그런지 뒤통수의 얼굴 형상이 그럴싸하게 상상이 되어 더 흉측했고 고통의 신음소리는 더 끔찍하게 들렸다.
저 애들의 뒤통수에는 얼마나 많은 다른 아이들이 잠들어 있을까.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어둠에 감싸인 채 뒤통수에 묻혀 있을까. -p.307
단편 중 가장 무겁고 슬픈 이야기였던 [11월의 마지막 경기]는 다문화 가정과 운동부 폭력이라는 소재를 다룬다. 최근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 운동부의 폭력은 실체가 드러나고 있으나 다문화가정이 이 땅 위에 제대로 정착되려면 얼마큼 세대가 바뀌어야 하는 것일까. 이런 일들이 학교라는 공간에서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도 화가 나지만 그런 억울한 이의 한을 주술의 힘으로 밖에는 풀어 줄 수 없었다는 사실에 더 화가 났다. 속이 시원해야 하는데 계속 답답한 데는 여전히 이런 편견과 부당함들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래간만에 참신하고 신선함이 묻어나는 이야기에 다양한 감정을 경험할 수 있어 좋았다.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여덟 편의 이야기에 향수에 젖어 보기도 했으며 현재 내 아이들의 학교생활은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아마도 큰 아이가 이 단편집을 읽는다면 괴담에 학교를 더 무서워할는지도 모르겠지만 학교라는 이미지에 너무 부정적인 느낌을 가지지 말았으면 좋겠다. 곧 죽어도 등교해야만 하는 시대는 아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