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죽어도 등교
송헌 외 지음 / 황금가지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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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들에게 학교란 어떤 곳일까.

시대가 많이 변했어도 학교하면 여전히 괴담이 먼저 떠오르고 아침마다 가기 싫은 마음과 내내 싸워야 하는, 곧 죽어도 등교해야만 하는 곳이 아닐까. 그래도 우리의 성장과정의 배경이 되는 공간이니만큼 에피소드는 넘쳐나고 각자의 기억 속에 다양한 형태로 추억이 채워지게 된다.


책에 실린 여덟 편의 단편은 학교라는 하나의 소재로 다양한 분위기를 담고 있다. [밀실 연애편지 사건]이나 [고딩 연애수사 전선]처럼 깜찍 발랄한 연애 이야기도 있고 [우리]나 [연기]처럼 무섭고 기괴한 이야기도 있으며 [신나는 나라 이야기]나 [신의 사탕]처럼 기이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이야기도 있다. [비공개 안건]이나 [11월의 마지막 경기]는 우리 사회가 여전히 떠안고 있는 폭력과 차별에 관해 꼬집고 있어 분노와 슬픔의 무게에 허탈함이 밀려왔다.

 

 

 

왕따, 고백, 괴담, 그리고 다문화 가정과 운동부 폭력까지

학교에 관한 다양한 소재와 이야기를

발칙한 상상력으로 풀어낸 작품들을 모은 단편소설집

- 책소개 중에서 -




이성에 눈을 뜨고 고백을 주고받는 시기가 되면 자신의 문제보다 친구의 연애사에 더 적극적으로 뛰어들게 된다. 그땐 무슨 오지랖이 그리도 많았는지 서로서로 친구들의 연애사까지 챙기느라 분주했던 기억이 떠올라서 웃음이 나기도 했다. 두 이야기 [밀실 연애편지 사건]과 [고딩 연애 수사 전선]은 그 나이 때만의 설렘이 전해진다. 고백 편지의 주인을 찾고, 썸남 상대를 찾기 위해서 추리소설을 능가(?) 하는 추리력을 동원해야 하지만 어느새 풋풋한 십 대들의 연애 감정에 고백하고 고백받는 청춘이 부러워졌다.

 

 

 

 

지금은 한 반의 학생 수가 적어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이름을 외우는데 어려움이 덜 하겠지만 우리 때만 해도 콩나물시루 같았던 교실이었으니 아이들은 이름보다 번호로 더 많이 불렸었다. 명찰을 달고 있음에도 이름 대신 번호가 편했던 선생님들 덕(?)에 학교가 더 감옥처럼 느껴졌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탓도 해본다. 여기 [우리] 속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이름 없이 번호로만 등장한다. 그래서 더 기묘하고 무섭다. 수업종이 울렸음에도 선생님이 오지 않는 교실은 여전히 어수선하기만 한데 아이들은 그냥 그런 분위기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러다 반장이 나가고 부반장이 나가고 또 다른 아이가 나가지만 이상하게 한번 나간 아이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점점 싸한 분위기를 감지한 아이들은 학교의 적막함에 하나둘 사라져 간다. 마지막 공포로 뒤가 오싹해지는 순간 우리 속에 너와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모호하지만 인간이 가장 절실한 순간에 우리가 우리로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 계속 사로잡혔다.


학교하면 괴담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정말로 학교에서 아이들이 하나둘 귀신 목격담을 말한다면 기분이 어떨까. [비공개 안건]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일어나던 수상한 괴담을 수사하면서 괴담에 얽힌 과거를 밝혀내게 되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진실이 드러나면서 못 땐 짓만 일삼다 죽은 귀신이 뭐가 억울해서 나타나는지 당최 이해하고 싶지 않았던 결말이었는데 사회에서 약자들이 겪어야만 하는 고통에 가슴이 답답했다. 교사라는 권위를 과시하며 여린 학생을 짓누르던 놈들이 교육의 장에서 유령처럼 나타나 학교 분위기를 망치는 일은 사라져야 한다. 굿판이라도 벌여 지옥으로 떨어지길 빌고 싶은 맘이 굴뚝같았다.


다시 분위기는 제목처럼 신나는 이야기로 전환된다. [신나는 나라 이야기]는 우울한 사람들의 몸에 기생하는 생명체가 여러 사람의 몸을 거쳐 왕따 여학생의 몸에 들어오게 되고, 그 학생의 지난날을 구제하기로 마음먹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비슷한 류의 소재를 본 것 같은 느낌이지만 여하튼 여덟 편의 이야기 중 가장 많이 웃었다. 다른 이의 몸에 기생하면서 익혔던 재주를 써먹으며 여학생의 복수를 꾀하는 생명체가 기특할 정도였다. 그렇게 웃는 와중에도 우리는 한가지 분명한 점을 직시해야 한다. 왕따는 가해자들이 만들어내는 것이지 피해자는 잘못이 없다는 사실 말이다.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이 떠올랐던 [신의 사탕]은 인간의 미성숙한 자아가 제대로 자리 잡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결국 거짓된 자아를 자신의 모습으로 포장하며 살고 있는 우리의 이중성을 꼬집고 있는 듯하다. 게다가 학교는 아이들의 창의성과 다양성을 길러내는 공간이 되어야 함에도 그러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어 소름이 돋았다.

원래 상상력이 좀 떨어지는 편인데 영화에서 비슷한 장면을 보아서 그런지 뒤통수의 얼굴 형상이 그럴싸하게 상상이 되어 더 흉측했고 고통의 신음소리는 더 끔찍하게 들렸다.


저 애들의 뒤통수에는 얼마나 많은 다른 아이들이 잠들어 있을까.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어둠에 감싸인 채 뒤통수에 묻혀 있을까. -p.307


단편 중 가장 무겁고 슬픈 이야기였던 [11월의 마지막 경기]는 다문화 가정과 운동부 폭력이라는 소재를 다룬다. 최근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 운동부의 폭력은 실체가 드러나고 있으나 다문화가정이 이 땅 위에 제대로 정착되려면 얼마큼 세대가 바뀌어야 하는 것일까. 이런 일들이 학교라는 공간에서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도 화가 나지만 그런 억울한 이의 한을 주술의 힘으로 밖에는 풀어 줄 수 없었다는 사실에 더 화가 났다. 속이 시원해야 하는데 계속 답답한 데는 여전히 이런 편견과 부당함들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래간만에 참신하고 신선함이 묻어나는 이야기에 다양한 감정을 경험할 수 있어 좋았다.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여덟 편의 이야기에 향수에 젖어 보기도 했으며 현재 내 아이들의 학교생활은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아마도 큰 아이가 이 단편집을 읽는다면 괴담에 학교를 더 무서워할는지도 모르겠지만 학교라는 이미지에 너무 부정적인 느낌을 가지지 말았으면 좋겠다. 곧 죽어도 등교해야만 하는 시대는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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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고양이 델마 나의 아름다운 고양이 델마
김은상 지음 / 멘토프레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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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내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듯한 삶에서 무언가를 계속 잃어간다면 나란 존재의 이유에 대해 끊임없이 부정하고 싶을 것 같다. 그러나 그런 존재의 이유를 일깨워주는 존재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특별해진다. 허구의 세계지만 존재에 담긴 무한한 애정은 그 슬픔을 충분히 덮고도 남는다.

 

눈을 마주하고 체온을 나누며 곁을 내어주는 사이가 되면 제아무리 짧은 시간이라도 그때가, 그 순간이 깊게 남는 법이다. 나도 두 마리 냥이와 삼 년 남짓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데다 작년에 3개월 정도를 함께하다 떠나버린 앵무새가 있었기에 그 애틋함을 잘 안다. 3개월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델마가 '나'의 삶에 문장으로 남은 것처럼 말이다.

 

실제 작가의 삶 속을 살다 떠난 델마였기에 자전적 소설인 줄 알았다. 소설의 '나'도 작가처럼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지만 고양이와 영역을 공유하는 사이가 된다. 그런 사이가 되기까지 '나'의 드러난 삶이 너무나 외롭고 쓸쓸해 보인다. 그래서 자신의 영역을 찾아다니는 길고양이에게 마음이 쓰였을지도.

 

'아'와 '어'는 엄연히 다르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는 '아'가 '어'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어린 시절은 그런 상상 따위 지니기가 쉽지 않았고 사랑의 끝자락에서 위태로운 시절을 지난다. 부모님은 '아'와 '어'처럼 각자의 인생을 살았고 '나'는 '아'도 '어'도 아닌 주체성을 잃은 존재로 성장한다. 외롭고 나약한 존재였던 그에게 델마는 그의 존재의 이유를 느끼게 해준 존재다. 서서히 천천히 자신과 영역을 공유하는 고양이 델마에게서 그는 과거를 보았고 현재를 위안 삼는다. 델마가 짧게나마 자신의 영역에서 산 삶이 나비 같던 경화와 떠나버린 엄마의 모습 이자 '나'의 모습만 같아 쓸쓸하다.

 

 

 

 

양이가 누군가의 무릎에 앉는다는 건 자신의 생명을 맡긴다는 뜻과 같아.


 

서툴러서 서로의 영역으로 들어갈 수 없었던 사이들과 이미 나비처럼 날아가 버린 이들이 간절히 원한 건 존재의 이유를 찾는 것이었다. 고양이의 습성이 역설적으로 인간의 삶에 대비되고 있어서 고양이를 기르고 있는 이들이라면 문장 곳곳에서 진한 애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일하는 도중 뜬금없이 고양이가 무릎 위로 내려온다거나 안아달라며 가슴 쪽으로 몸을 붙일 때면 나도 그들의 무한한 사랑에 가슴이 뜨거워질 때가 있다. 비록 모호한 해석이 만들어내는 세상이지만 내가 고양이가 되어갈 수도 있음을 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양이에게 있어 나는 주인이 아니라 집사 자리가 더 좋다. 가끔 자신의 영역을 내어주지 않아 섭섭할 때도 있지만 그래서 더 애틋한 사이가 되는 것 같다.

 

작가는 말미에 내가 만난 모든 고양이는 나의 첫사랑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 말을 곱씹다 보니 작년 일이 떠올랐다. 친구들과 놀던 큰 아이가 뛰쳐들어와 다 죽어가는 아기 고양이가 있다고 했다. 부랴부랴 뛰쳐나가보니 눈도 뜨지 못하고 늘어져 있는 새끼 고양이가 있었고 무작정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가쁜 숨을 겨우 내쉬고 있던 녀석이 진찰을 하려고 청진기를 갖다 대자 가르릉 가르릉 소리를 어찌나 크게 내던지.... 의사선생님은 숨쉬기도 힘든 녀석이 가르릉 소리를 이렇게 크게 내는 걸 보니 분명 기분이 좋은가 보다 했다. 하지만 녀석은 이미 파보에 감염된 상태였고 결국 입원한지 몇 시간 만에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말았다. 눈도 뜨지 못하던 녀석의 가르릉 소리가 가슴 깊이 남에서였을까. 상자 겉면에서 느껴지는 녀석의 온기에 뜨거운 눈물이 계속 차올랐던 기억이 있다. 첫사랑의 감정까지는 아니더라도 벅찬 그때를 잊을 수가 없다.

 

며칠 전부터 밥을 챙겨주던 길냥이 두 마리가 있다. 노랑이 녀석은 여전히 밥 달라고 울다 밥만 먹고 가버리는 반면 웅웅 소리를 내는 검은 녀석은 드디어 경계심을 늦추고 사무실 안으로 발을 들였다. 내심 주저앉으면 곤란한데 하면서도 마음을 내어주는 게 고마울 지경이다. 무심히 걷다 겨울을 이겨내고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는 고양이들을 보면 그렇게 안도감을 느낄 수가 없다. 우리네 삶도 그런 안도감을 자주 마주할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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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보노, 오늘 하루는 어땠어?
이가라시 미키오 지음, 고주영 옮김 / 놀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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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 어땠어?

이건 내가 저녁 식사시간에 아이들에게 제일 먼저 건네는 인사다.

아이들의 하루 일과를 들으며 서로의 일과를 공유하고 공감하는 시간은 보노보노의 말처럼 마치 풍경을 보는 것과 같다.

두 녀석의 하루에 미세한 성장이 보이고 오늘이라는 시간이 사소함과 특별함 그 어디에 있더라도 고맙게 여겨진다.

그냥 그 자리에 있어서 고마운 것들처럼 말이다.

 

보노보노를 처음 만난 건 김신회 작가의 보노보노 에세이다.

래서 보노보노가 어떤 친구인지 감으로만 알고 있었을 뿐 만화를 제대로 본건 첨이다.

책은 보노보노 시리즈 중 엄선한 18편이 실려있다.

그래서일까, 별생각 없이 펼쳐들었다가 특별해지고,

그냥 실실 웃다가 혼자 박장대소하게 되고(큰 녀석은 영어 숙제로 낑낑대고 있는데 자꾸 실실 웃어서 미안했다),

보노보노만 보다가 친구들까지 다 좋아지게 되었다. 정말 보면 볼수록 매력적인 만화다.

복잡한 생각을 잠시 내려놓자 산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도 되새겨 보고

보노보노와 친구들이 살고 있는 숲속을 보니 숲속 길을 산책하고 바닷가를 거닐며 자연과 함께 하고 싶어진다.

 

 

보노보노와 친구들의 일상은 정말 사소하고 소소한 물음에서 시작한다.

꿈이 왜 이상해? 혼자 있으면 왜 우울해 보일까? 감기는 어떻게 나을까?

살찌는 게 왜 싫을까? 요리하면 왜 더 맛있을까? 취미는 뭘까? 등 숲속 안에서 그들은 많은 궁금증과 고민을 해결해 나간다.

어떻게 보면 허투루 보내는 날이 없다.

덕분에 바쁘게 후다닥 흘려보내는 나날들을 잠시 스톱시키고 지난 시간에 의미를 더해보기도 했다.

뭐든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찰떡같은 교훈 아래 긍정적 기운이 곳곳에 스며있다.

그래서 친구들과 옥신각신하는 장면들이 더 즐겁고 사랑스럽게 보인다.

어쩌면 심각하게 여기는 일들이 그리 심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여유도 생겨난다.

 

 

 

보노보노는 태평해 보이지만 걷기를 좋아하고 생각하기를 즐긴다.

보노보노처럼 조금 태평하고 싶단 생각을 하다 천하태평인 큰놈 때문에 웃고 말았다.

걷기가 좋은 이유는 걷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라며 시작한 단순한 논리에서

친구들이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찾아다니기도 한다.

또 재밌는 이야기는 무엇일까에서 시작해 시시한 이야기로 옮아가더니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건 풍경을 보면서 걷는 것과 비슷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뭐 이런 이야기에 논리란 없다. 친구들은 서로의 의견을 덧붙이며 괜찮은 결론을 이끌어낸다.

그 결론들이 제법 그럴싸해서 여기저기 남발하고 싶어질 정도다.

 

포로리는 삼촌이 무서워 삼촌네 가는 걸 무척 스트레스받아한다. 그래서 가기도 전에 내내 걱정하고 우울해한다.

그때 너부리가 모레일을 오늘 생각해서 뭐하냐며 툭 내뱉는 말에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며

오늘의 기분마저도 망치고 있었던 일들이 떠올라 피식 웃고 말았다.

때론 싫은 일도 해야 할 때가 있다.

마냥 즐길 수는 없겠지만 조금만 걱정을 내려놓으면 어느새 지난 일이 된다는 단순한 진리를 새기며 살아야겠다.

 

 

 

어른이 되면 될수록 자는 게 즐거워진다는 게 정말일까?라는 보노보노의 질문에 맞아!라고 대답했다.

평소 별의별 꿈을 많이 꾸는 편이라 꿈속이 즐거운 일인이기에.

그래서 꿈이란 건 이상해라고 고민하는 친구들의 모습이 귀여운 아이들 같다.

꿈과 현실의 차이점을 예로 들며 몸소 보여주는 모습에 빵빵 터졌다.

그러다 너부리는 또 명언을 남긴다.

꿈이 너무 시시하면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안되기에 꿈이 이상한 것이라는 결론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살찌는 게 왜 싫을까에 대한 이유를 고민하며 직접 살을 찌운 보노보노와 너부리의 모습도 너무 웃겼다.

좋은 점도 있을까 싶어 몸소 실천해보지만 살찐 녀석이라는 말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녀 싫을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른다.

얘들아, 나도 살찐 내가 불편하고 싫어 늘 다이어트를 결심한단다.ㅎ

 

 

 

보노보노와 친구들을 만나고 좀 더 맑아진 기분이다.

너부리가 심심하면 어딘가를 향해 걸으라고 건넨 말이 마지막에 와서 꽂힌다.

그래서 요즘 내가 심심할 틈이 없나 보다.ㅎ

사는 게 팍팍하고 지친다면 보노보노와 쉬어가길.

아마 한두 문장에 조금은 다른 결심이 설 수도 있다. 분명 그것은 더 나은 순간을 만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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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제국의 몰락 - 엘리트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가 집대성한 엘리트 신화의 탄생과 종말
미하엘 하르트만 지음, 이덕임 옮김 / 북라이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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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난 사회 현상에 전문적 지식이나 통찰력은 없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와 세계정세의 흐름 정도는 기사를 통해 인지하고 있다. 대중들의 눈과 귀는 늘 열려 있어야 하고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데 기여를 해야 한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각종 이슈들 중 대중을 분노케 하고 허탈하게 만드는 것들이 있다. 사회 기득권층 소위 엘리트라고 일컫는 자들의 각종 비리와 갑질뿐 아니라 법망을 피해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불합리에 많은 이들이 분노를 넘어 허탈해한다. 그들에겐 돈이 전부인 것일까. 대중을 무시하며 그들만의 세상을 고집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이 책의 저자 미하엘 하르트만은 독일 사회학자로 엘리트 연구 권위자로 알려져 있다. 주로 개인의 출신 성분이 능력이나 노력보다 성공에 절대적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오고 있으며 신자유주의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엘리트들을 경계하고 제재가 필요함을 말하고 있다.

 

이미 자유주의 국가에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계층의 간극은 심한 격차를 드러내고 있으며 상류 지식인들과 대중과의 소통의 부재도 심각하다. 이 책에서 다뤄지고 있는 엘리트 계층의 형성 배경과 성장과정 그리고 그들만의 세상에서 벌어지는 규칙에 대해 통계와 수치를 드러내지 않아도 수리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사실들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편가르기는 점점 세분화되고 있다. 그래서 엘리트라는 사전적 의미도 변하고 있다. 굳이 사전을 뒤지지 않아도 엘리트라고 하면 지성을 겸비하여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쯤으로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즘 사회에서 엘리트 집단의 정의가 변질되어 부정적 이미지를 낳고 있다. 가진 자들은 그들만의 혜택을 누리며 자본주의 사회 상위를 차지하고 나라에 막대한 영향력을 과시한다. 그들이 만든 신자유주의 안에서 말이다.

 

부가 부를 낳는 세상, 출발점에서 기인하는 소득과 부의 양극화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그들은 오만함으로 자신들의 세계를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그들이 저지르는 각종 비리에 대중들의 시선은 이미 싸늘하다.

초기 엘리트들의 성장과정과 시간이 흐르면서 어떻게 변모되어 가는지 독일, 영국, 미국, 프랑스 4개국의 데이터를 보면서 확인할 수 있는데 그나마 독일이 흐름이 늦은 듯 하나 결국은 비슷한 흐름을 타고 있다. 즉 가진 자들이 상위계층을 포진하며 자유주의를 쥐락펴락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게다가 엘리트들이 사회를 바라보고 있는 시각도 문제다. 이미 그들은 출신성분으로 선을 긋고 부와 권력을 세습한다. 심지어 사회 격차는 필연적이며 그들은 대중의 생활 따윈 관심조차 없다. 심지어 가난의 이유가 게으름과 무지 때문이라는 태도도 서슴지 않는다. 결국 그들의 폐쇄성이 사회의 불평등에 따른 혐오를 조장할 수 있고 정치적으로도 부정적인 영향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그런 연유에서 기인한 대중의 분노는 엘리트들의 독주를 막는 유일한 길이다. 소수의 엘리트들에게 몰린 정책의 방향이 서서히 대중을 향해 돌아서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시대를 향한 불평등에 분노의 힘이 작용하고 있으며 더 이상 대중은 무지하지도 무능하지도 않음을 드러낸다. 자유주의에서 누려야 할 권리를 되찾아 한목소리로 흐름을 바꾸려 애쓰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흐름에 정치 엘리트들이 나서면 더 나은 개혁이 가능할까. 저자는 미래 정치의 네 가지 모델을 제시하며 가능성을 보여주려 한다. 과연 그가 제시하는 정치가 엘리트 제국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부패권력의 민낯이 드러나고 빈부의 양극화가 나아질 수 있을까.

 

개인의 출신 성분이 능력이나 노력보다 성공에 절대적 영향을 미쳐서는 안된다는 착한 명제가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통할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흐름으로 이어진다면 참 살만할 것 같다. 내 아이들이 제 역량을 발휘함으로써 진정한 사회의 엘리트로 거듭날 수 있는 세상 말이다.

 

그러나 인간이 돈 앞에서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건들이 연일 터지고 있다. 역겨운 분노가 치밀고 선의의 피해자가 묻혀가는 모습도 너무나 안타깝다. 그들만의 제국이 과연 무너질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사회 정의를 위해서라도 정화가 반드시 필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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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너는 노땡큐 - 세상에 대들 용기 없는 사람이 뒤돌아 날리는 메롱
이윤용 지음 / 수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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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라이프라는 건 물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살아가면서 필요한 물건들이 늘어나듯 주위 인간관계의 폭도 자연스럽게 확장된다. 불필요한 물건들이 늘어나면 그만큼 어수선하고 피곤해지듯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그런 관계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불필요한 감정 소모에 시달리게 된다.

 

실컷 두들겨맞고 반창고를 붙여도 쉬이 낫지 않는 게 감정인데 관계에 있어 기준이란 늘 모호하고 예측 불가능한 인생은 늘 시행착오를 동반한다. 하지만 감정도 미니멀리즘이 필요하다. 불필요한 관계는 불필요한 상황들을 불러오고 불필요한 감정으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이미 그러한 경험이 있는 이들이라면 이제는 대청소를 할 때다. 버릴 것과 보관할 것을 잘 정리해야 한다.

 

이 책은 라디오 작가의 다양한 경험담에 근거하여 감정과 상황 정리하는 노하우를 공개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읽다 보니 대부분이 나의 경험담인듯하고 가까운 이들의 사연 같다. 읽다 보면 그때 저렇게 할 걸 하는 순간부터 나도 바보같이 저랬었지라는 순간뿐 아니라 나도 다른 이에게 저렇게 행동한 적은 없었나를 돌아보게 된다.

 

살아보지도, 겪어보지도 않은 일에 유연하게 대처하기란 어렵다. 그렇다고 뜨거운 물에 일부로 손을 넣어서 데여볼 필요까진 없겠지만 사람과의 관계에서 내가 덜 상처받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특히 타인을 유독 신경 쓰거나 배려가 많은 타입이 대인관계를 힘들어한다. 당시의 껄끄러움을 피하고자 참는 일이 일상이 되면 결국 남는 건 마음의 상처다.

 

 

 

 

[위로, 그 쉬운 말 한마디]편을 읽다 보니 얼마 전에 나도 이런 감정을 느낀 적이 있었다. 남편이 저녁 운동을 나갔다 들어오면서 커피 한 잔을 건넸다. 별생각 없이 입으로 가져가다 커피 뚜껑에 쓰인 문장에 울컥하고 만 것이다. 그날따라 몸이 천근만근이었는데 '오늘 하루도 고생하셨습니다~'라는 위로는 천 원짜리 테이크아웃의 가치를 몇 배의 감동으로 전해주고 있었다.

 

자나 깨나 사람 조심에 꺼진 관계도 다시 살펴야 하지만 이제는 다치기 전에 미리 끌줄도 알아야 하고 관계에 있어 무던함도 배워야 한다. 누군가 나를 시험하려 들 때 내 주관대로 답을 내놓아야 다시 시험대에 오르지 않을 수 있다. 정말 땡큐 하지 않은 인간과 상황을 과감히 쓰레기통에 버림으로써 마음을 정리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읽다가 [구남친은 친구가 될 수 있을까]편에서 '미친놈 4종 세트'(자니? / 잘 지내지? / 그냥 갑자기 생각나서 / 보고 싶다)를 보며 혼자 낄낄거리고 있으니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초등 딸내미가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같이 빵 터지다 이런 놈은 절대 상종하지 말 것을 일러두기도 했다.

 

결국 삶을 유연하게 사는 방법은 감정 소모에 지나치게 애쓰지 않는 것이다. 타인의 시선에 무게감을 덜어내고 타인을 향한 시선에도 편견을 버려야 하며 다른 이의 기준에 나를 줄 세우지 말고 나를 더 신뢰하고 믿어야 한다. 타고난 나의 기질을 계속 탓하는 것보다 그냥 다독이고, 당장의 손해를 훗날의 이득으로 생각하며, 순간의 난관을 낙담으로 극복하는 자세가 필요한 시대이다.

 

남의 떡이 커 봤자 살찌기만 더 하겠는가. 그러므로 떡의 크기를 비교할 것이 아니라 떡의 맛이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맛의 기준도 주관적이라 결국 내 주관의 기준점을 잘 세워야 한다. 나무도 가치기를 해 주어야 더 잘 자라듯 관계도 적당한 가지치기가 필요하다. 노년에 이르러 정작 내 주변에 남게 될 인간관계에 더 마음을 써야 하지 않을까.

 

[나이 탓일까] 편에서 나이 들었다며 탓하는 순간을 돌아보면 들기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으니 원래 그런 사람임을 인정하라고 한다. 그러면서 나이들면서 는 것이라면 욕뿐이라는 농담에 공감했는데 거기에 하나 더 추가하자면 철판도 두꺼워지는 것 같다. 이왕 두꺼워지는 거 정말 '너나 잘 하세요'라는 소리를 목구멍에 걸어두지 않고 과감히 내뱉은 뒤 심장 벌렁거리지 않을 수 있는 강단이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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