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작은 농장 일기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부윤아 옮김 / 지금이책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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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같아선 나도 볕이 잘 드는 집에서 살고 싶다. 몇 주 전 딸아이의 요청으로 베란다 텃밭에 도전했다. 그러나 문제는 일조량!

자라는 속도도 늦고 방울토마토 색상이 영 붉지 않다. 고추도, 가지도, 심지어 상추도 더디다. 그래서 나는 저자의 마음을 이해한다. 7년 전 주택에 살 땐 시부모님이 텃밭을 가꾸셔서 채소는 심으면 그냥 잘 자라는 줄 알았었다. 하지만 실한 녀석들을 수확해오기까지 얼마나 부지런히 몸을 많이 움직여야 했는지 이제 안 것이다.

 

나는 원래 여름도 싫어했다. 그러나 신선한 채소가 떨어질 날이 없었던 나날들이 좋아진 것이다. 자고 일어나면 테라스에 옆집과 뒷집에서 가져다 놓은 채소가 한가득이었으니 말이다.

저자도 '지극히 작은 농장 일기'의 연재 기간 중 여름이 빠져서 뒤쪽에 여름내 과정을 따로 실어 놓았다고 한다. 심었으니 얼마나 수확을 했는지 알려주는 것도 나 같은 독자들에게는 궁금한 점이 아니겠는가.

 

책 내용 전부가 농장 일기인 줄 알았는데 여행과 일상에 관한 이야기가 반을 차지한다. 뭐 특별히 정보를 얻기 위함은 아니었지만 농장에 관한 것인 줄 알았던 나 같은 독자는 옆길로 샌 일상들로 아쉬움을 달래야 할 것 같다.

 

저자는 원래 카피라이터였다고 한다. 그러던 그가 엄두도 내지 못한 도전을 한 것이다. 소설을 쓰고 등단을 하며 작가의 길을 8년째 걷도 있는 모습을 보며 나도 언젠가는 글을 한번 써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가져보았다. 그의 일기 같은 글을 보며 글이라는 걸 너무 어렵게만 생각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과 더불어 이 정도의 글이라면 나도 한번 일기처럼 써보아야겠다는 다짐도 했다. 물론 토하면서까지 쓸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지만.

 

 

 

 

농장에 관한 글들 중에서 알짜배기 정보도 꽤 얻었다. 본격적으로 채소를 길러볼 생각으로 베란다 텃밭이라는 책을 사두었음에도 아직 못 보고 있었기 때문에 많지는 않지만 도움이 될 정보다.

누에콩 심는 방향, 유충은 바로 죽여야 한다는 것(영화 리틀 포레스트도 보면 배추 애벌레를 잡아 발로 죽이는 장면이 나옴), 채소과 채소 사이의 간격을 주간이라고 한다는 것(처음에 뭣도 모르고 촘촘히 심었다가 그 담날 죄다 다시 심는 수고를 해야 했다.), 연작장애 작물을 꼭 알아야 실패하지 않는다는 것, 진딧물 제거에 우유도 좋지만 마시다 남은 커피를 부으면 정말 좋다는 것,(이거 완죤 일석이조 아닌가. 맨날 남은 커피 개수대에 버렸는데 이제부턴 화분에 뿌려야겠다.) 등을 알고 나니 꽤 많이 똑똑해진 기분이다.

솎아내기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순간 시어머님이 떠올랐다. 농사지으며 솎아내던 습관을 화초에도 적용해서인지 시어머님 손을 거쳐간 애들은 늘 더 자라지 못하고 비실거렸다. 갈 때마다 줄어드는 화분을 보며 한숨을 쉬었으니 말이다.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는 설은 생각도 못 해본 건데 이건 좀 많이 우울해지는 내용이다. 자연은 그렇게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사이 훗날 엄청난 결과를 불러오게 할는지도 모를 일인데 너무 무심한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뭐 이렇게 글을 쓰고 있지만 나는 무얼 했나 저자처럼 반성했다.

그나저나 진정한 채소 기르기는 좋은 모종을 구별해 내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니 이번 텃밭이 실패하더라고 계속 도전해 보아야겠다.

 

심심할 땐 백지도를 꺼내 보라는 말에 나도 한번 검색을 해 보았다. 앗, 이렇게 안 가 본 곳 투석이라니... 출력해서 붙여놓아볼까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된다. 아이들 지리 공부에 도움도 될 것 같고 말이다.

저자는 터널의 수를 세기 위해 기차를 타거나 풍경을 잘 담아두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나서기도 한다. 그래서 특별한 목적 없이 떠나는 여행에서 운 좋게 개기월식을 만나는 행운을 누리기도 하니까 말이다. 이처럼 여행은 뜻하지 않는 경험을 안겨주기에 인생을 더 풍요롭게 해 주는 것 같다.

여행 때 아이들이 휴대폰에 코를 박고 있는 걸 도저히 봐줄 수가 없었는데 괜찮은 아이템도 건졌다. 끝말잇기도 몇 번 하면 지루했는데 변수를 잘만 활용하면 더 재미가 있다는 생각을 나는 왜! 못한 걸까.....

 

저자의 일상 이야기는 작가의 잡다한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소설이라는 걸 본격적으로 쓰게 된 과정, 등장인물의 이름이나 지명들을 어떻게 결정하는지, 좋아하는 음악, 음식, 육아에 대한 생각 등 작가의 소소한 일상을 통해 작가를 더 알 수 있어 좋았다. 특히 부모라면, 더더욱 아버지라면 꼭 새겨들어야 할 말도 있다. 육아는 자신을 키우는 일이기도 하다는 말을 곱씹다 보니 나도 아이들을 키우면서 많이 성장해가고 있음을 느낀다.

 

만약에 누군가 나에게 취미가 무어냐고 묻는다면 이제 막 채소 기르는 재미에 빠져 있답니다라고 얘기할 수 있길 바라면서 다음번엔 볕이 잘 드는 고층으로 옮겨야겠다. 당분간 아파트 생활은 해야 하고 채소는 잘 키우고 싶으니.

요 며칠을 두고 보니 방울토마토 잎이 자꾸만 쭈글쭈글해지는 것 같아서 잘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 보아야겠다.

 

 

 

* 이 책은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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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로 - 기획 29주년 기념 특별 한정판 버지니아 울프 전집 1
버지니아 울프 지음, 박희진 옮김 / 솔출판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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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인생이 이기려고 기를 쓰듯이 그녀도 항상 인생을 이겨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이상하게도 그녀가 인생이라고 부르는 것이 끔찍하고, 적대적이고, 기회만 생기면 잽싸게 습격할 성격이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영원히 풀리지 않는 문제들이 있었다. 예컨대 고통, 죽음, 가난과 같은 것들이 그런 것들이다. -p.87

 

버지니아 울프. 그녀의 책은 처음이다. 고전을 읽겠다고 다짐은 해놓고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는데 [등대로]를 읽을 기회가 주어졌다. 역시 소문대로 한 번에 되는 책이 아니었다. 다시 읽고 있으니 웃어야 할 부분에서 제대로 웃게 되고 세세한 묘사는 시간의 흔적을 풍부하게 해 주었으며 세월의 연민도 잔뜩 밀려왔다.

 

특별한 사건 전개가 없이 작가의 의식 하나만 의존해야 하는 글들은 온 마음으로 읽지 않으면 분위기를 놓치기 십상이다. 그래서 이런 글들이 어렵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우리가 평소 이렇게 깊이 생각할 여유가 없어서다. 도시의 소음과 함께 사라져가는 것들이 많은데 사색도 그중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제아무리 심플 라이프가 유행이라지만 생각만큼은 좀 더 깊고 풍부해져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울프의 소설이 요즘 같은 세상에 더 필요한 것이 아닐까.

 

이 소설은 그녀의 자전적 이야기가 가장 많이 투영되어 있다. 암울하고 힘겨웠던 성장기를 지나 가부장적이고 남성우월주의가 만연한 세상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았던 지난 시간들을 소설 속에서 쏟아낸다. 즉 울프는 소설 속 인물을 통해 한풀이를 했다고 여겨진다. 권위적인 아버지에 대해,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가치관을 써 내려갔다. 램지 부인이나 릴리라는 여인의 사고에 투영된 그녀의 가치관이 때로는 혼돈스럽고 때로는 강한 언어로 투영되지만 세월이 지난 시점에서는 조금 누그러지는 양상도 보인다.

 

삶이 우리가 하나씩 살아가는 작고 분리된 사건들로 구성된 것에서 하나의 파도처럼 곡선을 이루고 온전한 전체가되는 양상을 목격했다.

이 파도는 우리를 그것과 더불어 붕 떠오르게 했다가 단숨에 저기 해안으로 던져버리는 것이었다. -p.70

 

이야기는 램지 씨네 여름 별장으로 손님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시작은 등대를 보러 가자는 여섯 살 아들의 요구에 긍정의 뉘앙스로 대답하는 램지 부인의 대답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잠시 뒤 아버지는 그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다. 그런 남편이 못마땅한 건 아내만이 아니다. 자식들도 그런 아버지를 싫어하는 눈치다. 게다 눈치 없게 남편의 손님들도 거든다. 램지 부인에게는 정말 짜증 나는 순간들이다.

 

이 첫 장면은 재독을 하면서 혼자 피식 웃고 말았는데 요즘 버전으로 하면 욕 한 바가지 쏟아 낼 장면들이다. 남성우월주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남편과 아내의 의견 대립은 늘 남편쪽 의견이 우위에 선다. 아내는 글 그런 식의 대화에 익숙해져야만 했을 것이다. 일방적 이해와 관용에 자식들도 몸서리치긴 마찬가지다.

아들들은 그런 아버지를 피하고만 싶고 그는 아버지가 흥분해서 내는 소리들을 미워했다. 이 소리들은 그들 주위에서 진동하여 어머니와 그의 관계의 완벽한 소박성과 양식을 교란시켰다.- p.56

딸들은 엄마처럼 시도 때도 없이 특정한 남자를 돌보는 삶 -p.16을 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1부 [창]에서는 그런 인물들의 심리묘사가 주를 이룬다. 램지 부인은 남편보다도 더 똑똑하고 아름다운 여자지만 남편의 권위를 세워주고 여덟이나 되는 자식들을 잘 케어하면서 주변인들의 인생까지 고민해주고 조언을 하는 등 그 시대의 전형적인 여성상으로 그리고 있다.

모범적인 낙농업 그리고 이곳의 병원을 짓는 일 - 이 두가 제가 그녀가 진실로 하고 싶었던 일이었다.- p.84

 

반면 램지는 남성으로써 사회적 지위를 다 가지지 못한 열등감이 있다. 게다가 여자를 무시하며 그녀가 하는 말의 이상한 비합리성, 여인들의 낮은 수준의 지력이 그의 화를 북돋았다.- p.49 그 앞에서 권위를 내세우려 한다. 반면 가정을 부담스러워하면서 아내에게 애정을 원하는 모순적 행동 패턴도 보인다. 마치 자신에게만 모든 것들이 집중되길 원하는 이기적인 인간의 전형이랄까.

사실은 그는 가정 생활을 즐기지 못했다. 바로 이런 상태에서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도대체 왜 인류를 존속시키기 위하여 이 고생을 하는가? 이렇게 하는 것이 대단히 바람직한 일인가? -p.126

 

램지네 이웃이자 화가인 릴리는 중국 여자처럼 조그만 눈을 가진 노처녀이다. 남성주의인 사회적 분위기에 저항하는 인물로 그려지긴 하지만 오랜 시간 지켜봐온 램지 부인을 동경하기도 하고 질투하기도 한다. 붓을 들고도 남성의 시선을 의식하며 (여자는 그림을 그릴 수 없어, 글을 쓸 수 없어. -p.222) 주저하고 망설이는 장면에서 당대 여성들의 억압된 자유를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그녀의 힘찬 붓놀림에 속이 뻥 뚫린 느낌을 받았으니 말이다.

 

2부 [시간이 흐르다]에서는 거의 폐가가 돼버린 별장의 모습이 묘사되면서 죽음과 다시, 삶을 전한다. 전쟁이란 암울한 상황과 죽음이 한 문장으로 끝나버려서 더 허무한 느낌이다. 인생이란 무엇일까. 사람이 떠나버린 집과 남겨진 물건들을 보며 세월의 흔적 속에 떠나버린 자들의 온기를 떠올렸다.

 

3부 [등대로]는 제임스가 아버지를 모시고 등대로 가고 릴리는 못다 한 그림을 완성한다. 그녀가 붓질을 하는 동안 과거의 사건과 각 인물들의 내면이 더 두드러진다. 또한 릴리는 램지 씨와의 묘한 감정으로 인해 램지 부인을 한없이 질투하지만 그녀의 허무한 죽음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는 등 감정의 변화를 경험한다. 결국 세월이 지나 남겨진 거라곤 연민과 화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져보았다. 램지 부인이 함께 등대로 가진 못했다는 사실에 슬퍼하다 램지 씨의 변하지 않는 인성에 짜증이 일기도 한다.

 

삶은 등대와 같다는 제임스의 말을 계속 되뇌어보았다. 우리는 자연 속에서 삶의 이치를 깨닫게 된다. 등대로 이르는 삶의 여정은 늘 갈등과 불안의 연속이다. 그것은 삶과 죽음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나아갈 것이고 누군가는 하염없이 바라만 볼 것이다. 어느 쪽이 옳다고 확신할 수도 없다. '우리는 각자 홀로 죽는다'라는 말처럼 인생도 각자 본인의 의지로 살아가는 것일 뿐이다. 릴리의 마지막 붓질은 경쾌했지만 그렇게 살지 못한 울프의 마지막이 떠올라 서글퍼지기도 했다. 나이가 더 들면 다시한번 펼쳐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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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들이 참 좋았습니다 - 따뜻한 아랫목 같은 기억들
초록담쟁이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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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갈래머리를 한 소녀와 검은 고양이의 뒷모습이 익숙한 이들이 많을 것이다. 내가 초록 담쟁이님의 그림을 처음 보고 반한 것도 그 뒷모습이었다. 그래서 블로그를 시작하고 제일 처음 구매한 스티커가 초록 담쟁이님의 스티커였다. 검은 고양이를 키우고 있어 더 좋아할 수밖에 없기도 하지만 스티커를 보면 마냥 행복해졌다. 스티커에서만 보고 그녀의 작품들을 제대로 볼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에 그림들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반가웠다.

 

저자는 그리움 때문에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시골에서의 생활이, 사계절을 온몸으로 느꼈던 산골 작은 마을이, 그런 것들이 너무나 그리워 그림으로 하나 둘 일기처럼 표현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그녀의 추억이 녹아 있어서인지 따스하고 행복하다. 특히 그림 속에서 고양이의 역할이 두드러져 더욱 시선이 간다.

 

그녀의 그림 속에는 누군가의 삶이, 또는 나의 옛 기억이 있다. 그래서 오늘도 쉼표를 찍고 그림들을 넘기면서 위안을 얻었다.

자연을 온몸으로 느낀 저자의 작품들에 온 마음이 반응한다. 마치 동화 속에 있는 듯, 그리고 내가 그림의 소녀가 된 것 마냥 설렌다.

사계를 다양한 소재로 담아내어 무심히 바쁘게 보내버렸던 계절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고 좀 더 계절 안에서 쉬어가며 즐길 줄 아는 내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말이다.

 

 

 

 

첫 페이지부터 내가 여름이면 늘 상상하던 그림이 펼쳐졌다. 여름이면 늘 나무 그늘 아래 평상에서 한 잠자고 싶다고 말하던 그 모습 말이다.

마당에선 닭이 놀고 개와 고양이도 함께 널브러진 여름의 일상. 곧 미래가 될 나의 일상을 그림으로 만나서 반가웠다.

여름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봉숭아 물들이기, 원두막에서 수박 먹기, 공포영화 보며 더위 식히기, 시원한 바다, 초록빛 세상, 소나기 등 그림을 보며 곧 다가올 여름을 향한 알찬 계획도 그려보았다. 공포의 무더위가 우릴 기다려도 즐겨야 하지 않겠는가.

 

가을은 차 한 잔과 독서가 가장 떠오른다. 하지만 담쟁이덩굴이 늘어진 담벼락과 단풍과 자작나무, 갈대에 마음이 설레어 자꾸만 집 밖을 나서게 된다. 시골의 가을은 분주하지만 풍경만큼은 넉넉하다. 시골에서는 수확의 계절이자 아이들에게는 소풍의 계절인 가을. 차분하고 깊어진 공기에 생각마저도 그렇게 되는 계절이라 그림들이 더 정감 어리다. 역시 가을은 마음도 풍성해진다.

 

 

 

 

겨울은 그리움의 계절이다. 온기가 그립고, 누군가가 그립고, 첫눈이 그립고, 봄이 그리운 계절이다.

시골집은 겨울나기로 분주하고 눈이 내리면 풍경도 고요하게 겨울잠을 자는 듯하다. 털실, 동백꽃, 군고구마, 크리스마스, 따뜻한 코코아, 난로 등의 소재로 겨울을 다시 떠올리니 냥이와 담요를 덮고 겨울잠을 자고 싶다는 생각에 빠졌다.

 

봄은 다시 깨어나는 계절이다. 새롭게 피어나는 어린잎들과 팡팡 터트리는 꽃망울에 몸도 마음도 새로워진다.

겨울잠을 자던 정신을 깨우고 봄맞이를 하자 봄 준비로 바빠지기 시작한다.

게다가 봄바람이 상큼한 여린 잎 냄새를 실어 오면 봄 노래를 들으며 꽃구경을 나서야 될 것만 같다.

 

뭐니 뭐니 해도 나를 사로잡은 그림은 고양이들이 대거 등장한 숨바꼭질이다. 장독대 위아래에서 편히 볕을 쬐고 있는 냥이들의 한가로움에 내 미래의 마당 풍경을 그려보니 마음이 흐뭇해진다.

 

마냥 오늘의 한 페이지가 한 장의 그림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핑크빛 같지만은 않은 인생을 살아가게 하는 힘은 좋은 추억들이 아닐까.

더불어 그런 추억을 떠올리는 그림을 보며 힐링하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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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를 위한 그릿 - 청소년을 위한 꿈과 자신감의 비결
매슈 사이드 지음, 토비 트라이엄프 그림, 장혜진 옮김 / 다산에듀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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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릿(GRIT)은 성장(Growth), 회복력(Resilience), 내재적 동기(Intrinsic Motivation), 끈기(Tenacity)의 앞철자를 딴말로 성공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투지를 나타내는 의미로 쓰인다. 즉 열정, 끈기, 인내를 지칭한다.

 

이 책은 성장기 청소년들을 위한 마인드 교과서이다. 저자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청소년 시기에 필요한 사고방식과 행동 패턴에 대해 조언하며 미래를 위해 필요한 건 재능보다 그릿이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정말 많이 뜨끔했다. 십 대를 위한 책이지만 이미 고정관념에 찌든 어른들을 위한 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직 미성숙한 아이들의 인생의 반을 책임지는 어른으로서 나의 잘못된 사고가 아이의 앞길을 훼방놓고 있는 건 아닌지 짚어볼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우리는 대부분이 평범하다고 느낀다. 그에 반해 특출난 이들에겐 남들에게 없는 타고난 재능이 있기 때문이라 여긴다. 심지어 요즘 사회에서는 외모마저도 타고난 재능이라고 여기며 부러워한다. 하지만 저자는 애초에 그런 것들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들이 그러한 위치에 오르기까지 부단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며 고쳐 쓴다. 그러나 나는 책의 중반을 넘기면서도 내내 반신반의했다. 1퍼센트의 재능과 99퍼센트의 노력이라는 명제가 수긍이 가기까지 그들의 성공 안경에 시력을 맞추어 놓고 있었기에 도무지 인정할 수가 없었다.

 

 

 

 

제1장에서 제시하고 있는 평범한 잭과 특별한 잭의 사례에서 벌써 느끼는 것들이 많았다. 소극적이고 평범한 잭을 특별한 잭으로 만들기까지 부모의 역할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내 아이의 성향을 잘 안다고 해서 내버려 둔다거나 부정적인 방향으로 확신해버린다면 아이는 그냥 별 볼 일 없는 일에 시간을 보내거나 경험치가 부족한 삶에서 자꾸만 주눅 들어갈 것이다. 여기서 잭의 부모가 탁구대를 사준 것은 이미 큰 시도였다. 그러고 나서 아이의 흥미 여부는 다시 부딪혀 나가야 할 문제다. 여기서부터는 본인 스스로가 느낀 열정으로 인내를 가지고 헤쳐나가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그릿이다. 그릿을 갖기 위해서는 사고방식의 변화가 반드시 따라야 한다.

 

고정형 사고방식과 성장형 사고방식을 비교해놓으니 이것도 많이 충격이다. 고정형 사고방식을 만드는 열 가지에 거의 해당하기 때문인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그렇게 돼가는 것 같다. 영재나 성공한 이들을 보며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에이~~그럼 그렇지. 역시 타고나야 해."였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중요한 점은 사고의 변화다. 어른들의 고정형 사고방식이 아이들에게 전염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지금부터 성장형 사고방식으로 교육해야 한다.

넌 둔해서 안돼, 넌 느려서 안돼, 넌 이해력이 딸리니 수학은 앞으로 힘들겠다, 못 할 것 같으면 하지 마.라는 타인의 말 말.

이런, 망했네, 난 포기, 이런 걸 왜 해?, 난 그런 것 못해, 쟤는 원래 잘 하니까, 실수하면 창피당할지도 몰라, 남들이 모라고 할 것 같아.라는 본인이 내뱉은 말 말.

이렇게 나열하니 꿈도 미래도 보이지 않는 말들투성이다.

 

능력은 근육과 같은 것이기에 도전정신과 비판적 시각과 인내심만 있다면 얼마든지 단련시킬 수 있다. 어려운 수학 문제를 푸는 이유도 뇌를 단련하기 위함이듯 부단한 노력 없이는 절대 만족하는 삶을 살 수 없다. 제아무리 아이큐가 높아도, 타고난 운동신경이 갖추었더라도, 노력하지 않으면 그냥 평범한 잭으로 살아가는것이다.

 

미리부터 불안한 세상을 자꾸만 각인시키며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 무엇을 하든지 도전과 노력 없이는 안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 현재 쓸모없는 것에 시간을 허비하고 있지는 않은지 늘 체크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읽히고 싶었던 책이었지만 정작 내가 얼마나 고정관념에 젖어들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나부터라도 바뀌지 않으면 아이들마저 고정적인 삶 속에 가두었을지 모를 일이다. 때론 작은 시도가 큰 변화를 가져오기도 한다는 점을 꼭 기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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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의 돼지의 낙타
엄우흠 지음 / 자음과모음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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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세울 것 하나 없어 무(無)동이 되어버린 곳. 이야기는 어쩌다 보니 그곳으로 하나 둘 모여든 사람들의 사연을 풀어내고 있다. 마치 엎어진 카드를 하나하나 들춰가며 누군가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느낌이랄까. 그래서인지 딱히 주인공이라고 시선을 끄는 인물은 없다. 단지 첫 시작이 경수네가 무동으로 이사오는 장면이 먼저였을 뿐 그들 하나하나가 인생의 주인공인 양 이야기는 가지를 치고 뻗어나간다. 세월 속에서 얽히고설킨 가지들은 끝내 풀리지 못한 이야기로 남기도 하고 잊힌 채 떠돌기도 한다. 이야기는 그렇게 이어진 인연들의 이야기를 하기에 끌고 가는 힘이 세다. 마리의 돼지의 낙타의 그 무엇으로 이야기는 계속해서 태어난다. 마치 다음 회가 기다려지는 티비 드라마처럼.

 

마리의 돼지의 낙타는 제목만 보면 갸우뚱한다. 마리의 돼지는 자연스럽지만 돼지의 낙타라니. 집시 생활을 하다 무동으로 오기 전 마리네 돼지는 출산을 앞두고 심한 가뭄이 만난다. 그리고 뱃속 아기에게 열정을 다해 태교를 한다. 그리고 엄마의 태교 덕에 돼지가 아닌 낙타로 태어난 것이다. 이 어처구니없는 설정에 끄덕도 하지 않게 되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중남미 소설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마술적 사실주의를 여기서 보게 되어 반가워서였을까. 어쨌든 마리의 동생 민구가 광합성을 한다는 사실을 의심하다 마리가 낙타를 끌고 나타나자 믿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뭐 출생의 비밀이야 눈으로 보지 않았으니 알 수 없는 노릇이더라도 어찌 되었든 사막이 아닌 곳에도 낙타는 살 수 있으니까 말이다.

 

무동은 그런 마리네뿐 아니라 도시에서 밀려온 사람들이 조용히 터를 잡고 살아가고 있다. 사업 실패로 빚더미에 앉아 사채업자를 피해 무동으로 숨어 들어온 경수네(경수 아빠는 도피 중이다), 개발을 노리고 들어와 슈퍼를 하고 있는 인호네, 꿈꾸던 음악을 때려치우고 여자에게 꽂혀 무동에 눌러앉은 로큰롤 고와 토마토 문(아이를 무려 12명이나 낳았다.)은 각자 나름의 사연 보따리를 짊어지고 살아간다. 살아서 살아지는 건지 살다 보니 살고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으나 그들의 바람은 무동을 벗어나거나 무동의 가치가 상승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소한 불똥은 그들의 억척스러운 삶의 방향성마저 바꾸어 버린다. 잠시 튀어 오른 것이 아닌 영원히 튕겨져버린 이들뿐 아니라 토마토 문처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물이 승승장구하기도 한다.

 

영혼이 없는 떡볶이로 한방의 웃음을 전하고 누군가의 음해에도 꿋꿋이 버티던 경수 아빠를 보며 그렇게 응원을 보냈건만 결국 나비효과처럼 그의 인생은 계속 인생의 끝으로 끝으로 추락한다. 그의 말대로 '영혼이 없는 떡볶이, 이거 다 먹어야 할까?'라는 환청이 이미 그의 영혼을 쪼그라들게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경수 아빠의 어처구니없는 죽음보다 그를 음해한 범인의 실체에 실소를 금할 길 없고 게다가 죽음 뒤에도 계속되는 누명에 어디서부터 꼬인 인생인지 더듬어보기도 했다.

 

살면서 우연이 필연인지 필연이 우연인지 아리쏭할때도 있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벌어지는 일들도 많다. 사소한 오해가 끝도 없이 부풀려지기도 하고 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도 있다. 그래서 늘 인생의 끄트머리에서 후회를 하고 자책을 할 뿐이다. 그렇게 무동을 벗어나고자 했던 경수 엄마는 마리네 화재와 경수 아빠의 죽음으로 무동을 떠나지 못한 채 유골마저 땅속 흙과 범벅이 되고 경수는 그렇게 싫어하던 감자탕 집 사장과의 악연으로 인생이 꼬이지만 그리워하던 엄마의 김치볶음을 맛을 감자탕 집 사장의 딸 수지에게서 맛보게 되는 아이러니와 맞닥뜨린다.

 

하지만 그런 변수에도 결국 삶의 주체는 나라는 걸 인호를 통해 학습하기도 한다. 내가 한 선택과 내가 품은 생각이 만들어 낸 가지는 내 인생의 무게까지이고 자라나기 때문이다.

 

어디 인생이 계획대로 되나? 피아노와 때밀이와 여친이 이렇게 연결되어 있을지 누가 알았겠어? 알 수 없는 게 인생. 그 앞에서 겸손해야지. 계획도 세우고 노력도 해야겠지만 무엇보다도 겸손해야지. 착하게 살고 열심히 노력했다고 해서 반드시 결과가 좋은 것도 아니니까. - p.547

 

부모를 잃고 불의의 사고로 감방까지 다녀온 경수가 결국 다시 무동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며 무동에서의 보이지 않던 끈들이 그곳에서 이미 뿌리를 내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싸한 느낌마저 든다. 그렇게 더 나은 인생을 향한 몸부림은 더 진전이 없고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는 굴레에 갇힌 듯하지만 그래도 누군가의 새로운 삶은 시작될 것이다.

 

경수 아빠가 msg 시대를 거스른 죄로 인생이 꼬였다고 자책했듯 떡볶이도! 인생도! 적당한 msg는 필요하다. 그래야 돼지가 낙타를 낳고 낙타가 민구를 살리고 그런 민구가 중동에서 고봉남밴드를 만나는 이러한 연결고리들을 현실로 끌고 올 수 있는 것이다. 현실이 초현실을 만나 말이 되어가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운명의 무게마저도 가벼이 지날 수 있어서 모처럼 즐겁게 책장을 넘겼다.

마지막으로 마리는 마리(말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마리는 왜 벙어리처럼 지내서 오해를 키운 걸까. 그냥 경수 아빠의 죽음이 애처로워 툭 내뱉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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