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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의 돼지의 낙타
엄우흠 지음 / 자음과모음 / 2019년 4월
평점 :

내세울 것 하나 없어 무(無)동이 되어버린 곳. 이야기는 어쩌다 보니 그곳으로 하나 둘 모여든 사람들의 사연을 풀어내고 있다. 마치 엎어진 카드를 하나하나 들춰가며 누군가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느낌이랄까. 그래서인지 딱히 주인공이라고 시선을 끄는 인물은 없다. 단지 첫 시작이 경수네가 무동으로 이사오는 장면이 먼저였을 뿐 그들 하나하나가 인생의 주인공인 양 이야기는 가지를 치고 뻗어나간다. 세월 속에서 얽히고설킨 가지들은 끝내 풀리지 못한 이야기로 남기도 하고 잊힌 채 떠돌기도 한다. 이야기는 그렇게 이어진 인연들의 이야기를 하기에 끌고 가는 힘이 세다. 마리의 돼지의 낙타의 그 무엇으로 이야기는 계속해서 태어난다. 마치 다음 회가 기다려지는 티비 드라마처럼.
마리의 돼지의 낙타는 제목만 보면 갸우뚱한다. 마리의 돼지는 자연스럽지만 돼지의 낙타라니. 집시 생활을 하다 무동으로 오기 전 마리네 돼지는 출산을 앞두고 심한 가뭄이 만난다. 그리고 뱃속 아기에게 열정을 다해 태교를 한다. 그리고 엄마의 태교 덕에 돼지가 아닌 낙타로 태어난 것이다. 이 어처구니없는 설정에 끄덕도 하지 않게 되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중남미 소설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마술적 사실주의를 여기서 보게 되어 반가워서였을까. 어쨌든 마리의 동생 민구가 광합성을 한다는 사실을 의심하다 마리가 낙타를 끌고 나타나자 믿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뭐 출생의 비밀이야 눈으로 보지 않았으니 알 수 없는 노릇이더라도 어찌 되었든 사막이 아닌 곳에도 낙타는 살 수 있으니까 말이다.
무동은 그런 마리네뿐 아니라 도시에서 밀려온 사람들이 조용히 터를 잡고 살아가고 있다. 사업 실패로 빚더미에 앉아 사채업자를 피해 무동으로 숨어 들어온 경수네(경수 아빠는 도피 중이다), 개발을 노리고 들어와 슈퍼를 하고 있는 인호네, 꿈꾸던 음악을 때려치우고 여자에게 꽂혀 무동에 눌러앉은 로큰롤 고와 토마토 문(아이를 무려 12명이나 낳았다.)은 각자 나름의 사연 보따리를 짊어지고 살아간다. 살아서 살아지는 건지 살다 보니 살고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으나 그들의 바람은 무동을 벗어나거나 무동의 가치가 상승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소한 불똥은 그들의 억척스러운 삶의 방향성마저 바꾸어 버린다. 잠시 튀어 오른 것이 아닌 영원히 튕겨져버린 이들뿐 아니라 토마토 문처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물이 승승장구하기도 한다.
영혼이 없는 떡볶이로 한방의 웃음을 전하고 누군가의 음해에도 꿋꿋이 버티던 경수 아빠를 보며 그렇게 응원을 보냈건만 결국 나비효과처럼 그의 인생은 계속 인생의 끝으로 끝으로 추락한다. 그의 말대로 '영혼이 없는 떡볶이, 이거 다 먹어야 할까?'라는 환청이 이미 그의 영혼을 쪼그라들게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경수 아빠의 어처구니없는 죽음보다 그를 음해한 범인의 실체에 실소를 금할 길 없고 게다가 죽음 뒤에도 계속되는 누명에 어디서부터 꼬인 인생인지 더듬어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