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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작은 농장 일기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부윤아 옮김 / 지금이책 / 2019년 4월
평점 :

요즘 같아선 나도 볕이 잘 드는 집에서 살고 싶다. 몇 주 전 딸아이의 요청으로 베란다 텃밭에 도전했다. 그러나 문제는 일조량!
자라는 속도도 늦고 방울토마토 색상이 영 붉지 않다. 고추도, 가지도, 심지어 상추도 더디다. 그래서 나는 저자의 마음을 이해한다. 7년 전 주택에 살 땐 시부모님이 텃밭을 가꾸셔서 채소는 심으면 그냥 잘 자라는 줄 알았었다. 하지만 실한 녀석들을 수확해오기까지 얼마나 부지런히 몸을 많이 움직여야 했는지 이제 안 것이다.
나는 원래 여름도 싫어했다. 그러나 신선한 채소가 떨어질 날이 없었던 나날들이 좋아진 것이다. 자고 일어나면 테라스에 옆집과 뒷집에서 가져다 놓은 채소가 한가득이었으니 말이다.
저자도 '지극히 작은 농장 일기'의 연재 기간 중 여름이 빠져서 뒤쪽에 여름내 과정을 따로 실어 놓았다고 한다. 심었으니 얼마나 수확을 했는지 알려주는 것도 나 같은 독자들에게는 궁금한 점이 아니겠는가.
책 내용 전부가 농장 일기인 줄 알았는데 여행과 일상에 관한 이야기가 반을 차지한다. 뭐 특별히 정보를 얻기 위함은 아니었지만 농장에 관한 것인 줄 알았던 나 같은 독자는 옆길로 샌 일상들로 아쉬움을 달래야 할 것 같다.
저자는 원래 카피라이터였다고 한다. 그러던 그가 엄두도 내지 못한 도전을 한 것이다. 소설을 쓰고 등단을 하며 작가의 길을 8년째 걷도 있는 모습을 보며 나도 언젠가는 글을 한번 써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가져보았다. 그의 일기 같은 글을 보며 글이라는 걸 너무 어렵게만 생각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과 더불어 이 정도의 글이라면 나도 한번 일기처럼 써보아야겠다는 다짐도 했다. 물론 토하면서까지 쓸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지만.

농장에 관한 글들 중에서 알짜배기 정보도 꽤 얻었다. 본격적으로 채소를 길러볼 생각으로 베란다 텃밭이라는 책을 사두었음에도 아직 못 보고 있었기 때문에 많지는 않지만 도움이 될 정보다.
누에콩 심는 방향, 유충은 바로 죽여야 한다는 것(영화 리틀 포레스트도 보면 배추 애벌레를 잡아 발로 죽이는 장면이 나옴), 채소과 채소 사이의 간격을 주간이라고 한다는 것(처음에 뭣도 모르고 촘촘히 심었다가 그 담날 죄다 다시 심는 수고를 해야 했다.), 연작장애 작물을 꼭 알아야 실패하지 않는다는 것, 진딧물 제거에 우유도 좋지만 마시다 남은 커피를 부으면 정말 좋다는 것,(이거 완죤 일석이조 아닌가. 맨날 남은 커피 개수대에 버렸는데 이제부턴 화분에 뿌려야겠다.) 등을 알고 나니 꽤 많이 똑똑해진 기분이다.
솎아내기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순간 시어머님이 떠올랐다. 농사지으며 솎아내던 습관을 화초에도 적용해서인지 시어머님 손을 거쳐간 애들은 늘 더 자라지 못하고 비실거렸다. 갈 때마다 줄어드는 화분을 보며 한숨을 쉬었으니 말이다.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는 설은 생각도 못 해본 건데 이건 좀 많이 우울해지는 내용이다. 자연은 그렇게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사이 훗날 엄청난 결과를 불러오게 할는지도 모를 일인데 너무 무심한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뭐 이렇게 글을 쓰고 있지만 나는 무얼 했나 저자처럼 반성했다.
그나저나 진정한 채소 기르기는 좋은 모종을 구별해 내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니 이번 텃밭이 실패하더라고 계속 도전해 보아야겠다.
심심할 땐 백지도를 꺼내 보라는 말에 나도 한번 검색을 해 보았다. 앗, 이렇게 안 가 본 곳 투석이라니... 출력해서 붙여놓아볼까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된다. 아이들 지리 공부에 도움도 될 것 같고 말이다.
저자는 터널의 수를 세기 위해 기차를 타거나 풍경을 잘 담아두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나서기도 한다. 그래서 특별한 목적 없이 떠나는 여행에서 운 좋게 개기월식을 만나는 행운을 누리기도 하니까 말이다. 이처럼 여행은 뜻하지 않는 경험을 안겨주기에 인생을 더 풍요롭게 해 주는 것 같다.
여행 때 아이들이 휴대폰에 코를 박고 있는 걸 도저히 봐줄 수가 없었는데 괜찮은 아이템도 건졌다. 끝말잇기도 몇 번 하면 지루했는데 변수를 잘만 활용하면 더 재미가 있다는 생각을 나는 왜! 못한 걸까.....
저자의 일상 이야기는 작가의 잡다한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소설이라는 걸 본격적으로 쓰게 된 과정, 등장인물의 이름이나 지명들을 어떻게 결정하는지, 좋아하는 음악, 음식, 육아에 대한 생각 등 작가의 소소한 일상을 통해 작가를 더 알 수 있어 좋았다. 특히 부모라면, 더더욱 아버지라면 꼭 새겨들어야 할 말도 있다. 육아는 자신을 키우는 일이기도 하다는 말을 곱씹다 보니 나도 아이들을 키우면서 많이 성장해가고 있음을 느낀다.
만약에 누군가 나에게 취미가 무어냐고 묻는다면 이제 막 채소 기르는 재미에 빠져 있답니다라고 얘기할 수 있길 바라면서 다음번엔 볕이 잘 드는 고층으로 옮겨야겠다. 당분간 아파트 생활은 해야 하고 채소는 잘 키우고 싶으니.
요 며칠을 두고 보니 방울토마토 잎이 자꾸만 쭈글쭈글해지는 것 같아서 잘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 보아야겠다.

* 이 책은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