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영의 식탁 - 가족을 위해 짓고, 만들고, 담아 내는 정혜영의 따뜻한 식탁 이야기
정혜영 지음 / 이덴슬리벨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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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가 즐거움을 줄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두 끼 식사를 신경 써야 하는 워킹맘에겐 하루하루가 고민이고 힘든 일이다. 뭐 요즘은 간단히 조리해 먹을 수 있는 식품들도 많고 요 앞 반찬가게만 들러도 신선한 샐러드와 밑반찬들을 쉽게 사 먹을 수 있어서 좋지만 그래도 여전히 엄마표 음식을 해 먹이고 싶은 욕심이 있다.

더군다나 자꾸만 변해가는 아이들 입맛에 식탁 고민은 나날이 늘어만 갔다. 특히 입맛 까다롭고 입 짧은 큰 녀석은 도통 맞추기가 어려웠다.

 

요리책이야말로 굳이 필요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요즘은 인터넷 레시피를 주로 이용하니까) 나인데 이 책은 왠지 호기심이 생겼다. 아이를 넷이나 키우고 있는 그녀가 가족들에게 선사하는 요리는 대체 어떤 요리들일까 궁금했다.

 

그녀는 가족들을 위해 안 해 본 요리가 없을 정도란다. 우와 진짜 부끄러워진다. 난 안 해본 요리 천지인데.ㅎㅎ

암튼 후르륵 책장을 넘기니 난 조금 반성해야 할듯하다. 정말 몇 가지 빼놓고는 거의 생소한 요리다. 물론 각종 소스나 잼 주스 등을 빼더라도 안 해본 것 투성이다. 뭐 나도 살림만 하면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핑계를 대보지만 그래도 식구들을 위해 장보고 요리하는 일이 의무만으로는 힘들다는 걸 잘 알기에 그녀가 참 대단해 보인다. 그래도 가끔 나도 특별 요리랍시고 좀 흉내 내는 날에는 잘 먹는 모습에 기분이 우쭐해지기도 했으니까.

 

 

 

 

차례를 보니 계절별로 식탁을 구성하고 있다. 제철 음식 위주의 레시피와 계절에 어울리는 요리들이 벌써 봄과 여름을 그립게 한다. 구성도 한식, 양식, 제과제빵 그리고 소스류와 드레싱 만들기, 음료 등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는데 주로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들이라 반가웠다.

물론 낯선 요리 이름이 당장은 적응이 안 되고 생소한 재료들에 이런 건 어디서 사야 하는 거지 했지만 대형마트를 꼼꼼히 뒤지면 다 구할 수 있겠다 싶었다.

 

 

 

 

 

레시피는 대체적으로 난이도가 어렵지 않다. 그래서 과정샷은 없다. 완성된 사진 뒤에 그녀만의 팁이 덧붙여져 있을 뿐이다. 어쩌면 이 책은 완전 요리에 초짜인 주부들에게는 불편한 책일 수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브런치류를 좋아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요리 스타일이 제법 보여 반가웠다. 조금만 응용하면 주말 아침을 근사하게 차려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녀만의 소스류 정리 비법도 간단히 소개하고 있으니 참고해도 좋겠다.

 

먹고 싶은 걸 골라보라고 하니 하나하나씩 만들어 달랜다. 첨 보는 요리라 맛이 궁금하다고. 연어를 좋아하는 큰 녀석을 위한 연어요리도 혹하고 빵 만들기에 관심이 많은 둘째는 티라미수에 혹한다.

그나저나 내겐 없는 조리도구들도 있고 엄마표를 위해서는 귀찮음도 해결해야 하는 숙제지만 처음이 어렵지 금방 손에 익힐 수 있을듯하다.

 

요즘은 저녁식사 후 아이들이 늘 간식거리를 찾는다. 과자도 하루 이틀이지 싶어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걸 찾다 보니 참지 바게트 카나페가 딱이다 싶었다. 남편과 함께 만들어 아이들에게 선보이니 맛있다고 엄지 척이다. 생각보다 손쉽게 할 수 있어 강추! 난 단호박 밀크 수프와 수박 레모네이드가 먹고 싶어지는구나.~ 누가 해 줬으면.ㅋㅋ

 

매번 냄비밥을 하고 한 가지 재료로 다양한 응용이 되지는 않겠지만 그녀의 가족 사랑과 요리에 대한 마음만은 닮고 싶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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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세계 - 그림으로 보는 비주얼 백과 사전
아만다 우드.마이크 졸리 지음, 오웬 데이비 그림, 유윤한 옮김, 황보연 감수 / 이마주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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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늘 우리 주위에 존재하지만 우리는 그 존재의 가치를 잊고 사는 것 같다. 산, 들, 나무, 풀, 꽃이 아닌 모든 생명체의 존귀함을 말이다.

 

자연의 세계는 알면 알수록 놀라움투성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자연의 세계에 대해 더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 땅을 우리 것인 양 차지하고 있으니 그만큼 아끼고 살피고 돌보아야 할 의무도 있는 것이다. 나뿐 아니라 우리 아이들에게도 생물들의 신비로운 세계를 보여주며 그들의 세상을 알아야 한다. 그들의 삶도 존중받을 수 있도록 말이다.

 

나는 백과사전을 좋아했다. 어릴 때 많지 않은 책 중에 그나마 엄마가 거금을 들여 사준 책이 백과사전이었기에 주로 백과사전을 보며 지냈는데 그림이 아닌 실물 이미지의 책이라 참으로 딱딱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다채로운 그림과 재미있는 형식의 백과사전이 많이 출간되어 아이들의 학습을 돕고 있다. 그래서 참 소장하고픈 책들이 많다. 평소 예쁜 그림에 잘 넘어가는 편이라 이 책도 일러스트가 너무 마음에 들어 선택한 책이다. 저채도의 색감이 차분하면서 더욱 내추럴한 느낌이 눈을 편안하게 한다. 단순하면서도 깔끔한 형태가 세련되고 전반적인 레이아웃이 시원시원하다.

 

차례를 보니 꽤 주제가 다양하다. 이렇게 많은 컨텐츠가 나올 수 있는지 몰랐다. 진화, 서식지, 이동, 아주 작거나 크거나 특별하거나, 씨앗, 먹이 사슬, 공생 등등 차례만 보아도 흥미로워 보인다. 동물의 세계나 자연 다큐를 좋아해서 가끔 보는 편인데 마치 기초 공부를 하듯 재미있게 읽었다. 아이들에게 설명하기도 좋아 보인다.

 

제일 첫 장은 생물들의 비슷한 특징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모든 생물은 하나 이상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체적으로 움직이고 번식하며 숨 쉬고 먹고 싸며 반응하고 성장한다.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왜 이렇게 새롭고 신기할까.

생물의 특징과 분류 방법부터 450여 종의 경이로운 생물 다양성,

다양한 서식지와 그곳에서 살아가는 생물들의 독특한 생존 전략과 행동, 생물과 생물 간의 관계까지!                

생물의 모든 것을 배우고 이해해요.

 

 

 

 

생물은 서로 얼마나 닮았는지에 따라 분류할 수 있고 그렇게 나뉜 동물계와 식물계는 또 몇 단계로 분류한다. 그런 기준이 없으면 인간이 이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13페이지에 보면 회색늑대의 분류 과정을 볼 수 있는데 얼마나 세부 단계를 거치는지 알 수 있다. 놀라운 사실은 발견된 종보다 발견되지 않은 종이 더 많을 거란 사실이다. 그리고 가장 많은 종이 곤충이라고 하니 얼마 전에 본 기사가 떠오르기도 했다. 지구상 인간의 무게보다 개미의 무게가 더 무겁다는 사실은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

 

 

 

 

동식물이 모여 사는 서식지를 보면 환경에 알맞게 적응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흐뭇하다. 그들은 나름 살아남기 위해 진화하고 적응한다. 하지만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로 서식지를 위협받고 있는 종들의 기사가 떠올랐다. 민가나 도시로 내려오는 멧돼지와 북극곰, 로드킬 당하는 노루, 육지로 떠밀려오는 고래 등을 보며 미안한 마음을 느낀다.

지구 끝에 사는 생물들을 보고 있자니 뽀로로(펭귄)와 포비(북극곰)는 원래 같이 있을 수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생각났다. 아직도 관심 없는 이들은 남극에는 펭귄이 북극에는 북극곰이 산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펭귄을 보고 있으면 너무나 매끄러워 보이는 피부 때문에 참으로 추워 보이는데 실질적으로는 털이 빽빽하게 겹쳐져 있고 두꺼운 지방층이 있어 체온을 유지한다고 한다.

 

 

 

최근 모비딕 책 때문인지 유독 고래에 관심이 간다. 전 세계 바다를 돌아다닌다는 점만 보아도 너무나 특별한 존재임에는 부정할 수 없다. 상단 우측에 사람과 고래와의 크기를 비교해보면 얼마나 큰지 가늠할 수 있는데 정말 입이 떡 벌어진다.

 

 

 

거대한 숲 열대 우림에 서식하는 동식물 편을 보면 각 층마다 서식하는 종들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워낙에 키 큰 나무가 많고 햇볕의 분포도도 다르다 보니 맨 꼭대기 층과 바닥층에 사는 생물들이 다를 수밖에 없다. 서식지 파괴로 멸종 위기에 처한 아이아이원숭이에대한 글을 보니 열대우림을 더 이상 훼손하면 안 되겠다.

 

 

 

 

인간들에게도 많은 걸 내어주는 나무는 수많은 생물들의 집이 되어 주기도 한다. 그림 속 올빼미 식구들의 모습이 참으로 안락해 보인다.

흔하게 볼 수 있는 식물들이지만 그들의 생명 활동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다시 보니 그것조차 신기하게 느껴진다. 씨에서 뿌리가 나오고 떡잎이 나오는 과정과 광합성이 일어나는 과정뿐 아니라 죽은 나무에서도 살아가는 생물들을 보며 나무가 우리 지구에서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되새길 수 있어 좋았다.

 

야생동물의 사랑 편에서는 보겔콥바우어새의 이야기가 실려 있어 반가웠다. 예전에 동물의 세계에서 이 새의 구애작전을 보며 한바탕 웃었던 적이 있는데 암컷의 관심을 끌기 위해 집 앞에 알록달록한 물건(병뚜껑, 열매, 꽃잎 등)을 가져 다 놓는 모습도 신기했지만 남의 집의 물건을 훔쳐 오는 모습도 너무 귀여웠었다.

그 외 새의 특징, 동식물의 위장술과 경계색, 사막에서 사는 생물, 지구상에 4분의 1을 차지하는 딱정벌레, 밤을 좋아하는 친구들, 강 주변인 생태계 등 동식물들의 신기한 생태계에 홀딱 빠져드는 시간을 가져 볼 수 있다.

 

 

 

 

인간이든 동식물이든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일은 중요하다. 범고래나 얼룩말처럼 무리 지어 생활하는 종부터 벌처럼 조직을 이루어 살거나 늑대처럼 영역을 지키며 살아가는 종들도 있다. 우리 인간은 그보다 훨씬 진화된 종임에도 불구하고 함께 살아가는 일이 참 어려워 보인다. 함께 살아야 함에도 함께 사는 일이 서툰 인간들이야말로 좀 더 현명하게 진화했으면 더 바랄 게 없겠다. 그렇다면 인간을 넘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에 대해서도 깊은 애정을 지닐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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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녀 이야기 그래픽 노블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르네 놀트 그림, 진서희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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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녀 이야기의 특별판을 본 순간 표지에 압도되어 구매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표지에 잘 꽂히는 편인데 특별 양장본이 나왔을 땐 속이 쓰리기도 했다. 시녀 이야기는 어떤 내용인지만 대략적으로 알고만 있었고 아직 완독하지는 못하였다. 그리고 미드 짤막 영상을 몇 편 본 적도 있어 파격적인 소재에 흠짓하기도 했다.

 

최근 그래픽 노블 작품을 여럿 만날 수 있어 좋은 것 같다. 만화를 잘 보는 편이 아닌데 그래픽 노블(만화와 소설의 중간 형식)은 괜찮게 다가왔다. 최근 읽은 책은 [한밤중의 톰의 정원]도 좋았으며 세계 문학인 [모비딕]도 아주 좋았다. 우선은 독서량이 많지 않거나 시간적 여유가 없다면 그래픽 노블 스타일도 나쁘지 않다. 그렇게 읽다 보면 좀 더 깊이 있는 독서로 이어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시녀 이야기는 미드로도 방영되어 꽤 인기가 있었다고 들었다. 영상을 보면서도 그 붉은 가운에 압도당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그래픽 노블이 출간되었다고 했을 때 어떤 그림으로 되살아 났을까 궁금했다. 이야기상 그림 스타일이 강렬하고 무서울 것 같다는 예상은 어느 정도 들어맞았다. 캐나다 작가의 솜씨로 탄생한 그림들이 눈앞을 압도했다. 강렬한 색감과 잉크 터치가 주제를 잘 드러내고 있었는데 한밤중에 책장을 넘기니 섬뜩하기도 했다.

 

놀리테 테 바스타르데스 카르보룬도룸 (Nolite te bastardes carborundorum.)

그 빌어먹을 놈들한테 절대 짓밟히지 말라.

 

 

 

 

 

이곳은 시녀 양성센터다. 여성들은 실험실에 누워있는 인형 같다. 군인들의 삼엄한 통제와 감시에 그녀들은 대화조차 할 수 없다.

보이지 않는 세력들이 잡은 권력에 인간들의 삶이 이토록 철저히 통제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너무 무섭고 끔찍하다. 인권은 물론이거니와 인격도 무시된 채 그녀들이 오로지해야 하는 일은 아이를 낳는 것이다. 생식기관을 가진 도구로 전락한 여성들은 상관의 아이를 낳는 일에 매진해야 한다.

 

오브프레드는 사령관의 아이를 낳아야 한다. of 프레드! 그녀들의 이름을 보면 더 소름 돋는다. 사령관의 소유물인 것이다. 그녀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만약 실패한다면! .....

 

 

 

여자들은 철저히 격리 된 생활을 한다.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방을 쓰고, 똑같은 음식을 먹고, 똑같은 운동을 한다. 마치 군대에 온 것처럼. 그리고 서로를 감시한다.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다. 권력자들 뜻대로 서로를 믿지 못하면 더 통제하기가 수월해진다. 그렇게 눈과 귀를 막고 장벽에 걸린 시체로 공포감과 충성심을 조성한다.

 

시녀를 신성한 존재로 세뇌시키며 임신이 곧 구원이라고 말한다. 정상아를 낳는 것! 그것만큼 중요한 의무는 없다. 의례가 진행되는 순간도, 출산의 순간도 모두 여자들이 한다. 교묘하게 나누어 놓은 계급. 그 주어진 계급의 역할에 충실한 여자들. 어찌 된 것이 여자들의 세상이 이토록 더 잔인해 보일 수가 있을까.

 

오브프레드는 과거를 떠올릴 때마다 지독한 그리움과 싸워야 한다. 그녀는 가족의 생사도 알 길이 없다. 친한 친구 사이였던 모이라는 이미 한 번의 처벌을 받았다. 어떻게든 탈출하려는 그녀가 꽤 용감해 보인다.

과거 회상 신은 터치감과 색감을 더 따뜻하고 내추럴하게 표현했다. 흑적과 대비되니 아련하게 느껴진다.

 

 

 

 

 

너무나 암울한 세계를 그리고 있는 이 소설은 어쩌면 불쾌할 수도 있다. 종교나 이념은 인간들을 통제하고 무력화시키기에 적절하다. 벽에 걸린 시체보다 간증하는 장면이 더 소름 돋고 생산을 강조하는 설교도 끔찍하게 들린다. 더 무서운 건 시녀들을 바라보는 타인들의 눈이다. 마치 신기한 장난감이나 새로운 문화를 보듯 한다. 공감대가 끊어진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라고 여겼는데 요즘 시대에도 그다지 낯설지 않은 풍경인듯하다.

하지만 막으면 막을수록 누르면 누를수록 반감은 생긴다. 사령관의 일탈과 사령관 부인의 눈속임이 결코 체재에 순응한다고 볼 수는 없는 데다 보이지 않는 눈을 피해 하나둘 결속하려는 자들의 움직임도 일어난다. 이미 이전 삶의 만족감을 알고 있었기에 사령관은 좀 더 친밀한 관계를 원했고 사령관 부인은 그녀의 임신을 도우려 한다. 그 의도가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사랑이 영원히 배제된 사회는 있을 수 없다. 제아무리 침묵을 강요해도 심장이 뛰는 소리까지 막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출구가 없어 보인다. 그녀의 절친이었던 모이라는 결국 더는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에 순간의 쾌락을 택한다. 그녀와 짝을 이루어 다녔던 시녀도 죽어버렸다. 오브프레드는 더할 수 없는 절망감에 빠진다. 마지막 역사적 주해 속 문장이 서글프게 다가왔다. 아무리 노력해도 과거의 목소리를 해독할 수 없다니. 그냥 그렇게 잊히고 마는 것인가.

그래픽 노블이라고 해서 이야기의 틈이 많이 벌어져 보이지 않는다. 이미 핵심문장과 장면들을 최대한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소설을 읽지 않은 나도 전반적인 스토리가 와닿았다. 소설도 충분히 몰입해서 속도를 내 볼 수 있겠다. 그러니 나처럼 소설을 읽지 않은 분들이 먼저 보기에 좋은 책이다. 이제는 소설 속에서 빛나는 문장들을 더 건져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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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의 역사 - 인류 역사의 발자취를 찾다
브라이언 페이건 지음, 성춘택 옮김 / 소소의책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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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은 인간의 과거를 들여다볼 수 있는 창과도 같다.

 

 

 

 

지난주 경복궁 전망대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경복궁 맞은편 공원이었던 자리가 나무와 풀이 죄다 뽑힌 채 공사판이었다. 전망대 계시던 분에게 어찌 된 거냐 물으니 집터가 발견되어 조사 중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다시 찬찬히 들여다보니 집터 같은 흔적이 눈에 들어왔고 뭔가 신기한 기분도 들었다. 내가 그 현장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런 기분인데 과거의 흔적을 발견한 순간을 만끽한 이들의 기분은 어떨까.

 

대체적으로 유물이나 유적지는 우연하게 발견되는 경우가 많고 그 뒤 발굴조사가 진행되어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된다. 하지만 과거의 가치보다 돈을 중시하던 사람들 때문에 한낱 보물 사냥으로 이미지가 전락하기도 했다. 실질적으로 유물 조사가 보물 사냥에 밀려 망쳐진 경우도 많았다. 고대 유물의 광적인 경쟁에 개탄을 금할 길이 없다. 그렇기에 고고학은 그런 의미가 아닌 과거에 매료된 사람들이 일구어낸 학문임을 다시 새겨야 한다.

 

과거에서 온 도구야말로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러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떠올렸다. -p.17

 

고고학을 위해 평생을 바친 이들의 일화를 보면서 그들의 외로운 분투기에 찡하기도 하고 그들의 업적도 놀랍기만 하다. 인내와 열정 유물에 대한 사랑 없이는 불가능한 일들이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발굴하다 사망하는 경우도 다반사였고 연구노트가 뒤늦게 어디선가 발견되기도 하였으며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특히 페트리처럼 고고학에 깊은 지식을 가진 이들은 더 많은 학자들의 관심을 끌어내는데도 기여했다. 그렇듯 그들의 평생이 인류 역사를 새로 썼고 과거와 현재를 이어놓았다.

 

 

 

 

 

 

 고고학은 인간의 삶을 되돌린다.

 

 

고고학은 안과 밖으로 중요하다. 하나의 작은 유물을 통해 과거의 진실을 밝혀 내는 일은 꽤나 고되고 오랜 시간을 요한다. 그래서 우리가 이해하기 쉽게 과거를 분류하고 접근할 수 있는 것이다. 더불어 고고학을 연구하면서 다른 학문들도 덩달아 발전했다. 물론 종교와는 여전히 여러 가지로 충돌을 일으키고 있지만 말이다.

예전에 어디서 본 책에서 아직도 아귀(시대를 역행하거나 도무지 인간의 능력으로는 설명이 안되는 )가 들어맞지 않는 유물들도 있다고 하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외계인이 만들었거나 혹은 인간은 이미 고도의 성장을 이루었다가 망하고 다시 시작한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들을 보면서 마냥 신기하다는 생각만 했었는데 책에서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유물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챕터 19에서는 고고학이 더 이상 남자들만의 일이 아니었음을 말한다. 언어에 재능이 있었던 벨은 사막 고고학자로, 여행가이자 소설가였던 호스는 크레타에서 발굴 작업을 한 최초의 여성으로 이름을 남겼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어떤 티브이 프로에서 여성 고고학자의 인터뷰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어찌나 멋있어 보이던 지 어린 시절 요즘같이 역사에 관심이 많았더라면 아마도 한 번쯤은 고고학자를 꿈꾸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물론 얼마나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든 일인지는 몰랐을 테지만.

 

 고고학은 인간이다.

 

 

말 없는 유물들을 보며 우리는 이야기를 찾는다. 잃어버린 시간을 엮어내어 현재와 연관짓는 일이 무척 흥미롭기도 하지만 고고학은 결국 인간의 삶을 연구하기 위한 학문이다. 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굴조사하고 마야 문명을 파헤치며 그레이트 짐바브웨 건축물의 흔적을 찾는 일뿐 아니라 인류의 기원을 찾아가면서 과거 인간들의 삶이 어떠했는지 들여다보는 것이 얼마나 흥미로운 일인지는 이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다양한 인간들의 삶을 통해 인류의 공통된 조상을 밝히고자 노력한다는 것 자체가 차별과 편견을 없애는 시작일 수도 있다.

 

저자의 고고학에 대한 개인적 견해를 엿볼 수 있는 점도 볼만하다. 전시실에서 시간 순서대로 배치된 유물들을 보며 울적한 기분을 느꼈다는 저자의 기분이 조금 이해가 된다. 비인간적인 상징물이란 단어를 보며 나도 너무 무심하게 지나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또한 지나친 관광산업으로 인해 유적들이 손상되거나 전쟁으로 파괴되고 여전히 도굴꾼들의 손에서 자유롭지 못한 점들도 안타까운 일이다.

 

인간은 늘 욕망이 과해져 심각한 문제를 낳기도 하지만 인간에게 호기심이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흥미로운 일인가를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의 노고에 진심으로 고개가 숙여지기도 한다. 분량이 있는 책이라서 흥미로운 챕터부터 찾아 읽어도 무방하니 역사에 관심이 많다면 소장용으로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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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방스 미술 산책 - 그 그림을 따라
길정현 지음 / 제이앤제이제이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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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행도 나름 괜찮은 여행 방법이다. 그것이 예술작품과 연관된 여행이라면 더더욱.

 

요즘 그림도 보러 다시고 그림 관련 서적도 자주 찾아보는 편인데 미술이 꽃 피던 그 시절 그곳을 찾은 이의 책이 나와서 눈길을 잡았다. 모조품으로 눈요기를 해야 하는 신세와는 달리 실물로 보는 작품과 그 작품을 담고 있는 배경, 그리고 화가의 사연까지 두루두루 둘러볼 수 있다면 얼마나 짜릿할까.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가 떠오르면서 저자가 다녀온 프랑스 발길 위에 고스란히 눈길을 얹어 보았다.

 

무엇보다 눈을 사로잡은 건 사진이다. 여행책은 말보다 사진을 보며 얻는 즐거움이 크기 마련이다. 사진에 무척 공을 들였음이 느껴져서인지 더욱 프로방스를 찾고 싶어졌다.

 

저자는 너무 뻔한 여행기가 되지 않기 위해 과감히 포기할 곳은 빼 버리고 알뜰하게 일정을 꾸린다. 파리, 니스, 새 폴 드 방스, 아비뇽 등 한 예술가의 과정을 찬찬히 따라가는 여정에 독자들도 함께 걸을 수 있도록 배려한듯하다. 그림도 좋지만 멋진 풍경은 그림 이상으로 힐링을 준다. 숙소와 마켓, 음식 사진까지도 눈을 즐겁게 했다. 잘 다듬어진 도시를 보니 역시 예술의 도시답다고나 할까.

 

해당 도시를 살았던 화가들의 사연들 중 인상적인 일화들을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어 책장을 넘기가 편했으며 여행지에서의 저자의 생각과 경험들이 자연스레 녹아있어 좋았다. 르누아르 미술관에서의 알짤없는 입장시간에 당황하고 아이스크림의 양이 생각보다 너무 쬐끔이어서 실망하며 양의 발요리앞에 망설이게 되는 것처럼.

 

 

 

고양이를 사랑하는 내가 유독 고양이를 자주 볼 수 있다는 오트 드 카뉴도 인상적이었지만 인상주의 화가들의 고양이 사랑을 확인할 수 있어 덩달아 행복했다. 저자도 마지막 장에서 고양이 사랑을 엿볼 수 그림들을 더 찾아 소개하고 있는데 집사로서 흐뭇한 기분이었다.

 

교과서나 주변 곳곳 그리고 온라인상에서 보던 작품들 속의 실제 장소를 보는 기분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책에는 제법 그림들이 소개되어 있는데 세잔의 작품처럼 왜곡된 형태의 풍경도 있고 세월과 함께 변해버린 풍경도 있지만 그 시절의 영광이 아쉬움으로 남는 곳도 있다. 게다가 작가의 세계관이 반영되어 더 아름다워진 풍경들도 있다. 작품 속 풍경을 보며 작가의 시선을 느낄 수 있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는데 코끼리 모양의 절벽을 여러 화풍으로 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세잔의 아뜰리에처럼 작가가 머물면서 수많은 작품을 탄생시킨 장소를 둘러보는 것도 묘한 기분에 사로잡힐 것만 같다. 그리고 몽 생 미셸처럼 많은 작품의 영감이 된 도시를 직접 가보는 것도 신나는 일이겠다.

 

뒤편에서는 책에 등장한 화가들의 관계도가 있다. 사실주의 화가 쿠르베와 인상주의 화가 드가는 서로를 싫어했으며 피카소는 모딜리아니를 무시했다고 한다. 반면 고흐는 고갱을 존경했으며 낭만주의 들라크루아와 인상주의 마네는 서로 인정해주는 사이였다고 한다. 한눈에 보고 있으니 작가들의 묘한 신경전이 막 느껴진다고나 할까.

 

마지막으로 여행 시 도움을 얻을 수 있는 팁도 있으니 여정에 몸을 담고 싶다면 참고하면 좋겠다. 역시 여행기는 지루할 틈이 없다. 여러 권의 미술책을 읽다 보면 중복되는 내용 덕에 더 오래 기억에 남기도 한다. 미술작품을 좋아한다면 미리 여행기를 따라가 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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