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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의 역사 - 인류 역사의 발자취를 찾다
브라이언 페이건 지음, 성춘택 옮김 / 소소의책 / 2019년 10월
평점 :
고고학은 인간의 과거를 들여다볼 수 있는 창과도 같다.

지난주 경복궁 전망대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경복궁 맞은편 공원이었던 자리가 나무와 풀이 죄다 뽑힌 채 공사판이었다. 전망대 계시던 분에게 어찌 된 거냐 물으니 집터가 발견되어 조사 중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다시 찬찬히 들여다보니 집터 같은 흔적이 눈에 들어왔고 뭔가 신기한 기분도 들었다. 내가 그 현장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런 기분인데 과거의 흔적을 발견한 순간을 만끽한 이들의 기분은 어떨까.
대체적으로 유물이나 유적지는 우연하게 발견되는 경우가 많고 그 뒤 발굴조사가 진행되어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된다. 하지만 과거의 가치보다 돈을 중시하던 사람들 때문에 한낱 보물 사냥으로 이미지가 전락하기도 했다. 실질적으로 유물 조사가 보물 사냥에 밀려 망쳐진 경우도 많았다. 고대 유물의 광적인 경쟁에 개탄을 금할 길이 없다. 그렇기에 고고학은 그런 의미가 아닌 과거에 매료된 사람들이 일구어낸 학문임을 다시 새겨야 한다.
과거에서 온 도구야말로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러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떠올렸다. -p.17
고고학을 위해 평생을 바친 이들의 일화를 보면서 그들의 외로운 분투기에 찡하기도 하고 그들의 업적도 놀랍기만 하다. 인내와 열정 유물에 대한 사랑 없이는 불가능한 일들이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발굴하다 사망하는 경우도 다반사였고 연구노트가 뒤늦게 어디선가 발견되기도 하였으며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특히 페트리처럼 고고학에 깊은 지식을 가진 이들은 더 많은 학자들의 관심을 끌어내는데도 기여했다. 그렇듯 그들의 평생이 인류 역사를 새로 썼고 과거와 현재를 이어놓았다.

고고학은 인간의 삶을 되돌린다.
고고학은 안과 밖으로 중요하다. 하나의 작은 유물을 통해 과거의 진실을 밝혀 내는 일은 꽤나 고되고 오랜 시간을 요한다. 그래서 우리가 이해하기 쉽게 과거를 분류하고 접근할 수 있는 것이다. 더불어 고고학을 연구하면서 다른 학문들도 덩달아 발전했다. 물론 종교와는 여전히 여러 가지로 충돌을 일으키고 있지만 말이다.
예전에 어디서 본 책에서 아직도 아귀(시대를 역행하거나 도무지 인간의 능력으로는 설명이 안되는 )가 들어맞지 않는 유물들도 있다고 하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외계인이 만들었거나 혹은 인간은 이미 고도의 성장을 이루었다가 망하고 다시 시작한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들을 보면서 마냥 신기하다는 생각만 했었는데 책에서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유물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챕터 19에서는 고고학이 더 이상 남자들만의 일이 아니었음을 말한다. 언어에 재능이 있었던 벨은 사막 고고학자로, 여행가이자 소설가였던 호스는 크레타에서 발굴 작업을 한 최초의 여성으로 이름을 남겼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어떤 티브이 프로에서 여성 고고학자의 인터뷰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어찌나 멋있어 보이던 지 어린 시절 요즘같이 역사에 관심이 많았더라면 아마도 한 번쯤은 고고학자를 꿈꾸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물론 얼마나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든 일인지는 몰랐을 테지만.
고고학은 인간이다.
말 없는 유물들을 보며 우리는 이야기를 찾는다. 잃어버린 시간을 엮어내어 현재와 연관짓는 일이 무척 흥미롭기도 하지만 고고학은 결국 인간의 삶을 연구하기 위한 학문이다. 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굴조사하고 마야 문명을 파헤치며 그레이트 짐바브웨 건축물의 흔적을 찾는 일뿐 아니라 인류의 기원을 찾아가면서 과거 인간들의 삶이 어떠했는지 들여다보는 것이 얼마나 흥미로운 일인지는 이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다양한 인간들의 삶을 통해 인류의 공통된 조상을 밝히고자 노력한다는 것 자체가 차별과 편견을 없애는 시작일 수도 있다.
저자의 고고학에 대한 개인적 견해를 엿볼 수 있는 점도 볼만하다. 전시실에서 시간 순서대로 배치된 유물들을 보며 울적한 기분을 느꼈다는 저자의 기분이 조금 이해가 된다. 비인간적인 상징물이란 단어를 보며 나도 너무 무심하게 지나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또한 지나친 관광산업으로 인해 유적들이 손상되거나 전쟁으로 파괴되고 여전히 도굴꾼들의 손에서 자유롭지 못한 점들도 안타까운 일이다.
인간은 늘 욕망이 과해져 심각한 문제를 낳기도 하지만 인간에게 호기심이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흥미로운 일인가를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의 노고에 진심으로 고개가 숙여지기도 한다. 분량이 있는 책이라서 흥미로운 챕터부터 찾아 읽어도 무방하니 역사에 관심이 많다면 소장용으로 강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