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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에이지
김희선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3월
평점 :
요즘 노년을 대신하는 용어들이 늘어나고 있다. <골든 에이지>도 그런 방향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제목만으로 넘겨 짚었던 예상과는 너무나 달랐던 단편이라 많이 당황하고 말았다. 솔직히 처음 날짜가 언급될 때도 눈치채지 못했었고 말미쯤 알아차리고 나서도 2014년이란 숫자에 또 한 번 놀랐다. 그만큼 잊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사실과 너무나 먼일처럼 잊고 있었단 사실이 이상하게 느껴져서 미안했다. 그냥 모든 것들이.
우습게도 첫 단편 <공의 기원>을 시작하면서 나는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한 장 한 장 넘어갈수록 어디서 읽은 것만 같아서. 작가 소개란을 보고 나서야 젊은 작가상 수상집에서 보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런 바보 같으니라고.ㅎㅎ
공의 기원. 작가는 우리나라 공의 역사에 관해 한바탕 뻥을 늘어놓았는데 토마스 굿맨이란 브랜드를 검색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진실과 허구를 의심했단 증거다. <스테판, 진실 혹은 거짓> 또한 마찬가지. 스테판 켄달 고디를 검색하고 그의 노래를 검색했으니 작가의 특출난 '아무 말'에 속았다고나 할까.
그렇듯 인간의 삶의 뿌리 즉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소설들은 더욱 설득력에 힘이 실린다. 특히 인류가 기만하고 묵인했던 비극적 사건들을 하나씩 포진시켜 두는 치밀함이란. 호되게 나무라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이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비슷한 주제와 분위기를 지닌 한국 작가들의 단편들 속에서 작가의 단편들이 단연 돋보였던 이유는 팩션이란 세계의 무궁무진한 확장성에 있겠다. 육각 모양의 축구공을 개발한 개발자가 조선인이라는 둥, 유명 뮤지션이 한국 땅에서 원어민 강사 생활을 했었다는 둥, 노벨 문학상이 제비뽑기로 결정되었다는 둥, 삽 하나만 있으면 지구에서 또 다른 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둥의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그럴싸한 모양새를 갖추고 톡 쏘는 과장법으로 정신을 간지럽힌다. 단, 스타워즈의 스카이 워커를 모르면 정작 지나칠 수도 있는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달 토끼 열여덟 마리가 인류의 정신을 지배하기 위해 도서 시장에 혼란을 주려던 계획이 실패에 다다르자 애초에 할리우드로 가야 했었다며 후회하는 장면은 너무나 현실적이지 아니한가. 넷플땡땡에 빼앗긴 인류의 정신세계. 심히 걱정스럽다. 그렇지만 '상 받은 작품은 어렵다'라는 편견? 이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작품성을 이해하기도 전에 난독증의 자괴감에 먼저 빠진 적도 있었으니.ㅎ 좋은 문학은 대중과 함께 호흡할 수 있어야 하고 좋은 독자란 문학을 통해 인생을 좀 더 유연하게 대처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아닐까 한다.
제일 끌렸던 단편은 <그리고 계속되는 밤>이다. 인류의 기술력이 초절정을 거듭해 인간은 나이를 계산할 수 없을 만치 오래 산다. (미래에는 노인이란 단어는 금기어다. <노인과 바다>가 더 이상 명품 고전이 아니란 말씀) 오래 살아서 좋겠다는 생각보다 더 끔찍한 건 죽을 때까지 노동에 시달리며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생명 연장 시술에 따른 빈부격차로 인해 차별과 혐오가 극에 달한다. 징그럽지 아니한가. 단편 제목이 목구멍에서 그만 컥! 걸린다. 인간의 욕망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수명 연장에 관한 미래는 절대 희망적일 수 없겠다. <조각 공원>의 기괴함과 우스꽝스러움은 뭐랄까. 인류가 점점 개인주의화되다 못해 사회현상에 무심해지는 현상을 꼬집는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시간의 끈과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지 않은 자들의 끈까지 잡아줄 여력이 있을 것 같지 않다. 나의 현재를 즐겨야 하니까. 공원에서 도시락 까먹는 것과 같은.
<해변의 묘지>의 요지는 난민이다. 국경은 넘을 수 있어도 차별의 벽은 넘을 수가 없다. 요즘 사람들은 다르다는 의미에서 두려움보다 혐오를 키워간다. 두려워서 해하는 게 아닌 무작정 싫어서 해하는 행위. 아시아 혐오를 바라보는 내 맘이 너무 무겁다. 한국인 박흥수를 도와준 알레한드로의 인터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누군가를 살려야 한다는 의지가 결국 나 자신을 사랑하게 하는 힘이 되는 것 같고요. -p.207 이 정신이면 테러도, 살인도, 전쟁도 없을 터인데.
<공의 기원>은 참 다양한 방향으로 읽혔다. 개발자가 공의 기원을 자신의 증조부와 그럴싸하게 연결 짓는 모습을 보며 힘 있는 자들에 의해 얼마든지 사건은 정교하고 치밀하게 굴러갈 수 있음을 보게 된다. 거짓은 이리 튀고 저리 튀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찍는다. 이래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있지 아니한가. 아동 착취의 그늘은 훗날 최첨단 설비로 인해 해결되지만 거대 실업난이라는 또 다른 그늘은 간과한다. 이렇듯 인간의 생존과 직결되는 양면성을 외면하면 자본에 따는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이다.
<골든 에이지>에서도 잠시 멈칫했다. 홀로그램 우주 안에서 가장 소중했던 순간만을 반복해서 사는 게 최선일까 싶다가도 만약 내가 그런 불행한 시간에 갇힌다면 홀로그램 속으로 들어가고 말 것 같다. 인생의 희로애락이 없는 세상이 마냥 행복할 것 같진 않지만 망각이라도 해서 고통을 줄이고 싶은 마음이 크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나의 골든 에이지는 아직 열려 있다. 그렇게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