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버 드림
사만타 슈웨블린 지음, 조혜진 옮김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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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 -p.120​

​그저 꿈을 꾸고 있다고 여기고 있는 아만다.

그녀는 지금 열과 싸우며 자신이 병원에 누워 있기 이전의 시간에 대해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녀가 쓰러지기 전 만났던 이웃 여자 카를라와 그 여자와 얽혀 있는 기묘한 사건은 자신의 아이 니나와도 연관이 있다.

 

소설은 아만다와 이웃 여자의 아들 다비드의 대화체로 구성되어 있다. 사건의 요지와 과정이 암호처럼 이루어져 있고 원인에 대한 추측도 독자의 몫이다. 목소리로만 들려주는 긴박감과 정체 모를 원인에 대한 의구심 그리고 막연한 미래에 대한 공포심에 눌린 채 이야기는 끝이 난다.

내가 뭘 읽은 거지?라며 생각에 잠겨 있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인간이 두 손으로 저지른 끔찍한 결과에.

어린 니나가 엉덩이에 묻은 물을 털어냈을 뿐인데 왜 손이 따가운 건지에 대해 간호사는 일사병 약만 처방할 뿐이다. 결국 그들이 한 거라곤 아무것도 없었다는 사실이 더 끔찍한 공포감을 불러왔다.

 

짐작하건대 이 마을은 무언가에 중독이 되어 있다. 원인은 물에서 시작했지만 그런 물은 인간이 땅속에 뿌린 독성 비료가 원인이었을 것이다. 단순히 그렇게만 추측하고 그들의 대화에 집중했다. 그 물로 인해 생명체가 죽어가고 기형아가 태어난다. 병원은 이미 제 기능을 상실한듯하고 그 사건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할 대책에 관한 내용이 없다. 사람들이 한 거라곤 고작 주술적 행위뿐이다.(그러한 다급함이 주술 따위에 의존하게 될 수 있겠지만) 그래서 책을 읽다 답답함을 느낄 수도 있겠으나 작가의 의도는 이것이 팩트임을 말하고자 했을 것이다.

 

이건 중요하지 않아요. 이건 정확한 순간이 아니에요. 시간 낭비하지 말아요. ​

다비드는 세세한 것의 중요함을 언급하면서도 어떤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고 자꾸만 다그친다. 아만다는 일어난 일들을 부정하며 마치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의 희생자가 된 것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다. 이 책의 원제는 '구조 거리'라고 한다. 다비드 또한 아만다에게 구조 거리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한다. 다비드는 그 구조 거리의 중요성을 부각하려 애쓰지만 아만다와 니나, 카를라와 다비드 사이에서 그 구조 거리라는 게 중요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우리의 삶에서 통하는 구조 거리는 대략 얼마쯤일까. 카를라와 다비드 사이의 구조 거리는 고작 일 미터였고 아만다와 니나가 함께 앉아 있던 그 짧디짧은 구조 거리라고 칭할 수 없었던 거리에서조차도 아만다는 아무것도 눈치챌 수 없었듯 그런 거리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곧 나쁜 일이 일어날 거야'라며 짐작할 뿐이고 예견할 뿐이고 조심하는 것 외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저 차를 조심하는 것 외에 드럼통을 조심해야 된다는 사실은 알지 못한다.

 

이 책을 두 번 읽으면서 굵은체로 이루어진 다비드의 대화만 연결 지어 읽어보았다. 이런 일은 언제나 서서히 일어나고 우리는 정확한 순간을 찾으려 애쓴다. 그럼에도 다비드는 이야기를 끝내버린다. 더 이상 가치가 없어요. -p.135​

다비드는 어린시절 자신이 묻어준 동물들의 죽음에 의구심을 품었고 사람들이 쓰려져 가는것에 대한 원인을 찾고자 했지만 아만다에게는 드럼통보다 니나의 생사가 중요했다. 다비드는 드럼통의 실체에 집중했지만 카를라는 저주 때문이라 여긴다.

 

실제 이 사건의 모티브는 아르헨티나의 환경문제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특정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와 두려움은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난다. 이야기에서 그 차이의 극명함을 볼 수 있었다.

벌레 같은 거요, 어디에나 다 있는. ​

다비드가 만들어 놓은 스물여덟 개의 무덤과 마을의 아이들이 실체일텐데 그들은 그 볼 수 있는 실체 앞에조차 두 눈을 감고 있었다. 결국 우리 두 손에 남는 건 무엇일까. 그것은 그저 따갑고 쓰라린 통증과 공허라는 실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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