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디스 워튼의 환상 이야기
이디스 워튼 지음, 성소희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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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녀석은 겁이 많다. 심지어는 아주 심각하게 귀신이 있냐고 물어온 적도 있다. 귀신 따위가 어딨냐고 엄포를 놓을까 하다 엄만 사십 평생 귀신 본 적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귀신을 봤다는 지인은 있었으니 있는 것 같다고도 했다. 그렇게 겁이 많은 녀석임에도 유튜브 알고리즘이 뿌려주는 무서운 이야기는 그렇게 눌러 본다. 어쩌면 그런 이야기들은 현실과 기묘하게 이어져 있기 때문에 호기심을 부르는 건지도 모른다. 갑툭튀가 수시로 등장하는 호러물보다 이런 미스터리한 분위기가 주는 신비감과 기이한 공포감을 즐기는 이들이 더 많지 않을까. 나 또한 학창 시절에 미드 <환상특급>만큼은 거의 놓친 적이 없었다. 유령은 현실과 사후의 세계를 잇고 있음과 동시에 과거의 시간들을 불러온다. 그것은 낡고 오래된 집일 수도 있고 과거를 품은 물건일 수도 있으며 죽은 혼령 혹은 유령을 보는 자일 수도 있다.

 

<순수의 시대>라는 작품만 떠올렸을 때 이 미스터리 단편들과 이디스 워튼이 쉽게 연결되진 않았지만 당시 시대적 배경을 크게 벗어나지 않아서인지 고전 미스터리물처럼 재미있게 읽혔다. 어린 시절의 병약함이 이야기로 재탄생한 걸 보면 평생 글을 쓸 팔자였나 보다. 6화. <충만한 삶>에서 그녀가 겪었을법한 증상들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는 오랫동안 기괴한 환영에 시달렸다. 서서히 떠나고 있는 삶의 단편적인 장면들, 가슴이 에일 듯한 시 구절들, 과거에 보았던 이미지가 뒤섞인 불길한 예감, 강과 탑, 둥근 지붕에 대한 흐릿한 인상들이 그녀의 마음속에 몰려들었다가 반쯤 잊혔다. 지금 마음속에서 꿈틀대는 것이라고는 어렴풋한 만족감이라는 원초적 감각뿐이었다. -p.211

그 원초적 감각들을 글로 옮겨 놓지 않았다면 그녀의 정신은 점점 더 무너져가지 않았을까. 마지막 단편 <매혹>에 등장했던 가여운 체니 이모처럼.

 

여덟 편의 단편들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비슷하다. 크리스마스 시즌만 되면 펼쳐보는 미스터리물하고도 느낌이 닮아 있다. 알 수 없는 죽음과 의문의 실종은 기본이고 사후세계를 건너간 자와 떠도는 유령 이야기도 있지만 내게 있어 심각해 보이는 건 겉도는 관계들이다. 부부 이야기도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데 6화 <충만한 삶>편은 뭐 거의 탈무드 수준이다. 3화 <귀향길>편에서는 죽음보다 더 무서운 공포란 이런 것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기차 안에서 남편이 죽자 주위 사람들에게 숨기기 위해 애쓰던 아내는 남편의 죽음과 같이 중간에 내던져질까 봐 두려워한다. 결국 내리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허둥대다 끝나버린다. 뭐가 이리 허무한지...

 

두려움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꼭 그것이 보이지 않는대서 온다고만 할 수 있을까. 2화 <하녀를 부르는 종소리>와 5화 <밤의 승리>편에서는 보이는 것에서 오는 두려움이 훨씬 극대화되고 있다. 죽은 이는 할 말이 있다. 아니 살아서 하지 못한 말들을 가지고 이승을 떠돈다. 한참···, 한참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p.60 누군가의 입으로 알게 되는 사실도 있지만 4화 <기도하는 공작부인>편처럼 전설이 되어 남기도 한다.

 

오, 사실이라···. 사실이라는 게 뭔가 그저 상황이 특정한 순간에 우연히 어떤 식으로 보이는 걸 두고 사실이라 하지 않나. -p.184 5화. <밤의 승리>편에서 붉어진 팩슨의 손이 사실이라면, 그렇다면 진실은 뭘까.

이렇듯 시간을 건너 뛴 이야기들의 구멍을 메워가는 건 독자들의 몫이다. 모호한 결말과 불명확한 관계들 사이에 드리워진 의문이 시원하게 풀리지 않아 답답한 기분도 있지만 인생이 뭐 다 그렇지 하고 느슨하게 풀어두련다. 환상은 잘 짜인 공포보다 훨씬 삶을 독특한 방식으로 관찰할 수 있어 재밌으니 이 즐거움을 느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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