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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예술가의 초상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6
제임스 조이스 지음, 진선주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2월
평점 :
아일랜드의 대표 작가 제임스 조이스. 그는 젊은 시절 스티븐 디덜러스라는 필명을 짓는다. 신화와 종교를 바탕으로 한 이름에는 나름의 의지와 포부가 있었다. 제임스 조이스라는 실명 대신 필명으로 발표한 단편들이 빛을 보지 못하자 소설 속 주인공 이름으로까지 삼으며 자전적 이야기를 담아 간다. 1장의 문은 그의 빛바랜 유년시절의 기억에서 출발한다. 아버지가 들려주었던 이야기, 어머니의 냄새, 그때 들었던 노래들이 그리움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생의 고민을 암시하는 듯한 문장이 시적으로 녹아있다.
조이스의 문장은 유독 촉감이 살아있다. 시력을 잃어가는 그의 현재때문이었으리라. 유심히 읽다 보면 반복되는 문장도 더러 보인다. 그렇기에 시간을 건너뛰는 유년시절의 기억이 좀 더 생생하게 다가온다. 아버지의 높은 학구열덕(?)에 클롱고우스 학교에 남겨진 스티븐은 그때부터 세상의 오물과 차가운 공기에 몸서리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자신의 이름을 이상하게 보는 이부터 짓궂은 아이들, 게다가 부당하고 잔인한 체벌까지. 지리 교과서 귀퉁이에 적힌 그의 세계는 우주까지 펼쳐져 있었지만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장난스럽게 가볍고 선생님들의 목소리는 크고 무겁다.
방학일만을 기다리던 스티븐은 집안의 가세가 기운 덕(?)에 클롱고우스에서 벗어나 벨비디어 칼리지로 편입하지만 그때부터 그는 방황의 조짐을 보인다. 집안은 급속도로 기울고 아버지의 허영에 신물이 난다.
그의 소신이 담긴 글은 이단으로 취급받고 그가 추구하려던 삶에 한 발자국도 다가서지 못하자 증오심만 커져간다. 반항의 불꽃은 일렁이고 거리를 배회하는 횟수는 늘어간다. 마음속에 품고 있던 책 속 여인의 이미지가 육욕으로 꿈틀거리자 그는 사창가로 향한다. 실제 그는 아버지의 음주와 폭언과 폭력 그로 인한 어머니의 지나친 신앙심으로 방황의 골이 깊었고 열네 살 때 사창가를 드나들었다고 한다.
3장과 4장부터는 종교적 색채가 짙어진다. 천국과 지옥의 형상이 등장한다. 스티븐은 양심을 잊은 채 욕망을 절제하지 못함을 질타하며 자책하고 괴로워한다. 죄에 대한 두려움은 지옥의 형상이 구체화되어 그를 괴롭히고 악에 굴복했다는 사실에 혐오감을 느낀다. 지옥 같은 시간을 견디다 못해 고해성사를 한 스티븐은 한결 가벼워진 마음(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는 사실)으로 신앙에 지나치게 몰입한다. 그런 이유로 성직자가 되기를 권유받지만 책임감을 감당할 만큼 신앙이 깊지 않음을 깨닫는다. 스티븐의 내면은 자유를 향한 날개가 돋아나고 있었고 예술가의 본능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즈음 스티븐은 자신의 이름에 특별한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된다.
과거 어느 때와 달리, 이제 그의 이상한 이름은 하나의 예언처럼 느껴졌다. -p.227
<파이 이야기>의 파텔과 <시간은 밤>의 안나 또한 이름과 운명을 동일시했었다. 어쩌면 그런 인물들 중에 스티븐은 최고이지 않을까.ㅎ 그 깨달음 이후 그는 인생의 진입로를 찾는다. 결정적으로 바닷가에서 본 한 소녀의 모습에서 생의 에피파니를 경험하며 천국의 기분에 사로잡힌다. 이름에 집착하고 무언가 찌릿한 순간을 경험하는 과정을 계속 그려보았다. 종교나 도덕적 성찰이 아닌 예술적 성찰이라 그런지 여전히 와닿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한 사람의 영혼이 탄생하기만 하면 당장 그물을 씌워 날아오르지 못하게 해. 네가 지금 나한테 말한 민족이니 언어니 종교니 하는 그물. 나는 그런 그물을 뚫고 날아오르려고 노력할 거야. -p.337
5장에서는 예술가의 고민과 정치와 종교에 대한 폭넓은 고민들이 펼쳐진다. 예술이란 무엇인지,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또 무엇인지, 예술가의 자질과 예술과 욕망의 관계, 연민과 공포의 정의에서 출발한 심미적 관계, 신의 존재와 종교의 본질, 국가의 정체성과 개인의 관계에 대한 고민과 확신을 보여준다. 삶의 소음을 잊고 자연에서 영혼의 고통을 씻으려 했으며 공상과 침묵 또다시 소음 속을 거닐며 정체성을 찾아간다. 그는 종교를 버린다. 그의 눈에 비친 신부의 모습은 그저 노인의 손에 들린 지팡이 같은 존재일 뿐이다. 사상 따위는 자체의 법에 지배를 받으며 영혼 또한 언어의 그늘에 갇힌다.
그럼에도 논쟁은 끊임없다. 그의 소신은 더욱 굳어지고 영혼의 떨림은 예술적 시구로 꿈틀댄다. 이젠 정말 떠날 때가 된 것임을 깨닫는다.
조이스의 실제 삶을 보면 그는 떠났으나 끝내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더블린이라는 글자가 짓누르던 삶을 글로 옮겨 놓았을 뿐인데 그에게 가해진 벌은 잔인했다. 그의 삶이 이토록 아이러니해진 이유가 그의 지나친 예술가적 기질 때문이었을까. 그럼에도 결과적으로 제임스 조이스는 날아올랐다.
그는 4월 5일 자 일기에 이런 문장을 끄적여 놓았다. '사나운 봄, 질주하는 구름들. 아, 인생이여!'
그의 고뇌는 사납고 그의 영혼은 질주한다. 그의 인생은 그렇게 나아가리라.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