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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 요조와 임경선의 교환일기
요조.임경선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평점 :
친구가 별로 없는걸 부끄러워할 나이는 지난 것 같고 ㅎㅎ 인생 얘기 시시콜콜 나눌 언니가 한 명쯤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다. 절친이라도 각자의 행복을 좇느라 바쁘고 책 얘기와 내 생각을 주저리주저리 나누기엔 코드가 맞지 않다. 현재는 독서모임이 조금의 갈증을 덜어줘서 즐겁긴 하지만 그 또한 적정선을 지켜야 관계가 유지된다. 아마도 나와 비슷한 처지가 많지 않을까.
그럼에도 선뜻 관계를 만드는 것 또한 쉽지 않다. 어렸을 땐 다칠까 봐 두려웠지만 지금은 피곤하다는 핑계가 더 가까운데 이도 따지고 보면 결국 솔직하기 어려워서 오는 피로감일 수도 있다. 말하고 보니 내가 문제구나.ㅋ
난 요조도 임경선 작가도 잘 모른다. 단지 문학동네라는 출판사의 인연과 교환일기에 관한 호기심 때문에 샀다. 나는 학창 시절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와 쪽지들을 보관하고 있다. 차마 버릴 수가 없어 모아둔 것들이 보물 1호가 되었다. 어쩌다 상자를 열어 꼬깃꼬깃 접힌 기억들을 펼쳐보면 도무지 접힌 채 펴지지 않는 이들도 있다. 그럼에도 그 편지들 속엔 우리들의 속 사정이 리얼하게 기록되어 있다. 사연들은 바래졌을지 몰라도 어느 특정 장면들이 머릿속을 채울 때면 심장이 저릿해져온다. 그땐 그게 힐링이었는데 지금은 왜 마음을 닫아버리고 사는 걸까. 단지 맘 맞는 이가 없어서일까. 두 여자의 말말말도 문자 대화에서 시작되었다는데 그러고 보면 쉴 새 없이 말을 하고픈 이가 없어서인 듯도 하고.
그리하여 난 두 여자의 틈바구니에 꼽사리 끼어있는 기분으로 읽어 나갔다. 재밌었다. 삼십대와 사십 대, 미혼과 기혼이라는 조건만 빼면 글을 쓴다는 공통점 하나만으로도 공감대가 아주 많아 보여서인지 오가는 대화들이 자연스러웠다. 그녀들의 친분의 깊이는 알 수 없으나 생각의 톱니가 잘 맞아 보여 읽기가 편안했다. 어쩌면 나 역시도 그녀들과 비슷한 생각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수도. 책을 잠시라도 놓고 있으면 허기가 온다는 말 완전 공감^^
약봉투에 적힌 45라는 숫자가 진정 내 나이인가를 의심하면서도 하나둘씩 고장나는 몸땡이를 보면 세월의 정직함에 웃음이 난다. 일에 치여 산 삼십대보다 사십대의 여유가 좋고 말의 무게를 체감하기에 언어가 우리의 사고에 영향을 미친다는 견해도 충분히 동의한다. 서로의 라이프 스타일과 성향이 달랐음에도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건 서로를 인간적으로 믿기 때문이고, 상대의 눈을 통해 나를 다시 바라보고 상대의 말 한마디에 흔쾌히 나를 수정할 수 있는 것 또한 진심이 통하기 때문이다. 생각의 다름이 조심스러워 말을 아낄 필요도 없다. 상대의 깜냥을 알기에 글 속에서 푸근함이 전해진다. 생각의 옳고 그름을 따질 필요가 없는 사이가 된다는 게 얼마나 부러운 일인가.
솔직과 정돈된 가식의 어중간한 지점을 맴돌고 있는 나는 앞으로 어떤 인연에게 맘껏 솔직해질 수 있을까.
교환일기를 통해 서로의 정(우정과 속 사정)을 나누다 보면 마음이 바로 서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딸아이에게 꼭 이 책을 읽히고 싶다. 좀 더 주체적이고 또렷한 존재로 거듭났으면 해서.
누군가의 수다가 조언이 된다는 건 역시 예술가들이기에 가능한 것이었겠지만 더 많은 분들이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참한 생각은 닮고 싶은 것이기에.
어쩜 그리도 고마운 문장들이 많던지.
'하나로 똘똘 뭉치는 것' 이상으로 '각자의 개체로 흩어질 줄 아는 것'이 중요한것 같아. -p.67 라는 말을 각자가 잘 인지한다면 속터지는 일이 좀 줄어들텐데.
"어차피 해봤자야"
"사람들은 다 똑같애"
나는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과는 가급적 거리를 두고 있어. - p.97
나도 앞으로 이런 말은 쓰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