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일러스토리 2 - 고전으로 보는 로마문화사 인문학 일러스토리 2
곽동훈 지음, 신동민 그림 / 지오북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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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접하며 만난 중세 시대에 인문학을 접목하여 좀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보면 흥미는 배가 된다.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분야가 넓어지는 순간이 오기 마련인데 이 책은 중세 인문학 입문서로 참 좋은 책이다.

책은 역사적 지식에 인문학을 곁들이고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웃음을 유발하는 재미난 일러스트로 구성이 되어있다. 대략 250페이지 정도의 분량을 볼 때 로마에 관한 기본 배경지식을 갖고 있는 편이 좋을듯하다. 간략하지만 흥미로운 내용들의 이해를 돕고 저자의 추천도서에 관심이 생길 정도의 지식이라도 괜찮다.

올여름 처음 만난 그리스 편에서도 가볍게 읽기 좋은 몇 권의 철학 서적을 더 들이기도 했었다. 그런데 로마는 그보다 훨씬 방대해서 추천도서를 선뜻 읽어볼 엄두가 나지는 않지만 분명 로마를 오래도록 기억하는데 좋을 것 같다.
이전에 읽은 내용들이 오래 머물면 좋으련만 늘 그렇듯 기억은 가물가물이다 그러던 차에 2권을 읽다 보니 꺼져가던 기억을 살려낼 수 있어서 반가웠다. 로마 하면 뭐니 뭐니 해도 정치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에 역사학자들의 시선에 문학가들의 시선을 더해 다양한 시각으로 로마를 세세히 살펴보았다.

그리스인들이 모든 것을 시작했다면,
로마인들은 그 모든 것을 지중해 전역으로 퍼뜨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p.4

로마의 건국신화부터 시대를 대표하는 영웅들과 정치, 문화 그리고 쇠락의 이유 등이 일곱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늘 그렇듯 부풀려진 신화 속 살벌한 패권 다툼은 피 튀기는 로마 정치의 축소판을 보는 듯하다. 사소한 일화들마저도 황당한 내용들이 많지만 오히려 독자들을 자극하기는 안성맞춤이다.

지중해의 패권 다툼의 하이라이트는 한니발 장군의 활약상일 것이다. 코끼리를 이끌고 알프스를 넘으며 천하무적임을 과시한 일화와 스키피오가 카르타고를 정복하여 얻었다는 이름 속에 숨은 일화도 재미있다. 관련 저서로 몸젠의 [로마사]는 꼽고 있는데 공화정 수립 과정과 패권을 장악할 때까지 가 상세히 기술되어 있어 많은 도움이 될듯하다.

3장에서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관한 내용을 만나볼 수 있다. 그의 유명한 일화나 명언들은 익히 들어본 적이 있을 터인데 공화정에서 제국으로 변모해가는 정치 상황 속 그의 업적이나 정치적 소신 등을 살펴보며 역사를 익히고 그 일화 속에서 만나는 셰익스피어의 문장들은 한층 더  돋보인다. 브루투스와 카이사르의 믿거나 말거나 이야기와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의 이야기는 익히 들어보았지만 다시 읽어보아도 흥미롭다. 일러스트를 들여다보면 그 느낌이 배가 된다.ㅎ

 

 

 

겉치레를 중시했던 로마는 정치에서도 그 면모가 드러난다. 공화국을 표방하였으나 실질적으로는 제국에 가까웠지만 형식적인 면과 실용적인 면도 두루 갖추었기에 팍스로마나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시기에도 미친 독재자와 황제들의 비참한 말로는 정말 추잡함의 끝을 보는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의 평화가 오랜 기간 유지될 수 있었던데는 아우구스투스의 노고가 반영된 결과임을 말하기도 한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와 '빵과 서커스'라는 말 등에서 그의 업적과 정치를 비추어 볼 수 있다.
로마의 역사학자 수에토니우스에 따르면,
아우구스투스는 "나는 벽돌로 된 로마를 물려받아 대리석으로 바꾸어놓았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p.131

 반면 칼리굴라와 네로의 사이코 패스적 행동은 광기가 얼룩져 섬뜩한데 세계사 책에서 대충 지나간 내용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읽어보니 공포가 전율한다. 어떻게 저런 왕이 집권했음에도 불구하고 평화를 이어나갈 수가 있었단 말인지.. 

로마인들의 그리스 문화에 대한 강한 열망은 특히 중산층에서는 두드러졌는데 그리스어를 사용함으로써 학문이나 지식의 위상을 높이고 출세의 지름길로도 이용했다. 또한 로마의 문화를 그대로 흡수하다 못해 조각이나 미술품 소장에 이어 복제품도 많았다. 이 부분은 얼마 전에 보았던 중세 미술사에서 본 기억이 떠올랐다. 그 외 로마인의 자유로운 성문화와 자유롭다 못해 질서 없는 결혼문화를 보며 황당에 황당이 이어졌다. 수에토니우스의  [열두 명의 카이사르]를 보면 일일극의 막장은 양반이다.ㅋ 그래서 저자가 재미로 따지자면 3위안에 꼽을 수 있다는 이 책도 리스트에 올려놓았다.

마지막으로 간략하게 오현제 시대를 지나 사두 체제를 거쳐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이르는 로마의 성쇠에 관한 부분은 좀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르만의 대이동이라고 한 문장으로 결론 내리며 책을 덮고 지나쳤는데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는 대략 500페이지 분량 여섯 권짜리 책인 만큼 방대한 내용에 선뜻 펼쳐들 것 같지는 않지만 한 번은 들춰보고 싶은 책이다.

"로마 제국이 왜 멸망했는지 묻는 대신 오히려 어떻게 그토록 오래 지속될 수 있었는지 놀라워해야 할 것이다."
- 영국 역사학자, 에드워드 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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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조심 웅진 모두의 그림책 7
윤지 지음 / 웅진주니어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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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
좋은 이들과 함께 해서 즐겁고 그들의 도움을 받아서 고마울 때도 있지만
누구나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어려움은 어딜 가나 존재한다.
그것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평생 우리를 따라다닐 숙제이다.
점점 타인으로 인해 마음을 다치는 이들은 많아지고 또 점점 자기만의 방으로 숨는 이들은 늘어만 간다.
그렇게 소심해진 마음은 제대로 위안을 얻지 못한 채 또 상처로 얼룩진다.
자신의 다친 마음 언저리를 호호 불어줄 여유를 갖기 위해 다양한 심리 서적을 찾는 이유도 여기에 있겠다.

저자 윤지도 소심한 성격 탓에 사람을 피하며 집에만 머무르자 소라게라는 별명을 얻는다.
자신의 경험을 녹여 낸 이 책은 소라게를 중심으로 숨을 공간 하나씩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 주인공이다.
소심이 소라게의 일상을 통해 그의 하루가 얼마나 긴장의 연속인지 들여다보자.

 

 

 

앞표지를 들추면 아침인사하는 해님과 아직 각자의 집에서 곤히 자고 있는 친구들이 보인다.
저마다의 개성이 있듯 집도 다 다르다. 심지어 나무의 종류도 다르다.

그렇게 알람 소리에 놀라 출근길에 나서는 순간부터 고난이다.
사람들 틈에서 걷고, 지하철을 타고, 엘리베이터를 타는 모든 과정들 속에서 앞서거나 당당할 수가 없다.
타인 속에 뒤엉켜 섞이는 일이 소심한 성격 탓에 쉽지 않다.

유독 공감했던 내용은 만 원인 버스이나 지하철에서 내려야 할 정거장을 지나쳤던 경험이다.
나의 소심함과 더불어 타인을 지나치게 의식하면 제때 내 목소리를 낼 수가 없음을 배웠던 순간이었다.

 

 

 

소라게의 소심모드는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큰소리에도 놀라고 자꾸만 위축된다.
그래서 자꾸만 껍데기 속으로 모습을 감추는 일이 잦다.
상사는 그렇게 소심해서 어디에 써먹겠냐는 듯 나무란다. 이런 나를 당최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동료의 따뜻한 위로 한마디와 친구들 덕에 위로를 받는다.
다른 친구들의 소심한 모습도 출근길서부터 곳곳에서 보인다.
아이들과 함께 숨은 그림 찾듯 찾아보는 재미도 있겠다.

큰소리에 모두 숨어버린 친구들의 모습에서 나만 유독 그런 것이 아님을,
누구나 마음속 소심이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좀 더 긍정의 힘을 얻고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편안해 보였고
세상에서 제일 편한 집으로 돌아와선 안도의 한숨으로 하루를 마무리 짓는다.
그렇게 자신에게 건네는 위로의 한마디는 더 나은 내일을 위한 거름이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재미난 캐릭터와 눈을 사로잡는 일러스트가 돋보이는 책이다.
아이들에게 우리 마음속 소심이를 다독이는 방법은 적절한 자기 위안임을 보여준다.
자책은 쌓이면 더더욱 자기방에서 나오기 어렵다.
내가 힘들어하는 부분은 분명 타인도 힘들어하고 고민하는 일임을 일깨워주며 토닥여 주어야 한다.

나의 어린 시절이기도 했고 지금의 내 모습이기도 한 소라게를 보며
엄격한 잣대로 나를 누르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았다.
더불어 내 아이들에게도 소심하다며 빈정거리는 말투로 상처 준 일은 없는지 반성하기도 했다.

살포시 다가와 미소를 건네는 소라게의 다정한 위로는 상처받은 마음에 반창고 역할을 해 주는 듯하다.
"난 왜 이 모양일까"라는 말보다 "오늘 하루, 수고했다"라며 어깨 한번 토닥인 후 잠자리에 드는 습관도 좋을 것 같다.
스스로 소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사람 만나는 게 힘든 사람들에게
그냥 그 모습 그대로도 괜찮다고 위로하는 따뜻한 그림책이다.

그래도 어쩐지 소라게가 부럽기도 한다.
정말 숨고 싶을 때 숨어버릴 수 있는 껍데기를 지니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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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미소
줄리앙 아란다 지음, 이재형 옮김 / 무소의뿔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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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참 아름다운 이야기. 내겐 더없이 그랬다. 한 남자의 일생은 달이 점점 차오르며 만들어내는 모양새처럼 큰 덩어리의 시간 안에서 무수한 변화를 맞이한다. 그는 어릴 적 바라본 달의 변화에 공상의 날개를 달았고 그렇게 뱃사람이 되었고 소설가도 된다.
그에게 불운의 시간은 아버지와 함께 한 성장기뿐이었을뿐 그의 인생은 도전 속에 우연이라는 행운이 더해진 새로움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선택한 삶들은 훗날 운명 같은 우연을 가져다준다.

삶은 이렇게 우연과 선택과 방향 전환으로 이루어지는 법이다. p.143

밀 농사 집안의 넷째 아들로 태어난 폴은 생각이 잦고 상상을 즐기는 소년이었다. 하지만 태생이 지독한 농사꾼이었던 아버지에게 폴은 성에 차는 일꾼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냉대와 형제들의 무관심 속에서도 따스한 어머니의 손이 있었고 학교 선생님은 인생의 방향을 다져주었다.
그러는 사이 마을은 전쟁의 시작과 끝을 통과해가고 있었다. 전쟁의 끄트머리, 증오로 마을이 들끓던 그 자리에서 폴은 연민과 인간애를 끌어안고 독일 장교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기로 마음을 굳힌다.

미소가 아름다웠던 폴! 선하고 소박하고 긍정적이며 인간적인 그에게 달의 여신도 함께 한듯하다. 그리고 그가 맺은 인연들은 하나같이 그가 해야만 했던 숙명에 다리를 놓아준다. 그의 인간적인 면모는 시간이 지나고 세월의 때를 입고 어른이 되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인생을 사랑했듯 한 여인을 사랑했고 그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도 애틋했다.
그 어떤 인생의 고난도 그를 막지 못했지만 사랑하는 어머니의 죽음 앞에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가 그녀를 회상하는 장면에서는 눈물이 차오르기도 했다.

우리는 나이에 상관없이 언제나 우리 어머니의 자식들이다. 마치 시간이 그 밀도와 현실성을 잃어버린 듯 모든 시절이 우리 머릿속에서 뒤섞인 것 같았다. -p.328

삶은 냉정해서 아프다. 무수한 의문과 가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지만 선장의 말처럼 길을 잃어야만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가 자신만의 길을 찾는 동안 독자는 장교의 딸을 되새기며 따라갈 것이다.

문득 달은 인간들의 소원을 가득 품어서 빛을 내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이들이 달을 보며 낭만을, 희망을, 행복을, 고독을, 아픔을, 슬픔을, 공허를 달래고 있을 테지. 그리고 그 보답으로 달빛 미소를 선사하는 건 아닐까.
폴처럼 선상 위에서 올려다 본 밤하늘이 무척 궁금해진다. 망망대해에서 쏟아져 내리는 빛들에 어떤 생각들이 차오를까. 그러고 보니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의 명장면이 또 떠오른다.

 

한 남자의 생애가 버라이어티하게 들어차 있어서일까, 책은 제본마저도 견고해 보인다.
달을 사랑했고 그의 미소는 달과 같았고 더불어 그의 인생도 달이 차고 기울듯 끝이 났다.
그의 인생을 지칭하는 무수한 태그들은 지금의 내 인생과 주변인들을 돌아보게 하는 긴 여운을 남겼다.

이 소설은 독자들에 의해 먼저 알려졌다고 한다. 읽는 내내 피식 웃게 만드는 작가의 유머러스함이 좋았고 (그의 미소도 폴만큼이나 아름다워 보인다.) 문학적이고 시적이며 철학적 문체들도 매력적이었다. 게다가 죽음마저도 미소 짓게 만드는 밝은 기운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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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갈래 길
래티샤 콜롱바니 지음, 임미경 옮김 / 밝은세상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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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 돌고 돌면 어디서든 서로 보이지 않는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얘기는 들어보았을 것이다. 지구는 둥그니까.ㅎ 소설은 [세 갈래 길]이라는 제목처럼 세 여인의 이야기이다. 여자라는 것만 빼곤 놓인 환경이 너무나 달라 소설의 초반부엔 그녀들이 다른 시공간에 있는 줄로 착각할 정도였다. 그러한 착각 속에 있다 후반부로 갈수록 특정한 매개체로 서로 이어져 있음이 드러난다.

이렇듯 지구촌의 다양성에 다시 한번 놀라기도 하지만 때로는 인간의 척도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에는 경악할 정도다. 여전히 인간 존엄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곳곳의 뉴스들에 내 귀를 의심하기도 하니까.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태어남과 동시에 인간의 삶 따위 없었던 여인 스미타는 인도 카스트제도의 저 밑바닥인 불가촉천민이다. 불가촉천민이란 단어에서 느껴지는 절망감은 예전에 읽었던 [적절한 균형] 속 두 남자의 삶이 여전히 뇌리에 남아 있어서다. 희망도 없이 끝난 소설에서 난 인도를 갉아먹고 생사람도 잡아먹었던 제도를 경멸했고 인간의 무지와 어리석음을 한탄했다.
그녀에겐 더 이상 노력해도 더 나아질 것이 없던 삶이었지만 딸에 대한 집념만큼은 불타올랐다. 자신의 딸만큼은 더러운 똥물을 뒤집어쓰고 살지 않게 하겠다는 일념은 그녀를 날아오르게 했다.

인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시칠리아의 줄리아는 아버지의 가업을 물려받아 가발공장을 이어나가겠다는 야무진 포부가 있는 아가씨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사고와 가발공장의 경영난으로 공장을 지켜내야 할 운명에 놓이게 된다. 보수적 편견과 한판 붙어야 하는 그녀도 날아오를 채비를 한다.

몬트리올의 사라는 엄격한 자기관리와 노력으로 남성들의 세계에서 입지를 굳힌 커리어 우먼이다. 성공만을 위한 삶에서 참된 인생의 의미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엄마로서의 죄책감과 자신의 성공을 맞바꿀 수 있다고 여기며 그녀의 것들을 부여잡고 버틴다. 그렇게 견뎌온 대가는 그녀에게 귤만한 덩어리를 남겼다. 그것이 그녀를 지워가는 사이 사라는 철저히 조직으로부터 왕따를 당한다. 항암치료로 듬성듬성 빠진 머리카락에 절망할 시간이 없다. 그녀를 들어 올린 희망은 오로지 그녀를 위해서 대륙을 건너온듯한 가발이었다.

마치 페미니즘 소설의 끝장판을 본듯하다. 하지만 그녀들에겐 착한 남자도 있었다. 남겨진 스미타 남편의 뒷일은 상상하고 싶진 않지만 그녀에겐 남편이, 줄리아에겐 카말이, 사라에겐 완벽한 보모 매직 론이 있었다는 사실로 조금 위안도 얻었다.

세상에는 차별을 구분 짓는 선들이 무수히 많다. 다 열거하기에도 벅찰 만큼 우리는 서로를 작대기로 그어놓고 판단한다. 조금이라도 넘어오면 후려칠 태세다. 차별과 편견에 대해 아무리 부르짖어도 인간의 욕망앞에선 영원한 숙제로 남겠지만 깨어있고 자각하는 인간들이 많이 지길 바라본다.

여하튼 3시간 남짓 나는 세 나라를 오가며 수만 가지 감정을 뒤범벅해놓고 책을 덮었다.
각자의 인생 앞에서 날아오를 준비를 하는 그녀들, 용기라는 이름 앞에 희망의 빛이 비추어질는지는 이제 독자의 몫으로 남겨졌다.
그렇게 소설은 끝났지만 그 에너지가 내게로 전해진 듯하다.
그녀들의 용기와 굳건한 믿음의 기운을 얻어 새해에는 나도 좀 더 날아올라볼까나.ㅎ

삶에 쳐놓은 차단 벽을 없애면 거짓말도 필요 없어진다. 더는 삶을 둘로 나누어 살지 않아도 된다. - p.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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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스 팍스 1
사라 페니패커 지음, 존 클라센 그림, 김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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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와 팍스.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 여우의 뒷모습이 주는 친근함에 푹 빠졌다. 그리고 그것이 단번에 존 클라세의 그림임을 알아차렸다. 그의 모자 시리즈와 샘과 데이브가 땅을 팠어요는 몇 권 안되는 원서 칸에 꽂혀있는 책이다. 이 책은 그의 그림으로 단연 더 빛나 보인다.
제목처럼 동물과 인간의 평화로운 공존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첫 장부터 만남도 아니고 헤어짐이다. 아이가 애처롭게 애원하는 모습과 영문도 모른 채 덩그러니 버려진 팍스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소설은 시간이나 장소에 대한 특별한 언급은 없다. 전쟁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기 전의 공포와 두려움이 깔려있다. 그리고 여우의 이름 팍스(pax)를 통해 평화를 전하고자 한다.

사고로 엄마를 잃은 어린 소년 피터는 어느 날 우연히 홀로 남겨진 새끼 여우 한 마리를 발견한다. 동질감! 하나만으로도 둘은 충분히 엮일 수 있는 조건이었고 소년은 동심을 간직한 아이답게 여우를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
하지만 전쟁은 더 가까이 왔고 피터의 아버지마저 전쟁터로 떠나야 하는 상황이 온다. 결국 피터와 팍스는 각자의 인생길에 놓인다. 자연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한 채 피터에게 더 이상의 선택권을 주지 않는다. 그렇듯 감당하기 힘든 두 번의 상실감은 피터에게 엄청난 죄책감으로 돌아온다. 이미 12살 소년이 헤쳐나가기에 팍스와 피터의 거리는 아득하기만 하다. 하지만 이미 길들여진 팍스를 향한 걱정은 소년의 발걸음을 재촉했고 보이지 않는 끈이 다시 이어질 것을 확신하며 길 위에 올라선다.

 

 "내가 갈게. 조금만 기다려."

 

 

 

팍스에게 가야 한다는 일념만으로는 길 위의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의 여정은 부상이라는 난관에 봉착하고 마음은 더 조급해진다. 하지만 피터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어준 여인, 볼라로 인해 팍스에 대한 걱정을 잠시 덜게 된다.
피터에게 볼라의 존재는 도움의 손길 그 이상이었다. 반면 전쟁으로 한쪽 다리를 잃고 세상과 문을 걸어둔 채 죄책감으로 지내던 볼라는 전쟁 전의 자신의 모습을 하나하나 찾아가는 것부터 시작한다. 전쟁은 그렇듯 모든 걸 앗아가버렸지만 그녀에게도 피터의 등장은 걸어둔 문을 여는 열쇠였다.

 

 

 

 

피터는 상처가 치유되는 사이 한층 더 인생을 배우며 성장한다. 같은 처지였던 팍스도 생존을 위해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동안 종족 간의 우정과 신뢰를 깨달으며 자연과 호흡하는 법을 터득한다. 피터도 팍스도 고난이 주는 쓴 약을 삼키고 울렁거림을 이겨낸다.
아이도 가쁘게 호흡했다. 그리고 팍스를 향한 보이지 않는 끈을 놓지 않았다. 화약과 탄약 냄새가 코를 찌르는 전쟁의 한복판에서 소년과 여우가 느꼈을 아련함으로 나는 내 고양이들을 꼭 끌어안았다.

동물들의 시선에 담긴 인간들은 이기적이고 어리석기 그지없다.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던 사슴 무리들이 인간의 톱질 소리에 화들짝 놀라 달아난다. 그리고 피터는 뒤돌아 보던 사슴의 눈빛 속에서 원망을 알아차린다. "거기 인간, 너희가 전부 다 망쳤어." p.65
무모한 전쟁이 남긴 거라곤 폐허뿐이다. 몸과 마음 깊숙이 베인 상처는 회복되기 어렵다. 이미 전쟁으로 한쪽 다리를 잃은 볼라도 마음이 쓰라린데 팍스를 따르던 어린 여우 런트도 한쪽 다리를 잃고 만다. 그것이 팍스의 발걸음을 돌리게 한 이유였을 것이다.

팍스! 팍스! 하고 외쳐대는 피터의 목소리는 마치 평화를 갈망하는 세상의 목소리처럼 감긴다. 정말 사랑하기에 팍스의 삶을 이해하고 다시 온전히 받아들인 피터는 분명 인생의 카드에 무엇을 써야 할지 깨달았을 것이다.
한파가 기승을 부리는 지금, 눈시울 뜨끈하게 만들어준 이야기를 만나서 지금 내 마음속은 팍스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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