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스 팍스 1
사라 페니패커 지음, 존 클라센 그림, 김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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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와 팍스.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 여우의 뒷모습이 주는 친근함에 푹 빠졌다. 그리고 그것이 단번에 존 클라세의 그림임을 알아차렸다. 그의 모자 시리즈와 샘과 데이브가 땅을 팠어요는 몇 권 안되는 원서 칸에 꽂혀있는 책이다. 이 책은 그의 그림으로 단연 더 빛나 보인다.
제목처럼 동물과 인간의 평화로운 공존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첫 장부터 만남도 아니고 헤어짐이다. 아이가 애처롭게 애원하는 모습과 영문도 모른 채 덩그러니 버려진 팍스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소설은 시간이나 장소에 대한 특별한 언급은 없다. 전쟁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기 전의 공포와 두려움이 깔려있다. 그리고 여우의 이름 팍스(pax)를 통해 평화를 전하고자 한다.

사고로 엄마를 잃은 어린 소년 피터는 어느 날 우연히 홀로 남겨진 새끼 여우 한 마리를 발견한다. 동질감! 하나만으로도 둘은 충분히 엮일 수 있는 조건이었고 소년은 동심을 간직한 아이답게 여우를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
하지만 전쟁은 더 가까이 왔고 피터의 아버지마저 전쟁터로 떠나야 하는 상황이 온다. 결국 피터와 팍스는 각자의 인생길에 놓인다. 자연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한 채 피터에게 더 이상의 선택권을 주지 않는다. 그렇듯 감당하기 힘든 두 번의 상실감은 피터에게 엄청난 죄책감으로 돌아온다. 이미 12살 소년이 헤쳐나가기에 팍스와 피터의 거리는 아득하기만 하다. 하지만 이미 길들여진 팍스를 향한 걱정은 소년의 발걸음을 재촉했고 보이지 않는 끈이 다시 이어질 것을 확신하며 길 위에 올라선다.

 

 "내가 갈게. 조금만 기다려."

 

 

 

팍스에게 가야 한다는 일념만으로는 길 위의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의 여정은 부상이라는 난관에 봉착하고 마음은 더 조급해진다. 하지만 피터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어준 여인, 볼라로 인해 팍스에 대한 걱정을 잠시 덜게 된다.
피터에게 볼라의 존재는 도움의 손길 그 이상이었다. 반면 전쟁으로 한쪽 다리를 잃고 세상과 문을 걸어둔 채 죄책감으로 지내던 볼라는 전쟁 전의 자신의 모습을 하나하나 찾아가는 것부터 시작한다. 전쟁은 그렇듯 모든 걸 앗아가버렸지만 그녀에게도 피터의 등장은 걸어둔 문을 여는 열쇠였다.

 

 

 

 

피터는 상처가 치유되는 사이 한층 더 인생을 배우며 성장한다. 같은 처지였던 팍스도 생존을 위해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동안 종족 간의 우정과 신뢰를 깨달으며 자연과 호흡하는 법을 터득한다. 피터도 팍스도 고난이 주는 쓴 약을 삼키고 울렁거림을 이겨낸다.
아이도 가쁘게 호흡했다. 그리고 팍스를 향한 보이지 않는 끈을 놓지 않았다. 화약과 탄약 냄새가 코를 찌르는 전쟁의 한복판에서 소년과 여우가 느꼈을 아련함으로 나는 내 고양이들을 꼭 끌어안았다.

동물들의 시선에 담긴 인간들은 이기적이고 어리석기 그지없다.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던 사슴 무리들이 인간의 톱질 소리에 화들짝 놀라 달아난다. 그리고 피터는 뒤돌아 보던 사슴의 눈빛 속에서 원망을 알아차린다. "거기 인간, 너희가 전부 다 망쳤어." p.65
무모한 전쟁이 남긴 거라곤 폐허뿐이다. 몸과 마음 깊숙이 베인 상처는 회복되기 어렵다. 이미 전쟁으로 한쪽 다리를 잃은 볼라도 마음이 쓰라린데 팍스를 따르던 어린 여우 런트도 한쪽 다리를 잃고 만다. 그것이 팍스의 발걸음을 돌리게 한 이유였을 것이다.

팍스! 팍스! 하고 외쳐대는 피터의 목소리는 마치 평화를 갈망하는 세상의 목소리처럼 감긴다. 정말 사랑하기에 팍스의 삶을 이해하고 다시 온전히 받아들인 피터는 분명 인생의 카드에 무엇을 써야 할지 깨달았을 것이다.
한파가 기승을 부리는 지금, 눈시울 뜨끈하게 만들어준 이야기를 만나서 지금 내 마음속은 팍스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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