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8 제너시스

 

과학적인 이야기가 많을 것이라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과학보다 철학적인 이야기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일단은 흥미롭다.

그리고 생각보다 얇은 두께의 책이라 금방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현재 1/2 읽고 있는 중 ^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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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유어 마인드>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Open Your Mind 오픈 유어 마인드 - 마음의 문을 열어주는 행복명언
이화승 엮음 / 빅북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똑똑똑!", 누군가 나의 마음문을 두드린다. 혹은 내가 누군가의 마음문을 두드린다. 하지만 그 문은 활짝 열리기는커녕 한줄기 빛조차 새어 들어갈 틈 없이 꽁꽁 잠긴 경우가 대다수이다. 결국 열고자 하는 이들은 굳게 닫힌 문 앞에서 실망하고 좌절한다. 이처럼 세상에서 가장 열기 힘든 문이 인간의 마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히나 요즘 같은 냉랭한 사회분위기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오픈 유어 마인드』는 '마음의 문을 열어주는' 행복명언집이란다. 과연 명언 몇 개가 마음의 빗장을 풀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일단은 속는 셈치고 『오픈 유어 마인드』를 펼친 것이 이 작품을 마주한 나의 첫인상이라 할 수 있겠다.

큼지막한 크기의 영문과 영문보다 작은 크기의 한글로 해석된 명언들, 그리고 이미지그림이 교차 편집되어 있는 편한 구성이다. 예쁜 이미지그림과 간단한 명언, 독자들의 눈을 사로잡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미지그림과 명언과의 연관성을 찾지 못한 부분을 꽤나 많이 발견했다. 연관성이 있는 그림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는 것은 아마도 독자에게 마음의 여유를 갖기 위한 도구로써 이미지를 사용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나는 이 장치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 차라리 명언과의 연관성위주로 그림을 수록했다면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아쉬움이 남는 구성이었다.

나는 『오픈 유어 마인드』를 한 번에 빨리 읽을 수 없었다. 기본적으로 명언은 짧고 간결한 형태이다. 길다하더라도 10여 줄 안팎이다. 그러나 많지 않은 활자 수임에도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의미는 매우 넓고 깊다. 그래서 나는 명언마다의 의미를 제대로 음미하고자 일부러 많은 시간을 투자하였다. 물론 처음에는 명언의 의미에 무관심한 1차원적인 글 읽기를 했다. 하지만 '지금 뭐하는 거냐?', 라고 스스로에게 반문하게 되었다. 수박겉핥기식의 독서는 (특히나 명언집을 대상으로) 무의미한 시간낭비라는 사실에 씁쓸한 기분마저 들었다. 이건 아니다싶어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기로 결심했다. 단순히 읽어내는 데 급급한 마음을 버렸다. 여유를 갖고 의미를 되새겨보는 작업을 추가했다. 되새김하는 마음으로 명언을 대하니 깨달음 같은 조그마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오픈 유어 마인드』에서의 많은 명언들은 일제히 '스스로의 변화'와 '긍정적 마음'을 가리키고 있다. 타인의 마음을 열려면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자신의 마음부터 오픈하자는 것이다. 어쩌면 이제껏 다른 이의 마음이 굳게 닫혀있었던 것은 내 마음에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화'라는 것은 그 자체가 매우 어렵다. 하지만 내가 변화한다면 다른 이도 '변화'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어렴풋이 들었다. 나는 『오픈 유어 마인드』를 청소년에게 추천하고 싶다. 매일 한 장씩 읽어보고 잠시 사유의 시간을 가져보는 일을 반복하다보면 똑같아보이던 그들의 지루한 일상이 조금은 달리 보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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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부탁해요, 폼포니오
에두아르도 멘도사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오랜만에 유쾌한 작품을 읽은 듯싶다. '하하하'가 아닌 '큭큭큭'거리는 웃음이 튀어나와 『예수를 부탁해요, 폼포니오』를 읽는 동안 불가항력적으로 자꾸 어깨가 들썩였다.

로마의 기사단 소속으로 생리학자인 폼포니오는 신비의 물을 찾아 이곳저곳을 떠돌고 있다. 지혜를 가져다 주는 물을 찾기 위해 이 물, 저 물을 퍼먹다보니 폼포니오의 뱃속은 항상 전쟁 중이다. 전쟁의 표식은 바로 방귀, 폼포니오의 체념은 말이 아니다. 방귀대장 폼포니오는 어느덧 나사렛 마을에 다다르게 된다. 그리고 나사렛 마을에 입성한 후, 깜찍하고도 절박한 '의뢰'를 받게 된다. 소년이 자신의 아버지의 살인 누명을 벗겨주라는 것이다. 무일푼인 폼포니오는 소년의 의뢰비에 홀랑 넘어가 사건을 수락하게 된다. 이제 방귀쟁이 탐정, 폼포니오의 좌충우돌 활약이 시작된다.

이 작품에서 독자는 사건을 의뢰한 소년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그 소년은 '예수'이다. 『예수를 부탁해요, 폼포니오』는 소년 예수, 요셉, 마리아 라는 종교적으로 추앙받는 인물들이 등장한다는데 주목해야 한다. 보수적인 면이 강한 종교의 인물과 이야기를 패러디하자면 위험요소가 다분할 수밖에 없다. 일단 작가의 고향, 스페인은 가톨릭을 종교로 삼는 이들이 90%이상인 가톨릭국가라 할 수 있다. 나는 『다빈치코드』에 대해 반대하던 교황청과 과격한 종교단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예수를 부탁해요, 폼포니오』를 읽다보면 작가가 '예수'를 폄하하기 위한 목적으로 글을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열성적인 기독교인은 아니다. 부모님의 성화 때문에 어쩔수 없이 기독교인이 된 날나리 기독교인에 가깝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성경을 공부해온터라 비기독교인 보다는 성경의 교리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편이다. 이런 내가 이 작품을 읽었을 때 눈살을 찌푸릴만한 부분은 찾을 수 없었다. 『예수를 부탁해요, 폼포니오』는 聖人이 아닌 인간적인 면에 초점을 잘 맞춘, 제대로 된 패러디 소설이었다.

탐정이 활약하는 소설은 독자도 탐정과 함께 추리할 수 있어서 즐거움을 준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탐정소설, 즉 추리소설에 열광하는 이유일 것이다. 우리의 주인공 폼포니오도 일단은 탐정이다. 하지만 그가 범인을 찾아가는 데 쫓아가는 발자취는 조금 지루하다. 질질 끌다가 한순간에 급하게 마무리한 느낌이 아쉬웠다.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폼포니오의 방귀와 그의 익살 덕분에 그나마 지루함을 달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예수를 부탁해요, 폼포니오』의 제목만 보면 종교서적으로 혼동할 수 있다. 아마 그런 이유 때문에 이 소설을 집어들었다가 내려놓은 독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종교에서 소재를 빌려 왔을 뿐 유쾌하게 큭큭대며 읽을 수 있는 재미있는 소설이다. 제목만으로 작품을 판단하는 우를 범하지 않길 당부하고 싶다. 그리고 열린 마음으로 방귀대장 폼포니오를 만나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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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에도 택배가 오더라구요.

알라딘의 마일리지가 만료된다고 메일이 왔길래

평소 좋아라하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구입했습니다.

읽고 싶은데 읽어야 할 책들이 줄을 선 상태라 잠시 미뤄둬야겠어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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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싱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 서영은 산티아고 순례기
서영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그다지 여행과는 인연이 없는 나는 남들이 열광하는 여행지에 대해서 무관심한 편이다. 누구나 알만한 여행지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다. 오직 가보고 싶은 곳은 일본, 영국, 제주도로 다섯 손가락 중 남은 두 손가락을 더 이상 꼽을 수 없는 형편이다. '노란 화살표', '산티아고'의 의미와 존재조차 모르는 내가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를 펼쳐든 것은 단순히 우연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는 작가 서영은의 산티아고 순례기이다. 삶의 의미를 어떤 식으로 찾아야 할지 흐릿한 상태에서 지인의 도움으로 산티아고 순례를 떠나게 된다. 현재의 생활에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자신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알고자 하는 사람이여서 나는 그녀의 나이를 알고 많이 놀랐다. 그리고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그녀의 용기와 부지런함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무던히도 걷는 길이었다. 오즈의 마법사를 찾아가는 도로시처럼 작가는 자신의 존재의미와 삶의 정의를 찾아서 열심히 노란 화살표를 따라 걷고 또 걷는다. 처음에는 길의 이정표인 노란 화살표를 찾지 못하고 치타의 뒤꽁무니를 쫓는데 급급하다. 그렇게 산티아고 순례길은 자신의 호흡이 아닌 타인의 호흡을 의지해 걷는 것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차츰 순례길에 익숙해지고 화살표를 찾는 것은 수월해진다. 그리고 그녀에게 사건이 생긴다. 비오는 날, 산중에서 작가는 길을 잃어버린다. 두려움과 함께 지표도 없이 헤매던 작가는 혼자서 산을 내려와 마을을 찾고 민박집에 머물게 된다. 물론 그 다음날 그녀를 애타게 찾던 치타와 만나게 되지만. 이 사건은 타인에 의지한 순례길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스스로의 순례길의 시작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매번 같은 길을 걸으면서도 다른 것을 보아온 두 사람의 관계에 불만이었던 작가는 동행과 함께하면서도 혼자일 수 있는 순례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책을 읽으면서 내심 2인 여행자의 관계가 불안해서 마음을 졸이던 나같은 독자에게는 희소식이었을 거라 생각된다. 친한 친구와는 함께 여행하지 말라던, 진짜 여행을 하고 싶다면 혼자 떠나라던 충고에 대해서 십분 이해가 가고 공감이 되던 참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여행 동행자에 대한 솔직한 불만이 나에게는 짜증으로 다가올 찰나였기 때문이었다. 이런 내 입장에서는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고 그녀의 순례길에서 이탈하지 않고 끝까지 동행할 수 있었다.

노란 화살표는 나무에도 있고 길에도 있고 심지어 돌멩이위에도 있다. 만약 돌멩이 위치가 바뀌어 버린다면 순례자들은 얼마나 고생스러울까, 하는 작가의 마음은 곧 나의 마음이었다. 또한 짐을 최소화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그 짐의 무게에 짓눌려 카메라의 가죽 케이스를 풀섶에 던져버리는 부분에서는 가만히 앉아서 그녀의 고단한 순례기를 너무나 손쉽게 읽고 있는 내 자신이 죄송스러웠다.

'이룬'에서 받은 최초의 스탬프부터 시작된 크리덴셜 카드가 다른 모양의 스탬프들로 채워지면서 최종 목적지인 산티아고와 가까워진다. 산티아고와 가까워질수록 그 성스러움과 비례해 세속적인 면도 나타난다. 이전 화살표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낙서와 산티아고 성당인지 리조트인지 구별이 모호한 상업적인 모습으로 인해 나와 작가는 실망의 바다에 빠졌다. 하지만 작가는 나를 실망감에서 탈출시켜줬다. 산티아고는 순례자들의 실질적인 최종목적지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고 작가는 일러준다. 산티아고 성당에서 끝나버린 노란 화살표는 '나' 자신을 향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산티아고 순례를 다녀온 작가는 자신이 이전과 달라졌다고 한다. 한 달을 넘게 걸으면서 그녀는 여러 모습의 자신과 조우했을 것이다. 버려야 할 자신은 버리고, 찾아야 할 자신은 찾았기에 변화가 가능했으리라. 노란 화살표가 그녀 자신에게 제대로 향해져 있음이 분명하다. 나도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걷고 싶어졌다. 그리고 깨끗이 비워졌기에 충만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나 자신과 만나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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