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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 서영은 산티아고 순례기
서영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그다지 여행과는 인연이 없는 나는 남들이 열광하는 여행지에 대해서 무관심한 편이다. 누구나 알만한 여행지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다. 오직 가보고 싶은 곳은 일본, 영국, 제주도로 다섯 손가락 중 남은 두 손가락을 더 이상 꼽을 수 없는 형편이다. '노란 화살표', '산티아고'의 의미와 존재조차 모르는 내가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를 펼쳐든 것은 단순히 우연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는 작가 서영은의 산티아고 순례기이다. 삶의 의미를 어떤 식으로 찾아야 할지 흐릿한 상태에서 지인의 도움으로 산티아고 순례를 떠나게 된다. 현재의 생활에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자신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알고자 하는 사람이여서 나는 그녀의 나이를 알고 많이 놀랐다. 그리고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그녀의 용기와 부지런함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무던히도 걷는 길이었다. 오즈의 마법사를 찾아가는 도로시처럼 작가는 자신의 존재의미와 삶의 정의를 찾아서 열심히 노란 화살표를 따라 걷고 또 걷는다. 처음에는 길의 이정표인 노란 화살표를 찾지 못하고 치타의 뒤꽁무니를 쫓는데 급급하다. 그렇게 산티아고 순례길은 자신의 호흡이 아닌 타인의 호흡을 의지해 걷는 것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차츰 순례길에 익숙해지고 화살표를 찾는 것은 수월해진다. 그리고 그녀에게 사건이 생긴다. 비오는 날, 산중에서 작가는 길을 잃어버린다. 두려움과 함께 지표도 없이 헤매던 작가는 혼자서 산을 내려와 마을을 찾고 민박집에 머물게 된다. 물론 그 다음날 그녀를 애타게 찾던 치타와 만나게 되지만. 이 사건은 타인에 의지한 순례길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스스로의 순례길의 시작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매번 같은 길을 걸으면서도 다른 것을 보아온 두 사람의 관계에 불만이었던 작가는 동행과 함께하면서도 혼자일 수 있는 순례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책을 읽으면서 내심 2인 여행자의 관계가 불안해서 마음을 졸이던 나같은 독자에게는 희소식이었을 거라 생각된다. 친한 친구와는 함께 여행하지 말라던, 진짜 여행을 하고 싶다면 혼자 떠나라던 충고에 대해서 십분 이해가 가고 공감이 되던 참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여행 동행자에 대한 솔직한 불만이 나에게는 짜증으로 다가올 찰나였기 때문이었다. 이런 내 입장에서는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고 그녀의 순례길에서 이탈하지 않고 끝까지 동행할 수 있었다.
노란 화살표는 나무에도 있고 길에도 있고 심지어 돌멩이위에도 있다. 만약 돌멩이 위치가 바뀌어 버린다면 순례자들은 얼마나 고생스러울까, 하는 작가의 마음은 곧 나의 마음이었다. 또한 짐을 최소화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그 짐의 무게에 짓눌려 카메라의 가죽 케이스를 풀섶에 던져버리는 부분에서는 가만히 앉아서 그녀의 고단한 순례기를 너무나 손쉽게 읽고 있는 내 자신이 죄송스러웠다.
'이룬'에서 받은 최초의 스탬프부터 시작된 크리덴셜 카드가 다른 모양의 스탬프들로 채워지면서 최종 목적지인 산티아고와 가까워진다. 산티아고와 가까워질수록 그 성스러움과 비례해 세속적인 면도 나타난다. 이전 화살표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낙서와 산티아고 성당인지 리조트인지 구별이 모호한 상업적인 모습으로 인해 나와 작가는 실망의 바다에 빠졌다. 하지만 작가는 나를 실망감에서 탈출시켜줬다. 산티아고는 순례자들의 실질적인 최종목적지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고 작가는 일러준다. 산티아고 성당에서 끝나버린 노란 화살표는 '나' 자신을 향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산티아고 순례를 다녀온 작가는 자신이 이전과 달라졌다고 한다. 한 달을 넘게 걸으면서 그녀는 여러 모습의 자신과 조우했을 것이다. 버려야 할 자신은 버리고, 찾아야 할 자신은 찾았기에 변화가 가능했으리라. 노란 화살표가 그녀 자신에게 제대로 향해져 있음이 분명하다. 나도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걷고 싶어졌다. 그리고 깨끗이 비워졌기에 충만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나 자신과 만나길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