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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 데이즈
혼다 다카요시 지음, 이기웅 옮김 / 예담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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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살랑거리는 봄바람과 함께 올 봄, 작가 혼다 다카요시의 『모먼트』를 처음으로 접했다. 그리고 또다시 강렬한 햇살의 여름날, 나는 그의 새로운 작품과 조우하게 되었다. 네 편의 단편이 수록된 『파인데이즈』는 폭염에 휘둘려 지친 나의 심신을 잠시나마 잊게 만들어 주었다.

아름다운 외모의 여학생은 괴상한 소문과 함께 전학 왔다. 그녀에게 사랑고백을 했다가 거절당한 남학생들은 모두 자살하였고 그 원인은 그녀의 저주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다짜고짜 그녀를 그리고 싶다는 친구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나'는 등굣길 전차 안에서 그녀에게 말을 걸게 된다. 그리고 비슷한 시각, 그녀와 관련이 있는 선생이 학교 옥상에서 투신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는 첫 번째 단편 'Fine Days'. 친구가 그린 그녀의 이중적인 모습과 그녀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던 마지막이 매우 인상적이다.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은 부자가 있다. 암에 걸린 아버지는 느닷없이 35년 전 헤어진 연인과 성별조차 모르는 자식을 찾아달라고 한다. 그들을 찾는 과정에서 아들은 젊은 연인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35년 전 아버지와 아버지의 연인이다.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두 번째 이야기, 'Yesterdays'이다. 아버지의 연인이 하고 싶었던, 하고자 한 말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어릴 적 자신의 동생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쌓여 일상을 보내는 '나'는 대학에서 조교일을 하고 있다. 교수 때문에 억지로 참여한 회식자리에서 유키를 만나게 되고 그들은 그들만의 공감대를 인식하게 된다. 유키가 숨기고 싶어 하는 누나와 누나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남자의 출현, 갑작스런 사고를 당하게 된 아케미……. 후반으로 갈수록 이야기가 무섭고 두려워지는 '잠들기 위한 따사로운 장소'는 주인공의 마지막을 알려주지 않은 채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과연 주인공은 어떤 결말을 만나게 되었을까.

램프 셰이드를 구입하려고 들른 가게에서 남자는 노파에게 사랑 이야기를 듣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의 과거에도 자신의 존재를 밀어 넣고 싶었던 장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남자는 이야기 속의 장인과 자신의 소망이 중첩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서로를 위해 크리스마스 선물을 마련한 동화가 떠올랐던 'Shade'. 과거를 쫓다보면 미래가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고 산다. 마지막 단편인 'Shade'는 남자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교훈이 되는 이야기이다.

『파인데이즈』는 평범한 현실 속 독특한 '환상'에 관한 이야기이다. 작가는 각 단편마다 너무나도 흔한 소재를 등장시킨다. 『모먼트』를 통해 혼다 다카요시의 팬이 된 나로서는 『파인데이즈』의 내용마저도 흔하디흔한 것이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이야기의 도입부가 지나가면 어느 순간 신비한 '환상'의 공간으로 안내하는 작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그만큼 작가는 등장인물의 심리묘사를 섬세하게 표현했으며 독자의 몰입력을 확보할 수 있는 이야기로 엮어나간다. 『파인데이즈』는 한번 손에 들면 완독하기 전에는 손에서 놓을 수 없는 강한 흡입력을 갖고 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으스스한 공포를, 한편으로는 아련한 추억을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다. 열대야의 더위에 시달리는 요즘 같은 여름밤에 제법 잘 어울리는 『파인데이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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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어차피 불편한 것이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삶은 어차피 불편한 것이다 - 티베트에서 만난 가르침
현진 지음 / 클리어마인드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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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현진 스님의 『삶은 어차피 불편한 것이다』를 읽는 동안 나는 오랜만에 편안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현진 스님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담백한 수필 같은 글들의 향연은 책을 읽고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의 짐을 잠시나마 내려놓을 수 있게 만드는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동안 전력투구하는 것처럼 일상을 보내서였을까. 이제껏 꽉 조였던 허리끈을 느슨하게 고쳐 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에게 현진 스님의 마력은 더욱 강력하게 작용했음이 확실하다.

『삶은 어차피 불편한 것이다』는 현진 스님이 티베트를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과 독자에게 전해주고 싶은 글귀로 채워진 작품이다. 구성은 '하늘에 물들다', '시간의 수레바퀴', '내일과 다음 생 가운데' 라는 세 가지 대표주제로 크게 나뉘고 그 하위에 짧은 분량의 글들을 알토란처럼 담고 있는 편집 형식이다. 골목길에서 우연히 만난 아이의 얼굴, 시릴 정도로 새파란 하늘, 티베트인들의 여유로운 웃음, 구름 사이에 걸쳐 있는 무지개 등등,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사진들은 내게 이 여름의 더위를 식혀주는 청량감 그 자체로 작용하였다.

이 작품은 여러 이야기가 많이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띤다. 그리고 이것은 『삶은 어차피 불편한 것이다』의 장점이 되었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 한 이야기도 있고 한 번도 듣지 못한 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모든 이야기가 새롭고 참신하며 친근하게 다가온다. 짧지만 여운이 깊은 이야기를 통해 독자의 깨달음은 더욱 깊어진다.

작품의 제목처럼 삶의 불편함을 처음부터 인정하자는 현진 스님의 이야기는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된다. 삶의 불편함을 인정하면 그 불편은 우리에게 더 이상 불행이 아니게 된다는 것이다. 남과 비교하는 상대적인 삶은 버리고 오직 나만을 위하는 절대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기 때문에 불행해진다. 또한 망설임과 게으름의 차이를 확실하게 구분 지어야 하며 게으름은 모든 불행의 시작이 된다고 한다. 망설임조차 없는 게으른 사람은 자신의 생명을 낭비하고 있다는 부분에서는 현진 스님이 나를 꼭 집어 말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얼른 책을 덮고 나는 나의 게으름으로 인해 흐트러진 책상을 열심히 정리했다. 그리고 조그마한 행복감이 생겨 좋은 기분을 유지할 수 있었다.

현진 스님이 전하는 이야기는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다. 이제껏 누구나 귀가 따갑게 들었던 것들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현진 스님만의 담백한 화법으로 인해 깨달음의 이야기는 새롭게 재탄생된다. 아무리 좋은 약도 환자가 먹지 않으면 약의 효능은 발휘되지 않는다. 이제는 삶의 여유와 행복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삶은 어차피 불편한 것이다』를 자신만의 것으로 체화시켜야 하는 작업이 남아있다. 나는 이 작업을 잊지 않기 위해 재차 되새기면서 『삶은 어차피 불편한 것이다』를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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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박물관 1 민음사 모던 클래식 27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0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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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한 파묵은 한 여인을 향한 한 남자의 처절한 집착에 가까운 사랑을 "순수"라고 규정하였다. 『순수 박물관』을 펼치고 있는 매순간마다 오르한 파묵의 "순수 규정"에 대해 수긍해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이 되었다. 『순수 박물관』은 사랑하는 여인만을 갈망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주인공 케말은 부유층출신으로 아름다운 약혼녀가 있는 자타공인 행복한 남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만나게 된 먼 친척 퓌순에게 한순간 마음을 뺏겨버린다. 약혼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케말은 퓌순과의 금지된 사랑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는 예전보다 더욱 행복한 남자가 되었다. 하지만 자신의 약혼식날 이후로 사랑하는 퓌순은 종적를 감쳐버린다. 이 순간부터 케말의 인생목표는 퓌순의 자취를 찾는 것으로 급수정되었다. 한 남자의 일상은 양 손에 떡을 쥔 아이처럼 연애 따로, 결혼 따로의 행복을 만끽하다가 연애대상이 사라진 이후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케말의 퓌순 찾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시간이 아무리 많이 흘러도 영원히 회자될 화두인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오르한 파묵에 의해서 창조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순간부터 나는 『순수 박물관』에 대해서 많은 기대를 품었다. 그리고 이 작품을 마주했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나의 기대를 저버린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 간단히 말하자면 『순수 박물관』은 마치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통속극의 불륜 드라마와 비슷한 내용이다. 나는 『순수 박물관』을 읽기 시작하면서 초반에는 이 작품이 진정 오르한 파묵의 작품인지를 여러 번 확인해 보아야만 했다. 처절함의 한계를 훌쩍 넘어선 남자의 사랑이야기는 어떠한 공감도 얻어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씁쓸한 실소만을 자아내게 한다. 물론 내용과는 무관하게 오르한 파묵의 문체는 아주 매력적이었다. 주인공의 섬세한 심리묘사와 단순한 이야기를 힘있게 이끌어가는 그의 필력은 여전히 건재하였다. 그의 필력과 문체가 있었음에 끝까지 읽어낼 수 있었다고 하여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또한 1970년대 터키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그 당시 터키의 사회 문화적인 사고방식을 자연스럽게 담고 있어 터키인들의 사고를 엿보고 우리와 비교해보는 재미도 빠뜨릴 수 없는 부분이다.

어린아이는 순수하다. 순수하기에 한없이 잔인하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나는 케말이 보여준 사랑을 어린아이의 '잔인한' 순수로 정의하고 싶다. 자신의 사랑에만 순수하게 열중하고 있었기에 그는 약혼녀와 퓌순에게 상처를 주었다. 특히 약혼녀 시벨에게는 더욱 잔인한 기억을 남겨주었다. 작가는 케말의 사랑을 근원적인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의 사랑이 오직 원초적인 본능에 의한 감각적인 사랑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 작품은 사랑에 대한 입장에 따라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릴 것이라 예상된다. 오르한 파묵은 "나는 이 소설로 기억될 것이다.", 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순수 박물관』이 독자의 기억 저편너머에 머무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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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러스트>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아메리칸 러스트
필립 마이어 지음, 최용준 옮김 / 올(사피엔스21)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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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자신이 읽고 있는, 또는 읽고자 하는 책을 서점 가판대에서 만나게 된다면 반가운 마음이 들 것이다. 특히 그 작품이 본인 이외의 다른 독자에게 주목을 받고 있다면 왠지 모를 뿌듯함까지 생긴다. 『아메리칸 러스트』는 현재 독자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작가 필립 마이어는 독자의 기대에 100% 이상 충족시키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선사한다.

한때 매우 부유했지만 지금은 가난하고 음울한 도시가 『아메리칸 러스트』의 주된 배경이다. 스러져가는 도시 속 가정의 운명 역시 그 도시와 다를 바가 없다. 처참하고 비참해진 가정 안에는 '희망과 꿈' 따위는 발 디딜 틈조차 없다. '꿈'을 향해 이 도시를 떠나든지 아니면 '꿈'을 잊고 이 도시와 함께 죽어가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떠나지 못한 사람들은 도시와 함께 절망의 늪 속으로 차츰 침잠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비상한 두뇌로 수재였던 아이작은 대학진학을 포기한 채 병든 아버지를 간호한다. 하지만 자신의 '꿈'을 찾기 위해 마을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고등학교 풋볼선수로 유명했던 절친한 포와 함께 떠나고 싶었던 아이작은 그를 설득하지만 포는 아이작의 제안을 거절한다. 그리고 사건이 발생한다. 위기에 처한 포를 구하기 위해 뜻하지 않게 아이작이 사람을 죽이게 된 것이다. 포는 살인사건의 범인이 되었고 그런 친구를 남기고 아이작은 마을을 떠나버리면서 본격적인 『아메리칸 러스트』가 시작된다.

실제로 쇠락해버린 철강도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작가는 생생하고 사실적인 『아메리칸 러스트』를 멋지게 탄생시켰다. 부엘 이라는 도시의 흥망성쇠가 도시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은 실로 지대하고 엄청났다. 나에게는 아메리칸 드림이 비단 외국인(미국인이 아닌)만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사실도 새삼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작가는 한두 명의 주인공 위주의 시점을 탈피하고 살인사건과 관련된 등장인물 모두를 주인공으로 작품을 이끌어 간다. 아이작의 아버지와 누나, 포의 어머니, 경찰서장은 그들만의 시선으로 자칫 놓치고 지나칠 수 있는 요소들을 재확인시켜줄 뿐만 아니라 작품의 폭과 깊이를 넓고 깊게 만들어준다. 자신의 첫 번째 작품으로 『아메리칸 러스트』를 내놓은 작가 필립 마이어에 대한 찬사가 단순히 의례적인 것이 아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의 차기작에 대한 나의 기대는 필연이 되었다.

절망 속의 나태하고 안일한 일상은 마치 시한폭탄과도 같다. 아이작과 포 앞의 살인사건은 폭탄을 터트리게 만든 자그마한 불씨일 뿐 결코 시한폭탄이 아니다. 단지 평소 위험천만한 시한폭탄을 짊어지고 사는 그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폭발할 준비가 되어있었던 것이다. 살인사건으로 인해 터져버린 폭탄은 오히려 아이작과 포를 성숙하게 만든다. 자신의 범죄를 밝히기 위해 부엘로 돌아가는 아이작과 감옥에서 그동안의 자신을 반성하게 된 포는 아직 희망의 끈을 잡고 있음에 확실하다. 빛한줄기 새어 들어올 틈이 없을 것 같은 어둠 속에 한줄기 빛을 보여준, 희망은 있다고 하는 필립 마이어에 감사를 표하고 싶다.『아메리칸 러스트』를 내려놓은 지금 나는 표지의 녹슨 못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못 위의 지워지지 않을 것 같이 자리잡은 녹을 아이작과 포가 깨끗이 닦아내길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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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고 놀라지 마시라>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나를 보고 놀라지 마시라
케빈 마이클 코널리 지음, 황경신 옮김 / 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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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이유로 케빈은 태어날 때부터, 정확히 말하자면 엄마 뱃속에서부터 두 다리가 없는 '불완전한' 존재였다. 그의 부모는 아이가 신체적으로 불완전했기에 정신적으로는 '완전한' 존재가 되길 바란다. 그들은 케빈을 비장애인 아이와 다름없이 대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집 밖으로 한 발짝만 나서면 케빈은 타인에 의해 불행의 희생자로 규정되고 낙인찍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빈은 간단하고 쉬운 포기보다는 힘들고 어려운 도전을 선택한다. 『나를 보고 놀라지 마시라』는 두 다리가 없어도 무한도전을 즐기는 20대 청년 케빈이 때로는 남의 일인 것처럼 담담하게, 때로는 자신의 분에 못 이겨 감정적으로 자전적 이야기를 풀어놓은 작품이다.

나는 저자의 불가능할 것 같은 도전 앞에서 여러 단계의 심리변화를 경험할 수 있었다. 그 첫 번째 단계는 동정이었다. 매번 열기 힘든 문을 열고자 두드리는 저자의 행동이 무모해 보였고 매우 안쓰러웠다. 그 다음으로는 끊임없이 문을 두드려 결국에는 관문을 통과한 케빈의 모습에 놀라움과 감동의 기분이 이어졌다. 또한 자신을 향한 타인의 시선을 카메라로 찍어내는 케빈과 많은 사진의 주인공들로 인해 나는 부끄러운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케빈은 편치 않은 몸을 보드 위에 맡긴 채 세계여행을 다녀오고 앞으로의 여러 계획을 세운다. 그는 나에게 장애인과 비장애인 중 어느 쪽이 불완전한 존재인가, 라는 복잡한 화두를 마지막에 던져주고 자신의 다음 도전을 향해 유유히 사라진다.

신체적으로 불완전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안타깝고 놀랍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지육신이 멀쩡하지만 안일하고 나태한 나와 비교하면서 자기반성의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그의 열정과 노력을 배우고자하는 소망이 생긴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이르면 나도 모르게 이들은 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엄청난' 사람이라는 선을 그어버리게 된다. 그들이 평범한 인간보다 높은 레벨의 존재가 되는 순간이다. 결국 내가 본연의 안일하고 나태한 생활을 합리화시키는 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를 보고 놀라지 마시라』의 저자, 케빈은 대단하고 엄청난 사람이지만 나와 같은 평범한 '인간'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들의 시선이 억울하고 싫고 화가 난다. 일종의 복수심에서 출발한 사진 촬영에 대해서도 과연 제대로 된 것인지 확신하지 못한다. 또한 여행지에서 만난 장애인을 보고 동정과 연민의 감정을 느낀 자신의 모습에 고뇌한다. 이처럼 케빈은 자신의 인간적인 모습을 독자들에게 여실히 드러내면서 자신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 외치고 있었다.

『나를 보고 놀라지 마시라』는 기존의 인생역정 감동백배 장애인 에세이와는 전혀 다른 노선을 걷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러한 차별화는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많은 문제를 고민하게 만드는 효과를 갖고 있다. 아마도 이 책을 읽고 얻은 결과물은 독자마다 조금씩 다른 형태로 발현되지 않을까 싶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참으로 대단하다!', 『나를 보고 놀라지 마시라』를 접하면서 내가 갖은 지극히 상투적인 감상이다. 하지만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알맹이가 첨부되어 있으니 이 '상투적인 감상'을 꼭 느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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