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에 냉철 왕자의 말이었습니다~ 사람이 되어서도 당신을 사랑해도 될까요? 1
치토세 로쿠 지음, 타나카 스즈마루 원작 / 대원씨아이(만화)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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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우스 왕자의 애마 루카니아는 습격 사건으로 목숨을 잃는다. 의미를 알 수 없는 꿈을 꾸고 눈을 뜬 루카니아는 자신이 말이 아니라 인간 여자로 환생한 걸 알게 되고, 자신의 주인인 라디우스를 만나러 간다. 하지만 라디우스는 눈앞에 있는 인간 여자가 자신의 죽은 애마라는 사실을 알 리 없고, 어떻게 해서든 진실을 알리고 싶은 루카니아는 '루카'라는 이름을 얻어 일단은 왕궁의 시녀로 지내기로 한다. 루카는 다른 시녀들의 괴롭힘을 슬기롭게 이겨내는 한편으로 라디우스의 주목을 받아서 진실을 알리려고 노력하지만, 애마 외의 존재에는 무심하고 냉철한 라디우스의 관심을 사로잡기란 쉽지 않다.


치토세 로쿠의 만화 <전생에 냉철 왕자의 말이었습니다~ 사람이 되어서도 당신을 사랑해도 될까요?>는 다나카 스즈마루의 원작 소설을 코미컬라이즈한 작품이다. 원작 소설이 있는 만화가 대체로 그렇듯이 이 만화도 내용이 탄탄하고 작화 수준이 훌륭하다. 남자 주인공은 비록 성격이 차갑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인간 여자에게 관심 없고 오직 말만 좋아한다는 점에서 순수하게 느껴진다. 여자 주인공은 원래 말이었기 때문인지 힘이 장사에, 성격이 밝고 시원시원해서 어떤 문제를 겪든지 잘 이겨낸다는 점이 좋다. 그래서 결국 여주가 말로 돌아가는지, 아니면 인간 여자로 남게 되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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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시의 동창회 마츠모토 스이세이 작품집
마츠모토 스이세이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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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만 보고 BL인 줄 알았는데 읽어보니 열한 편의 단편이 실린 단편집이다. 표지의 두 남자가 나오는 표제작 <오전 1시의 동창회>가 맨처음에 실려 있는데, 고등학교 때 만난 두 친구가 15년 만에 변호사와 호스트로 재회하는 내용이다. 설정만으로 도파민 맥스인데 단편이라뇨... 장편 연재 해주세요... ㅠㅠ 아쉬운 마음을 부여잡고 읽은 다음 작품들도 자극적이기는 마찬가지이다. <팬티 천일야화>는 제목은 자극적이지만 내용은 그 정도는 아니고(오히려 교육적인지도...?), <4번째 봄>은 같은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으로 지내는 형제의 관계를 제3자의 시선으로 관찰하는 내용인데 이것도 은근 BL 느낌이다(은근이 아닌가?).


작가 후기에 '사람들의 마음이 서로 엇갈리는 이야기를 좋아합니다'라는 문장이 있는데, 그러고 보니 정말 그런 내용이 많다. 장소와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감정을 품은 여자의 이야기를 그린 <상복의 법식>, 자신을 속인 여자에게 부적절한 감정을 느낀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기억보다 달콤한> 등이 그렇다. 과도한 업무량 때문에 화분 하나 키울 여유가 없는 직장인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그린 레슨>, 일처리가 빠르고 효율적이라서 몇 사람 분의 일을 해낸다고 칭찬이 자자한 서빙 로봇 후지코의 이야기를 그린 <퍼펙트 후지코>가 특히 좋았다. 모든 단편의 작화가 훌륭해 보고만 있어도 황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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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 군의 정중한 생활 3
후지모토 유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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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만으로 성별을 짐작하면 안 되는 것처럼, 외모만으로 그 사람의 성격이나 취향을 속단하는 것은 금물이다. 후지모토 유우키의 만화 <스즈키 군의 정중한 생활>의 스즈키 군이 그렇다. 고등학교 1학년 스즈키 군은 험악한 인상과 건장한 체격만 보면 거친 성격일 것 같지만, 실제 성격은 수예와 요리, 가드닝을 좋아하고 유치원생인 여동생을 끔찍이 아낀다. '남자는 어떠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나 편견에 얽매이지 않고, 남들이 뭐라고 하든 자기답게 살고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하는 스즈키 군의 모습은 주변 사람들에게도 용기와 자극을 준다. 남들을 바꿀 수 없다면 그냥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면 된다는 걸 그에게 배운다.


<스즈키 군의 정중한 생활> 3권에서 스즈키 군은 남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지만 사실은 남몰래 오랫동안 동성 친구를 좋아해온 여학생 오사나이의 마음을 눈치채고 격려해 준다. 학교에서 '인싸 중의 인싸'로 유명한 나루시마가 친한 친구들에게도 비밀로 하고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도움을 주기도 한다. 예쁜 외모가 콤플렉스인 하루나가 콤플렉스를 극복할 수 있도록 '큰 결심'을 하기도 하는데 그 결과는 다음 권에서 밝혀질 것 같다. 외국에 계셨던 아버지가 오랜만에 귀국하는 에피소드도 있는데 아버지 외모를 보면 이분도 외모 때문에 고생 많이 하셨을 듯하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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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72
로맹 가리 지음, 김남주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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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2쪽 짜리 책에 16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요즘 나오는 소설집에 비해 작품 수가 많고 그만큼 작품 당 길이가 짧은데, 한 편 한 편이 주는 인상이나 담고 있는 메시지는 훨씬 더 강렬하고 충격적이다. 이래서 사람들이 로맹 가리, 로맹 가리 하는구나 싶었다. 다른 책들도 찾아 읽을 예정이다. 


대부분의 작품에 전쟁 중의 파괴와 공포, 전후의 불안과 혼돈이 나타나 있다. 표제작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는 전쟁을 피해 페루의 한 해변으로 도망쳐 온 남자 레니에가 자신처럼 해변으로 도망쳐 온 여자를 발견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남편의 폭력으로부터 도망쳐 온 여자는 이곳에서도 남자들의 강간 위협에 시달린다. 도망쳐온 곳에도 천국은 없다는 씁쓸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치를 피해 은신처에 숨은 유대인과 그를 도와주는 이야기를 그린 <어떤 휴머니스트>, 개인적인 목적을 위해 독일군과 손잡고 마을을 폭파시킬 계획을 세운 루마니아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고상함과 위대함>, 어떤 남자가 전쟁 중 남자들에게 강간 당한 여자를 차에 태워주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지상의 주인들> 등도 그러하다.


전후의 세태를 담은 작품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이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강제수용소에 수용되었다가 2차 대전이 끝나면서 자유의 몸이 된 쇼넨바움은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볼리비아에서 우연히 옛 친구 글루크만과 재회한다. 쇼넨바움은 자신을 피하는 글루크만에게 의문을 품고 있다가 어느 날 글루크만의 뒤를 밟고 그의 비밀을 알게 된다. 수용소 시절 그들을 잔인하게 괴롭혔던 독일인 간수가 이곳에 와 있고, 글루크만은 매일 밤 그에게 밥을 가져다 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유를 묻는 쇼넨바움에게 글루크만은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끝났다 한들 언제든지 다시 시작될 수 있기 때문에 간수에게 잘해주는 거라고 답한다. 폭력이 어떤 식으로 사람의 영혼을 장악하고 그 영향이 오래 가는지를 알게 해주는 작품이다.


인간이 얼마나 다양하고 복잡한지를 보여주는 작품들도 있다. <류트>는 외교관을 그만두고 예술가가 되고 싶은 남자와 그런 남편을 말리고 싶은 아내의 이야기를 그린다. <가짜>는 자신이 산 고흐 그림이 가짜라는 말을 듣던 남자가 아내의 코 성형 사실을 알고 이혼을 고민하는 이야기이다. 옆방에 사는 여자를 짝사랑하는 남자가 어떤 오해를 하고 자살을 결심하는 이야기인 <벽>, 사랑하는 여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 세계 일주를 떠난 남자의 진실을 밝히는 <킬리만자로에서는 모든 게 순조롭다>, 실제로 겪은 일만 소설에 써야 한다는 말에 설득 당해 고래잡이를 떠난 소설가가 죽다 살아난 과정을 그린 <영웅적 행위에 대해 말하자면> 등은 인간의 모순과 위선, 어리석음, 허세, 대책 없음 등을 풍적으로 보여준다. 


비슷한 결의 작품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도대체 순수는 어디에>이다. 이 소설에서 현대 사회의 물질주의, 자본주의에 지친 주인공은 인간의 순수함이 아직 많이 남아 있고 돈의 영향을 덜 받는다고 여겨지는 작은 섬으로 떠난다. 그런데 그곳에서 우연히 고갱의 알려지지 않은 작품으로 짐작되는 그림들을 보게 되고, 그러자 자연히 이 그림들을 가지고 도시로 돌아가서 큰 돈을 벌어야겠다는 욕망이 생겨 난다. 그의 욕망은 이 섬이 간직한 어떤 비밀이 드러나서 산산이 깨지는데, 정말이지 내 마음이 다 아팠다. 아니 통쾌했다고 해야 하나. 


비현실적인 요소가 반영되어 있거나 미래를 상상한 작품들도 있다. 마차를 끄는 마부가 전부 비둘기인 세계를 그린 <비둘기 시인>, 방사선에 의한 인간 진화가 급속도로 진행되어 신인류가 출현한 세계를 그린 <우리 고매한 선구자들에게 영광 있으라> 등이 그렇다. 재미있는 점은 인간이 인간 아닌 존재로 대체된 세계를 작가는 부정적, 비관적으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긍정적, 낙관적으로 본다는 점이다. 이때 이미 작가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회의 또는 환멸이 깊은 상태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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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일기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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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3일 밤에 나는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그 때문에 아침이 되어서야 계엄 소식을 들었다. 밤사이 큰 충격을 받았을 사람들과 국회로 향한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 고마움을 안고 그때부터 주말마다 여의도로 갔다. 그 자리에 황정은 작가도 있었다. 


황정은의 산문집 <작은 일기>는 2024년 12월 3일 계엄 선포 당일부터 2025년 5월 1일 다시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가기까지의 기록을 담고 있다. 그날 저자는 소설을 쓰고 책을 읽으며 평소와 다르지 않은 하루를 보냈다. 평소와 다른 사건이라면 세면대 밸브에서 물에 새는 것을 발견한 정도. 이튿날 기사가 방문해 수리해 주기로 했으나 그 약속은 며칠 후로 미루어졌다. 그날 밤 문제의 계엄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다음날 곧장 국회로 간 저자는 그 후 몇 주 그리고 몇 달 동안 집회에 나갔다. 물론 매일 집회에 나간 건 아니지만, 집회에 나가지 않은 날에도 계속해서 뉴스를 보고 유튜브, 팟캐스트로 관련 소식을 접했다. 마감해야 할 원고가 쌓이고 읽어야 할 책이 늘어갔지만, 사태가 정리되기 전에는 어떤 글도 쓰거나 읽기가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그날들을 끝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건 결국 사람들 덕분이다. 저자가 집회에서 만난 모든 사람이 좋았던 건 아니다. 집회에는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 저자와 입장이 다른 사람들도 있었고 그들 때문에 기분이 상한 적도 많았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그런 사람들도 집회에 왔다는 것이다. 평소에는 그런 사람들을 만날 일이 별로 없는 저자가 집회에서 그들을 만난 것처럼, 그들 역시 평소에는 만날 일이 없는 페미니스트, 장애인, 성소수자들을 집회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어떤 가능성, 어떤 희망을 보는 건 지나치게 낙관적인 시각일까. 


저자와 함께 사는 파트너와 자매들과 조카들 이야기도 좋았다. 가족이 다 함께 집회에 가는 모습이 부러웠고, 모두가 지치고 힘든 상태일 텐데도 서로 음식을 챙겨 먹이고 안부를 걱정하는 모습이 훈훈했다. 집회 사이사이에 저자가 발견한 계절의 변화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묘사한 대목들도 좋았다. 무엇보다 그 시절 거리에서 본 풍경과 그때 느낀 감정을 저자의 언어로 볼 수 있는 점이 좋았다. 계엄 같은 사건은 앞으로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되지만 황정은의 <일기> 시리즈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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