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의 여왕 애거사 크리스티 이야기 - 모든 미스터리는 그녀로부터 시작되었다
루시 워즐리 지음, 홍한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릴 때는 위인전을 많이 읽었고 어른이 된 후에는 평전이나 자서전을 종종 읽었는데, 이제까지 내가 가장 많은 평전이나 자서전을 읽은 인물이 애거사 크리스티 아닌가 싶다. 그래서 애거사 크리스티의 삶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영국의 역사학자 루시 워즐리가 쓴 애거사 크리스티 평전 <범죄의 여왕 애거사 크리스티 이야기>를 읽으며 새롭게 알게 된, 또는 생각하게 된 사실이 아주 많다. 전에 읽은 애거사 크리스티 평전이나 자서전에 비해 작가가 취재, 분석한 내용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고, 기존에 알려진 내용을 작가가 새로운 관점에서 제시하는 대목도 많아서인 것 같다. 


일단 잘 알려딘 대로 애거사 크리스티는 1890년 영국 상류층 가문의 둘째딸로 태어났다. 그 시대 여성들이 대부분 그러했듯이 정식으로 학교 교육을 받지 못했고 이 사실을 애거사 크리스티 본인도 아쉬워했던 건 알았는데, 11살 위의 언니는 대학 교육을 받았고 그 결과 진보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게 된 큰딸을 못마땅하게 여긴 어머니의 결정으로 애거사는 학교 교육을 받는 대신 어려서부터 신부가 되기 위한 과정을 밟았다는 사실은 이 책에서 처음 알았다. 그래도 (독서가에 글 잘 쓰는) 언니의 영향으로 애거사도 어릴 때부터 책 읽고 글 쓰는 걸 좋아했고 그 결과 작가가 되었으니 역시 될 사람은 되는 건지도. 물론 애거사 크리스티는 스스로 작가라고 명명한 적이 없고, 할 수만 있었다면 전통적인 여성의 삶(현모양처)을 살고 싶어 했다지만(이게 애거사 크리스티의 본심, 진의였는지에 대해서도 저자는 의문을 제기한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생애에서 빼놓을 수 없는 1926년 실종 사건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다룬다. 작가는 남아 있는 당시의 기록과 자료들을 바탕으로 그때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추측하는 한편으로, 그때 경찰이 어떤 식으로 잘못된 대응을 했고 언론은 얼마나 악의적인 보도를 했으며, 그렇게 만들어진 대중의 오해와 편견이 그 후에도 얼마나 오랫동안 애거사 크리스티를 괴롭혔는지에 대해서도 서술한다. 이 사건으로 일종의 마녀화가 된 애거사 크리스티는 철저히 자기 자신을 감추거나 다른 이미지를 덧씌우는 방식으로 작가 활동을 이어나갈 수밖에 없었고, 이는 그가 작품성과 대중성을 다 잡은 몇 안 되는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평가절하 되는 결과로 이어졌다(라고 저자는 분석한다).


그러나 아무리 저평가 되는 작가라도 애거사 크리스티의 작품이 지금도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널리 읽히는 건 사실이고, 이것이 가능했던 건 단순한 우연이나 운의 작용이 아니다. 애거사 크리스티는 상류층 출신이지만 십 대 후반에 가세가 크게 기울었다. 그 시절 여성들 대부분이 그랬듯이 남편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며 살 수도 있었지만, 첫 번째 남편과는 이혼하고 (한참 연하인) 두 번째 남편은 경제적으로 의존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평생 스스로 돈을 벌어야 했고, 부양 가족이 늘면서 점점 더 많은 돈을 벌 필요가 있었다. 잘 팔리는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잘 써야 했고, 잘 쓰기 위해서는 계속 쓰고 많이 쓰는 수밖에 없었다. 계속 쓰고 많이 쓰려면 글감이 필요한데, 세상은 마침 전쟁 중이었고 애거사 크리스티 자신에게도 (출산, 실종, 이혼, 병원 근무, 약제사 공부 등) 많은 일이 일어났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이 그의 삶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말할 순 없지만, 소설 곳곳에 그의 직간접적인 경험이 들어 있다. 실제로 애거사 크리스티는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필명으로 일종의 자전 소설을 발표하기도 했다.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소설들을 비롯해, 애거사 크리스티의 어떤 경험이 어떤 작품에 어떤 식으로 반영되어 있는지도 이 책에 나온다. 시대별로 대표작은 무엇이고 어떤 특징이 있는지 분석한 대목들도 좋았다. 작가의 나이가 일흔, 여든을 넘기면서 작품성이 떨어지는 게 눈에 보인다고 쓴 대목은 안타까웠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 연세에도 계속해서 글을 쓰며 작가이기를 그만두지 않았다는 것이니 존경스럽다. 애거사 크리스티 소설을 더욱 깊이 읽고 싶은 독자에게 유용할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레슨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은 자서전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는 소설을 읽으면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이 중에 작가가 직접 경험한 일은 무엇일지 생각한다(일단 나는 그렇다).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 이언 매큐언의 장편소설 <레슨>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일단 이언 매큐언과 주인공 롤런드 베인스의 공통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둘 다 1948년생이고, 영국에서 태어났지만 직업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해외 복무지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이른 나이에 기숙학교에 들어갔다. 무엇보다 비슷한 건, 소설 속에서 롤런드의 형이 아기 때 비밀리에 입양된 것처럼 이언 매큐언의 형도 아기 때 비밀리에 입양되었고 육십이 넘어서야 그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롤랜드는 이언 매큐언과 달리 대학을 나오지 않았고, 작가의 길을 걷지도 않았지만, 롤랜드의 첫 번째 아내 앨리사가 (이언 매큐언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가 된다는 점에서 작가로서의 그의 삶이 (앨리사를 통해) 이 소설에 어느 정도 반영이 되어 있다고도 볼 수 있지 않나 싶다. 


소설의 내용도, 작가가 이제까지 발표한 작품들의 총집합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시감이 드는 것이 많다. 일단 롤런드가 소년 시절에 자신보다 한참 연상인 피아노 선생과 사랑에 빠지는 것은 <칠드런 액트>에서 중년의 여성 판사 피오나와 그의 판결을 기다리는 소년 애덤의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첫 번째 아내 앨리사가 집을 나간 후 가족이 붕괴되고 집이 엉망이 되는 모습은 <차일드 인 타임>에서 딸이 실종된 후에 부부 관계가 무너지고 일상이 파괴되는 장면들을 연상시켰다. 롤런드가 통일 이전의 독일을 드나들며 정치적 모험을 하는 장면은 <스위트 투스>를 연상시켰다. 두 번째 아내 대프니가 세상을 떠난 후에 대프니의 첫 번째 남편과 경쟁 아닌 경쟁을 펼치는 대목은, 마찬가지로 두 남자의 경쟁과 몰락(?)을 그린 소설 <암스테르담>을 떠올리게 했다. 후반으로 갈수록 영국과 유럽 정치에 대한 비판이 많이 나오는데 이 점은 <바퀴벌레>와 비슷하다. 전체적으로 사랑과 인생, 문학과 예술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속죄>와도 연결되어 있다. 


롤런드의 인생을 가장 크게 좌우한 사건으로는 소년 시절 피아노 선생과 육체적, 정신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은 것을 들 수 있고, 실제로 롤런드는 그 사건 이후에 큰 충격을 받아서 피아니스트로서의 커리어도 대학 진학도 포기하고 특정한 직업을 가지지 않은 채 죽기 전까지 '되는대로' 살아간다. 하지만 정말 그가 '되는대로' 살았는지, 나로서는 의문이 든다. 비정규직에 수입이 적기는 했어도 그는 테니스 코치, 카드 문구 제작, 피아노 연주자 등등의 일을 끊임없이 하면서 사회와 연결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결혼도 두 번 했고, 친구는 늘 많았고, 아내가 버리고 간 아들을 끝까지 책임지고 키워냈다(가장 중요하다). 가족을 버린 앨리사를 원망하기도 했지만, 앨리사의 소설을 읽고 그의 문학적, 예술적 재능을 인정한 이후에는 서로의 갈 길을 받아들이고 앨리사를 방해하지 않았다. 피아노 선생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는데, 그때에도 법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용서를 택한다. 용서라니. 세상에서 제일 하기 어려운 일 아닌가(나는 그렇다). 


롤런드가 스스로 한 일에 비해 풍족하고 유복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백인 중산층 계급 출신의 남성이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심지어 그는 자신의 부모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같은 어머니에게서 났지만 전혀 다른 삶을 산 형과 누나를 보면, 그가 (몰랐다는 이유로, 어렸다는 변명으로) 얼마나 큰 혜택을 입고 보호를 받았는지 알 수 있다. 전쟁이 끝난 무렵에 태어나, (상대적으로) 세계가 단순했던 냉전 시기에 유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내고, 세계가 복잡해진 때에는 이미 노년에 이른 것도 그의 복이라면 복이다. 이제부터 삶을 살아야 하는, 그의 손녀 또래의 사람들에게는 그가 삶을 통해 배운 것들이 전혀 쓸모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는 동안 내내 자신은 잘못된 선택을 수없이 했고 그러므로 자신의 삶은 실패라고 여겼던 그가 어느 순간 자신의 삶은 그만하면 괜찮았다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은 좋았다.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얼음 속의 여인 ㅣ 캐드펠 수사 시리즈 6
엘리스 피터스 지음, 최인석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전에는 자기 전에 추리소설 읽는 게 고정된 습관이었는데, 요새는 잘 준비 하고 나서 <로앤오더 : 성범죄전담반> 에피소드를 한두 편씩 보는 게 습관이 되어 예전만큼 추리소설을 안 읽는다. 그래도 잠이 안 오는 밤에는 비상시를 위해 준비해둔 추리소설을 꺼내 읽는데, 최근에 마친 책이 엘리스 피터스의 '캐드펠 수사 시리즈' 제6권 <얼음 속의 여인>이다. 캐드펠 시리즈는 소설가 정세랑이 고등학교 때 읽고 역사 추리소설을 쓰고 싶다는 꿈을 가진 계기가 된 책으로도 유명하다. 나는 이 시리즈를 2024년 북하우스에서 개정판을 출간했을 때 1권부터 5권까지 읽고 최근에 6권부터 읽기 시작했다. 21권까지 있다는데 언제 다 읽을 수 있을까(일단 10권까지 샀음).


이야기의 배경은 12세기 중세 웨일스. 젊은 시절에는 십자군 전쟁에 참전해 세계를 돌아다니기도 했지만 현재는 슈루즈베리 수도원에서 수도자로 지내며 약초를 키우는 캐드펠 수사가 주인공이다. 스티븐 왕과 모드 황후 사이에 벌어진 왕권 계승 전쟁이 한창인 겨울의 어느 날. 캐드펠 수사는 귀족 가문의 남매 이브와 에르미나, 그리고 이들을 돕는 힐라리아 수녀가 환난을 피해 수도원으로 오던 중에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일행 중 가장 어린 남동생 이브를 가장 먼저 찾지만, 이브를 데리고 수도원으로 오는 길에 캐드펠 수사는 얼어붙은 강 속에서 살해당한 여인의 시체를 발견한다. 대체 이 여인은 누구이며(누나일까 수녀일까 혹은 다른 여자...?) 왜 죽었을까.


이 소설에서 인상적이었던 점은 정치가 '하지 않는' 일을 종교가 어떤 식으로 '하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소설 속에서 웨일스는 스티븐 왕과 모드 황후 사이의 내란이 한창인 상황이며, 캐드펠 수사가 속한 슈루즈베리 수도원은 스티븐 왕의 영역 안에 있다. 실종된 남매와 수녀는 아직 어리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정쟁에 가담한 바는 없지만, 남매의 보호자인 외숙(로랑스 당제)은 모드 황후쪽 사람이다. 실종자들을 구하겠다고 나섰다가 자칫하면 수도원 전체가 위험에 빠질 수도 있고, 그래서 처음에 실종자들을 구할지 말지를 두고 약간의 설전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결국 캐드펠과 수도자들은 정치는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맡기고 사람을 구하는 일에만 집중하기로 결정한다. 이것이 진정한 종교의 역할이 아닌지.


소설 후반의 전개도 흥미로웠다. 중간에 이브가 도적떼에 납치되어 그들의 소굴에 인질로 잡혀 있는 상황이 펼쳐지는데, 사라진 이브를 찾으러 길을 나선 캐드펠 수사가 추리 실력을 발휘해 도적떼의 소굴에 이르는 동안 또 다른 남자가 이브를 구하러 온다. 이 남자의 정체가 무엇인지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밝혀지는데, (소설 초반에 00을 얻은) 휴 베링어의 사연과 겹쳐지면서 놀람과 감동이 배가 되었다. 앞으로 이 남자가 (신분이 신분이다 보니)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느낌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계속해서 이 시리즈를 읽어보기로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맑은 뇌로 삽시다 - 치매를 이기는 49가지 평생 습관
신홍근 지음 / 에듀윌 / 202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은 습관으로 평생의 뇌 건강을 지키는 방법을 알려줘서 유익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어느 서민 여성의 삶, 노년, 죽음
디디에 에리봉 지음, 이상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전에는 타인의 노화나 질병, 죽음에 관한 책을 읽어도 깊이 공감하지 못했다. 아니, 스스로는 공감한다고 믿었지만 지금만큼 실감나게 느끼지는 못했다는 걸 이제는 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디디에 에리봉이 쓴 <어느 서민 여성의 삶, 노년, 죽음>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절실히 느꼈다. 디디에 에리봉은 게이이자 계급탈주자 지식인인 저자가 자신의 아버지의 죽음을 겪으며 쓴 책 <랭스로 되돌아가다>로 한국의 독자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몇 해 전 그 책을 읽을 때에도 죽음, 그 중에서도 가까운 사람의 죽음에 대해 많은 것을 '느꼈다'고 생각했지만, 그가 자신의 어머니의 죽음을 겪으며 쓴 책 <어느 서민 여성의 삶, 노년, 죽음>을 읽으면서는 한줄 한줄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책을 읽던 때와 비슷한 시기에 마침 나의 외할머니도 요양병원에 들어가셨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저자의 어머니가 노인 전용 요양 시설에 들어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 전까지 자식들이 열심히 어머니를 돌봤지만 어머니의 노화와 병세가 점점 더 깊어지면서 더는 집에서 돌볼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결국 시설을 찾게 되었다. 싫다는 어머니를 설득하는 데에만 2년의 시간이 걸렸는데 어머니는 시설에 오래 머무르지 못했다. 얼마 안 지나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헤어질 시간이 그토록 빨리 올 줄 몰랐던 저자는 어머니를 떠나 보낸 후에야 어머니의 지나온 삶을 돌아볼 수 있었다.

전작 <랭스로 되돌아가다>에 자세히 나온 것처럼, 저자의 부모는 지방 출신의 가난하고 저학력인 노동자 계급 사람들이었다. 그래도 아버지는 남성이기라도 했지, 어머니는 여성이라는 약자, 소수자성을 하나 더 가지고 있었다. 그 시절 여자들이 대체로 그랬듯이 남자처럼 공부를 하거나 직업을 가지는 건 상상도 못했다. 이른 나이에 결혼해 다수의 아이를 임신, 출산, 양육했고, 결혼 생활 내내 남편의 육체적, 정신적 폭력에 시달렸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이제 좀 자유로워지나 했는데 노화와 질병이 찾아왔다. 말년에 열 살 연하의 유부남 앙드레와 연애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그런 어머니를 이해해준 자식은 게이인 저자뿐이었다. 나머지 이성애자 아들들은 어머니가 아버지 아닌 다른 남자와 연애할 수 있다는 사실은 물론이고 남편을 여읜 여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사실조차 받아들이기 어려워 했다. 

어머니는 요양 병원에 들어가는 걸 반대했는데, 저자는 그런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막상 어머니가 요양 병원에서 지내는 모습을 보니 반대할 만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양 병원에 들어가기 전 어머니는 자신의 집에서 혼자서 자유롭게 지냈지만, 요양병원에 들어간 후에는 그곳의 일정이나 시스템에 따라야 했다. 아직 그들만큼 늙고 아프지 않은 사람들의 눈에는 요양병원에서 지내는 사람들이 비슷비슷하게 보일지 모르나 그들 간에도 엄연한 차이가 존재했다. 어머니는 눈에 보이는 사람들과 자신이 같지 않다는 데에서 깊은 고독감을 느꼈고, 남들이 자신과 그들을 같은 (늙고 아픈) 존재로 본다는 데에서 비참함을 느꼈다. 그래서인지 요양병원에 들어간 이후 어머니의 육체와 정신은 급속도로 악화되었고, 급기야 음식 섭취를 거부하며(빨리 죽어서 나도 편하고 자식들도 편하게 해주자는 생각에) 자발적 죽음을 원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저자는 어머니의 죽음이 자신에게 남긴 상처에 대해서도 말한다. 한 사람의 죽음은 주변인들에게 '정체성 상실'이라는 고통을 남긴다. 이제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까지 잃은 저자는 더 이상 누군가의 아들이 아니게 되었고, 저자는 이로 인한 상실감을 깊이 느꼈다. 저자는 평생 가족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노력했지만 부모의 입원이나 죽음 같은 사건이 일어나면 어쩔 수 없이 가족들과 얼굴을 마주해야 했고 그 때마다 큰 불편함을 느꼈다(계급탈주자는 영원히 탈주할 수 없다). 어머니의 몸에서 난, 어머니를 누구보다 잘 아는 아들이지만, 어머니가 사는 동안 저자에 대해 얼마나 알고 이해했는지도 의문이었다. 학력이 다르고 성향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른 어머니는 저자가 좋아하는 책을 읽지 못했고, 저자가 품은 이상에 공감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가족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인가. 

어머니의 죽음은 '어머니가 기억하는 나'의 죽음이기도 하다. 나도 모르는 아기 때의 나,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하는 유소년기, 청소년기의 나 등등 어머니만이 아는 나의 모습은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사라졌다. 그렇게 존재의 일부가 사라지면서 저자는 깊은 상실감을 느꼈고 그것은 고통으로 인식되었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어머니가 아는 나의 모습도 줄어들고 있다는 생각을 요즘 들어 종종 했는데, 그렇게 나를 기억하는 누군가가 영원히 부재하게 되면 남아 있는 기억조차 부재하게 된다는 생각에는 미치지 못했다. 아직 여유가 있을 때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서로에게 더 많은 (좋은) 기억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