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시 말들의 흐름 3
정지돈 지음 / 시간의흐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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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흐름에서 나오는 '말들의 흐름' 시리즈 중 한 권이다. 말들의 흐름은 한 사람이 두 개의 낱말을 제시하면, 다음 사람은 앞사람의 두 번째 낱말을 이어받은 뒤 또 다른 낱말을 제시하는 식으로 일종의 끝말잇기를 하는 형식을 취한다. 이 책은 금정연 서평가의 <담배와 영화>를 이어받고, 한정원 작가의 <시와 산책>으로 이어진다. 어쩌다 보니 <시와 산책>을 읽었고, <시와 산책> 다음으로 이어지는 유진목 시인의 <산책과 연애>도 읽었다. 그렇다면 <연애와 술>도 읽고 <담배와 영화>도 읽어야겠지... 이게 출판사의 의도라면, 제대로 통한 듯 ^^ 


정지돈 작가님은 어릴 때부터 영화를 무척 좋아했고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하기까지 했지만 현재는 영화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하신다. 아니, 좋아하기는 하는데 좋아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지는 않다고 해야 할까. 일단 평균 매일 한 편의 영화를 보는데 엄청 집중해서 보지는 않는다. 영화를 보다가 마음에 안 들면 극장 밖으로 나가버리기도 하고, 중간에 잠드는 경우도 태반이다. 영화 잡지에서 읽은 평을 자신의 평인 양 말한 적도 많고, 보지도 않은 영화를 봤다고 말한 적도 많다. 이런 식으로 삐딱한 시선으로 보면 삐딱하게 보이지만 대체로 솔직하고 결국엔 웃긴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시에 대해서는 별 말 없었던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그래도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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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과 나
이소영 지음 / 글항아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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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세밀화가 이소영 작가님의 신간이다. 확인해 보니 이제까지 출간된 이소영 작가님의 책을 거의 다 읽었다. <식물 산책>을 시작으로 <식물의 책>, <식물과 나>를 읽었고, 공저로 참여한 <나의 복숭아>, <언니에게 보내는 행운의 편지>는 읽고 있거나 읽을 예정.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같은 작가의 책들인 만큼 비슷비슷한 내용이 많은데도, 읽을 때마다 좋고 읽을수록 새롭다. 이소영 작가님의 식물 관련 책이 또 나온다면, 나는 어김없이 사 읽겠지. 그리고 또 좋아할 거야... 


<식물과 나>는 <식물 산책>, <식물의 책>에 비해 분량이 많고 식물세밀화의 비중도 높다. 내용은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저자가 관찰하고 기록하는 식물들에 관한 이야기와 저자 자신의 이야기가 어우러져 있다. 마음이 포근해지는 이야기, 어디선가 꽃향기가 나는 것 같은 이야기도 많았는데, 다 읽고 나니 안타까운 감정이 들었던 이야기가 더 많이 생각난다. 식물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식물을 상하게 하는 사람들, 하루에도 엄청난 양의 농산물을 먹고 마시면서 정작 농사는 경시하는 사람들, 할미꽃이라는 이름 때문에 꽃 자체의 아름다움을 보지 않고 무시하는 사람들(이 또한 여성 혐오, 노인 혐오가 아닐까). 


영국 큐가든에서의 일화도 생각난다. 조용한 그곳에서 웬일로 크게 말하는 사람이 있어서 자세히 봤더니 시각장애인에게 주변에 있는 꽃과 나무를 설명하는 중이었다고. 그 모습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다가, 음성으로 식물의 세계를 설명해 주는 네이버 오디오클립 <식물 라디오>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좋았다. 덕분에 눈은 보이지만 식물은 보이지 않았던 나까지 식물을 보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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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기분
박연준 지음 / 현암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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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하는 박연준 시인님의 책이다. 제목이 <'쓰는' 기분>이라서 글을 쓰는 이야기일 줄 알았는데, 읽어보니 글 중에서도 시 쓰는 일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시 쓰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박연준 시인님의 남편인 장석주 시인님을 비롯해 대학 은사인 김사인(라임을 맞춘 것처럼 보이지만 아닙니다...) 시인님, 저자와 함께 시를 쓰는 동인들, 제자들, 강연에서 만난 - 한때 시인을 꿈꾸었고 지금도 시를 읽는 어르신들... 


시를 전혀 쓰지 않고 읽지도 않는 나로서는, 이렇게 시를 쓰고 싶어 하고 계속해서 읽는 사람들이 많다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글 잘 쓰는 사람 중에 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것도 상기하게 된다. 김연수 작가님도 원래는 시인을 지망하셨다고 하고, 어제 읽은 정지돈 작가님도 시를 좋아하신다고 하고, 박연준 시인님은 뛰어난 산문가이자 소설가이기도 하시니. 결국 글을 잘 쓰고 싶으면 시부터 배워야 하는 걸까. 


시 쓰는 법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시 잘 쓰는 기술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라고 하지만, 저자의 시와 저자가 소개하는 시를 읽으니 잘 써진 시들이 공유하는 특징이란 건 분명 있는 것 같다. 무심히 볼 것들을 유심히 보기. 말로 쉽게 내뱉지 말고 여러 번 머릿속에서 굴리기. 더욱더 분명하고 정확한 비유가 없을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기. 그러고 나서 그냥 쓰기. 조금이라도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좋은 시를 꾸준히 찾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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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어
서보 머그더 지음, 김보국 옮김 / 프시케의숲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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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름도 책의 존재도 몰랐는데, 얼마 전에 읽은 황정은 작가님의 에세이집 <일기>에서 알게 되어 별로 고민하지 않고 바로 샀다. 추천의 글을 무려(!) 문학평론가 신형철 님이 쓰셨고, 2003년 프랑스 페미나 상 수상했으며, 2015년 <뉴욕 타임스> 올해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존 윌리엄스의 소설 <스토너>를 연상시킨다고 인터넷서점 책 소개 란에 쓰여있는데,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소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떠올렸다. 찾아보니 서보 머그더와 아고타 크리스토프 모두 헝가리 작가네... 


이야기는 작가인 '나'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남편과 단둘이 살고 있는 '나'는 집안일을 돌봐줄 가사도우미를 찾다가 동네에서 일 잘하기로 소문난 에메렌츠라는 여성을 알게 된다. 과연 소문대로 일은 잘했지만, 보통의 가사도우미와 달리 무례하고 때로는 괴팍하기까지 하며 자기만의 규칙이 많은 에메렌츠에게 '나'와 남편은 잘 적응하지 못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여러 사건들을 겪으면서 '나'는 에메렌츠가 어떤 삶을 살았고 그 결과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를 점차 이해하게 된다. 나아가 교육받은 지성인이자 저명한 작가이자 성실한 교인이라고 믿었던 자신이 얼마나 나약하고 모순적인지를 깨닫는다. 


거칠게 요약하면 '나'와 에메렌츠의 20년간의 우정을 그린 소설이지만, 자세히 보면 그 이상의 교훈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아마도 나를 비롯해 이 책을 읽는 독자의 대부분은 '나'에 가까운 사람일 것이고, 일상에서 에메렌츠 같은 사람을 만난다면 겉으로는 공손하게 대해도 속으로는 불쾌함을 느낄 것이다. 자신이 세운 규칙은 곧 죽어도 지켜야 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는 에메렌츠. 상대가 고용주라도 할 말은 해야 하고 안 하고 싶은 일은 절대 안 하는 에메렌츠. 이런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정말 피곤하고 힘들 것이다. 


하지만 에메렌츠가 관통해온 삶을 안다면 생각이 바뀔지 모른다. 생각이 바뀌지는 않더라도, 에메렌츠가 그토록 자신의 신념을 내세우며 주체적으로 살기를 바라는 이유를 이해할 수는 있을 것이다. 에메렌츠는 지옥을 보았고, 또다시 지옥을 보지 않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이른 나이에 깨달은 사람이다. 배웠다는 사람이, 신을 믿는다는 사람이, 실제로는 어떤 불합리와 부도덕을 저지르는지를 똑똑히 목격한 사람이다. 그리하여 배운 척, 믿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지 않고 일하며 믿지 않고 행하는 삶을 사는 에메렌츠를 오해한다는 건 얼마나 큰 오만인가. 오랫동안 가슴에 품고 싶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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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냉면 : 처음이라 그래 며칠 뒤엔 괜찮아져 띵 시리즈 10
배순탁 지음 / 세미콜론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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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콜론 '띵' 시리즈 신간이자 애정하는 유튜브 채널 중 하나인 <무비건조>의 패널 배순탁 작가님의 책이다. 주제가 평양냉면이니까 작가님의 개인적인 평양냉면 맛집 순위나 평양냉면으로 유명한 음식점에 대한 평가 등등이 주를 이룰 줄 알았는데(나오기는 한다), '띵' 시리즈의 다른 책들도 그렇듯이, 주제인 음식에 관한 내용보다는 저자 자신의 이야기가 훨씬 더 많다(그래도 '띵' 시리즈의 다른 책들에 비하면 음식 이야기나 맛집 정보가 꽤 많은지도...). 


이 책의 경우에는 배순탁 작가님의 본업인 음악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이게 진짜 재미있다. 언젠가 배순탁 작가님의 음악 에세이가 나온다면 꼭 읽어 보고 싶다(라고 말하면서 인터넷 서점에서 배순탁 작가님을 검색해 봤는데 아는 책이 나왔다. 2014년에 나온 <청춘을 달리다>. 이 책을 쓰신 분이셨다니!). 방이역 근처에 있는 봉피양에서 냉면 한 그릇 먹고 올림픽공원에서 공연 보는 게 지고의 행복이라고 쓰셨는데, 얼른 팬데믹이 사라져서 이 행복 나도 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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