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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읽는 28가지 심리실험 - 알다가도 모를 마음의 법칙
로버트 에이벌슨 외 지음, 김은영 옮김 / 북로드 / 2013년 5월
평점 :
20세기 후반만 해도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믿음이 절대적이다시피 했지만, 이제는 (오랫동안 인간의 합리성을 전제해온) 경제학에서조차 인간의 비합리성을 연구할 만큼 비합리성에 대한 연구가 널리 진행되고 있는 추세다. 로버트 에이벌슨과 커트 프레이, 에이든 그레그가 쓴 <내 마음을 읽는 28가지 심리 실험> 역시 무의식적인 편견과 잘못된 믿음, 과잉충성, 무관심 등 인간의 비합리적인 심리를 실험을 통해 분석한 책이다. 심리학 서적이라고 해서 잘 알려진 이론을 알기 쉬운 사례에 적용하여 소개하는 정도의 책일 줄 알았는데, 제목이 무색하지 않게 실험에 관한 내용이 많다. 학부시절 '사회조사방법론'인가 하는 수업에서 사회과학 연구에 필요한 실험 방법을 배운 적이 있는데 이 책을 읽기 위해서 그 수업을 들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이렇게 실험을 통해 개인의 상호작용과 사회적 환경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이론을 도출하는 학문을 심리학 중에서도 '사회심리학'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용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회학과 심리학의 중간에 위치한 학문이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심리학 서적인데도 사회학적으로 의미를 분석할 수 있는 내용이 많았다.
사회심리학자는 행동의 원인을 오로지 그 사람의 내면에서만 찾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도 찾곤 한다. 정신분석학자는 전쟁을 죽음의 본능이라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설명하지만, 사회심리학자는 순응이나 복종의 압력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거나 경쟁하는 사회그룹과 동일시하려는 인간의 경향으로 설명한다. 물론 사회심리학자도 인간을 기반으로 한 설명을 통째로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사회심리학자는 놀라울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황의 미묘한 측면들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p.19)
이 책에는 통념의 노예 법칙, 기억의 왜곡 법칙, 슈퍼모델의 법칙, 수용과 거부의 법칙, 행위자-관찰자의 법칙 등 수많은 심리학적 법칙과 그것을 증명한 구체적인 실험 사례가 소개되어 있다. 대부분이 처음 보는 새로운 실험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예일대학교 심리학과 밀그램 교수의 복종실험에 관한 내용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21장 복종심의 법칙) 밀그램은 원래 문화적 차이를 굳게 믿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인들이 나치에 복종한 것은 그들의 고유한 특성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역사적, 문화적 배경이 다른 미국인들은 그러한 강압적인 명령에 쉽게 복종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실험 방법은 매우 단순했다. 무작위로 선발된 참가자들에게 실험자의 명령에 따라 다른 참가자에게 전기 충격을 가하게 했다. 밀그램은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일그러지는 표정을 보거나 비명을 들으면 바로 명령을 거부하고 실험을 중단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참가자 대부분은 실험자의 명령을 거부하지 않았고, 눈앞에 있는 사람이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 하는데도 계속 전기 충격을 가했다. 이 실험을 통해 밀그램은 인간이 결코 자주적이지 않으며 악의적인 권력자가 있는 경우 쉽게 굴복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필립 짐바도의 스탠퍼드 감옥 실험도 이 실험과 비슷한 결과를 도출한 바 있다.
"유럽의 유대인을 말살하려는 히틀러의 끔찍한 계획을 직접 수립했다는 혐의를 받은 아돌프 아이히만은 겉으로는 지극히 정상적인 남자였고, 예루살렘의 재판정에서 자신은 오로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아이히만의 태도는 한나 아렌트가 1965년에 '악의 평범성'에 대한 글을 쓰게 만든 전형적인 태도였다." (p.245)
복종심의 법칙 외에도 광신도의 마음 법칙, 집단 순응의 법칙, 익명성의 가면 법칙 등 인간의 부정적인 심리에 관한 설명을 읽으면서, 이러한 심리적인 실험뿐 아니라 학문이 하는 일이라는 것이 결국 이러한 인간의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심리와 행동을 분석하여 사전에 예방하고 사회적인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심리학 하면 너무 미시적이다, 사적(private)이다 라는 편견 내지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심리학도 사회과학의 하나로서 사회적인 프레임으로 접근해보면 재미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