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 출신입니다만
가와무라 겐키 지음, 이인호 옮김 / 와이즈베리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언어와 사회를 좋아하고 수학과 과학을 싫어하는 전형적인 문과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서 당연하게 문과를 택했고 자연스럽게 사회과학 계열에 진학했다. '문과는 취업이 안 된다', '이공계가 취업이 잘 된다'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고 실제로 취업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취업에 도움이 될까 싶어 사회과학 계열에서 그나마 이과에 가까운 경제학을 복수전공했으나 큰 덕은 못 봤고, 덕질 하다 익힌 외국어와 좋아서 시작한 글쓰기와 전공인 사회과학으로 그럭저럭 먹고 사니 '문송할(문과라서 죄송할)' 것까지는 없지 않나 싶다. 


그렇다고 수학과 과학만 보면 얼어붙는 '이과 콤플렉스'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문과 출신입니다만>을 쓴 가와무라 겐키도 그렇다. 저자는 조치대학 문학부 신문학과를 졸업 후 도호 영화사에서 <전차남>, <고백>, <악인>, <모테키>, <늑대아이>, <기생수>, <괴물의 아이>, <바쿠만> 등의 영화를 제작했고 2012년에는 첫 소설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을 발표해 서점 대상 후보에 오르는 등 엄청난 성공을 거둔 '성공한 문과 남자'다. 그런 저자에게도 이과만 보면 얼어붙는 '이과 콤플렉스'가 있다.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 등 지금 세계를 바꾸고 있는 이들은 전부 이과 출신이라는 것도 저자에게는 강력한 스트레스 요인이다(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등과 자신을 비교하는 호연지기!). 


"진실을 알고 싶었다. 상황을 바꾸고 싶었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고 싶었다. 만약 내가 그러기를 바란다면 '이과로부터 배우는' 일에서 도망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저자는 일본을 대표하는 '성공한 이과 남자' 15인을 만났다. 15인의 면면이 화려하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해부학자, 곤충연구가인 요로 다케시, 카도카와 대표이사 가와카미 노부오, 도쿄예술대 교수 사토 마사히코, 닌텐도 전무이사 미야모토 시게루 등 각 분야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줄지어 나온다. 이름은 낯설어도 그들이 만든 상품은 익숙할 것이다. 동키콩, 슈퍼 마리오, 피크민, 니코니코 동화, 당고 3형제, 걸그룹 퍼퓸, 유글레나 등 일본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상품도 적지 않다. 


"당연한 듯 받아들여지는 일 중 약 20퍼센트 정도는 틀렸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하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해부학자 요로 다케시의 말이다. 그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일본이 패전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여태까지 알고 있던 상식은 대체 뭘까'라고 생각했다. 그전까지 주변 어른들은 물론이고 라디오와 신문에서도 일본은 무적이라서 절대 질 리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 일이 있은 후 그는 믿을 수 있는 대상을 찾았고 마침내 그 대상을 찾았다. 그건 바로 벌레였다. 정치와 언론, 말과 글을 믿을 수가 없어서 말이 없고 글을 쓸 줄 모르는 벌레에게 애정을 느꼈다는 그의 말이 애달프다. 


"무슨 일을 하든 항상 '제작 방식'을 만들어 왔다. '이렇게 표현하면 저런 내용을 전할 수 있다'라는 식으로 새로운 전달 방법을 연구하고 개발한다." 도쿄예술대 대학원 영상예술과 교수 사토 마사히코의 말이다. 한때 수학자가 되기를 꿈꾸었던 그는 졸업 후 일본의 대표적인 광고 회사인 덴쓰에 입사해 광고 기획자가 되었다. 그는 광고도 수학처럼 제작 공식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인기 광고들을 바탕으로 공식을 만들어 '당고 3형제' 등 인기 광고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무엇을 보든 요소를 분석하고 공식을 추출하고 구조를 파악하는 자세가 이과 출신답다. 도쿄대 대학원 준교수이자 인공지능 연구 선구자인 마쓰오 유타카는 이렇게 말한다. 


"인공지능이 많이 활용될수록 인간은 더 인간다운 직업에 특화될 수 있고, 그 덕에 다양성이 있는 수준 높은 사회가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영어와 프로그래밍은 이제 됐으니 인간다움을 길러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인공지능이 발달하고 딥러닝이 개발되면 문과 이과 할 것 없이 이전과는 다른 패러다임이 지배하는 세상을 맞이하게 된다. '인간 대 인간'이 아니라 '인간 대 인공지능'의 대결이 본격화되는 것이다. 그러니 '인간다움'을 더 연구하라는 조언은 "이과와 문과는 똑같은 산을 다른 길로 오르고 있을 뿐"이라는 저자의 메시지와도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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