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깊은 철학 50 - 세계의 지성 50인의 대표작을 한 권으로 만나다
톰 버틀러 보던 지음, 이시은 옮김, 김형철 감수 / 흐름출판 / 201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한때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 책을 열심히 읽었던 적이 있었다. 재미는 있지만 적성에 맞다고 느낄 만큼 매료되지는 못해서 지금은 잘 안 읽는데, 그래도 그 때 읽었던 책들이 도움이 된다고 느끼는 때가 종종 있다. 전공인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데에도 남들과 다른 관점을 가지는 데 도움이 되고, 문학 작품 비평을 읽을 때에도 그 때 어렵게 이해한 개념들이 기초 지식으로 활용되곤 한다. 최근에는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무색하게 강신주를 비롯한 일련의 철학자, 인문학자들이 출판계를 비롯해 강연, 방송계에도 진출하며 대중적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기피되는 경향이 아직도 남아있기는 하지만, 잘만 하면, 정말 잘만 하면 이 돈 안 되는 학문으로도 남부럽지 않게 버는 사람들이 생겨날 수 있음을 목격하고 있달까.



영국과 호주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철학자 톰 버틀러 보던이 쓴 <짧고 깊은 철학 50>에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철학자 50인과 그들의 주요 저서가 소개되어 있다. 사실 책 한 권으로 학자 50인의 학문 세계를 통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철학 박사가 될 생각이 아닌 이상 이들이 쓴 책을 모두 읽을 이유도 없고 읽지도 못한다. 어차피 못 읽을 책이라면 어떤 책인지 알기라도 하는 게 나을 것이다. 게다가 이 책에는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니체, 하이데거 등 정통 철학자뿐만 아니라 한나 아렌트, 보드리야르, 시몬 드 보부아르, 노암 촘스키, 마키아벨리, 마샬 맥루한 등 대부분의 철학서에서는 철학자의 범주에 포함시키지 않는 인문학자, 사회과학자들도 다수 소개되어 있다. 심지어는 <생각을 위한 생각>의 저자이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슬로베니아 출신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 <블랙스완>의 저자인 경제학자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인 하버드대 교수 마이클 샌델 등 현대의 학자들도 다수 나온다. 이 책 한 권으로 드넓은 철학의 세계를 모두 이해하기는 어렵겠지만, 제목대로 '짧고 깊'게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한 때 철학에 관심을 두었으나 깊이 빠지지 못한 건, 어쩌면 철학을 재미있게, 그러나 제대로 해설해 줄 사람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저자는 꽤 괜찮은 길잡이다. 알파벳 순서에 의거해 맨 첫 장에 실린 한나 아렌트 편을 읽으면서 나는 숱한 심리학 책에서도 얻지 못한 깨달음을 얻었다. "인간은 과거의 행위로부터 부단히 서로를 해방시켜야만 비로소 자유로운 주체로 남을 수 있고,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시작하겠다는 부단한 의지를 통해서만 새로운 것을 시작할 만큼 위대한 힘을 부여받을 수 있다." (p.40) 한나 아렌트 역시 '과거의 행위로부터 부단이 서로를 해방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는 점에서 심리학과 마찬가지로 과거를 중시한다고 볼 수 있지만, 그 방법이 과거에 침잠하거나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시작하겠다는 부단한 의지'를 가지는 것이라는 점에서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이다.


삶에 자세에 대한 설명에서도 그녀의 강인함을 엿볼 수 있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인간 종 자체에서도 그대로 통용된다. 스스로 항상 최고임을 입증해 보이며 '언젠가 사라질 것보다 불멸의 명예를 선호하는' 가장 뛰어난 자만이 참된 인간이다. 그 외에 자연이 제공해 주는 각종 쾌락에 안주하는 자는 동물처럼 살다가 죽는다." (pp.42-3) 그녀는 사회와 환경에 의해 주어지는 조건에 만족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며, 안정이 아닌 불멸의 명예를 선호하라고 조언한다. "<인간의 조건>의 끝부분에서 아렌트는 오늘날은 '직업인 사회'로 바뀌어가면서 사람들이 진정 자신을 위해 생각하고 행동하며 삶의 고통에 정면으로 맞서기보다는 각자의 개별성을 기하고 단순한 '기능'의 일부로 살아간다고 지적한다. 이런 자들은 의식과 결단력이 있는 진짜 인간이 아니라 자신이 처한 환경을 수동적으로 반영하는 고등 동물에 불과하다. (pp.44-5)" 비록 지금은 그녀가 살았던 시대와 다르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그녀가 말한대로 '단순한 '기능'의 일부'로서 무기력하게 살고 있다. 전체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한 그녀의 메시지. 실은 자본주의의 폐해를 경고했던 것은 아닐까?


드 보부아르에 대한 해설도 인상적이었다. "드 보부아르는 하이데거, 사르트르, 모리스 메를로퐁티에 의거하여 '육체는 사물이 아니라 하나의 상황'이라고 언명한다. 이런 식으로 보면, 여성의 가능성은 남성의 가능성과 다를 뿐이지 제약이 더 심한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여성의 '약점' 대부분은 오로지 남성들의 목적에 비추어볼 때에만 약점이다. 예를 들어 신체적 열등성은 전쟁과 폭력이 부재하는 세상이라면 아무 문제가 없다. 만약 사회가 달라진다면, 신체적 특성에 대한 평가도 바뀔 것이다. (p.92)" 드 보부아르의 <제 2의 성>으로 인해 촉발된 여성성에 관한 논쟁은 여성을 남성에 이은 '제 2의 성'으로서 간주하는 문화가 사라지지 않는 한 계속되어야 한다. 심지어는 '제 2의 성'을 언명한 드 보부아르마저 평가절하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제 2의 성>은 입증되지 않은 내용이 많고 순환 논리에 빠지며 '제대로 된' 철학서가 아니라는 이유로 비판을 받았지만, 이런 사실조차 좌뇌적인 철학 체계를 구축한 남성 철학자들이 저자의 성에 가하는 은밀한 공격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드 보부아르가 종종 철학자로서 간과되어왔다는 사실은 결국 철학사를 쓰는 사람도 대부분 남자이므로 남성 학자들의 공헌에 중점을 둔다고 한들 놀라운 일이 아니라는 드 보부아르의 주장을 증명하는 꼴밖에는 안 된다." (p.95) 어디 철학뿐이랴. 대부분의 학문에서 여성 학자들을 주목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현대에 들어서는 여성 학자들의 지위가 많이 향상되었다고 하지만, 적어도 이 책에 실린 여성학자들의 수만 보더라도 50명 중에 단 둘뿐이다. 여성 문제에 있어서는 여전히 철학에서 연구할 것이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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