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경독서 - 감성좌파 목수정의 길들지 않은 질문, 철들지 않은 세상 읽기
목수정 지음 / 생각정원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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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서평을 쓰기 시작한 지 어언 4년째. 처음엔 그저 블로그를 운영하기 위한 수단으로, 읽은 책의 감상을 남기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한 '불온한' 서평 블로그였지만, 이제는 이십대의 절반을 꼬박 바친 소중한 취미이자 내 방보다 편안한 '자기만의 방' 같은 존재가 되었다. 앞으로의 바람은 그저 나의 감상을 쏟아내지 않고 읽는 사람의 마음을 붙잡고 삶을 뒤흔들 수 있는 서평을 쓰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읽는 책의 양보다도 질을 따져야겠고 글에도 더 신경을 써야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앞으로 내가 삼십대에 할 일 중의 하나가 될 것 같다.

 

 

삼십대가 될지 그 이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내 이름으로 서평집을 내보고 싶은 소망도 있다. 읽은 책을 마구잡이식으로 소개하는 서평집말고, 나란 사람의 삶이 오롯이 녹아있는, 책과 사람이 똑같이 빛나는 서평집 말이다. 그런 책을 쓸 기회가 온다면 나는 편집자에게 목수정의 <월경독서>를 건네리라. 어떻게 이런 책을 쓰고 만들었을까.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을 읽을 때도 문장이 한줄 한줄 마음에 쏙쏙 박히고 책의 만듦새까지 좋아 읽는 내내 황홀했는데, 이번에 읽은 <월경독서>도 그랬다. 책 한권 한권이 씨줄과 날줄처럼 저자의 삶과 촘촘히 연관되어 있는 것도 신기한데, 책을 소개하는 저자의 시선 또한 어떤 책에서는 따뜻하고 푸근한데 어떤 책에서는 칼날처럼 예리해, 서평이 꼭 마치 예술과 정치라는 양극단을 오가는 저자의 삶 같았다. 책이 사람을 만들고, 사람이 책을 만든다는 어느 서점의 광고 카피가 새삼 떠올랐다면 무리일까.

 

 

저자가 소개한 책은 모두 열일곱 권이다. 서평을 쓰기 위해 최근에 다시 읽기는 했지만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읽어온 책들 중에 인상 깊은 것만 고르고 또 고른 것들이라고 한다.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는 십대 시절 처음으로 한국사회의 모순에 눈을 뜨고 치열하게 고민했던 날들에 관한 추억이 담겨 있고, <이사도라 던컨>에는 무용수의 춤 동작 하나에도 영혼이 뒤흔들리는 듯한 경험을 했던 청춘의 기억들이 담겨 있었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대학 신입생 때 한 번, 이십대 후반 파리에 와서 한 번, 마흔 넘어 한 번, 이렇게 총 세 번을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달랐다. 처음엔 오로지 테레자와 토마스의 불같은 사랑만 눈에 들어왔는데, 이제는 그들의 인생과 다른 이들의 사랑까지 모두 시야에 들어온다고. 내가 얼마 전에 읽은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도 저자는 프랑스어판으로 진작에 읽었다고 한다. 여성의 삶에 회의를 느낄 때마다 찾게 되는 책인데, 언젠가는 딸에게도 읽혀줄 생각이라고 한다. 멋지다. 나도 언젠가 딸을 낳으면 꼭 이 책을 소개해줘야지. 

 

 

저자가 소개한 책들 중에 무슨 일이 있어도 읽어보고 싶은 책은 <페르세폴리스>와 르 클레지오의 <황금 물고기> 두 권이다. 이슬람 혁명기에 보수적인 이란 사회에서 분투한 소녀의 실화를 담은 만화책 <페르세폴리스>는 많은 나라에서 반향을 얻어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이 되었다고 한다. <황금 물고기>는 르 클레지오의 소설치고는 드물게 밝고 건강한 느낌이 든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두 권 다 여성이 씩씩하게 살아나가는 내용이다. 나도 모르게이제 곧 이십대에서 삼십대의 삶으로 '월경(越境)'하는 내가 지금보다 더 씩씩하고 꿋꿋해지기를 바랐던 것일까. 월경한 그곳에서 언젠가 꼭 이런 서평집을 쓰는 기적같은 일이 생기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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