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힘이 되는 아빠의 직장 생활 안내서 - 직장 선배들은 가르쳐 주지 않는 18가지 업무 노하우
김화동 지음 / 민음인 / 201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선 후기 대학자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가족과 친지, 제자들에게 보낸 편지를 모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라는 책이 있다. 이 책에는 정약용이 자식들에게 쓴 글도 다수 실려 있는데, 몸가짐도 바르게 하라, 책읽기를 게을리 하지 마라 등 훈계를 하는 대목이 대부분이지만, 오랫동안 곁에 있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들을 험한 세상을 내놓는 아비로서의 애처로운 마음이 곳곳에서 묻어나 독자이자 자식된 사람으로서 참 애틋했다.

  

 

김화동의 <딸에게 힘이 되는 아빠의 직장 생활 안내서>를 읽으니 그 때 그 애틋한 마음이 다시 들었다. 1980년 행정고시 합격 후 경제기획원, 기획재정부 등을 거쳐 차관급 고위직으로 퇴직한 저자는 32년 간 정부 부처에서 여러 요직을 거친 관료 출신답게 자기관리와 사회생활에는 통달했지만, 가정에서는 세 딸과의 대화에 어려움을 느끼기 일쑤인 평범한 아버지다. 사회생활만큼은 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몇 마디 조언을 하거나 편지로 써 주던 저자는 둘째딸의 취직에 맞추어 딸이 회사 생활에 잘 적응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평소 생각해 오던 요령을 열여덟 가지로 압축하여 책으로 다듬었다. 생각과 계획에 집중하라, 타인의 기대를 넘어서라 등 사회생활 선배로서 냉정하고 따끔한 충고를 아끼지 않는 대목이 많지만, 곳곳에서 딸이 조금이라도 사회 생활에 덜 치이고 덜 고생하기를 바라는 애틋한 부정(父情)이 느껴져 뭉클했다. 

 


"반드시 출근 시간 15분 전에는 사무실에 도착하는 습관을 생활화해라." 라고 조언하는 저자는 업무를 시작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자상하게 알려준다. 먼저 매일 처리해야 할 업무의 리스트를 약 10개 정도 만든다. 그 다음에는 우선순위를 정해 각 업무에 1부터 10까지 순서를 매긴다. 1부터 시작해서 차례로 업무를 처리한다. 업무를 끝내지 못한다고 해서 초조해하지 않는다. 우선순위에 따라 일을 처리하고 남은 일은 다음 날 처리한다. (미래를 위한 초석을 다져라 p.22) 신입사원이라서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경우에는 선배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업무에 관련된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는다. 인터넷 서핑을 하거나 동료들과 잡담을 하면서 시간을 흘려 보내서는 안된다. 하루 일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 때에는 그날 한 일을 되돌아보는 것이 좋다.



회사의 고객과 회사원의 고객은 다르다, 회사원의 1차 고객은 상사이므로 상사의 요구에 맞추는 것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하라는 조언도 인상적이었다. "너의 고객은 바로 위(직근) 또는 2단계 위(차상위)의 상사이다. 만약 네 위에 과장이 있고 부장이 있다면 그들이 1차 고객, 즉 핵심 고객이다. 때에 따라서는 지휘 계통상에 있는 임원도 포함될 수 있다." (p.53) 이제까지 회사든 회사원이든 같은 고객을 대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회사원의 1차 고객은 재화나 서비스의 이용자가 아닌 직속 상사라고 하니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처럼 충격적이다. 고객을 모시듯 상사를 모신다고 생각하면 직장 생활의 많은 것이 바뀔 것이다. 보고를 함에 있어서도 내 주장보다는 상사가 원하는 바를 먼저 생각할 것이고, 업무 시간이든 그 외 시간이든 상사를 비롯한 팀웍을 우선할 것이다. 직장 내 인간관계 중에서도 상사와의 관계 때문에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현재 부하의 입장이라면 앞으로 고객을 모시듯 상사를 모셔보면 어떨까. 직장 생활이 많이 편해질 것이고, 잘하면 업무 성과와 인사에서도 득을 볼 것이다.



자기계발에 대한 충고도 아끼지 않는다. "독서는 자신에 대한 R&D 투자다"라고 말하는 저자는 적어도 2주에 한 번은 서점에 들르고, 월급의 3퍼센트는 책을 사라고 조언한다. 책을 고르는 팁은 이렇다. "분야나 주제에 관련해선 자신의 취향에 따르면 무난하다고 생각된다. 저절로 손이 가는 책, 읽으면 재미 있는 분야, 술술 페이지가 넘어가는 책을 선정하면 무리가 없을 듯하다. 그 책의 주제가 대체로 네가 흥미 있는 분야라는 사실이 은연중에 드러나는 것이다. 물론 업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분야의 책은 재미 여부와 관계없이 정해야 하고, 덧붙여 소설이나 시를 비롯해 다양한 인문학 서적을 많이 읽기를 권한다." (pp.237-8) 책을 읽었으면 글을 써보는 것도 좋다. 혼자 쓰는 것도 좋지만 사내 인트라넷이나 소식지에 글을 실어보는 것도 좋다. 글쓰는 방법은 종합지와 경제지를 최소한 한 가지씩은 정독하며 익히자.



사회생활을 함에 있어 원만한 인간관계를 만들기 위한 충고도 빼놓지 않았다. 사회초년생들이 처음 입사해서 어려움을 느끼는 문제 중 하나가 회식이다. 일이 끝나면 가능한 한 빨리 회사를 떠나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고 싶은 건 누구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회사에서 제일 막내인 신입사원이 업무의 연장선상이라는 말도 있는 회식을 빠지는 일은 여간해선 허용되지 않는다. 저자는 "책이나 경험에서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에게서 배우는 것은 그보다 더 가치가 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는 시간은 새로운 정보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다." (p.150) 라며 다른 사람들과 식사하는 자리를 피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술을 못 마시는데 권유받은 경우에는 "술자리가 불편해도 첫 잔은 예의상으로라도 받아 놓고 천천히 오랫동안 마시면서 '지금 마시는 중이다'라는 느낌만 보여줘도 된다."(p.216) 라고 조언한다. 무뚝뚝한 우리 아버지도 회식이든 술자리든 안 좋아하는 나를 보며 이런 마음이 드셨을까? 아버지의 속깊은 정이 오늘따라 더 푸근하게 느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