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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 분의 1의 우연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3년 10월
평점 :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 <더 픽처>에서 주인공 벤은 운명을 바꾸어 유명 사진가가 되었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그렇다면 똑같이 한 사진가의 운명을 다룬 1981년에 발표된 마츠모토 세이초의 소설 <10만 분의 1의 우연>에서는 어떨까?
보험회사 영업사원으로 일하는 아마추어 사진가 야마가 교스케는 야간에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차량 연쇄 추돌 사고를 찍은 <격돌>이라는 작품으로 '10만 분의 1의 우연'을 만났다는 극찬을 받으며 A신문 <독자 뉴스사진 연간상> 최고상을 수상하고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그런데 얼마 후 A신문 독자 투고란에 '카메라를 들이댈 시간이 있었으면 한 명이라도 더 살리려고 애써야 옳지 않았느냐'는 내용의 비판적인 논조의 글이 실린다. 그리고 몇 달 후에는 다른 이름으로 신분을 가장하며 그의 주변을 캐고 다니는 수상한 인물이 등장한다. 야마가 교스케는 어떻게 '10만 분의 1의 우연'을 만난 것일까? 그는 과연 프로 사진가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이 소설은 개인의 욕망이 타인의 행복, 사회의 한계와 충돌하는 지점을 예리하게 포착했다. 1981년에 발표된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30년이 넘게 지난 지금 보아도 세련되고 현대적이며, '보도의 사명과 인명 구조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할까?'를 묻는다는 점에서 여전히 시의적절하다.
사실 초반에 등장하는 신문 상의 찬반양론을 볼 때에는 신문사와 사진가 측의 입장에 더 공감했다. 보도의 사명과 예술가의 혼을 나같은 일반인이 온전히 이해하기란 어렵고, 그러니 그들의 말이 옳으리라고 지레 짐작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고 사고 당사자의 가족들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면서부터는 인명 구조에 힘을 써야 한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사건과 무관하다는 점에서 나같은 일반인은 신문사나 사진가와 다를 게 없다. 사진을 사진 그대로 볼 뿐이다. 그러나 사건과 관련이 생기면 어떨까? 혹시라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생애 마지막 모습을, 그것도 처참한 사고를 당하는 모습을 신문에서 본다면 충격이 어떨까? 나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다.
마츠모토 세이초의 소설 중에서는 비교적 덜 유명한 편이지만 소설 자체의 무게와 문제 의식은 다른 작품들에 뒤지지 않는다. 팩트를 위시한 저널리즘과 예술을 가장한 개인의 공명심은 생명의 소중함과 비길 것도 안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다는 점에서 읽어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