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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1 - 4月-6月 ㅣ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평점 :
밤에 집 근처 공원에서 산책을 하다보면 하얀 달이 시선에 들어오는 때가 종종 있다. 그 때마다 달이 얼마나 크고, 멀리 있고, 오랫동안 지구 주위를 돌았는지를 생각한다. 그에 비하면 나라는 인간은 얼마나 작고, 보잘것 없으며, 나의 삶이라는 것은 덧없고 허무한가. 달은 언제나 그것을 깨닫게 해준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2009년작 <1Q84>에는 달이 한 개가 아니라 무려 두 개나 떠 있는 세계가 등장한다. 열두 살이 되던 해에 '증인회'의 광신도인 부모에게서 도망쳐 현재는 스포츠 인스트럭터로 활동하는 아오마메. 오랫동안 애인도 없고 하나뿐인 친구도 죽고 없는 고독한 삶을 살았지만, 그녀는 언제나 쿨하다. 외롭지만 쿨한 사람이 여기 한 명 더 있다. 이름은 가와나 덴고. NHK 수금원이었던 아버지에게서 역시 도망치듯 떠나온 그는 현재 수학학원 강사로 일하면서 소설 습작을 쓰고 있다. 만나는 사이도 아니고 같은 곳에 사는 것도 아닌 두 사람은 어느 날 문득 하늘에 두 개의 달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내 눈이 잘못된 걸까, 아니면 이 세상이 미친 걸까. 매일밤 달의 갯수를 확인하며 스스로를 또는 세상을 의심하지만, 아쉽게도 그들 곁엔 이 절실한 의문을 풀어줄 이가 한 명도 없다. 아오마메는 가정폭력 피해자인 여성들을 보호하는 노부인으로부터 어떤 소녀를 무자비하게 성폭행한 남성을 '처리'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아오마메는 전에도 노부인의 부탁을 받고 여러 번 비슷한 일을 한 적이 있지만, 이 남성은 '선구'라는 종교집단의 리더이기 때문에 접근하기가 어려울 뿐더러, 일이 잘되든 잘못되든 목숨이 위험해질 우려가 있다. 한편 덴고는 평소 친분이 있던 편집자 고마츠의 부탁으로 열일곱 살 소녀 '후카에리'의 소설을 대필하는 일을 맡는다. 썩 내키는 일은 아니었지만 순조롭게 끝났고, 소설 역시 고마츠의 예상대로 베스트셀러가 된다. 그러나 후카에리가 '선구'의 리더의 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덴고의 신상이 위험해진다.
<1Q84>는 총 세 권으로 되어 있는데 각 권마다 분위기나 형식이 조금씩 다르다. 아오마메와 덴고의 살아온 이력과 현재의 생활이 소개되는 1권은 70년대 학생운동의 잔여세력과 신흥종교 문제 등이 뒤엉켜 흉흉했던 1984년 당시 일본의 사회상이 사실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주인공 여성은 신체적 능력이 뛰어난 반면 주인공 남성은 지적 능력이 탁월하다는 점, 주인공 여성이 어린시절에 가정과 학교로부터 안좋은 대우를 받았으며 양성애자 같은 면을 보인다는 점,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해있던 두 사람이 어떤 사건을 통해 우연히 만나게 된다는 점, 여성에 대한 학대, 폭력 문제를 시사하고 정치 문제까지 거론된다는 점 등에서 얼마 전에 읽은 스웨덴 작가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가 연상되기도 했다.
1권이 추리소설 같았다면, 2권부터는 판타지 문학의 느낌이 강해진다. 가공의 존재인 줄만 알았던 '리틀 피플'과 '공기 번데기'의 정체가 점점 드러날 뿐더러, '선구'의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아오마메와 덴고의 주변에서 기존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연이어 발생한다. 엄청난 번개와 천둥이 치던 날 아오마메와 덴고가 각각 '선구'의 리더와 후카에리를 통해 서로의 몸으로 연결되면서 소설의 판타지성은 절정에 달한다. 마지막 3권에서는 형식이 조금 달라진다. 1,2권은 아오마메와 덴고의 시점이 교차하는 형식인데 반해 3권은 여기에 그동안 덴고의 뒷조사를 하던 우시카와라는 남자의 시점이 추가된다. 아오마메와 덴고를 열렬히 응원하던 독자로서 외모와 성격 모두 괴이하다 못해 수상쩍기까지 한 그의 등장이 썩 반갑지는 않았지만, 덕분에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다.(2권 후기에서 이어집니다)
두 개의 달을 테마로 하는 소설답게 <1Q84>에는 두 세계의 혼합, 공존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적지 않다. 아오마메와 덴고라는 두 남녀의 세계가 각각의 시점으로 묘사되는 점이 그렇고, 1984년 당시 일본의 사회상을 다룬 리얼리즘 소설과 판타지 문학의 경계에 있다는 점이 그렇다. 안톤 체호프의 소설과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 등 서양의 문화와 무라사키 시키부의 <겐지 모노가타리>, 전통적으로 중국 등 동양문학의 주요 제재였던 달이라는 모티프 등 동양의 문화가 함께 등장하는 점 역시 마찬가지다.
무엇보다도 이 소설은 무라카미 하루키 자신이 살면서 겪거나 고민한 경험의 총체를 문학으로 재해석, 재창조한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알려진대로 무라카미 하루키는 1949년 일본문학 교사인 부모 슬하에서 태어나 미군들이 버리고 간 페이퍼백 소설을 읽으며 미국문학에 심취했다. 학생운동이 절정에 달했던 70년대에 대학생활을 했으나 가담하지는 않았고, 졸업 후에는 취업을 하지 않고 재즈카페를 운영하다가 서른이 되던 해에 소설가로 데뷔했다. 일본문학을 비롯해 '일본의 것'을 중시하는 국수적인 가정에서 미국소설, 재즈 등 미국문화에 심취한 점, 학생운동에 관심이 전혀 없지는 않았으나 참여하지는 않은 점, 자영업자이면서 소설을 쓴 점, 소설가로서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뒤에도 보수적인 일본 문학계에 머무르지 않고 변두리를 떠돌다 미국 진출을 시도하여 바깥으로 나아간 점 등 그의 오랜 '이중 생활'이 소설 곳곳에서 느껴졌다.
판타지와 리얼리즘을 오가는 소설을 주로 쓰던 그는 90년대에 이르러 옴진리교 사건과 고베 대지진을 거치며 종교, 정치 등 사회문제에도 눈을 돌렸는데, <1Q84>에는 이같은 면이 드러난다. 직접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작품을 읽다보면 작가가 그동안 걸어온 길과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을 여실히 느낄 수 있고, 특정한 정치적 입장이나 종교적인 신념을 표방하지는 않지만 읽고나면 그러한 주제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품게 만드는 점이 대단하다. 감히 말하건대, 이제까지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중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