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있지 말아요 - 당신의 가슴속에 영원히 기억될 특별한 연애담
정여울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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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준비하면서 나는 '아무리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도 사랑을 전혀 모르겠다'는 생각 때문에 괴로웠다. 그런데 이런 나에게 용기를 주는 사람이 있었다. 내가 존경하는 심리학자 융인데, 그조차 인정한 것이다. 융은 고백한다. "내 모든 경험상 사랑은 거의 다 올라갔다고 생각했을 때 더 높이 우뚝 솟아 있는 거대한 산과 같습니다." 융은 무한한 사랑의 모순을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찾을 용기가 없다고 털어놓는다. 도저히 그 학문의 깊이를 짐작할 수 없는 위대한 대가의 뜻밖의 겸허함이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나는 사랑을 잘 모르지만, '사랑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되새기고 싶다. 사랑을 꿈꾸지만 사랑 때문에 늘 상처받는 사람들과 함께, 이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들의 감동을 나누고 싶다. 사랑이야말로 끝나지 않는 철학의 샘물이고, 어떤 이론으로도 완전히 분석할 수 없는 삶을 예리하게 투시하는, 보이지 않는 현미경이니까. (pp.17-8)

  

 

소설, 영화, 음악 등 여러 예술 장르에서 역사상 가장 많이 다뤄진 테마는 단연 사랑일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수많은 예술가들의 노력과 탐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알 수 없고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은 테마 역시 사랑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흔해 빠졌다고 욕하면서도 연애 소설을 찾아 읽고, 주말마다 로맨스 영화를 보는 것도 모자라 주중에는 드라마에 몰두하고, 쉴새 없이 사랑 노래를 들어대는 것이 아니겠는가.

 

 

문학평론가 정여울의 <잘 있지 말아요>를 보니 사랑과는 담 쌓은 삶을 살 것 같아 보이는(?) 학자들 또한 사랑에 관심이 많은 모양이다. 문학평론가이면서 철학자이기도 한 저자가 사랑을 테마로 한 서평집을 낸 것을 보면 말이다. 이 책은 사랑, 연애, 이별, 인연 - 이렇게 네 개의 키워드 아래 고전부터 현대, 영화 원작에 이르는 서른 일곱 편의 소설에 대한 평론을 담은 문학평론집 또는 서평집이다. 서평집에는 안 읽은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서평집과 읽은 책을 다시 읽고 싶게 만드는 서평집, 이렇게 두 부류가 있는데, 이 책은 주로 후자다. 책으로 읽었든 영화로 보았든 간에 이 책을 읽고난 후 다시 찾고 싶어진 작품이 참 많다. 

 

 

다나베 세이코의 소설이 원작인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그렇다. 고등학교 때 대학교 훈남 선배 같은 외모의(정작 나는 여대에 갔지만) 츠마부키 사토시를 보겠다는 일념으로 보았던 이 영화를 대학교를 졸업하고도 몇 년이 지난 지금 이 책을 통해 돌아보니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전에는 대학생 츠네오가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조제를 만나 풋풋한 사랑을 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한편, 결국에는 현실의 장벽 앞에 무너지는 모습이 슬프기만 했는데, 어느덧 영화 속 그들보다 나이를 먹고보니 사랑을 단념한 조제가 츠네오를 만나 처음으로 마음을 연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츠네오가 살면서 단 한 번이라도 그런 순수한 사랑을 해본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알겠다. "사람들은 사랑이 싫어서가 아니라 사랑이 끝나고 난 후의 외로움이 두려워서 사랑을 피한다"는 저자의 말처럼, 나이를 먹고 사랑의 횟수가 늘수록 사랑 자체보다는 사랑한 후의 고독과 아픔이 싫어서 겁을 내는 일이 많아진다. 아마 영화를 다시 본다면 두려움을 이기고 사랑에 뛰어든 조제가 멋져서, 그런 사랑을 한 번이라도 해볼 수 있었던 츠네오가 부러워서 눈물이 나겠지.

 

 

토마스 만의 소설 <베니스에서의 죽음>도 그렇다. 몇 년 전에 이 소설을 읽었을 때에는 철저한 자기 관리로 유명한 천재 예술가 아셴바하가 휴양차 베니스에 갔다가 타치오라는 미소년을 만나 그곳에서 죽음을 맞는 게 아깝고 어이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데 이번에 이 책을 통해 다시 보게 되었다. 저자의 말대로 "그 사람이 아니라면 결코 선택하지 않았을 위험천만한 모험을 기꺼이 선택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사랑임을" 전에는 몰랐지만 이제는 알 것 같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스탕달의 <적과 흑>, 가스통 르루의 <오페라의 유령>,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등 오래 전에 읽었고 익히 알고 있는 고전문학뿐 아니라 이언 매큐언의 <속죄>, 2013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앨리스 먼로의 <곰이 산을 넘어오다> 등 현대문학, 스티븐 크보스키의 <월플라워>, 매튜 퀵의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같은 영화 원작 소설이 두루두루 소개되어 있다"사랑이야말로 끝나지 않는 철학의 샘물이고, 어떤 이론으로도 완전히 분석할 수 없는 삶을 예리하게 투시하는, 보이지 않는 현미경"이라는 저자의 말을 믿고, 이번 가을, 사랑에 빠진 문학 속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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