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게 - 어느 은둔자의 고백
리즈 무어 지음, 이순영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착한 사람이 살이 더 찐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착한 사람은 화를 내거나 신경질을 내는 대신 음식을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경향이 높고 그러다 보니 자연히 살이 찐다는 것이다. 몸무게가 '정확히 몇 킬로그램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220킬로그램에서 270킬로그램 사이쯤 될 거'라는 아서 역시 착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뚱뚱하고 못생겼다는 이유로 남편에게 버림받은 어머니와 오랫동안 단둘이 살았던 아서는 학창시절엔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고, 교수로 재직하던 대학에서는 쫓겨났으며, 하나뿐인 여자친구마저 자신을 버리고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화를 낸 적이 없다. 대신 그는 먹었다. 먹고 먹고 또 먹었다. 

 

 

그런 그의 인생에 단 한 번 사랑이 찾아온 적이 있다. 제자였던 샬린 터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치과 접수 창구에서 일하던 그녀는 스스로 학비를 벌어 아서가 재직하던 대학에 등록했다. 공부에는 재능이 없어 엉뚱한 질문만 하기 일쑤였지만 아서는 그녀가 좋았다. 한 학기만에 학교를 그만두고 자취를 감춘 그녀가 편지를 보낼 때에도 정성스럽게 답장했다. 비록 전보다 훨씬 불행해진 자신의 삶을 거짓으로 위장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1년 가까이 편지를 쓰지 않았던 샬린이 아서에게 전화를 해서는 고등학생 아들 켈의 대학 입시를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샬린에게 아들이 있는지조차 몰랐던 아서는 당황했다. 그동안의 거짓말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명해야 할까. 용기를 내어 잘못을 비는 내용의 편지를 썼다.

 



당신이 나에 대해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게 있는데, 내가 무지막지하게 살이 쪘다는 거에요.

신과 만나던 시절만 해도 그저 퉁퉁한 정도였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요즘 나는 때를 가리지 않고 먹고 싶은 대로 먹어요. 

먹는 양을 줄여보려는 노력을 안 한 지 꽤 되었는데, 꼭 그래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죠.

움직이지 못한다거나 아파서 누워 있는 정도는 아니지만, 예닐곱 발자국만 걸으면 벌써 숨이 차고 굉장히 창피하기도 하고,

꼭 어딘가에 갇혀 있는 첼로나 값비싼 총이 된 느낌이 들기도 해요. (중략)

 

두 번째로 알아야 할 건, 20년 동안 당신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말하지 않은 게 있다는 거에요.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난 뒤로 여러 일이 겹치는 바람에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어요.

그것 말고도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한 말이 많이 있어요.

예전 친구나 동료들 얘기는 생각나는 대로 쓴 거였어요. 학교를 그만둔 지 18년이 되었거든요.

 

마지막으로 알아야 할 건, 사실 이게 가장 중요한 건데,

이제 나는 집 밖에 나가지 않는다는 사실이에요. (pp.13-4)



 

저만 섭식장애에 시달리고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인 줄 알았던 아서는 몰랐지만, 샬린과 아들 켈 역시 제대로 된 삶을 살지 못하고 있었다. 빈민가에서 태어나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던 샬린은 켈을 억지로 부유층 학교에 진학시키고 대학에 들어가도록 강요했음에도 불구하고, 켈이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운동에만 빠지자 술과 약물에 의존하며 삶을 포기한다. 켈은 어린 시절 집을 나간 아버지를 그리워하다 못해 아버지가 좋아했던 야구에 빠져든다. 어머니의 뜻에 따라 부유층 학교에 진학한 뒤에는 부자인 친구들을 이용만 할 뿐 진정한 우정을 나누지는 않는다.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사실은 서로를 그리워 하면서도 아서와 샬린, 켈은 고독을 자처한다. 아서와 샬린은 집밖으로 나오지 않고, 켈은 어머니 샬린이 있는 집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제대로 된 인간관계도 나누지 않는다. 아서와 샬린은 연애는커녕 친구, 이웃과의 소통도 기피하고, 켈은 사람을 사귀되 속마음을 터놓을 만큼 깊이 사귀지는 못한다. 이렇게 비정상적이리만큼 스스로를 고립시키던 사람들이 서로의 상처를 알게 되고 보듬어나가는 과정이 소설 <무게>의 핵심 줄거리다.

 


작가는 이들 세 사람의 상처와 고통을 짐이 되는 것, 고통스럽게 짊어지고 가야 하는 것, 복잡하고 힘겨운 것, 진지하고 심각하며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을 뜻하는 영단어 'heft'로 규정했다. 역자는 'heft'를 '무게'로 번역했으나, 정확히는 삶의 무게, 짐, 부담, 십자가, 소명 등 정신적이고 종교적이기까지 한 뜻을 가진다. 소설 <무게>의 인물들 역시 저마다 큰 삶의 무게를 지고 있다. 아서는 어린 시절 어머니와 자신을 버린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젊은 시절의 꿈을 한 순간의 실수로 모두 잃어버린 것에 대한 깊은 후회를 안고 있다. 샬린은 여러 번 빈민가를 탈출할 꿈을 꾸었으나 결국에는 실패했다는 좌절감에 몸부림치다 술과 약물에 빠져든다. 아들 켈만이라도 제대로 살게 해주고 싶지만 쉽지 않다. 켈은 어린 시절 자신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 어머니에 대한 증오와 죄책감이라는 모순된 감정 때문에 괴로워한다. 



세 사람은 자신이 지고 있는 무게를 좀처럼 나눠지지 못한다. 이는 내가 살고 있는 현실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내 짐만 지고 가기에도 바쁜 세상에서 남의 짐을 보고 그 무게와 고통을 헤아려 주는 사람은 만나기 어렵다. 행여 남이 자신에게 더 큰 짐을 떠맡길까봐 움츠리고 등돌리는 사람이 태반이다. 아서처럼 집 안에 쳐박혀 음식을 먹는 것으로 갈증을 대신하거나, 샬린처럼 술에 의존하거나, 켈처럼 거짓된 관계를 반복하는 사람이 현실에도 많다. 다행히도 아서와 켈은 일련의 사건 속에서 자신의 짐을 같이 져주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그들로부터 큰 용기를 얻는다. 종국에는 타인으로만 여겼던 사람들의 진심을 알게 되면서 삶과 자신이 속한 사회를 전보다 더 희망적으로 보게 되는데, 그 과정이 무척이나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다. 무거운 것을 혼자 들면 그저 괴롭고 버거운 일에 불과하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 들면 훨씬 수월할 뿐만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친구가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소설을 통해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가벼운 소설인 줄 알았는데 막상 읽어보니 묵직한 울림이 있었고, 비정하고도 어두운 사회 이면을 그리면서도 따뜻함과 희망을 잃지 않는 점이 좋았다. 아서와 켈의 시점을 교차하는 서술 방식으로 되어 있어서 하나의 이야기를 두 사람의 관점에서 비교해가며 읽는 재미가 있었고, 나이, 관심사, 생활방식 등 너무나 다른 두 사람이 샬린이라는 한 여성을 통해 연결되고 이어지는 구성이 흥미로웠다. 무엇보다도 착하다는 이유로 남들에게 이용 당하고 상처만 입었던 아서가 결국에는 샬린과 켈, 욜란다, 이웃 주민 등 수많은 만남과 인연을 얻게 되어 다행스럽고 기뻤다. 자기처럼 외로워 보인다는 이유로 가난한 여대생 샬린에게 손을 내밀었던 아서의 따뜻한 마음이 늦게나마 보답을 받은 것 같았다. 착한 사람, 화내지 않는 사람, 욕심내지 않는 사람에게 행복이 찾아오는 '해피엔딩'이 그리운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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