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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야, 이제 만나서 - 희망의 길을 걸었다. 여덟 번의 기적을 만났다
안성기.배종옥.송일국.고수.양동근.한혜진.윤은혜.보아.KBS 희망로드 대장정 제작팀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KBS 희망로드 대장정 제작팀이 만든 <다행이야, 이제 만나서>. 이 책에서 나는 먼저 윤은혜의 마다가스카르 방문기를 읽었다. 전쟁과 기아, 빈곤에 시달리는 섬, 마다가스카르의 아이들은 쓰레기 더미에서 음식을 주워 먹는다. 그마저도 인근 농장에 가축 사료로 팔면 못 먹는다. 조금 더 나이를 먹은 아이들은 채석장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여자아이들은 매춘을 한다. 이들은 고작 아홉 살, 열 살이다. 윤은혜는 아이들이 잠시라도 팍팍한 현실을 잊고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밥을 사주고, 같이 노래하고, 우쿨렐레를 연주하고, 서로 머리를 땋아주며 놀았다. 아픈 아이는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학교도 지었다. 아이들이 지고 있는 삶의 짐을 모두 덜어주기에는 역부족일지 몰라도 짧은 시간 동안 그녀는 최선을 다했다. 누구라도 박수를 보낼 만큼 잘한 일이지만, 나는 어쩐지 가슴 한쪽이 저릿했다. 만약 그녀처럼 도와주는 사람이 계속 나타나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다시 굶을 것이고, 병원에서 쫓겨날 것이고, 학교에도 다닐 수 없게될 것이다. 그러면 아이들은 그녀와의 일을 그저 빛바랜 추억으로 기억하게 되겠지? 곁에서 계속 도와줄 수 없어서, 혼자 힘으로는 이 가엾은 아이들을 모두 도와줄 수 없어서 윤은혜는 너무나도 안타까웠을 것이다. 책을 통해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도 같은 마음이었다.
밤이 다 되었을 때에야 나는 겨우 작별 인사를 했다. 그런데 쉼터 바깥에 서서 안녕, 하고 인사하니 아이들은 안녕, 하고 쉼터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안아주지도 않고 그렇게 가버려서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일부러 담담하게 구는 건지...... 혹시 내일 또 올 거라고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어, 제대로 인사하기 위해 다시 한 번 들어갔다. 아이들은 저마다 응접실 구석구석에서 울고 있었다. 기약 없는 이별은 이 아이들에게는 익숙하면서도 슬픈 일이었다. 아이들은 내게 '또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마음을 주었지만 우리가 다시는 만나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토록 담담하게 굴어 놓고는 나와 헤어지는 게 슬퍼서 그렇게 울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는 것이었다. 마음이 짠해져 도저히 그곳을 떠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윤은혜 pp.46-8)
이 책에는 윤은혜 말고도 안성기, 배종옥, 송일국, 고수, 양동근, 한혜진, 보아 등 8명의 스타들이 세계 각지에서 전쟁, 기아, 빈곤 속에 사는 아이들을 만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양동근은 어떤 사람을 만나든 소탈하게 잘 어울렸고, 아이들과 친해지려고 한국에서 마술까지 배워갈 만큼 열정적이었던 고수는 밤낮없이 노예처럼 일하는 소년을 만나고 안타까워했다. 배종옥은 조혼 풍습으로 인해 여덟 살, 아홉 살 나이에 시집을 가야했고, 이른 성관계로 병까지 난 아이들을 보며 눈시울을 붉혔고, 탄자니아 땅을 처음 밟은 한혜진은 깨끗한 물이 없어서 각종 희귀한 병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보다못해 분개했다. 그런가 하면 오랫동안 봉사활동을 해온 베테랑 안성기는 내가 잘 먹어야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다며 씩씩한 모습을 보였고, 송일국은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부르키나파소에 다녀온 이후에도 그곳의 아이들을 잊지 못해 커피 한 잔 값을 저금통에 모으고 있다. 연예인이 이미지 관리하는 거라고, 방송국에서 시키니까 하는 거라고 안좋게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연예인이고 아니고를 떠나, 같은 사람으로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일부러 시간을 내 먼 외국땅까지 가서 온갖 불편함을 감수하며 나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아이들을 돕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라도 동의할 것이다. 보아의 경우 <K팝스타> 촬영을 마치자마자 지친 몸을 이끌고 인도의 빈민촌을 찾았다. 악취와 더위에 시달리는 것도 괴로웠을텐데, 보아는 평생을 그런 환경 속에서 노동을 하며 살아온 아이들을 보며 더욱 가슴 아파했다.
직접 부르키나파소에 가본다면 이해할 것이다. 내가 왜 한국에서도 부르키나파소의 아이들을 생각하는지. 왜 커피 한 잔에 마음이 무거워지는지.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먹는 밥, 버리는 음식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래서 나는 커피를 마시고 싶어질 때마다 한 잔 가격을 그대로 저금통에 저금하기로 했다. 내 아들들 대한이, 민국이, 만세의 사진을 붙인 저금통을 마련해서 아내와 함께 수시로 어려운 환경에 사는 아이들을 돕기로 한 것이다. 이처럼 저금통만 한 아주 작은 정성만 있으면 아이 하나가 생명을 얻고, 그만한 관심이 꺼지면 아이들의 목숨도 쉽게 꺼진다. 부르키나파소는 사람이 참 많이도, 쉽게도 죽는 나라다. (송일국 p.163)
"저기 미안해요." "뭐가요?" "그냥 미안해요...... 원래 우리는 모르는 사람들과 함부로 말해선 안 돼요." "천민이라서요? "네. 우린 세상에서 가장 낮은 사람들이에요." "아냐 아냐, 마시마가 낮은 만큼 나도 낮아요." "그럴 리가요...... 이렇게 피부가 하얗고 좋은 냄새도 나는데." (보아 pp.284-5)
책을 읽으면서 요즘처럼 찌는 듯이 무더웠던 몇 년 전의 여름날을 떠올렸다. 이들처럼 외국까지 간 것은 아니고, 우리나라의 어느 지방 도시에서 결손 가정의 어린이,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봉사활동에 참여한 적이 있다. 여러 아이들 중에 유난히 나를 잘 따르는 아이가 있었는데, 하루 일과가 끝나고 같이 길을 걷고 있을 때였다. 아이가 내 티셔츠를 잡아당기며 물었다. "언니, '봉사'가 뭐야?" 갑자기 왜 그런 걸 묻느냐는 내 질문에 아이는 내가 입고 있던 티셔츠의 뒷면에 인쇄된 글자를 가리켰다. 00봉사단. 봉사라는 단어의 뜻을 몰라서 물어본 것일 수도 있지만, 내게는 아이의 말이 꼭 '하루 종일 같이 공부하고 논 게 언니한테는 봉사였어?', '우리가 불쌍해서 동정하는 거야?'라고 묻는 것 같아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봉사단체에서 나눠준 티셔츠라서 그냥 입고 온 거라고 대충 얼버무렸지만, 아이는 어렴풋이 알았을 것이다. 봉사가 무슨 뜻인지, 우리가 왜 그곳에 갔는지. 그 날 이후로 나는 직접 참여하는 봉사활동은 가급적 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잘못하면 남에게 잘 보이려고 한다, 착한 일 한다고 생색낸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고, 내가 '봉사'라는 이름으로 하는 일이 상대방에게는 상처나 열등감을 주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고쳤다. 좋은 일은,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 내가 한 그 작은 일이 어떤 이에게는 기적과도 같은 행운이 될 수도 있고, 삶을 이어가는 유일한 희망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해를 살까봐, 상처를 줄까봐 남을 돕는 일을 포기하거나 주저한다면 그 어떤 기적도 일어나지 않고 희망도 생기지 않는다. 나 하나의 힘으로 부족하다면 오랫동안 계속 돕자. 사람을 모아 힘을 합치자. 그것이 이런 귀한 책을 만든 사람들과 이 대장정에 참여한 사람들, 그리고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묵묵히 세상에 희망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생각이나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답하는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