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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혁명 2
막스 갈로 지음, 박상준 옮김 / 민음사 / 2013년 6월
평점 :
막스 갈로의 <프랑스 대혁명> 제2권은 루이 16세의 죽음과 로베스 피에르의 공포 정치, 나폴레옹의 등장과 황제 즉위 이전까지를 다룬다. 1권이 루이 16세의 일대기를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어 읽기가 비교적 수월했던 반면, 2권은 루이 16세의 죽음 이후부터 나폴레옹의 등장 이전까지 중심이 되는 인물이 없어서 중심축이 없고 혼란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이 '중심축이 없고 혼란스러운 느낌'이야말로 그 시대의 대표적인 분위기가 아니었을까?
얼핏 보기에는 마라, 당통, 로베스 피에르, 막시밀리안, 생쥐스트 같은 정치인, 사상가들이 사회를 어지럽힌 것처럼 보이지만, 혼란을 가중시켰던 것은 다름 아닌 시민들이었다. "인민은 누군가를 우상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들은 공화주의자임을 자랑스러워하는 마음이 전혀 없다. 이전에 '국왕 만세!'를 외치던 이들이 바로 이 사람들이다. 이들의 우상숭배는 그 대상을 바꾸었을 뿐이다. 이들이 '마라 만세!'를 외치는가? 인민들은 한 우상을 다른 우상으로 대체한 것이다." (pp.54-5) 시민들은 자신들의 입으로 찬사와 축복을 내렸던 왕 루이 16세를 단두대에 끌어올렸고, 사형수가 그의 잘린 머리를 높이 들어 올렸을 때에는 소리지르며 환호했다. 루이 16세뿐 아니라 로베스 피에르에 대해서도, 마라에 대해서도 그랬다.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해서는 더욱 잔혹했다. 남편 루이 16세를 잃고 유폐자 신세가 된 그녀를 프랑스 국민들은 내버려두지 않았다. 돈도 명예도 지위도 없는 그녀에게 아들과 근친상간을 했다는 혐의를 씌워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게 만들었다. 단두대를 무대로, 사형 집행이 하나의 쇼로 전락한 시대. 사람들은 피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얼마나 이상한 국가인가. 모든 일에서 극단을 달리다니! 프랑스는 왕을 숭배했다가, 마지막 왕을 죽였다. 가톨릭 신앙의 멍에 아래 기꺼이 숙이고 들어갔다가, 막 완전히 뒤집어 엎었다. 중간 조치는 전혀 모른다...... 이 모든 것의 마지막은 무엇일까? 매우 비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p.138)
시민들이 이렇게 광기에 내몰렸던 이유는 대중 자체의 속성이라기보다는 경제적 상황이 어려웠던 탓이 크다. 흉작으로 인해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앗고, 최고가격제 등 인위적인 가격 규제 수단은 암시장 가격을 치솟게 해 상황을 더욱 암울하게 만들었다. '굶어죽거나 단두대에서 목이 잘려죽거나 똑같다'던 이 시대의 농담은 빈말이 아니었다. 반면 지배층의 재산은 전혀 줄지 않았다. 오히려 남는 부로 향락에 취했다. "부유한 파리 사람들의 심장은 위장으로 변해 버렸다. 사람들은 극장에 드나든다. 그곳의 모든 것들은 편안함과 즐거움, 쾌락과 기쁨이 넘쳤다." "사람들은 팔과 목을 그대로 드러낸 채 살색 속바지에 얇은 사로 만든 치마를 입고, 다리와 엉덩이는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고리로 둘둘 감은, '속옷도 입지 않은' 여인들의 모습을 감상했다." (p.442) 인간의 내면적인 폭력성이 혁명을 통해 폭발하는 측면도 있겠지만, 그 전에 인간의 폭력성을 억제할 수 있는 수단을 국가나 정부, 사회 체제가 먼저 마련하지 못한 것이 더 큰 잘못이 아닌가 싶다. 만약 프랑스 국민들이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사회문화적으로 억눌려 있지 않은 상태였다면 정치가들의 선동에 그렇게 쉽게 휩쓸렸을까? 1권을 읽고나서 '사람들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호하는 방법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는데, 2권을 읽어보니 결국 경제가 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구세주처럼 등장한 인물이 바로 나폴레옹이다. 나폴레옹은 외국과의 전쟁에서 차례차례 승리를 거두며 국민들로 하여금 어지러운 국내 정치를 잊게 만들었다. 정치인들은 정치인들대로 외국에서 엄청난 부와 재물을 가져다주는 나폴레옹을 견제할 이유가 없었다. 나폴레옹은 프랑스 국내 정치의 혼란을 종식시킬 하나 남은 대안이었고, 분열된 국민들을 한 데 모을 수 있는 카리스마를 지닌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의 높은 인기가 결과적으로는 황제의 즉위라는, 또다른 형태의 군주정의 시대를 열며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려 이뤄낸 대혁명과 왕정의 종식을 무색하게 만들었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아무리 역사가 정반합의 반복이라지만, '프랑스는 중간 조치를 전혀 모른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이같은 역사의 진보와 회귀는 너무나도 극단적이다.
보통 프랑스 대혁명 하면 왕정 타파, 공화정 수립, 인권선언 등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정치적 함의가 아닌 대중의 속성과 인간성의 측면에서 분석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옮긴이(박상준) 역시 "막스 갈로가 이 책에서 끌어내는 결론 중 하나는 잘 조직된 사회에서조차 사람들의 사회성이 매우 쉽게 부서지며, 혁명을 말하는 일이 곧 폭력을 분출하는 일이 된다는 점이다", "막스 갈로는 엄격하게 인간 행동의 관점에서 프랑스 대혁명을 바라본다"는 점을 지적했다. (p.510) 혁명의 부정적인 속성을 논했다는 점에서 보수적인 입장의 책으로 읽힐 여지가 적지 않지만, 정치가 아닌 인권의 측면으로 보아 이 책은 정치보다도 인권, 인간의 속성에 관한 책으로 읽는 것이 더 맞는 것 같다. 프랑스 대혁명의 의의는 어떤 정치체제가 더 우월하냐, 어떤 정치적 성향이 더 나은가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고유한 권리를 자각하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지도자들이 올바른 선택을 하게끔 이끌어가는 것을 처음으로 일깨워준 사건이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