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문장들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오늘은 숫자 '3'이 두 번 겹치는 3월 3일. 친구는 아침부터 '삼겹살 데이'라며 약속을 잡자고 졸라댄다. 아, 이 아름다운 날에 삼겹살이라니. 먹는 일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나라도 오늘만큼은 기름 냄새와 멀어지고 싶은데...... 긴 겨울이 지나고 마침내 기다려마지 않던 봄이 왔음을 실감하게 되는 오늘, 미루고 미뤘던 글을 쓰기 위해 나는 삼겹살 대신 책을 택했다. 오늘 고른 책은 바로 2004년에 처음 출간된 소설가 김연수의 에세이 <청춘의 문장들>이다.

 

 


대학교 때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려 읽은 적이 있다. 그 때는 이 책이 사람들이 말하는 만큼 좋은 책인지 잘 몰랐다. 문장들도 어쩐지 허세 같았고. 그런데 몇 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읽어보니 문장들이 참 좋다. 사람들이 왜 이 책이 좋다고 했는지 알 것 같다. 허세 같았던 문장들이 나도 모르게 가슴을 푹푹 찌른다. 누구 말대로 '내가 밤에 잠 못 들었던 이유를 나보다 김연수 작가가 더 잘 알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몇 년 사이에 책에 대한 느낌이 180도 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그것은 내가 나이를 먹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책에는 작가의 유년시절부터 청년기까지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겨있다. 1970년 경북 김천에 있는 한 빵집의 막내 아들로 태어난 그는 중고등학교 내내 이과를 지망하다가 입시 직전에 영문학과에 지원하여 합격, 대학교 3학년 때 시인으로 등단했고, 대중음악 평론가, 기자 등의 직업을 거쳐 현재는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서른 살이 되면서 나는 내가 도넛과 같은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됐다. 빵집 아들로서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의 깨달음이었다. 나는 도넛으로 태어났다. 그 가운데가 채워지면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p.7) 같은 멋진 문장을 쓸 줄 아는 사람이 이과에 진학하여 과학자나 엔지니어가 될 뻔 했다니 아찔하다. 


"살아오면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영어 가정법 문장을 어떻게 만드는지도 배웠고 3차 방정식을 그래프로 옮기는 법도 배웠다. 하지만 내가 배운 가장 소중한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일 수 있는지 알게 된 일이다. 내 안에는 많은 빛이 숨어 있다는 것, 어디까지나 지금의 나란 그 빛의 극히 일부만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일이다." (p.195)


김천 시내를 넘어 서울 성북동 달동네, 군부대, 일산, 그리고 북한과 중국으로까지 뻗어나가는 그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읽다보면, 전혀 닮지 않았지만 어설프다는 점만윽 똑닮은 나의 청춘이 떠오른다. 지금 내 나이는 스물여덟. 분명 몇 년 후 이 글을 다시 본다면 '스물 여덟살 주제에 이런 건방진 생각을 했다니!'라며 코웃음칠 것이 분명하지만, 현재의 나는 어쩐지 청춘이 나로부터 비껴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청춘의 한복판을 달리고 있던 이십대 초반에는 그 때가 청춘인지도 잘 몰랐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른다'는 노랫말처럼, 청춘은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 청춘의 한복판에 있을 때에는 낯설게만 느껴졌던 문장들이 반갑고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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