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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로 고래잡는 글쓰기 - 글 못 쓰는 겁쟁이들을 위한 즐거운 창작 교실
다카하시 겐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소설가 김연수와 김중혁이 함께 쓴 영화 에세이 <대책 없이 해피엔딩> 을 읽다보면 김중혁의 글 중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작가 역시 일종의 기술자라서 평생 자신의 기술을 반복 연습해야 한다." (p.108) 글쓰기는 수단일뿐, 메인은 소설로 표현되는 작가의 가치관과 경험이고, 작가는 글쓰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를 완성해가야 한다는 김중혁의 지론을 엿볼 수 있다.
<이동진의 빨간책방> 2012년 연말 결산 편에서 김중혁이 추천한 책 <연필로 고래잡는 글쓰기>를 읽으면서 다시 한번 그의 글쓰기 지론을 떠올렸다. 책의 저자 다카하시 겐이치로는 대학 시절 학생운동에 가담하여 체포 구금된 이후 극심한 실어증에 빠졌다가, 자동차 공장, 철공소를 전전하며 육체노동을 경험한 후 글쓰기를 통해 실어증을 극복, <사요나라 갱들이여>,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 등 다수의 소설, 에세이를 출간하며 현대 일본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평론가로 거듭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다카하시의 팬을 자처하는 김중혁의 추천사를 듣고 김중혁의 팬인 내가 다카하시의 책을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첫 장을 펴자마자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건강하시죠?' 로 시작되는 독특한 형식에 먼저 놀랐다. 이 책은 시종 이렇게 저자가 독자에게 말을 건네는 식으로 되어 있다. 목차만 봐서는 기초편, 실전편으로 나누어져 있어서 흡사 제대로 된 글쓰기 교본 같지만, 막상 읽어보면 '교본'이라기 보다는 글 좀 쓴다 하는 선배로부터 두런두런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다.
하지만 찬찬히 읽어보면 '글 좀 쓴다 하는 선배'가 할 법한 말이 아니라 유명 작가의 내공이 느껴지는 내용임을 알 수 있다. 가령 "소설이라는 것은 이를테면 광대한 평원에 외따로 떨어진 작은 마을에서 슬며시 도망쳐 나온 소년 같은 것"이라든가(p.19), "이야기는 쓰는 것이 아니다. 붙잡는 것이다"(p.72) 같은 문장을 대하면 소설 쓰는 비법을 알아내고자 기대한 독자로서는 살짝 김이 새기도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것이야말로 진리라는 생각이 든다. 말로만 '글을 쓴다', '글 쓰고 싶다' 하는 사람들은 평생 글을 못 쓴다. 지금 당장 펜을 잡고 글을 쓰는 사람만이 글을 쓸 수 있다.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 느껴지는 것 하나하나를 자신의 언어로 해석하고 문장으로 표현하는 사람만이 글을 쓰고 작가가 될 수 있다. '마을에서 도망쳐 나온 소년'처럼 익숙한 것으로부터 벗어나 모든 것을 새롭게 해석하고, 붙잡듯이 글을 쓰라는 저자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또한 저자는 글쓰기란 "아기처럼 흉내내는 것부터 시작한다"(p.111)며 기존 작품을 열심히 모방해보라고 충고한다. 여기서 모방은 표절과 구분하여 이해해야 한다. 저자가 말하는 모방은 기존 작가들의 작품 중에서 좋은 글, 문장만을 선별하여 필사해보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하는 연습을 해보는 것을 의미한다. 모방의 힘은 강력하다. "무언가를 흉내 내고 싶을 만큼 그 무언가를 좋아하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p.129)의 저자의 말처럼, 모방을 하는 대상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일 수밖에 없고, 모방을 하다보면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알 수 있다. 결국 글쓰기란 나를 알게 되는 과정이다. 김중혁 작가가 쓴 "작가 역시 일종의 기술자라서 평생 자신의 기술을 반복 연습해야 한다"는 문장 뒤에 이어지는, "그렇게 글을 쓰면서 연습하여 스스로를 완성해야 한다"는 말의 뜻을 어렴풋이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