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96일 - 유괴, 감금, 노예생활 그리고 8년 만에 되찾은 자유
나타샤 캄푸쉬 지음, 박민숙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아침에 대전 모 여고 학생이 자살했다는 뉴스 보도를 보았다. 학교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고, 선생님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묵살당했다고 했다. 인터넷에서는 훨씬 전부터 이 사건이 알려져 그 친구들과 선생님을 비난하는 여론이 들끓고 있었다.

 

사건에 대한 보도와 글을 읽으면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친구가 삶의 전부이고, 학교만이 내 세상인 그런 나이에, 친구들로부터, 학교로부터 자신을 부정당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연인으로부터, 회사로부터, 사회로부터 등등 나를 부정당하는 건 늘 불쾌한 감정이 뒤따른다. 그러니 이 어린 친구한테는 얼마나 더 고통스러운 일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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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마음을 안고 그저께부터 읽던 <3096일>을 펼쳐 들었다. 저자 나타샤 캄푸쉬는 1988년 2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고, 열 살이 되던 1998년에 유괴되어 무려 3096일, 약 8년의 시간을 볼프강 프리클로필이라는 남성에 의해 감금되어 보냈고, 2006년에 혼자 힘으로 탈출했다.

 

나타샤의 어린시절은 불안정했다. 어머니가 늦은 나이에 예상치 못한 임신으로 나타샤를 낳았기 때문에 '원치 않았던 아이' 라는 생각이 늘 그녀를 괴롭혔다. 부모님은 허구헌날 싸웠고, 어머니는 나타샤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나타샤는 마음의 상처를 달래기 위해 폭식을 했고, 그 탓으로 학교에서는 뚱뚱하다는 놀림을 받았다. 그러면 다시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고, 매사에 무력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그 시절 어린 나타샤의 머릿속에 각인된 영상이 있었다. 바로 텔레비전 뉴스에서 본 아동 유괴, 성폭행에 관한 영상이었다. 당시 유럽에서는 어린 소녀들을 노리는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나타샤는 비슷한 또래의 소녀들이 피해자라는 사실이 놀랍고 두려웠고, 만약 자신에게 그런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보았다.

 

그러던 어느날. 평소와 다를 것이 없었던 등굣길. 유독 차 한 대가 신경이 쓰였지만 기분 탓이려니 하고 애써 무시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나 불길한 예감은 왜 비껴가지를 않는지. 눈깜짝할새에 한 남자가 나타샤를 납치했고, 어느 지하방에 감금했다. 무서웠지만, 나타샤는 뉴스에서 본 것처럼 며칠만 지나면 부모님과 경찰이 자신을 구조해주리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 며칠이 몇 주가 되고, 몇 개월이 되고, 몇 년이 지나 8년이 될 줄은 그때는 미처 몰랐다.

 

나타샤는 무려 8년을 오로지 범인 한 사람과 보냈다. 그것도 지하방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범인의 통제와 억압, 착취, 폭력, 성폭행 등을 견디면서 말이다. 범인은 정확히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인지 책에 나오지 않지만, 그녀의 설명을 보면 일종의 반사회적 성향, 여성혐오증과 결벽증 등을 가진 인물이었던 것 같다. 그것이 아이이자 여성인 나타샤에 대한 감금과 폭력으로 나타났고, 그것도 모자라 그녀의 사소한 행동, 말과 생각까지도 통제하려고 했다. 심지어 그녀의 이름도 없애고, 추억도, 꿈도 모두 파괴하며 '나타샤 캄푸쉬'라는 인간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

 

하지만 나타샤는 그런 범인에게 결코 굴하지 않았다.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부모님 얘기를 하면 얻어맞는데도, 어린시절과 가족에 대한 기억을 잃지 않기 위해 틈나는대로 글을 썼고, 탈출하면 학교 수업도 받고 사회생활도 하기 위해 교묘하게 범인을 설득해서 책을 읽고 공부도 했다. 후에 범인의 폭력이 심해져서 멍든 몸이 아파 잠을 못 이룰 때는 탈출해서 보통의 삶을 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려고 애썼다.

 

.....

 

여기까지만 보면 여느 범죄나 흉악 사건의 피해자의 수기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극악무도한 범인과 약하고 무력한 피해자. 범인의 악행이 아무리 심해져도 피해자는 꿋꿋이 버티며 정의를 믿는 그런 구도.

 

그런데 그녀의 회상 중에는 보통 독자가 읽기에는 어색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그렇게 그녀의 몸과 정신 모두를 파괴하려고 애쓴 범인인데, 그녀의 추억 속에서 범인은 때로는 이웃집 아저씨, 오빠처럼 자상하고 친절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순전히 까맣기만 하고 하얗기만 한 것은 없다. 어느 누구도 선하거나 악하지만은 않다. 이는 유괴범에게도 유효하다. 이런 말은 유괴를 당했던 희생자에게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선과 악에 대한 뚜렷한 정의를 내려주는 틀을 뒤흔드는 말이기 때문이다.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 세상 속에서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 기꺼이 따를 준비가 되어 있는 그러한 틀. 내가 이런 말을 할 때 대부분의 제3자의 얼굴에서 동요와 거부의 빛을 발견하곤 한다. 내 운명을 동정하며 이해하던 사람들의 마음은 곧장 얼어붙고 거부감으로 변한다. 또한 감금생할의 내면을 손톱만큼도 들여다보기 싫은 사람들은 나의 개인적인 경험을 '스톡홀름 신드롬'이란 한 단어로 단정 짓는다. (p.184)

 

열 살 소녀에서 열 여덟 살 성인이 되기까지, 그 중요한 시기를 오직 범인 한 사람에 의존하여 살았던 나타샤에게 범인은 이 모든 고통과 슬픔을 안겨준 악인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밥도 주고 잘 곳도 주고 가끔씩 선물도 주고 책도 주는 선인이기도 했다. 이 상황은 그녀로 하여금 범인을 죽도록 미워하면서도 필요로 하는 모순적인 감정을 가지게 했다. 결과적으로 아버지, 어머니, 언니들, 선생님 등 ㅡ 보통의 소녀들이라면 어른으로 성장하는 데 필요로 했을 그 모든 사람들의 도움을 준 사람이 나타샤에게는 바로 범인 한 사람뿐이었던 것이다.

 

그로 인해 나타샤는 탈출 후 가족들을 다시 만나고 경찰과 심리학자의 도움을 받는 상황이 더 어색하고 외로웠다고 고백한다. 다시 만난 가족들은 ㅡ 가족이라면 당연히 알아야 할 ㅡ 그녀의 성장과정을 몰랐고, 경찰은 믿음직하지 못했고, 심리학자는 그녀의 심리를 `스톡홀름 신드롬`이라는 단어로 규정지으며 그녀의 모순적인 감정과 그로인한 고통을 무시했다.

 

이 사회는 볼프강 프리클로필과 같은 범인을 필요로 한다. 그 사회 안에 존재하는 악에 형상을 부여하고 그 악을 자신으로부터 분리해내기 위해서. 사회는 지하감방과 같은 배경을 필요로 한다. 폭력이 그 파렴치하고 악랄한 얼굴을 무수한 방이나 앞마당에서 드러내는 광경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는. 사회는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범죄의 수많은 익명의 피해자들, 아무리 도움을 요청해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희생자들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나와 같은 엽기적 사건의 피해자를 교묘하게 이용한다. (p.203)

 

이렇게 보면 사건의 일차적인 범인은 볼프강 프리클로필이지만, 이차적인 책임은 사회 전체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직접적으로 폭력을 가하거나 억압한 것은 아니지만, 범인을 방기하고, 사건이 일어난 후에도 무려 8년이라는 시간을 잊고 있었으며, 사건이 해결된 후에도 여전히 피해자라는 굴레를 씌워서 그녀의 삶을 규정지으려고 하는 사회 말이다.

 

또 나타샤의 설명대로 그녀의 사건이 너무나 극악무도하고 엽기적이어서 화제가 되었을뿐이지, 사회에는 이미 수많은 악이 판치고 있는데도 절대악이 아니고서야 악인지 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무시되는 경우가 허다한지도 모르겠다. `나를 괴롭히는 가족, 연인, 동료나 선배, 상사는 그저 나를 괴롭힐 뿐이지, 악인은 아니야. 악인은 뉴스나 영화나 소설에 나오는 그런 악당들이나 악인이지...` 이렇게 생각하며 일상의 폭력을 가볍게 넘기며 회피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거리 위에서, 건물 안에서 수없이 마주했겠지만 알지도 못하는 나 같은 사람.

 

그래서 그 작은 상처가 ㅡ 나타샤 사건처럼 ㅡ 깊이 곪아 터졌을 때 그제서야 비로소 두려워하고 정의를 운운하고, 그리고 얼마 안 가서 잊어버리겠지. 또 다른 무시무시한 사건이 터질 때까지. 

 

.....

 

아주 작은 괴롭힘도 누군가에게는 범죄와 같은 상처를 남길 수 있고, 그 상처는 진짜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면 그 범죄를 저지른 사람만이 범죄자일까? 처음에 작은 상처를 주었던 사람, 그 모습을 보고도 못 본 척한 사람들, 너무 무관심해서 보지도 못한 사람들에게는 책임이 없는 것일까?  

 

폭력과 억압에 맞서 8년이란 긴 시간을 견디고 스스로 탈출한 나타샤 본인의 의지도 빛나지만, 그 고통의 시간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다시 나오지 않도록 용감한 주장을 한 것이 너무나도 멋지다. 그녀가 홀로 싸워야 했던 시간들이 단순한 회고록으로 남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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