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하라
스테판 에셀 지음, 임희근 옮김 / 돌베개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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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정리하다가 이 책 <분노하라>가 눈에 띄었다. 저자 인터뷰에 추천사, 역자 후기, 주석을 합쳐도 채 백 쪽이 안 되는, 소책자마냥 얇은 이 책을 지난 여름에 한창 화제가 되었을 때 바로 구입해서 읽고(그것도 콩국수 집에서 콩국수 나오는 걸 기다리는 동안에 ㅎㅎ) 감상 쓰는 것을 깜빡 잊고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그러니까 이 글은 계절이 두번 바뀐 뒤에야 쓰는, 아주 뒤늦은 감상문이다.

 

저자 스테판 에셀은 1917년 독일에서 태어났다. 1917년생이면 3.1운동이 일어나기 2년 전에 태어나신 셈이니 저자가 살아온 세월의 무게가 더욱 묵직하게 느껴진다. 7세 때 프랑스로 이주하여 20세에 프랑스 국적을 취득한 저자는 선배인 사르트르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으나 2차 대전이 발발하는 통에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레지스탕스의 일원이 되었다. 연합군 상륙작전을 돕는 중에 체포 되어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 사형 선고까지 받았으나 극적으로 탈출하여 외교관이 되었다. 종전 후 1948년 유엔 세계인권선언문 초안 작성에 참여했고, 인권과 환경 문제에 굵직한 종적을 남겼다.

 

이 책의 머리말에는 제일 먼저 저자가 몸담았던 프랑스 전국 레지스탕스 평의회가 구축한 개혁안에 대한 소개가 나온다. 이 개혁안에는 사회보장제도 구축, 언론 독립, 평등한 교육 등 당시로서는 너무나도 새롭고 파격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종전 후 프랑스는 이 개혁안에 기초하여 사회제도를 만들었고, 그 결과 많은 개혁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저자는 2008년 무렵부터 프랑스 사회의 근간이기도 한 개혁안의 의지가 위협을 받고 있다고 느꼈다. 이민자에 대한 차별이 묵인되고, 사회보장제도가 제 구실을 못하고, 언론이 부자와 권력자들에게 장악되고 있는 현실을 목도하며 저자는 분노했다. 나치로부터, 전쟁의 참화로부터, 종전 후 혼란으로부터 지키고자 했던 사회의 모습은 결코 이런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여러분 모두가,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나름대로 분노의 동기를 갖기 바란다. 이건 소중한 일이다. 내가 나치즘에 분노했듯이 여러분이 뭔가에 분노한다면, 그때 우리는 힘 있는 투사, 참여하는 투사가 된다. 이럴 때 우리는 역사의 흐름에 합류하게 되며, 역사의 이 도도한 흐름은 우리들 각자의 노력에 힘입어 면면히 이어질 것이다. 이 강물은 더 큰 정의, 더 큰 자유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p.15)

 

저자는 사람들이 좀더 자신처럼 사회에 대고 분노하기를 바란다. 분노는 레지스탕스가 들고 일어섰던 기본동기로서, 미약한 개인을 사회에 참여하게 만들고, 투사로 만들며, 이 투사들이 역사를 만들고 자유를 쟁취한다는 것이 저자의 논리다.

 

분노와 상반되는 최악의 태도로 저자는 무관심을 지적했다. 분노는 부정적인 감정을 동반하는 것이니 결과 또한 부정적이지 않겠냐는 의구심이 일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분노는 지금 처한 상황을 극복해서 긍정적인 미래를 맞이하자는 의미가 담겨있는 반면, 무관심은 상황에 승복하여 아무런 희망도, 보람도 없이 살겠다는, 지극히 수동적인 감정이다. 부정에 일일이 분노하는 사회가 조금은 피곤하게 느껴질지 몰라도,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사회보다는 더 행복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저자가 전하고자 한 바가 아닌가 싶다.

 

최악의 태도는 무관심이다.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어? 내 앞가림이나 잘 할 수밖에..." 이런 식으로 말하는 태도다. 이렇게 행동하면 당신들은 인간을 이루는 기본 요소 하나를 잃어버리게 된다. 분노할 수 있는 힘, 그리고 그 결과인 '참여'의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는 것이다. (p.22)

 

 

나이를 먹을수록 역사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더욱 경건해진다. 어릴 때부터 만화책보다 역사책을 좋아하고, 사극을 좋아했을만큼 역사에 관심이 많았지만, 그런 내 눈에도 그 때는 역사가 그저 왕들이 나오고 신하들이 나오는 옛날 이야기에 불과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생활인으로서 살며 밥과 돈이라는 아주 근원적인 욕구에 나란 사람이 얼마나 흔들리기 쉬운가 깨달을 때마다, 그런 욕구에도 불구하고 자유와 정의, 민족의 독립 등 대의를 위해 싸운 인물들에 대해 더욱 존경심을 가지게 된다.

 

저자 스테반 에셀도 그런 인물 중 한 명이다. 2차대전, 나치, 레지스탕스, 드골, 세계인권선언 ㅡ 이런 흘러간 역사가 이 분에게는 삶이었고, 아직도 꼬리를 길게 드리우고 있는 현실일 터. 그런 저자의 눈에는 21세기를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어떻게 비칠까? 수많은 이들이 피땀흘려 얻어낸 정의와 자유가 짓밟히고 있는 것을 보고 답답함을 느끼실까? 부끄러움에 고개가 숙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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