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 돼지 (청소년 진로설정 워크북)
박철균 지음 / 옥스비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연초에 오랜만에 친척들을 만났었다. 막내 이모가 어느새 고등학생이 된 사촌동생을 내 앞에 앉히시면서 자극 좀 받게 대학 얘기 좀 들려주라고 사정을 하셨다. 마침 사촌동생도 '언니네 학교 가고 싶다'며 졸라대는 통에 얘기를 시작하기는 했는데, '전공은 뭐 하고 싶냐'는 질문에는 '그런건 됐고, 미팅 얘기부터 들려달라'고 조르고, '어떤 과목을 좋아하냐'는 질문에는 '수리은 포기했고 언어는 그럭저럭한다'는 붕 뜬 대답만 돌아와서 적잖이 실망스러웠다. 입시 경쟁을 뚫고나니 이번에는 사상 최악의 취업난에 부딪혀 고전하고 있는 20대 중반의 구직자로서, 진로설정은 한 살이라도 어릴 때 해놓고 미리미리 준비할수록 좋다는 걸 뼈저리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전 내 앞으로 배달된 청소년 진로설정 워크북 <오! 돼지>를 받았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난 사람도 사촌동생이었다. 아이돌 그룹 영상 보고, 친구들과 문자 보내는 시간을 조금만 줄이는 대신 이 책을 읽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나도 중, 고등학교 시절에 이런 책을 만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다행스럽게도 나는 어릴 때부터 장래에 대한 소신이 확고하여 일찌감치 진로를 정해놓고 대학, 학과도 맞춰서 진학했지만, 중, 고등학교 시절, 심지어는 대학생이 되어서도 여전히 자신의 적성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진로도 정하지 못해 '꿈이 없다'며 방황하는 친구들을 많이 보았다. (슬프게도 요즘 중, 고등학생들만 꿈이 없는 건 아니다....) 학창 시절에 미리 진로를 정해서 그에 맞춰 대학, 학과를 진학하면, 나중에 대학에서 전과나 편입, 반수나 재수를 할까 고민하느라 시간을 낭비할 필요도 없고, 취업할 때도 훨씬 수월할 것이다. 행여 취업난에 부딪혀 대학 졸업 후 바로 취업을 하지 못하더라도 확고한 꿈이 있기 때문에 덜 절망할 것이다.
저자 박철균은 현재 아주대학교에서 진로설정에 관한 강의와 상담, 취업 강의, 컨설팅을 하고 있는 진로설정 전문가로, 중, 고등학교 때 진로설정을 하면 요즘 새로운 대입 제도로 각광받고 있는 입학사정관제뿐 아니라 대입, 그리고 취업에도 많이 도움이 된다는 점에 착안하여 <오! 돼지>를 만들었다고 한다.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내 사촌동생 중 하나도 고등학교 학생회장 경력을 살려 수시입학을 했는데, 내 사촌동생처럼 미리 적성과 재능을 살려 입시라는 관문도 뚫고 남들보다 먼저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저자는 청소년 진로설정에 있어 Story - Style - Schedule - Show로 이어지는 4S 프로그램 네 단계를 강조한다. 이 네 단계에 맞추어 저자의 설명과 또래 친구들이 작성한 샘플을 참고하여 책에 제시되어 있는 미션을 해결하는 것만으로도 단기적으로는 입학사정관제를 비롯한 입시 대비, 장기적으로는 인생의 경로를 계획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대학 시절에 학교 경력개발센터나 커리어 특강 등을 통해 수강료를 내며 이런 프로그램을 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이 책을 구입하는 것만으로도 그 모든 수고를 덜 수 있다니 참 좋은 것 같다.
진로설정, 커리어 관리라는 것을 비단 소위 '남들 보기에 좋은' 직업이나 직장을 가지기 위한 준비가 아닌, 자신의 적성에 맞고 사회에도 기여할 수 있는 직업을 미리부터 탐색하여 전문성을 키운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지극히 바람직하고 유익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중,고등학교 시절 진로설정이라는 명목으로 이루어졌던 상담이나 심리검사, 교육 등이 대개 교사의 바람이나 명문대 진학, 취업 잘 되는 학과만을 강조하는 식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수혜자인 학생의 적성과 장래희망을 고려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지금의 '아픈 청춘들', 그리고 끔찍한 취업난을 나은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내 힘으로 시스템을 바꿀 수는 없는 일이고,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시스템에 맞서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바뀌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과거는 지나갔다. 지금 당신 앞에는 현재가 있다. 그리고 찬란한 미래가 올 것이다. 나보다 훨씬 젊고, 통통 튀는 생각을 가진 학생들이 더 찬란한 미래를 맞이할 수 있도록, 우리 어른들이 먼저 이끌어주는 것은 어떨까. 아직 꿈을 못 찾은 내 사촌동생에게도 꼭 이 책을 선물해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