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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으로, 시베리아 횡단열차 - 일러스트레이터 이다의 카메라 없는 핸드메이드 여행일기
이다 지음 / 미술문화 / 2024년 7월
평점 :

학창 시절 로망 중 하나가 시베리아 횡단열차 타보기였다. 그때는 대학에만 가면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대학에 가고 나서는 취업 준비를 하느라 갈 수가 없었고, 취업 후에는 로망이고 뭐고 당장 하루하루를 살아내기도 바빴다. 그래도 언젠가는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났다(2022년). 이 책을 구입한 2024년에는 전쟁이 곧 끝날 줄 알았는데,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과연 나는 생전에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타본다는 로망을 실현할 수 있을까. (역시 여행은 갈 수 있을 때 가야 한다.)
이 책은 일러스트레이터 이다가 처음부터 끝까지 손으로만 쓰고 그린 '내 손으로 시리즈'의 네 번째 책이다. 저자가 발리, 교토, 치앙마이에 이어서 러시아를 여행의 목적지로 선택하게 된 이유는 뭘까. 2018년 여행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저자는 러시아에 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느 날 친구가 블라디보스톡 여행을 제안했고, 검색해 보니 항공권과 숙소도 저렴하고 물가도 싸고, 그동안 친구들과 차곡차곡 모아둔 곗돈도 있었다. 그러다 블라디보스톡이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출발지임을 알게 되었고, 7박 8일 동안 기차를 타고 하바롭스크, 이르츠쿠츠, 예카테린부르크를 거쳐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가볼 수 있다는 사실에 전율했다.
그렇게 시작된 여행은 거의 매일이 사건 사고의 연속이었다. 그중에는 다시는 겪고 싶은 불쾌한 일도 있었고 민망한 일도 있었지만, 팟캐스트 <영혼의 노숙자>에 나오는 말처럼 - "눈물 닦으면 다 에피소드"가 아니겠는가. 어떻게 보면 많은 사람들이 가급적이면 여유롭고 쾌적하게 여행하기를 바라는 이 시대에, 비행기가 아닌 기차를 타고, 그것도 언어도 문화도 낯선 외국인들과 며칠을 부대끼며 여행하기를 선택한 것부터가 스스로 고생문을 여는 행위였다. 그렇다고 '그런 일들'을 겪어도 되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해서 그 나라의 어두운 일면이나 사회의 그늘진 부분을 목격하는 것도 (여행이 전보다 여유롭고 쾌적해진 시대에 놓치기 쉬운) 여행의 매력 아닐까.
이렇게 쓰고 보니 여행에서 안 좋은 경험만 한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7박 8일간의 기차 이동은 생각 외로 편안했고(누워만 있어도 저절로 여행이 된다니!) 생각 이상으로 즐거웠다. 겉모습은 무뚝뚝하지만 알고 보면 인정이 많고 친절한 사람들(주로 여자들)을 많이 만나서 불쾌한 기억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시간이 부족해서 못 봤을 정도로 엄청난 양의 미술 작품과 공예품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한국과는 규모부터가 다른 광활한 자연과 사회주의 시절의 흔적이 남아 있는 사람들의 생활 모습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언젠가 실제로 러시아 여행을 가게 되기 전까지는 이 책을 반복해 읽으며 로망을 잘 간직하는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