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월 일기
권남희 지음 / 다산책방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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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여름이 지나가고 제법 가을 같은 날씨가 되었다. 기온이 내려가고 바람이 선선해지니 여행 생각이 나는 건 나뿐일까. 기나긴 겨울이 시작되기 전에 어디라도 가보고 싶은 마음을 느끼던 차에 오랫동안 애정해온 작가의 신간이 나왔다. 일본문학 번역가이자 에세이스트 권남희의 산문집 <안식월 일기>이다.


이 책은 저자가 안식월이라는 명목으로 도쿄에서 한 달 살기를 한 경험을 담고 있다. 직업이 다름 아닌 일본문학 번역가이고 젊은 시절 일본에서 살아본 적도 있기에, 저자에게 도쿄에서 한 달 살기 정도는 쉬운 미션일 줄 알았는데 책을 읽어보니 그렇지가 않았다. 오랫동안 혼자서 딸을 키우고, 아픈 엄마를 간병하고, 반려견을 보살폈기 때문에 그 역할을 내려놓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다. 이제 엄마는 돌아가시고, 반려견도 무지개 다리를 건너고, 딸은 다 커서 자기 앞가림을 다 할 수 있는데도 떠날 용기를 내기가 어려웠다. 


그런 저자의 등을 밀어준 건 <츠바키 문구점>으로 한국에도 유명한 일본의 소설가 오가와 이토가 보낸 메일이었다. "하고 싶은 미루지 않고 지금 해야겠다"라는 문구를 보고 전부터 버킷리스트로 간직해 온 꿈을 이룰 때가 왔다고 생각한 저자는, 도쿄의 개화일에 맞추어 출국일을 정하고 숙소를 계약했다. 낮에는 카페에서 번역 작업을 하고 밤에는 공원에서 벚꽃을 보며 산책을 하면 몸도 마음도 충전이 되겠지, 라는 단출한 계획만 가지고 떠났다고 했지만, 책을 읽어보면 결코 '단출한' 한 달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매일 번역과 글쓰기 일정을 소화하면서 오가와 이토의 집에도 가고, 북토크도 하고, 자신이 번역한 책에 나온 장소에 직접 가보기도 하고, 일본 출판사의 편집자와 사장님도 만나고... ('안식'월이 이렇게 바쁜 거 맞나요? ㅎㅎ)


여행 가이드북에는 나오지 않는, 저자만의 추억과 취향이 담긴 여행 스팟이 많이 나오는 점도 좋았다초보 번역가 시절 즐겨 찾았던 신주쿠 기노쿠니야 서점, 딸이 고등학생일 때 함께 왔던 도쿄대의 산시로 연못 같은 곳은 나도 가본 곳이라 반가웠고, 그곳에 얽힌 나의 추억이 떠올라서 한동안 마음이 뭉클했다. 저자가 번역한 책 <츠바키 문구점>의 배경인 가마쿠라로 짧은 여행을 다녀온 이야기와 마스다 미리의 책 <오늘의 간식은 뭐로 하지>에 나오는 디저트 가게에 직접 가서 디저트를 사먹어본 이야기도 좋았다. 나도 두 권의 책을 읽고 '가마쿠라에 가보고 싶다', '마스다 미리가 추천한 디저트를 먹어보고 싶다'는 꿈이 생겼는데 여태 이루지 못했다. 그런 나의 등을 저자가 밀어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저자가 도쿄에서 한 달 살기를 하면서 여기저기 가본 곳 이야기만 잔뜩 해서 이 책을 여행에 관한 책으로 생각할 수도 있는데, 사실 이 책은 여행보다도 회복과 애도가 중심에 있다. 여행 직전에 엄마와 사별하고 그전에는 반려견을 떠나보낸 저자는, 자신에게 가장 친숙한 외국인 일본의 도쿄에서 한 달을 지내며 자신의 과거와 재회하고 현재를 성찰한다. 그러면서 천천히 미래를 살아갈 힘을 충전해 가는 저자의 모습을 보는 것이, 비슷한 일을 걱정하는 나에게도 큰 위로와 용기를 주었다. "더 늙기 전에 더 자주 떠나고 싶어졌다"라는 에필로그의 문장을 남은 삶의 지침으로 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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