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안의 여지
마보융 지음, 임주영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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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의 여지>라는 제목만 봐서는 어떤 내용일지 짐작하기 힘들었다. 중국 소설이니 '장안'은 중국의 옛 수도를 뜻할 것 같은데 '여지'란 대체 무엇일까. 의문은 생각보다 빠른 단계에서 풀렸다. 일단 이 소설은 중국의 당나라 때 왕 중에서도 양귀비의 미색에 빠져 나라를 망친 것으로 유명한 현종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당나라의 수도 장안에서 상림서라는 관청의 관리 중에서도 종구품하의 하급 관리인 '이선덕'은 어느 날 뜻밖의 임무를 맡게 된다. 그것은 황제가 사랑하는 양귀비의 생일에 맞추어 남쪽 지방의 영남에서 나는 귀한 과일인 '여지(리치)'를 신선한 상태로 배송하라는 것이다. ​ 


요즘같이 전국의 도로가 정비되어 있고 교통수단도 발달해 있고 냉장 운송 시스템이 보편화된 시대에는 어려운 일도 아니지만, 때는 한반도의 역사로 치면 통일 신라 시대인 당 현종 때. 여지처럼 남쪽 지방에서만 나는 귀한 과일을 다른 지방에서 신선한 상태로 먹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했고, 먹더라도 소금에 절이거나 말려서 먹는 방법뿐이다. 지금까지 아무도 성공한 적 없고 앞으로도 성공할 가능성이 극히 낮은 임무를 떠맡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이선덕은 상사에게 호소하기도 하고 동료들에게 하소연해 보기도 하지만 돌이킬 방법이 없다. 게다가 그에게는 큰 빚을 지고 매입한 집과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아내와 딸이 있다. 만약 그가 임무를 해내지 못한다면 심한 경우 목숨을 잃을 수도 있고 가족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다. ​ 


그리하여 시작된 이선덕의 장기 출장 이야기가 소설 <장안의 여지>인데, 예상보다 훨씬 재미있게 읽었다. 배경이 옛날 중국이라는 차이점이 있기는 하지만, 평범한 소시민인 주인공이 '회사'라는 적을 상대로 분투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한자와 나오키>를 비롯한 이케이도 준의 기업 엔터테인먼트 소설 시리즈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주인공 이선덕의 캐릭터도 좋았다. 비록 신분은 말단 관리이지만 자신이 맡은 일은 책임을 지고 끝까지 해내려고 노력하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면서도 사람으로서의 도리는 잊지 않는 자세가 귀감이 되었다. 문관이지만 계산에 능하고 수학에 관심이 많은 점도 캐릭터에 개성을 더한다. ​ 


소설의 결말도 인상적이었다. '따뜻한 남쪽 지방에서만 나는 귀한 과일인 여지를 귀비의 생일에 맞춰 수도인 장안까지 운반한다'는 목적이 정해진 채로 시작된 소설이기 때문에 결말도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는데, 예상과 전혀 다른 결말이 펼쳐져 놀랍고 신선했다. 어떻게 보면 소설 전반에 여색에 빠져 국정은 나 몰라라 하는 왕과 그런 왕의 눈치만 살피면서 일은 제대로 하지 않는 고위 관리들, 돈만 밝히고 인간에 대한 예의는 뒷전인 지방 사족들에 대한 비판적인 의식이 깔려 있기 때문에 그런 결말이 펼쳐진 것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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